소설리스트

귀환무사-170화 (168/425)

# 170

<귀환무사 170화>

* * *

팟!

“위험해요!”

영호수란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독고혜의 육신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런 그녀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오직 그녀만을 노리고 달려든 자들에 의해 기어코 가벼운 부상을 입고 만 것이었다.

보이지 않던 살수들의 소행이었다.

왕전과 북궁천소가 대노했다.

“개새끼들이!”

“크악!”

왕전의 무자비한 공격에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수는 상당히 많았다.

북궁천소는 미친 사람처럼 광포하게 움직였다. 굉혈도에 의해 검과 사람이 통째로 날아갔다.

어떤 자들은 머리로 받아 버렸다. 그러자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왕전도 결코 그에 못지않았다.

“으…… 이건 도, 도살이야.”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자들이 비로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청진과 청명의 환술이 떨어졌다.

콰아앙!

“으아악!”

“도, 도망쳐라!”

검을 버리고 도주하던 자의 등에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떨어졌다.

퍽!

비명도 없었다. 육신이 수직으로 쪼개지며 피와 내장을 쏟아 냈다. 굉혈도는 허공을 돌아 날아와서는 북궁천소의 손에 다시 쥐어졌다.

“저놈은 사로잡아라! 천소!”

어느새 독고혜의 곁으로 돌아간 왕전이 상관명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지만 북궁천소의 눈은 이미 살광으로 덮여 있었다.

왕전의 말도 소용이 없었다.

“크아악!”

도주하던 자의 머리가 통째로 뽑혔다.

또 다른 자는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자 형체도 없이 날아갔다. 이윽고 상관명의 앞에 북궁천소가 내려섰다.

상관명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도주를 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죽이지는 않으마.”

“……!”

퍽!

“으악!”

굉혈도에 의해 상관명의 오른팔이 어깨 밑에서부터 깨끗하게 떨어져 나갔다. 바닥을 구르는 그의 가슴에 북궁천소의 발이 올라갔다.

콱!

“그만하세요!”

독고혜가 다가왔다.

분이 풀리지 않은 북궁천소가 발길질로 상관명의 마혈을 제압했다.

독고혜를 바라보는 상관명의 눈동자에 이내 원독이 어린다. 핏물로 범벅이 된 입을 열어 부르짖는다.

“내 죽어 구천을 떠돌면서도 네년을 증오할 것이다!”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 도대체 왜 내게 이러는 것이죠!”

“닥쳐라! 널 죽이지 못하고 가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퉤!”

“이 새끼가!”

퍽!

북궁천소의 발이 상관명의 얼굴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부러진 이빨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독고혜는 착잡함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다. 이자의 말을 빌리면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한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더 착잡했다.

“군병들이 몰려와요.”

영호수란이 주변을 돌아보며 독고혜의 팔을 흔들었다.

시장의 입구에 수십에 달하는 관병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출동이었다.

“이자를 데리고 성으로 돌아가요.”

“알겠습니다!”

전마를 몰아오는 관병들은 상당한 거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내가 뒤를 맡겠다.”

“알았다.”

모두가 몸을 날렸다. 왕전은 뒤를 경계하며 뒤를 따랐다.

* * *

신 나게 용현으로 달려온 악승과 화산의 제자들은 저잣거리의 참혹한 현장에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건 무슨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다.

“뭐야? 이거 완전 도살을 해 버렸잖아.”

“으…… 엄청나게 죽어 버렸군요.”

진청은 수많은 관병들로 둘러싸인 사건 현장을 살피며 코를 막았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악승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주모님께서는 어디 계시지?”

“설마 그분들과 연관된 사건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겠냐.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예.”

넷은 주변을 살피며 저잣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엇갈린 건가?”

“그럴 수도 있겠군요. 빨리 온다고 지름길로 돌아왔으니 어쩌면 관도를 통해 성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 진명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어! 성의 마찹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 독고혜가 타고 나갔던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재빨리 마차로 뛰어갔다.

마차 뒤에 달린 수레에 잔뜩 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딜 가셨지? 진청! 마방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와.”

진청이 재빨리 마방으로 들어갔다가 곧 밖으로 나왔다.

“한 시진 전쯤에 마차를 맡겨 놓고 가셨답니다.”

“한 시진 전쯤에?”

“예. 그 이후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린 악승이 고개를 돌려 사건 현장을 돌아봤다. 모두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뭔가 이상한 기분을 동시에 느낀 까닭이었다.

“저쪽으로 가 보자!”

악승이 군병들이 둘러싼 사건 현장으로 뛰어가자 셋도 뒤를 따랐다.

칼과 창을 든 장수들이 주변을 둥그렇게 둘러싸고서 누군가를 취조하고 있었다.

분한 듯 열변을 토하는 인물은 전신에 피칠을 하고 있었는데 내공을 끌어 올려 대화 내용을 듣던 모두의 표정이 급변했다.

말을 들어 보니 독고혜와 일행들이 분명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아무래도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넷은 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열변을 토하던 자가 자신을 대정문의 문도라고 소개를 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정문이면 강남제일검 상관명 대협이 이끄는 문파인데…….”

“정파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낸들 알겠냐. 어쨌든 일이 터져도 제대로 터진 것 같으니 일단 진청은 성으로 돌아가서 주공께 이 사실을 알리고 너희들은 나와 그분들을 찾는다. 서둘러!”

“예!”

진청은 신마성을 향해, 악승과 나머지는 저잣거리를 흩어져 독고혜를 찾아 바삐 움직였다.

* * *

용현에서 신마성을 향하는 지름길은 우거진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때론 호랑이가 출몰을 할 때도 있을 만큼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의 능선에서 북궁천소는 상관명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털썩!

상관명은 아혈이 풀리자 피를 토해 내며 부르짖었다.

“용을 써 봤자 내 입에서 들을 말은 하나도 없다. 하니 헛짓거리 그만하고 냉큼 죽여라!”

여전히 두 눈은 증오로 활활 타올랐다.

독고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으로 미간을 짚으며 휘청거렸다.

“아……!”

“엇!”

“언니!”

영호수란이 재빨리 독고혜를 안았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미간의 한복판에 붉은 혈선이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다급하게 살펴보던 북궁천소가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이 증세는!”

모두가 그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다급히 물었다.

북궁천소가 두 눈을 부릅뜨며 부르짖었다.

“아수라마기!”

“이런!”

왕전도 두 눈을 부릅떴다.

신경을 거슬렸던 기운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회를 엿보던 살수들. 그들은 바로 아수라마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왕전은 황급히 독고혜의 어깨를 살펴보았다. 역시 벌써부터 시커멓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일전에 영호수란이 보였던 증세와 똑같았다.

북궁천소가 상관명에게로 다가갔다.

“대답해. 어떻게 된 일인지. 대답하지 않으면 사지를 하나씩 잘라 주마. 나 북궁천소! 얼마나 악독한지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테니, 네놈의 판단에 맡긴다.”

스르릉!

그가 굉혈도를 뽑아서는 상관명의 허벅지를 겨누었다. 그때 왕전이 외쳤다.

“천소! 일단 주모님을 성으로 모시는 게 급선무다!”

“네가 모시고 가라! 난 이 새끼를 족쳐서 알아내야겠다.”

“너무 늦지 마라.”

“신경 끄고 얼른 모시고 가기나 해라.”

왕전이 독고혜를 들쳐 업고 몸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주변의 숲이 흔들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었다.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일행들을 싸늘히 응시하는 자들. 핏빛 죽립을 덮어쓴 그들은 바로 부상막의 살수들이었다.

일순 상관명의 눈동자가 원망으로 물들었다.

“빌어먹을 놈들!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

“역할을 충실히 해 준 점을 고려해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상관명!”

죽립인의 손이 움직인다 싶더니 상관명의 목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실로 극쾌의 검법이었다. 상관명이라는 이름에 의식을 잃어 가던 독고혜가 몸을 떨었다.

그녀뿐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엄연한 정파인 대정문이 왜 자신을 노렸는지, 그녀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것이 궁금했다.

“후후! 그대 때문에 저자의 아들이 상사병을 얻어 죽었다더군. 그래서일까? 순순히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늘의 이런 결과를 내주었지. 물론 우린 고마울 따름이고…….”

결국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독고혜와 일행들로서는 실로 어이가 없는 대목이었다. 상사병에 걸려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그 참혹한 짓을 벌였다니.

북궁천소가 죽립인들을 보며 싸늘히 읊조렸다.

“이제 보니 섬나라에서 건너온 원숭이 새끼들이었군.”

“후후! 네놈이 도왕 북궁천소라는 놈이군. 방금 지껄인 값으로 깔끔하게 네놈의 목을 쳐 주지. 다시 말하지만 너희들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죽립인들이 간격을 벌리며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사방을 몰아치자 천하의 왕전과 북궁천소도 살짝 눈빛이 어두워졌다.

물론 독고혜의 안위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주모님이 위험하다. 속전속결로 이곳을 벗어난다.]

[알았다.]

둘은 전음을 주고받고는 벼락같이 선공을 가했다.

하지만 죽립인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다. 둘의 가공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뒤이어 죽립인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영호수란은 검을 움켜쥔 채로 독고혜의 곁을 지켰다. 청명과 청진은 환술을 펼칠 기회를 엿보며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당장 섣불리 뛰어들기는 곤란했다. 자칫 둘의 움직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쾅!

굉혈도가 뿜어낸 파괴적인 도강이 떨어졌음에도 부상막의 살수들은 괴이막측한 보법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날카로운 반격을 가했다.

더 놀라운 것은 열 명이 두 조로 나뉘어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그 바람에 북궁천소와 왕전은 다섯 명의 공격을 한꺼번에 맞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한편, 영호수란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언니 정도의 고수가 이토록 빠른 시간에 증세가 나타났다면 저자들은 과거 나를 공격했던 자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봐야 해. 아! 백홍을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녀는 백홍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으로 다가왔다.

백홍만 있었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위기를 성에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청진과 청명은 혹시라도 전장에서 이탈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즉시 공격을 할 목적으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쫘아악!

“대갈통을 쪼개 주마!”

북궁천소와 왕전은 연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적들의 빈틈을 찾기에 주력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도를 휘두른 다음 무게중심이 흐트러지면 그때를 노려 목을 벨 심산이었지만 상대는 조금도 그러한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둘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위기감을 느꼈다. 한편, 상대도 왕전과 북궁천소의 강력함에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수장으로 보이는 자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과연 오왕이군. 멸천조 열 명이 투입이 되고도 지금껏 우위를 점하지 못하다니…….’

오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멸천조 다섯이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그 자신감이 무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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