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귀환무사 167화>
“무엇이냐.”
“금옥장을 노렸던 건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일을 진행했던 자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뭣이!”
이번에도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문사건을 쓴 자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상인이라 가벼이 여긴 것이 실수였습니다. 게다가 놈은 보복이 두려워 상단의 건물을 군부에게 넘겨주고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사람들을 풀어 놈의 행방에 총력을 기울이고는 있습니다만 쉽지가 않은 실정입니다.”
“놈이 군부를 끌어들였단 말이냐!”
“아직은 단정 지을 수 없으나 모종의 세력과 손을 잡은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아니라면 감히 이렇게 나오지는 못할 놈입니다.”
“감시 돈벌레 따위가…….”
화악!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노인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 어떤 세력이든 뭔가를 하려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이 없으면 모든 게 사상누각과도 같다. 힘으로 중원을 쓸어본들 공을 세운 자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 주지 않으면 결속력은 하루아침에 파도 앞의 모래처럼 흩어진다.
노인도 그러한 점 때문에 금옥장을 노렸던 것인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니.
“놈이 운영하던 천하의 상단 지부를 쓸어, 응징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그게, 하루아침에 모조리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바람에…….”
“천하에 산재했던 상단의 지부들까지 모조리 사라졌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원래 상인들은 국가에 정변이 일어 황제가 바뀔 때를 대비, 살아날 방법 정도는 강구해 놓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놈이 그때를 대비하여 강구해 놓았던 비상 대책을 지금에 사용한 듯 여겨집니다. 아무래도 본련이 놈을 너무 쉽게 여긴 것 같습니다.”
쾅!
노인이 기어코 발로 땅을 굴렀다.
주변이 은은하게 울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상단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듯합니다. 비록 금옥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조직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만한 곳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 노여움을 푸시고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본좌가 그대에게 조직의 운영을 일임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실패는 아무리 그대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의 두 눈이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수련에 사용하던 검을 앞의 인물에게 건네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검을 받아 쥔 인물은 노인이 옷을 다 갈아입을 때까지 머리를 조아린 채 기다렸다.
옷을 다 갈아입은 노인이 다른 것을 물었다.
“신마성주 혁련천후. 놈을 잡을 방법은 세워 두었겠지?”
“검후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검후라면 놈의 계집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검후에 대한 놈의 사랑이 각별하다는 것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해서 멸천조나 다른 자객들을 이용하여 검후를 사로잡으면 놈은 한 팔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대의 능력을 믿어 보지.”
“반드시 해내어 보이겠습니다.”
문사건을 쓴 자가 머리를 조아리고는 뒷걸음으로 물러갔다.
홀로 남은 노인은 밖으로 향하려다가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강호를 쓸어버리는 데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힘이다. 그깟 돈은 언제든지 마련할 수 있는 것! 서두르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광승과 혈마의 마공을 극성까지 익히는 그날이 중원무림과 혁련 가문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노인의 전신에 시뻘건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광승무요의 마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혈마의 마공이 십 성 이상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콰우우우!
제8장 용현의 대참사
사람이 뭔가 미치면 사리 판단이 흐려진다.
특히 복수심을 불태우는 사람은 더욱더 그러게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혈육을 잃은 자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대정문주 상관명이 그랬다.
그는 정도맹의 광동전투가 끝난 시점에서 호북성으로 돌아와 지금껏 대정문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다소 초췌한 모습의 상관명은 지난날의 그가 아니었다.
아들 상관척이 검후를 마음에 품었다가 상사병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부터 상관명은 검후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이를 갈고 있었다.
“빌어먹을 계집! 언젠가는 반드시 그 추악한 몸뚱이를 무참히 짓밟아 주마!”
스스로 분을 터트리고 저주를 퍼부어도 검후에 대한 원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절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워낙 애지중지했던 자식이었기에 상관명은 모든 것을 검후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었다.
검후가 신마성주 혁련천후의 부인이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신마성까지도 그는 복수의 대상으로 여겼다.
자식에 대한 복수의 일념만을 간직한 그에게 천하를 진동하는 신마성주와 오왕의 위명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루하루를 오직 복수에 대한 일념만으로 두문불출, 대정문의 그늘에서만 보내고 있던 상관명에게 일단의 무리들이 찾아온 것은 완연한 차가움을 자랑하던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자신들을 신마성과 검후를 노리는 자들이라 소개한 그들은 상관명과 하룻밤을 꼬박 지새우며 대화를 나누고는 다음 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상관명은 대정문의 모든 무사들을 이끌고 섬서로 향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신마성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용현이라는 도시였다.
* * *
신마성에서 약 오십 리를 걸어가면 용현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예로부터 문물이 발달한 그곳은 저잣거리가 화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종 시장이 발달한 까닭에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나라의 수도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바뀐다는 소문이 돌자 북경을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용현을 찾은 상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용현은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고 있었다.
그 용현의 저잣거리에 독고혜와 영호수란이 나타났다.
“와! 놀라워요. 섬서에 이토록 발달한 시장이 있었다니…… 어머! 저것들 좀 보세요.”
영호수란은 연신 탄성을 쏟아 내며 눈동자를 한시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돌아보니 모든 곳이 신기할 뿐이었다. 명문세가의 자제로 부족함 없이 자란 그녀라도 세상의 모든 상품들이 늘어선 용현의 풍경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오늘은 뭘 사실 건가요?”
“살 게 너무 많지. 일단은 비단과 무명을 먼저 사야 해. 사람들 옷이 너무 낡았으니 새로운 옷을 지어 줘야겠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책과 종이하며 음식에 필요한 양념들, 밭을 일굴 때 필요한 농기구들…… 흠!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도 못하겠어.”
“그러니까 꼭 아줌마처럼 보여요.”
“후훗.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더 좋은걸.”
독고혜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검 하나만으로도 그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저 혁련천후의 여인으로서 만족하고 있었다.
“주모님! 저쪽에 포목점이 있습니다.”
그녀들의 뒤쪽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던 시커먼 사내가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혹시 몰라 변장을 한 왕전이었다. 그 옆에 그보다 더 시커멓게 변장을 한 북궁천소가 따르고 있었다.
독고혜의 호위를 이유로 슬그머니 성에서 빠져나온 그들이다.
당연히 둘의 시선은 요염하게 차려입고 아침부터 사람들을 유혹하는 술집작부의 손에 쥐어진 술병을 향하고 있었다.
“술은 아침 술이 최고라더군.”
“술의 진미를 아는 자들만 즐긴다는 아침 술이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주모께 졸라서 한잔하자.”
“좋지!”
북궁천소가 뒤쪽을 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빨리들 움직여라!”
뒤쪽에서 커다란 마차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부석에 화산의 청진과 청명이 앉아 있었다. 시장을 본 물품들을 옮기는 영광스러운 직책을 맡은 그들이다.
물론 엄청난 경쟁을 뚫고 얻어 낸 것이라 둘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지를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련에서도 빠지고 전국에서 모여든 예쁜 처자들도 구경하고, 게다가 운만 좋으면 저 괴물 같은 가짜 사부들이 술판을 벌이면 자신들도 덩달아 한잔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둘은 즐거운 상상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구경하기 바쁜 모습이다.
“헤헤! 사람들이 많아 어쩔 수 없습니다.”
아침이라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탓에 마차의 속도는 매우 더뎠다. 되레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차를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불평을 늘어놓는다.
청진은 그런 사람들에게 연신 웃어 주기 바빴다.
“이것 좀 들고 가요!”
영호수란이 소리쳤다.
왕전이 바람처럼 달려가더니 비단과 무명을 어께에 두르고 마차에 그것들을 실었다.
“주모님 이번엔 어디로 가십니까?”
북궁천소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독고혜에게 물었다. 자주 나왔던 시장 길이다.
항상 이쯤이면 식사를 하러 객잔을 찾았던 그녀다. 그의 속내를 잘 아는 독고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시장하세요?”
“서두른다고 아침을 거르는 바람에.”
거짓말이다. 새벽에 닭 한 마리를 먹어 치운 북궁천소다.
“좋아요. 다들 같이 가도록 해요.”
“흐흐. 알겠습니다.”
용현객잔은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넘쳐 났다.
음식을 끓여 내며 솥이 뿜어내는 수증기가 객잔 앞 길가를 자욱하게 가릴 정도였다.
일행들은 구석진 곳에 딱 하나 남은 탁자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왕전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이채를 머금었다.
“뭐야, 저놈들은.”
“뭔가 수상한데? 하나같이 낯짝에다 인피면구를 뒤집어썼잖아.”
북궁천소도 안광을 번뜩였다.
그랬다.
객잔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실상은 변장을 한 무림인들이었다. 기운을 감춘다고 해서 눈치를 채지 못할 왕전과 북궁천소가 아니었다.
“별로 대단한 놈들도 아닌 것 같으니 신경 끄자.”
“주모님께서 계신다. 바짝 신경을 써야지, 이놈아.”
숫자는 많았지만 둘의 눈에는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때 영호수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해 왔다.
“다른 곳으로 가요.”
그녀도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독고혜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하곤 상관없는 사람들일 거야.”
굳이 들어온 객잔을 나갈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왕전과 북궁천소가 옆에 있었으니 긴장을 할 이유도 없었다.
모두는 자리에 앉아 시킬 음식을 정했다.
그때 점원이 다가오며 주문을 받았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말끔하게 생긴 삼십 대 초반의 점원은 세상을 떨어 울리는 두 미녀를 보고서도 그다지 동요되는 빛이 아니다.
일개 객잔의 점원치고는 놀랄 만한 평정심을 지닌 듯했다.
독고혜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 보는 분이군요.”
“아! 전 어제부터 이곳에 온지라……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냥 아침 식사가 될 만한 것들로 만들어 주세요. 아! 금존청 두 병도 같이 부탁해요.”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점원이 고개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일행들은 점원이 내어 온 따뜻한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음식을 기다렸다. 수련을 빼먹고 온 것이 무척 좋았던 청명과 청진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평소라면 상당히 시끄러웠을 객잔이 오늘은 사람 수에 비해 무척이나 조용했다. 객잔을 둘러보던 청진이 한 곳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여기도 초대형 만두를 파는구나. 이거 완전히 객잔들의 명물이 되었는데?”
“그러게. 왕필이라는 그 사람 소문에 돈을 엄청 벌었다고 하더라. 너한테 좀 줘야 되는 것 아니냐?”
“초대형 만두가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