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귀환무사 165화>
“곧 죽을 놈이 별것이 다 궁금한 모양이군.”
담대소천의 입가에 차가움이 떠오른다.
“네게 물을 권리는 없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야 해. 아! 정신력을 믿고 버텨 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디, 네놈 마음대로 해 보아라!”
“그래, 마음대로 해 주지…….”
담대소천의 손가락에서 미세한 지풍이 일었다. 순간 우두머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어디를 어떻게 짚었을까? 사람이 이토록 빠른 시간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도 믿지 못할 만큼, 우두머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시끄러울까 봐 아혈을 짚었지. 잠시 후에 올 것이다. 그땐 네 마음이 바뀌었기를 기대하마.”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군막의 뒤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끄으으!”
극심한 통증에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 우두머리의 얼굴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이내 붉어진 두 눈이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에 이내 전신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갓 잡아 올린 생선과 비슷했다.
“끄으으!”
제7장 두 개의 마공
정도맹주 나백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 다시 불어닥칠지 모르는 혈풍에 대비하여 병력을 증강하고 각 문파의 협조를 구하는 것만도 혼자로는 벅찬 일이었다.
그런 나백보다 더 바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비영전의 전주 육승이었다.
움직임을 감춰 버린 용성과 빙궁을 찾아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밤과 낮을 마다하지 않았다. 개방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까지 천하를 샅샅이 살폈지만 한 번 수면 아래로 내려앉은 두 세력의 행적은 좀처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초겨울에 접어든 오늘도 육승은 천하의 각처에서 날아든 전서들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특히 섬서 이북과 섬서 이남에서 날아온 전서는 따로 모아둘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
용성과 빙궁의 움직임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단 하나도 걸려들지 않는단 말인가.”
오늘도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그 많은 정보원들이 천하 각처에 깔려 있었음에도 그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단 보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육승은 정보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결과가 어떠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기에 걱정과 답답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이 부분에 대하여 맹의 내부에 세작이 있을 수도 있다는 발언을 수뇌부 회의에서 거론했다가 곤경을 겪기도 했었다.
육승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정보원들의 위치가 새어 나갔음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완벽하게 숨어든단 말인가. 정보원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적어도 장로급이거나 그 이상인데…….’
생각대로라면 몇 되지 않는다.
장로들과 맹주, 그리고 사천왕과 전대맹주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함부로 의심을 해선 안 되는 거물들이 아닌가.
“흠…….”
육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탁!
주먹으로 탁자를 치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백발 노인이 들어섰다.
육승이 황급히 일어서며 머리를 조아렸다.
“수고가 많구나.”
“어서 오십시오, 노야.”
들어선 노인은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이자 사천왕의 하나인 남궁기였다. 육승은 남궁기에게 상석을 내주었다.
남궁기가 물었다.
“그래. 쓸 만한 정보라도 있었느냐.”
“아닙니다. 여전히…….”
“흠! 큰일이구나. 적의 동태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니…… 그래.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육승이 무슨 말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남궁기의 이 같은 질문은 다소 생뚱맞았던 까닭이다. 남궁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허허! 이놈아! 앞으로 맹이 해 나가야 할 방향을 묻는 것이다. 네놈의 머리가 천하제일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니더냐? 그러니 네 의견을 듣고 싶어 이렇게 온 것이다!”
“제가 감히 어찌…… 수뇌부 회의에서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그 고리타분한 늙은이들 생각 말고 네 생각을 묻는 것이다.”
남궁기는 육승을 무척 아끼는 인물이다. 그의 곧은 성정과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를 처음부터 알아본 그였다.
비영전을 육승이 맡게 된 것도 남궁기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했었다.
육승도 남궁기가 자신을 아낌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동맹을 맺어야지요.”
“동맹이라…….”
“단독으로 당금의 상황을 타개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해서 동맹만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당연히 대상은 신마성이겠지?”
“그렇습니다. 한데 문제가…….”
육승이 말끝을 흐리자 남궁기가 넌지시 의중을 꺼냈다.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걱정인 게로구나.”
“그렇습니다.”
영백의 죽음 이후 셋으로 줄어 버린 사천왕들 중, 눈앞의 남궁기를 제외한 다른 두 명은 정도맹이 신마성과 동맹을 맺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고 나올 것이다.
일전에 비슷한 내용의 말을 육승이 꺼낸 적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경을 칠 뻔했었다.
남궁기의 주름진 미간에 더욱 골이 깊어졌다.
“이러다가 적들이 갑자기 양쪽에서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실로 큰일이지. 그 전에 어떻게든 신마성과 동맹을 체결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터인데…….”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세력의 준동도 의심이 갑니다.”
그 말에 남궁기가 놀란 표정으로 육승을 쳐다본다. 육승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을 이어 갔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정체가 불분명한 자들이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습니다. 인원수가 많지는 않습니다만 그들이 지나간 동선을 추적해 보니 항상 싸움이 일었는데, 대부분이 신마성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신마성과……?”
“그렇습니다. 어느 한쪽에서 의도한 싸움인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우발적이라고 보기엔 의아한 구석이 많습니다. 이 넓은 천지에서 특정 집단 간에 연속적으로 부딪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지요.”
남궁기가 눈빛을 발하며 다시 물었다.
“신마성과 앙금이라도 있었던 집단인 모양이군.”
“아직은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용성, 빙궁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신마성주와 의견을 나누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저 늙은이들의 입장이 저리도 완강하니…….”
남궁기의 노안이 다시 침통함으로 물들었다.
육승이 조금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가 맹주님께 다시 청을 넣어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만약 결정이 그리된다면 이 몸도 함께 가자꾸나. 나 역시 그곳엘 한번 가 보고 싶으니까.”
“노야께서…… 직접 말씀입니까?”
육승이 놀라서 묻자 남궁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손녀 아이가 그곳에 있다더구나. 가는 김에 놈의 얼굴도 한번 보려고 이러는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남궁기가 몸을 일으키자 육승이 재빨리 따라 일어섰다.
나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거처를 나간 남궁기의 뒷모습을 보며 육승은 잠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열려진 창을 통해 불어든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때야 육승은 의자에 앉았다.
‘위기 해결의 열쇠는 신마성에 있다.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반드시…….’
* * *
사공진무는 고슴도치처럼 변해 버린 철무옥을 내려다보며 미간의 땀을 훔쳤다.
“휴! 더럽게 힘드네.”
주변이 약냄새로 진동을 하는 이곳은 얼마 전에 새롭게 건축을 한 약당이다. 무사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는데 최초의 환자가 바로 철무옥이었다.
전신에 수백 개의 바늘을 꽃은 채 누워 있는 그는 보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게 상대를 봐 가면서 덤비든가 안 하고. 쯧쯧쯧.”
사공진무는 이내 밖으로 나섰다. 그는 곧장 강으로 향했다. 초겨울이지만 성의 무사들은 수련이 끝나면 어김없이 차가운 강물에 몸을 담근다.
그것은 혁련천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것은 신마성의 모두에게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공기 한번 좋구나!”
밖으로 나온 사공진무는 기지개를 피며 찬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신마성을 내려다보았다. 약당이 다른 곳보다 높은 곳에 지어진 탓에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흠! 저러다가 황궁보다 더 크게 짓는 것 아니야.”
사공진무의 눈에 이곳저곳을 오가며 부산을 떨어 대는 금치문이 보였다.
그는 지금 금옥장의 전문 건축업자를 불러 신축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연무장의 우측 숲을 개간하여 터를 마련하고 그곳에 지상 사층 규모의 거대한 전각을 두 채나 새롭게 짓고 있었다.
“부자라서 그런지 통은 더럽게 크구나. 그나저나 강물에 몸을 담가 볼까?”
그가 경공을 펼치려 다리에 힘을 주는 그때였다.
“이봐.”
“응?”
뒤를 돌아본 사공진무가 눈을 부릅떴다. 철무옥이 문지방에 팔을 걸친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형님!”
“이것들 좀 빼 버려라. 죽을 맛이다.”
“그거 빼면 도로 아미타불이 됩니다. 귀찮아도 참으세요. 그나저나 움직이면 엄청 아플 텐데 괜찮습니까?”
“네 눈엔 이 꼬락서니가 괜찮아 보이냐.”
철무옥의 여전한 모습에 사공진무는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철무옥을 부축하여 다시 방에 눕혔다.
“그 개자식은 어떻게 되었냐?”
“당률 말입니까?”
“당연히 뒈졌겠지?”
“그럼요. 아주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개새끼! 내 손으로 목을 따 버렸어야 했는데…….”
철무옥의 눈동자가 분함으로 이글거렸다.
어쩌면 그 분함이 예정보다 빨리 그의 의식을 돌아오게 했을 수도 있다.
“빌어먹을! 크윽!”
“화를 내면 상처가 도로 도집니다. 거 성질 좀 죽이세요. 지금까지 고생한 게 도로 아미타불이 되면 다시는 안 봐줍니다.”
사공진무가 짐짓 눈을 부라리자 철무옥은 그에게 손을 들어 얼른 꺼지라는 시늉을 했다. 말할 기운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사공진무가 느닷없이 철무옥의 수혈을 짚었다.
“지금은 그저 자는 게 최선의 치료법이니 한잠 푹 주무세요.”
그는 축 늘어지는 철무옥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다시 밖으로 나섰다.
* * *
혁련천후는 자신의 거처에서 혼자 찻잔을 기울였다.
언제나 옆을 지켰던 독고혜는 영호수란과 남궁소미를 데리고 저잣거리로 가고 없었다. 건물이 늘어난 탓에 필요한 생활 물품들을 사러 간 것인데, 왕전과 북궁천소가 그녀를 호위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함께 따라갔다.
조윤과 다른 이들은 무사들의 수련을 돕고 있었으며 조부 혁련강은 모처에서 진유의 수련을 돕고 있었다.
‘역시 혼자가 좋군.’
모처럼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때론 지금처럼 혼자일 때가 좋았다. 그렇다고 독고혜가 함께 있을 때보다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혁련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활기가 넘쳐 났다. 누구 하나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핏빛 전쟁 따윈 생각지도 않은 듯 보였다.
문득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그녀의 말처럼 내가 변한 것인가…….’
뼛속까지 맺혔던 복수심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어떨 때는 이런 평화가 깨어지지 않기를 염원하기도 했다. 그 염원이 지나쳐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치기도 했다.
‘변했군.’
확실히 변한 것은 사실이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신마각의 무사들과 같은 복장을 한 무당의 도량이었다.
물론 혁련천후가 불러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