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63화 (161/425)

# 163

<귀환무사 163화>

그러다가 이내 미간을 찡그렸다.

‘흠! 목재와 다른 자재들을 대부분 싼 것을 사용했군. 천하제일의 존재가 기거하기엔 부족해도 많이 부족해. 저긴 저래선 곤란하지. 저기도 마찬가지고. 흠! 손을 볼 곳이 수두룩하군.’

그는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비록 부를 축적한 이후부터 타락한 삶을 살아왔지만 마음을 바꾼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총관과 관리인들에게 장부를 넘긴 그는 신마성의 곳곳을 둘러보며 손볼 곳을 살폈다.

어림잡아도 손볼 곳에 들어가는 자금은 막대한 황금이 소요될 정도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바뀐 건물을 상상하자 금치문은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허! 이거 이러다가 이곳에서 영영 사는 것은 아닐까…….’

금치문이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돌렸다.

“이봐! 끝났으면 들어오지 않고 뭐 해?”

“아! 예!”

금치문이 걸음을 빨리했다. 왕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와 북궁천소가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그가 부르면 눈앞에 황제가 있어도 가야만 하는 금치문이다.

그런 금치문의 앞에 장용백과 천마사로가 나타났다.

“그대가 진정 천하제일의 갑부라는 금옥장의 장주인가?”

장용백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린 신강에서 온 신교의 사람들이지. 하나 세상은 우리를 마교라고 부르지.”

“아! 그렇습니까?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얼굴은 웃음을 지었지만 속내는 작두를 탄 듯 조마조마했다.

이들이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사실 금치문은 강호에서 이름난 거대 문파에겐 모두 조금씩의 연줄을 맺고 있었다.

연줄이라야 자금을 지원하는 것인데, 마교도 그런 문파의 한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고정적으로 지원하던 지원금을 뚝 끊어 버렸다. 마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파에 마찬가지였다.

물론 혁련천후의 협박에 의해서였다. 지금 장용백이 자신을 차갑게 보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 짐작한 금치문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 혁련천후가 다가왔다. 금치문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마교의 부흥에도 금 장주가 상당한 힘을 보탤 것이오. 한 배를 탔으니 잘 지내셨으면 하오만…….”

“크흠!”

혁련천후가 그렇게 나오자 장용백은 마지못해 따가운 시선을 거두었다.

다른 인물들보다 쌀쌀맞게 군 이유는 그가 마교의 재정을 담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금옥장의 총관과 관리인들이 들어왔다.

상견례를 가진 모두가 술과 음식으로 새로운 인연에 대한 축하연을 시작할 때, 화약 때문에 악연의 병영에 머물고 있던 담대소천은 전방의 주둔군에서 보내 온 보고를 듣고 있었다.

군막 안엔 담대소천과 진천,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을 비롯한 악연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령을 읽은 악연의 얼굴이 제법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있는 것이냐?”

“북경 인근의 주둔 부대에서 포탄 제조에 쓸 화약 이만 근이 며칠 전 괴한들에 의해 또다시 모조리 강탈을 당했다고 합니다.”

“또 당했단 말이냐?”

진천이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진정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입니다. 감히 국가의 군대를 털다니 말입니다.”

“물론 지키던 병사들은 모두 화를 당했겠군?”

“삼백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담대소천의 굵고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일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군부 내의 자잘한 절도 사건은 있었지만 이런 식의 대규모 강탈 사건이라면 분명 황제에게도 보고가 올라갈 것이다.

‘천하 제패를 꿈꾸는 묵련이 이런 식으로 대놓고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놈들이지? 무엇을 노리고 그 많은 화약들을 노린단 말인가. 화약을 제조할 만한 기술을 지닌 문파가 있었던가.’

그 옛날 축융 가문이 화약 제조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던 바는 있었지만 그들은 의문의 멸망을 당했었다. 당대에 이르러서는 사천의 당가만이 화약을 이용한 암기를 제조하는 정도였는데, 그 양도 극히 미미했다. 화약을 쓰는 것 자체를 무림인들이 무척 혐오했기 때문이다.

악연이 분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동창이나 금부에서 고위 인사들이 대거 내려올 것이 분명합니다. 상당히 시끄러워지게 생겼습니다. 그들의 수사 방법은 치밀하면서도 무척 잔인하니…….”

“당연하지. 그 정도의 화약을 강탈당했음을 안다면 필시 문책이 내려올 것이다. 네가 곤란하게 되었군.”

“문책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수사 방법이 지나치게 악랄한 게 걸립니다.”

“그렇겠지. 성과를 내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니 죄 없는 자들까지 다칠 수 있겠군.”

“장군께서도 자리를 피하시는 것이…….”

악연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그가 군부에 있을 때 그를 가장 껄끄러워했던 집단이 동창이다.

담대소천에 대한 황제의 신임을 시기한 까닭이다. 물론 황제가 바뀌어 동창도 새로운 인물들로 구성되었다지만 그래도 악연은 마음이 쓰였다.

물론 마음 한편으로는 그가 여전히 남아 있기를 바랐다.

“난 상관없다. 그나저나 네 권한으로 동원할 수 있는 화약이 어느 정도지?”

담대소천의 특유의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것은 왜……?”

“찾아내지 못한다면 찾아오게끔 만들어야지.”

악연이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남은 화약으로 놈들을 유인하자는 말씀입니까?”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물론 미끼를 물만큼 상당한 양이 준비되어야 할 거야.”

듣고만 있던 진천이 끼어들었다.

“좋은 방법입니다. 인근 부대에 있는 화약을 모조리 끌어 모아 한곳에 모아 두고 적당히 소문을 흘리면 놈들이 물지 않겠습니까?”

“준비해 봐. 놈들은 내가 잡지. 어쩌면 나와도 상관있는 놈들일 수도 있으니…….”

악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예하 부대에 전령을 내리겠습니다. 장소는 어디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가급적 외딴곳에 주둔한 부대가 좋겠군. 사람을 죽여도 인근 고을에 소문이 돌지 않는 그런 곳 말이다.”

“알겠습니다! 저는 사령막으로 가 보겠습니다. 장군!”

악연이 군례를 취하고 물러가자 숨죽이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그때야 말문이 트였다.

“놈들이 과연 사숙조께서 의심하시는 그놈들일까요?”

“글쎄…….”

“화약 몇만 근이면 위력이 어느 정도일까요?”

진청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진천이 피식 웃더니 똑똑히 들으라는 빛으로 말했다.

“천근이면 신마성이 가루로 변한다. 물론 뒤쪽 건물들까지 모조리!”

“우…….”

화산의 제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 사라진 것만 십이만 근으로 들었다. 천 근이 그 정도의 위력이라면…….

소름이 쫙 돋았다.

“범인들이 만약 우리가 생각하던 놈들이면 어떡하죠? 관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되었으니 자칫 황군의 개입까지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요?”

“황제에게 보고가 들어간다면 당연하겠지. 어쩌면 무림 전체가 황군의 창날 앞에 놓일 수도 있고 말이다. 지금의 황제는 상당히 호전적인 인물이야. 무림과 관의 묵시적인 불가침 관행이 깨어질 수도 있다.”

“골치 아프게 생겼군요.”

“일단은 범인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니 준비들 하고 있어. 그리고 가급적이면 신마성의 일원임은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꽤나 큰 사건에 진천과 화산의 제자들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졌다.

곧 어둠이 밀려오고 밤이 찾아오자 군용 전서구들이 사방으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지역의 예하 부대로 향하는 전서구들은 이내 어둠을 가르며 사라졌다.

하지만 동북 방향을 날아가던 전서구 하나가 뭔가에 맞은 듯,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번득이던 시커먼 인영이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천을 끌렀다.

전서를 읽어가던 인영의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한다.

“크흐흐! 모두 합치면 십만이 넘는단 말이군그래. 얼른 모아 놓아라. 흐흐흐!”

“경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한곳으로 모으는 듯합니다.”

“흐흐! 제아무리 경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놈들은 허수아비 같은 군병들이다. 백만 대군이 지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거 제대로 포상을 받게 되었구나.”

“축하드립니다! 대주!”

“내가 잘되면 네놈들도 함께 잘되는 것이 아니냐. 미리 화약을 나를 아이들을 준비하고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라.”

“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인영을 보며 전서를 쥔 자의 눈이 하얗게 빛났다.

* * *

모든 부대에서 끌어 모아 놓은 화약은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수천의 병사들이 그것을 한데 모으는 데 꼬박 이틀이 걸릴 정도였다.

철을 꼬아서 만든 경계용 책망을 이중 삼중으로 두르고 무려 일천의 병사들이 주변을 철통처럼 경계했지만 그것도 미더웠던지 기마병들을 아예 무기고의 주변에 주둔하게 만들었다.

“저렇게 철통 경계를 하면 오히려 놈들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니야. 경계가 허술하면 오히려 함정이라 여기고 숨어들 수도 있다. 우린 기다리면 된다.”

지금 담대소천과 진천,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은 기마병들로 변장하여 무기고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진천과 화산의 제자들도 갑주를 걸치고 흉갑을 두른 장수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경계를 서는 군병들과 기마병들이 조금씩 불안감을 비친다.

화약을 강탈해 가는 범인들이 경계를 서던 군사들을 모조리 죽였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장수들이 군사들을 독려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지만 좀처럼 군사들의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우르르…….

갑자기 하늘이 괴성을 울려 댄다. 하루 종일 흐렸던 날씨가 밤이 되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빗줄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젠장! 초겨울에 비가 내리고 지랄이람.”

진천이 투덜거렸다. 화산의 제자들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서 몸을 움츠렸다.

사실 그들 정도면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장수들로 변장을 한 그들이다. 혹시 모를 내부의 첩자 때문에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했다.

쏴아아!

빗줄기는 상당히 굵고 세찼다.

‘제법 오래 내릴 비군. 도둑질하기엔 딱 좋은 날씨야.’

담대소천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번개가 칠적마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빗속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병들은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추위를 몰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기마병들도 전마를 타고 무기고 주변을 반복적으로 오갔다. 전마들 때문이다.

체온이 떨어지면 전마들의 순발력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미리 근육을 움직여 체온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경계병의 고함이 들렸다. 빗속을 뚫고 들려온 목소리는 꽤 우렁찼다. 모두가 순간, 긴장감에 휩싸였다. 담대소천의 눈이 섬광을 발하며 돌아갔다.

“아니야.”

담대소천이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무림인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고작 몇에 불과했다.

화약 수만근을 털러 오는 자들이라면 결코 몇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인근에 매복했던 악연이 재빨리 말을 몰아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조금 소란스러움이 일어나더니 군병들이 일제히 충! 하고 군례를 취한다.

아마도 지위가 높은 자가 방문한 듯 보였다. 빗줄기를 뚫고 일단의 무리들이 군영 안으로 들어섰다.

[동창의 인물들이군.]

[동창이라면, 그 불알 없는 놈들이 아닙니까?]

진천다운 물음이다.

피식 웃어 버린 담대소천이 악연과 함께 들어오는 인물들을 날카롭게 살폈다. 그러다가 눈빛을 번뜩였다.

‘제법 고수였군. 그 정도거리에서 나의 기감에 걸려들지 않았다면…….’

시커먼 흑의를 걸친 그들은 모두 넷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는 눈빛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황제가 있다면 어둠 속에서 그 황제를 보좌하는 것이 동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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