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59화 (157/425)

# 159

<귀환무사 159화>

“관부 앞에서 싸우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그것 말고는 도무지 관부에 잡혀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리고 잡혀가는 그놈들도 이상하다. 스스로 잡히지 않았다면 그깟 허수아비 같은 놈들이 수천이 있다 한들 무슨 수로 그놈들을 포박한단 말이냐?”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무옥이 저지경이 되었음을 알면서도 잡혔다면 말이야. 아무튼 소천이 갔으니 조만간 데리고 오겠지.”

백홍을 통해 사공진무와 진천의 사정을 들었다. 하지만 진천의 환술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자세한 내막까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

일단 담대소천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신마성을 먼저 떠나기는 했다.

휘이잉!

모두는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새파란 하늘을 헤집으며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모처럼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독고혜가 건넨 육포를 씹던 혁련천후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금옥장을 협박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신분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놈들에게 왜 밝힙니까? 그냥 쓸어버리면 될 것을…….”

왕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듣고 있던 관산악이 혀를 찬다.

“신마성이 금옥장을 보호한다고 소문이 돌아야 함부로 껄떡대는 놈들이 없어질 것 아니냐?”

“크흠! 그런 거냐?”

조윤이 한마디 던진다.

“저놈 머리는 그냥 장식용이라니까. 쯧쯧.”

“너 그러다 뒈진다?”

“아이고. 그럴 재주는 있고?”

“이 새끼가 정말!”

혁련천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두는 백어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이르러 비로소 달구지를 버리고 경공으로 금옥장을 향했다.

* * *

혁련천후 일행이 금옥장에 도착한 시간은 꼬박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저녁 무렵이었다.

금치문이 버선발로 그들을 맞이해서는 최고의 귀빈들만 내준다는 호화로운 별관으로 안내했다.

금치문은 온갖 진귀한 재료를 넣은 요리와 술로 그들을 대접했다.

신 난 것은 왕전과 일행들이다.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귀한 술들을 줄줄이 나오니 그들로서는 눈이 뒤집히고도 남음이 있었다.

대접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사죄의 선물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금치문이 독고혜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왕전이 도끼눈을 하고서 으름장을 놓았다.

“또 요상한 것은 아니지?”

“아, 아닙니다! 이것은 천하제일이라는 고려의 삼을 갈아서 만든 진귀한 것입니다. 바르면 피부가 아이들처럼 고와진다고 해서 황실의 황후께 진상하는 것입니다만, 검후님께 드리려고 하나 빼 둔 것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독고혜가 놀란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혁련천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금치문이 헤벌쭉 웃으며 이번에는 다른 것을 꺼냈다. 커다란 비단 보따리였는데, 묶어 둔 끈을 풀자 그 안에 온갖 것들이 잔뜩 있었다.

“그건 또 뭐냐?”

금치문이 오색찬란한 구슬을 집더니 그것을 독고혜에게 또 내밀었다.

“직접 전해 드리려고 했는데 오시질 않아서…… 백선녀께 전해 주십시오. 색목국의 금강석으로 만든 반지입니다. 피독의 효능이 있어 어지간한 독은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고 합니다.”

천금보다 더 비싼 진귀한 보석들을 거침없이 내놓은 금치문을 보며 혁련천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는 것, 그 이상으로 금치문은 자신들에게 정성을 쏟고 있었다.

금치문의 선물 공세는 흑야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흑야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황금을 덩어리째 준들 그가 좋아할까.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금치문이 건넨 선물이 무척 마음에 든 듯했다.

푸른색 보석이 박혀 있는 장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내니 주변이 싸늘한 기운으로 채워진다.

금치문이 조심스럽게 한철 막대기를 들고 오더니 검날에 슬쩍 그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 강한 한철이 소리도 없이 두 동강으로 썰어졌다.

“엄청나군…… 한철을 두부 자르듯 하다니…….”

모든 이들이 놀라움을 나타냈다.

흑야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쓸 만하군.”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 표시였다.

왕전이 돌연 금치문을 노려본다.

“그런데 왜 주공께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는 것이냐?”

그러고 보니 혁련천후만이 선물을 받지 못했다.

금치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지난날 이곳을 찾으셨을 때, 전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아는 강호인들은 스스로에게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사람의 목을 베는 것쯤은 쉽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것은 정도맹도 다를 바 없었지요. 성주님 덕분에 그날 이후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강호의 풍파가 걷히면 신마성의 재정을 제가 책임지고 싶습니다. 장사라는 게 무척 추한 것입지요. 성주께서 감당하실 것이 못 되니 이 금치문이 강남 이북의 상권을 운영하여 성의 운영에 일조하고자 합니다. 받아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가 놀랐다.

금치문이 스스로 휘하에 들기를 자청하다니.

“우린 그대에게 과분한 것을 받았다. 지나치면 그것 또한 내겐 부담이니 더 이상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지나치다니요. 오히려 제가 성주님께 수고를 끼치는 것입지요. 신마성의 그늘에 있다면 천하의 그 누가 이번처럼 저희를 넘보겠습니까? 하나를 주고 그 이상을 받는 것이니 제가 손해 보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여깁니다.”

“……!”

금치문의 태도가 너무나도 간곡했던 까닭에 혁련천후도 잠시 말문을 닫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독고혜가 그의 손을 잡아 주며 눈빛을 보냈다.

[진심인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도 재정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나는 괜찮은데…….]

[저도 괜찮아요.]

혁련천후의 입에서 가벼운 숨이 흘러나왔다.

“부탁을 하나 더 해도 되겠나?”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기왕이면 화산도 부탁하지. 물론 들어가는 자금은 신마성이 댈 것이다.”

“그리합지요. 화산을 일 년 안에 구파에서 가장 넉넉한 문파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금치문이 흔쾌히 허락하자 혁련천후의 입가에 비로소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가 술잔을 들었다.

“새로운 인연을 맺었으니 오늘을 취하도록 마셔 보자.”

“예! 주공!”

제5장 담대소천의 위용

포승줄에 묶인 진천과 사공진무 등은 군병들의 주둔지로 끌려갔다.

잡혀가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포증줄을 잡은 병사가 “뭐 이런 미친 인간들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때?”

“뭐가?”

“내공 말이다.”

진천이 사공진무를 보며 물었다.

폭발에서 화산의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으로 호신강기를 끌어 올린 탓에 사공진무의 정도가 가장 심한 상태였다. 만약 그 전에 운기조식을 통해 회복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진천을 제외한 모두는 죽었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회복된다. 넌?”

“반 시진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회복되면 확 쓸어버릴까?”

“그럴까? 아예 국가를 상대로 싸워 봐?”

“농담이다.”

“나도 농담이다.”

화산의 제자들은 둘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담대하기로서니 눈앞에 수만의 대군을 두고도 어찌 저리도 태평할 수 있을까.

“놈들을 저곳에 가두고 철저히 지키도록 하라!”

그들을 끌고 온 장수가 좌측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영의 왼쪽에 굵은 통나무를 땅에 박아 만든 커다란 구조물이 있었는데 그 안에 포승줄에 묶인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죄수들을 수감하는 임시 감옥인 듯 보였다.

군사들이 다섯을 개처럼 끌어 그곳에 넣고는 커다란 자물쇠를 채웠다.

“잘됐다. 편안하게 앉아서 운기나 하면 되겠네.”

“밥은 안 주냐? 힘을 썼더니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진청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탈진한 상태에서 상당한 거리를 끌려왔으니 배가 고플 법도 했다.

진호가 감옥의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식사 시간이 언제요?”

전신에 피멍이 든 삼십 대 초반의 장한이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이보시오! 죄인들에게 밥은 무슨 밥을 준단 말이오? 괜히 우리까지 경을 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조용히 앉아 있으시오!”

“뭐? 아니 죄인들은 사람도 아닌가. 밥은 먹여야지. 무슨 오랑캐도 아니고 말이야.”

진호가 발끈해서 큰 소리를 냈다.

그러자 대번에 군병이 창을 꼬나들고 그들에게로 뛰어왔다. 고리눈으로 진호를 노려보더니 으름장을 놓았다.

“이놈아! 죄인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냐!”

“이보시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진호가 지지 않고 대꾸하자 다른 죄수들의 얼굴이 죽을상으로 변했다.

아마 한 사람이 잘못해도 모두가 고통을 당하는 듯싶었다. 군병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얼굴 곳곳에 흉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전쟁을 치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진호를 보며 밖으로 나오라는 시늉을 했다.

일행은 그저 담담한 빛으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진천이 묘하게 웃으며 진호를 놀렸다. 두려움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보며 다른 죄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너 이제 죽었다. 감히 나라의 졸병님들에게 덤비다니…… 쯧쯧!”

졸병이라는 말이 거슬렸을까? 군병의 시선이 진천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그 역시 나오라는 시늉을 했다.

“큭큭!”

사공진무와 다른 둘이 키득거린다.

다른 죄수들은 도무지 죄수처럼 보이지 않는 그들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철딱서니들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진천이 장수를 보며 오히려 성을 냈다.

“문을 열어 줘야 나가지.”

철커덕!

문이 열리고 진천과 진호가 밖으로 끌려 나갔다.

[혈도를 개방하고 몽둥이찜질을 추궁과혈쯤으로 여겨. 그럼 내공이 돌아오는 속도가 좀 빠를 거야.]

[알겠습니다.]

몽둥이찜질을 예상한 진천의 전음에 진호는 느긋한 표정으로 군병을 쳐다봤다.

그들의 여유가 넘치는 태도에 몽둥이를 든 군병은 어이가 없어 잠시 말문을 놓았지만 이내 험악한 인상을 그리며 팔뚝을 걷어 올렸다.

“한 번만 더 까불면 사지를 분질러 줄 테다! 이놈들!”

퍽! 퍽!

단단한 참나무를 물에 한 달 정도 담그면 탄력과 강도가 무척 강해진다.

어지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 그것은 군부대나 단체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 매질을 할 때 애용된다.

그런 몽둥이 두 개가 부러지고 나서야 몽둥이찜질이 끝났다.

때리는 자가 지쳐 휘청거릴 정도였는데 놀라운 것은 매질을 당하는 내내 둘은 단 한 번도 신음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콧노래까지 불러 댔으니…… 그들을 괴상하게 여긴 군병이 상관을 데리고 왔다.

“저놈들입니다.”

“네놈들이 매타작을 당하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단 말이냐?”

제법 험악하게 생겨먹은 장수 하나가 진천과 진호를 보며 먹이를 앞에 둔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진천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맞으면 반드시 울어야 하는 법이라도 있소?”

“놈! 입을 조심하지 못할까!”

장수가 허리에서 칼을 뽑는 시늉을 했다. 그때 뒤쪽에서 병사 하나가 바삐 뛰어왔다.

“지금 즉시 장군막으로 오시라는 전갈입니다! 장군!”

“무슨 일이냐?”

“저는 전달하라는 상장군의 명만 받았을 뿐입니다.”

“상부에서 누가 오기라도 했느냐?”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알았다.”

장수가 진천과 일행들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돌아와서 보자, 이놈들!”

으름장을 놓은 장수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일행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사공진무가 바닥에 누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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