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58화 (156/425)

# 158

<귀환무사 158화>

당대를 떨쳐 울리는 절대적인 그들도 엄청난 금액 앞에서는 쉽사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을 돌아보면 그다지 돈에 욕심을 낼 존재들이 아니지만 신마성, 전체와 관련된 부분이라 그런 것이다. 천하제일의 문파가 되기 위해선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자금줄인데, 그게 일시에 해결되었다.

그것도 평생, 어쩌면 수백 년을 운영하고도 남을 엄청난 금액으로 말이다.

“어머…… 대박이다!”

영호수란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흐흐! 그렇지! 이런 걸 대박이라고 하지.”

“깔끔하게 한 방에 해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주공.”

왕전과 북궁천소가 가장 호들갑이다.

감정표현이 가장 확실한 그들이라 탁자 위에 놓인 문서를 보며 연신 웃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함께 갈 필요는 없을 듯한데.”

혁련강의 말에 혁련천후가 담담히 대답했다.

“저와 이 친구들만 다녀오겠습니다. 그다지 많은 인원이 아니라고 했으니 모두가 갈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혁련천후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금옥장을 통째로 삼키려고 든다면 그만큼 거대한 세력일 거라고 여겼다. 혁련강은 본능적으로 그 세력이 묵련이 아닐까 의심했다.

해서 다시 주의를 주었다.

[묵련일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처신토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혁련천후가 일어섰다.

“진천과 진무가 돌아오면 그때 출발하도록 하지.”

“예!”

제4장 금옥장을 가다

진천과 사공진무는 결국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시 시작된 혈투에서 적포인 하나를 죽일 수 있었지만 가장 강한 자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쐐액!

공기를 가르며 날아든 검강이 진천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허공에서 몸을 틀어 방향을 선회한 진천이 혼신의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쾅!

장력과 검강이 부딪히며 주변을 울렸다.

“놈의 주변을 차단해!”

진천이 화산의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검을 뽑아 적포인의 앞을 막아섰다.

진호를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이 둥그렇게 적을 에워쌌다.

전해지는 기운이 가히 폭발적이자 셋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어 갔다. 적포인의 눈동자는 이미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공마저도 핏빛을 띠니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였다.

그는 진천만을 노렸다.

“어딜!”

진호가 벼락같이 적포인의 측면을 노렸다.

결코 무시 못할 기운이 날아들자 적포인은 진천을 포기하고 진호를 향해 검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엔 진명이 적포인의 좌측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진호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힘을 담은 검이 적포인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땅!

쇳소리가 울렸다. 적포인은 충격에 한차례 휘청거렸을 뿐이었다. 진명이 두 눈을 부릅뜨며 부르짖었다.

“금강불괴!”

“빌어먹을! 금강불괴라니!”

화산의 제자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진천이 큰소리로 외쳤다.

“목과 정수리를 노려라!”

“예!”

화산의 제자들이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는 적포인의 삼면을 차단하고 나섰다. 한편 사공진무는 싸움에서 비껴선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 그는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타의 고수들과는 달리 그는 이동 중에도 운기를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일각 정도만 더 지난다면 본신의 내공으로 회복된다. 사공진무는 오직 그때를 위해 싸움에 뛰어들지 않고 있었다.

[섣불리 치고 들어가지 말고 시간을 벌어라. 일각이면 된다.]

화산의 제자들은 사공진무의 말에 착착 따랐다.

한 명이 왼쪽을 치면 다른 한 명이 그 반대쪽을 치는 식으로 적포인의 판단력을 흐려 놓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가벼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적포인의 혈광이 번뜩이는 눈동자에 초조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마공의 효력이 사라질 때가 머지않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껏 교전에 뛰어들지 않고 있던 사공진무가 있는 쪽을 응시했다.

사공진무가 씩 웃어 주었다.

살광을 폭사하며 다가서려는 그를 화산의 제자들이 막아섰다.

진천이 셋의 합공을 보며 감탄했다. 사전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셋은 맞물려 돌아가는 완벽한 연수합격의 묘미를 보여 주고 있었다.

“많이 늘었군. 그나저나 아직 멀었냐!”

진천이 사공진무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 되어 간다.”

“늦으면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으니 서둘러라.”

“알았다.”

진천은 적포인을 잠시 화산의 제자들에게 맡겨 두고 심호흡을 하며 흐트러진 몸속을 다스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간을 찡그리며 뒤쪽을 돌아보았다.

뭔가가 빠르게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런 때에…….’

진천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기운의 크기는 지극히 미세했다. 그것은 곧 상대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만에 하나 적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진천은 어금니를 악물며 검을 뽑았다. 한데 그때였다.

캉!

“어!”

진천의 눈이 동그래졌다.

꼬리를 흔들며 바람처럼 날아드는 작은 짐승은 바로 백랑이었다. 진천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리는 순간이었다.

한편, 적포인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던 진청이 가쁜 숨을 토해 내며 뒤로 물러섰다.

“허억!”

진호와 진명의 상태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용케 지금껏 막아 낼 수는 있었지만 더는 무리였다. 그만큼 적포인의 무공은 강력했다. 그래도 셋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사공진무가 언급했던 일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꽝!

“우욱!”

진청이 피를 뿌리며 비틀거렸다. 날아든 검강을 막아는 냈지만 엄청난 반탄력에 내상을 입고 말았다. 간신히 일어선 진청이 적포인을 노려보다가 일어서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뒤이어 진명과 진호가 차례로 튕기듯 날아갔다.

간신히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서 있기는 했지만 둘의 눈빛은 이미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적포인은 손쉽게 목을 벨 수도 있는 셋을 제쳐 두고 곧장 사공진무를 향해 돌아섰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백홍이 뛰어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백홍이 적포인의 눈을 할퀴고 지나갔다.

“크악!”

적포인이 한쪽 눈을 움켜쥐며 휘청거렸다.

진천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때다! 놈의 목을 잘라 버려!”

진천의 외침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었던 진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적포인의 목을 베었다.

서걱!

바닥을 구른 머리가 한참을 굴러 저만치에서 멈췄다.

“와! 죽였습니다!”

“헉헉! 목을 자른 건 나다. 흐흐!”

진호가 그 상황에서도 힘겹게 웃으면서 뒤로 넘어갔다.

한계에 다다른 셋은 하늘을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진천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때였다.

드드드…….

“응? 뭐지?”

“지진이라도 난 건가?”

땅이 울리는 것을 느낀 셋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죽은 적포인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뭐지?”

그때였다.

시커먼 그림자가 셋을 향해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막 힘을 회복한 사공진무였다. 그는 화산의 제자들을 두 팔로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하고서는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쾅!

동시에 적포인의 몸이 폭발을 일으켰다.

콰르르!

주변 숲이 초토화가 되었다. 폭발의 여파에 휩쓸린 파편들이 수북하게 쌓이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매캐한 냄새가 주변에 깔려 갈 즈음, 어디선가 백홍이 불쑥 튀어나왔다.

백홍은 진천과 사공진무를 찾아 주변을 킁킁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파편 더미를 두 발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푸하!”

뒤이어 누군가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백홍이 펄쩍펄쩍 뛰며 머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어 댄다.

진천이었다.

뒤이어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처참함 몰골을 하고 있었다.

“쿨럭! 쿨럭!”

사공진무의 몰골이 가장 처참했다. 온몸으로 폭발을 막아 내는 바람에 옷은 갈기갈기 찢겨 얼마 남지도 않았으며 피부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냐?”

“쿨럭! 이게 괜찮아 보입니까?”

“쿨럭! 쿨럭!”

화산의 제자들이 밖을 나오기가 무섭게 하늘을 보며 대자로 쓰러졌다. 진천과 사공진무도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숨을 헐떡였다.

“지독하군. 설마 최후의 수법으로 그런 게 남아 있었을 줄이야…….”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네. 후아!”

“좀 쉬었다가 가자.”

모두는 한동안 숨을 헐떡이며 일어서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서야 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다가서는 수십 명의 인마(人馬)가 있었다.

그중에 황금색 갑주를 걸치고 청룡언월도를 비껴 든 장수가 그들을 보며 외쳤다.

얼핏보면 마치 담대소천을 연상시키는 군의 장수였다.

“제장들은 저자들을 포박하라!”

하나같이 용맹하게 생긴 장수들이 전마를 몰아 진청 등에게로 다가왔다. 진청과 사공진무는 난데없는 상황에 서로를 응시했다.

“군의 장수들인데? 한데 저자들이 왜 우리를 잡으려 하지?”

“폭발 때문에 온 모양이다. 화약을 사용했다고 의심할 법도 하지.”

“화약을 쓰면 잡혀 가냐?”

“군사용이라서 무조건 잡혀간다, 멍청아.”

“어쩌지? 도망칠 힘도 없는데…….”

“어쩌긴 꼼짝없이 잡혀가야지. 나중에 소천 형님께서 꺼내 주겠지.”

진천이 입안에 들었던 먼지를 뱉어 내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공진무도 방법이 없음을 인정하고는 도로 주저앉았다.

“한데 우리가 잡혀 가는 것을 어떻게 알리지?”

“요놈이 있잖아.”

진천이 백홍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공진무의 표정이 밝아졌다. 진천이 주문 같은 것을 읊조리고는 놓아주자 백홍은 날아가는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숲으로 사라졌다.

그때 장수들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창을 겨누며 외쳤다.

“순순히 포박을 받거라, 이놈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소.”

사공진무와 진천은 순순히 두 팔을 내밀었다. 화산의 제자들도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밀었다. 잠시 후, 모두는 포승줄에 단단히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진천이 포승줄을 든 장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저기, 관부까지 말 좀 태워 주면 안 되겠소?”

딱!

“윽!”

진천의 머리로 장수의 창대가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대가 부러져 날아가자 맞은 진천보다 때린 장수가 더 놀랐다. 장수는 자신의 창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

“놈들을 금부로 압송하라!”

‘금부? 금부면 북경까지 간단 말인가?’

북경이면 여기서 엄청난 거리다.

그러나 진천과 사공진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북경으로 가려면 신마성이 있는 섬서를 거쳐야 한다.

‘소천 형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 * *

“흐흐! 전서구가 날아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놈들이 속은 듯합니다.”

왕전이 백어산을 보며 실실 웃었다.

거친 마의에 머리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방립을 쓴 그는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가 그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옆에는 얼굴이 시커멓게 탄 아낙이 함께하고 있었다.

독고혜의 변장한 모습이었다.

지금 그들은 금옥장으로 향하는 중이다. 가면서 백어산 곳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눈들을 속이기 위해 변장을 한 것이었다.

당초 최소 인원으로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던 혁련천후는 독고혜도 함께 데려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덕분에 독고혜는 달구지에 앉아 연신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는 유유히 신마성을 빠져나와 금옥장을 향하는 관도로 올라섰다. 혁련천후는 전서구로 짐작되는 새가 날아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흡족해했다.

묵묵히 옆을 이동하던 조윤이 물었다.

“관에서 아이들을 체포한 연유가 궁금합니다.”

왕전이 대신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