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귀환무사 155화>
콰아아!
진천의 양손에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다른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예사롭지 않음을 간파했을까, 상대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좌우로 몸을 피했다.
그게 그들의 실수였다.
퍼퍽!
“크악!”
둘의 머리가 동시에 뎅강 잘려 날아갔다.
싸움은 그걸로 끝이 났다. 사공진무가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놈들만 온 모양이군.”
“물어보면 되겠지.”
진천이 척추가 부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는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대뜸 손끝을 심장에 겨누며 물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우리를 노렸는지 말해. 곱게 말로 할 때 부는 것이 좋아. 너, 내가 사술을 부린다고 했지? 그거 맞거든. 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을 열게 하는 사술도 있으니 고통을 겪기 전에 순순히 불어.”
“닥쳐라! 퉤!”
노인이 침을 뱉었다. 가볍게 침을 피한 진천이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그러다가 죽여 달라고 하는 수가 있어!”
그때였다.
노인이 별안간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피를 쏟으며 축 늘어졌다.
“독단을 물고 있었구나.”
“지독한 놈들이군.”
“어디서 온 놈들일까?”
“아무래도 좀 찝찝하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어이! 빨리 와!”
진천이 부르자 숲 속에 몸을 숨겼던 도량이 재빨리 뛰어왔다. 셋은 서둘러 말 위에 올라탄 뒤 질풍처럼 내달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앞을 막아서는 자들과 맞닥뜨렸다. 죽립을 깊게 내려쓴 자들이었다.
“이놈들은 좀 다른데?”
“그러게. 조심하는 게 좋겠다.”
진천과 사공진무의 얼굴에 미세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나타난 자들은 모두 넷, 지금까지 막아섰던 자들과는 분위기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죽립을 덮어쓴 자들은 말없이 그들의 진로 방향의 가운데를 막아서며 싸늘한 기운을 발산했다.
“우리한테 볼일이 있는 놈들이면 뜸들이지 말고 냉큼 덤비지그래.”
죽립인들이 일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천이 다시 물었다.
“한데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냐?”
“쓸데없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네놈들이 죽어야 할 이유다. 물론 신마성에 속한 것도 이유기 되긴 하겠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에서 칙칙한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때 다가들던 자들이 일제히 죽립을 벗어 던졌다. 발산하는 기운만큼이나 날카로움을 풀풀 풍기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사공진무의 미간이 슬쩍 꿈틀거렸다.
[죽립을 벗었다면 목숨을 걸었다는 것, 최대한 빨리 처치하고 가야겠어. 다른 놈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저놈을 먼저 보내는 게 좋겠다. 신경이 쓰여서 원…….]
[그러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도량의 귓속으로 전음이 흘러들었다.
[때를 봐서 말을 버리고 경공으로 성으로 뛰어라.]
[어찌 저 혼자만…….]
[가 주는 게 돕는 거다, 이놈아.]
[……알겠습니다. 건투하십시오!]
[건투는 개뿔…….]
사공진무와 진천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도량도 말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너희들 혹시 죽은 도사와 친했던 놈들이냐?”
사공진무가 농담하듯 물었다. 넷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다.
다만 그들이 움직임에 따라 주변 공기가 무척 싸늘하게 굳어졌다가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기괴한 현상이었다.
[놈들의 눈을 봐!]
[저건…….]
[광승 무요의 진경을 익힌 놈들이었네.]
[골치 아프게 생겼군. 혹시 모르니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게 좋겠다.]
[그래. 다른 놈들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 이놈들만 처치하고 냅다 튀자고.]
진천이 양손을 천천히 벌렸다. 사공진무는 검을 늘어뜨린 채 상대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죽여라.”
싸늘한 명령이 떨어지자 죽립을 벗어 던진 자들이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싸움은 곧 치열한 양상으로 바뀌었다. 싸움이 거듭될수록 서로를 향한 놀람은 커져만 갔다. 굳이 따지자면 진천과 사공진무를 노리고 온 자들의 놀라움이 더 컸다.
수장으로 보이는 자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보가 잘못되었다. 저 정도면 오왕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진천과 사공진무의 무공이 너무 강력했다. 거기에 환술과 사술마저 펼치니 상대를 하기가 더더욱 까다로웠다.
“신마성이 과연 대단하긴 하군. 오왕에 버금가는 고수가 둘씩이나 더 있었다니.”
“우리가 좀 강하긴 하지.”
“그래도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는다.”
“개소리는 개집에서나 하라고!”
진천의 양손이 벼락같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의 장심에서 네 줄기의 섬광이 발출되더니 넷을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상대는 그리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펑! 펑!
진천의 장력이 떨어진 곳에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나며 시야를 가렸다.
바로 그때, 사공진무가 연기처럼 꺼지듯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사공진무의 궤적을 놓쳐 버린 죽립인들은 황급히 간격을 벌리며 사방으로 벌어졌다.
서걱!
섬뜩한 소리에 이어 가장 좌측에서 움직이던 자의 머리가 삭둑 잘려 날아갔다.
“후우! 이제 겨우 한 놈을 죽였네.”
어느새 사공진무는 진천의 옆에 나타나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을 쳐 내면서 급속도로 체력의 저하를 느끼고 있었다.
죽은 동료를 쳐다보던 자들의 얼굴이 참혹하게 구겨졌다.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은 탓일까? 바닥을 구르는 수급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개새끼들…….”
지금껏 냉정함을 유지했던 죽립인들의 분위기가 사납게 변해 갔다. 하긴 동료의 죽음을 보았으니 당연한 변화였다.
[장력이 폭발하면 그때를 노려 봐.]
[알았다.]
전음을 건넨 진천이 벼락같이 쌍장을 뻗었다. 죽립인들이 조금 전과는 달리 피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장력에 대항하며 움직였다.
“걸렸어!”
진천의 환호성이 터졌다. 뒤이어 죽립인들을 향해 날아간 장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펑! 펑! 펑!
눈부신 섬광이 바로 코앞에서 터지는 바람에 죽립인들은 일시적으로 시력을 빼앗겼다. 사공진무가 다시 움직였다.
서걱!
또다시 하나의 목이 뎅강 잘려 날아갔다.
그때 둘 중 하나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하늘로 쏘아 올렸다. 진천이 흠칫하며 외쳤다.
“신호탄이야!”
“예상은 했다만 더럽게도 많이 온 모양이다.”
“일단 튀고 보자. 이놈들보다 강한 놈들이 오면 힘들어.”
“좋아! 그래도 저 자식들은 일단 죽여 놓고 튀어야겠지.”
“당연한 소리.”
둘은 전광석화처럼 남은 죽립인들을 덮쳤다.
어렵사리 상대의 목을 베어 낸 진천과 사공진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공으로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런 둘의 속도는 과거보다 훨씬 빨랐다. 사실 둘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혁련강으로부터 수련을 받은 이후로 원래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
진호와 진명, 그리고 진청은 빠르게 무당산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을 태운 말의 속도는 전설의 적토마와 견주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를 자랑했다.
말의 다리에 환술을 펼쳐 놓은 진천의 덕분이었는데, 셋은 철무옥의 상태가 심각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사공진무를 데려올 생각으로 쉬지 않고 무당산을 향해 달렸다.
당초 보내려 했던 백홍이 갑자기 끙끙 앓아눕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두두두두!
말이 지나간 땅바닥이 푹푹 파이며 흙먼지가 솟아났다. 군부의 장수들이 그것을 보았다면 기를 쓰고 말을 뺏으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달리기 쉬운 관도를 따라 쭉 달려가던 그들은 반 시진이 흐른 뒤에 일단의 무리들이 관도를 막아서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삐를 당겼다.
“젠장! 바빠 죽겠는데 뭐야? 저 인간들은…….”
진청이 인상을 그리며 나타난 자들을 노려보았다.
“무림인들 같습니다.”
진명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말했다.
스물에 달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도와 도끼 등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어찌나 사나운지 꽤 먼 곳인 이곳까지 전해졌다. 유심히 살펴보던 진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걱정할 것도 없다. 도적놈들이니까.”
“아는 자들입니까?”
“저 복장을 보고도 모르겠냐? 도둑놈들이잖아.”
“도둑놈? 아! 녹림이군요.”
그랬다.
나타난 자들은 녹림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당금 세상에서 저렇듯 당당하게 녹림이란 표시를 얼굴에 쓰고 다닐 자들은 오직 한 군데뿐이다. 진호를 비롯한 셋의 얼굴이 가볍게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녹림대제의 졸자들이군.”
녹림대제의 직속이면 상당한 고수들이다.
“그냥 갈까?”
“……쪽팔리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임무는 한시라도 빨리 사공대협을 모셔 오는 것이다.”
“그래도 도적놈들을 피해 도망을 친다는 것은…….”
그때였다. 녹림의 고수들이 뭐라 손짓을 해 대며 말을 주고받더니 돌연 방향을 틀어 진청 등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쉽게 지나가기는 글러먹은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진청의 표정이 오히려 반기는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진호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내려라. 수련의 성과를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방법이 너무 살벌해서 문제지요.”
“싫으면 빠지든가.”
“에헤. 그럴 순 없지요.”
셋은 말에서 내려 횡으로 늘어섰다. 내려서는 순간 이미 손엔 검이 쥐어져 있었다.
“흐흐흐! 화산의 냄새나는 도사 새끼들을 여기서 만나다니. 조상님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는구나!”
진청이지지 않고 받아쳤다.
“숲 속에서 쥐나 잡아 처먹을 일이지 이곳엔 어쩐 일로 기어 나왔느냐!”
“쥐가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쥐는 민가에 더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 민가에 사는 쥐들이 살도 토실토실한 법이지.”
“이런 개자식들이!”
셋의 능글거리는 태도에 녹림의 고수들이 일제히 사나운 기운을 발산했다.
그 기세가 소위 장난이 아니었다. 셋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아니겠지요.]
[낸들 알겠냐. 붙어 봐야지.]
녹림의 고수 하나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도끼를 들어 진호를 겨냥했다.
“네놈들이 신마성의 보호를 받더니 기고만장해졌구나. 하지만 지금 이곳엔 네놈들뿐이다. 그것은 곧 이곳에서 네놈들이 죽는다는 것을 뜻하지. 지난날엔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당했다만 오늘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 주지.”
“그만 지껄이고 시작하는 게 어때.”
“언제까지 그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지 보겠다. 쳐라!”
녹림의 고수들이 일제히 셋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호의 검이 허공을 가르면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 * *
사공진무와 진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앞만 보고 달렸다.
연이은 충돌로 내공의 소모가 꽤나 컸던 둘은 적절히 수위를 조절하면서 최대한의 속도로 신마성을 향했다.
놀랍게도 둘은 달려가면서 특수한 심법을 이용해 손실된 내공을 보강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혁련강에게서 받은 수련의 덕분이었다.
휘이익!
달리면서 진천이 물었다.
“우리를 공격했던 놈들이 묵련일 가능성이 높겠지?”
“아마 그럴 거다. 명수진인이 놈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놈들은 명수진인이 죽기 전에 내게 어떤 정보라도 준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서 우릴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조만간에 천하에 피바람이 또 불어닥치겠어. 쯧쯧.”
“상관있냐. 쳐들어오면 박살을 내 주면 그뿐이지 않냐.”
“닥치고 더 빨리 달려보자!”
쾅!
바닥을 차고 오른 둘의 속도는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빨랐다. 그렇게 관도를 타고 쭉쭉 내달릴 즈음이었다.
쌕!
좌우의 숲에서 파공성이 일었다. 뒤이어 수십 발의 암기들이 질주하는 둘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또냐?”
“돌아 버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