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귀환무사 154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거 같다.”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뒤쪽에 물러나 있던 도량이 다가왔다. 둘을 응시하는 눈동자에 열망이 어려 있었다.
‘나도 이분들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괜히 가슴이 뛰었다. 이제부턴 이들과 함께 지낸다. 물론 이들보다 더 위대한 존재도 신마성에 있다.
“자! 서두르자, 이놈들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혹 다른 놈들이 귀찮게 하기 전에 달리자고!”
“그러지!”
두두두두!
셋은 먼지를 일으키며 동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다음, 죽은 자들의 옆으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죽립을 덮어쓴 그들은 죽은 자들의 곳곳을 살피고는 일행들이 사라져 간 방향으로 섬뜩한 시선을 던졌다.
“역시 보통내기들이 아니었어. 저 정도면 오왕에 뒤지지 않는 실력이다.”
“쫓을까요?”
“우리만으론 힘들다. 놈들이 신마성에 들기 전까지 시간이 꽤 있으니 지원 병력과 함께 목을 친다.”
“당장에 섬서 지부에 전서를 날리겠습니다.”
“꽤 강한 놈들이니 지부의 전력을 모조리 출동시키라고 전해라!”
“예!”
푸드득!
전서구가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죽립을 덮어쓴 자들 역시 전서구가 날아간 방향으로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 * *
남해검문과 함께 적을 치겠다며 떠났던 각 문파의 사람들이 당률에 의해 큰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정도맹에 전해지면서 사람이 신마성을 찾았다.
사태의 크기를 감안한 것인지 수석 장로인 적용세가 직접 몇을 거느리고 신마성을 찾았다. 죽은 자들의 시신을 인도하기 위함이었는데, 적용세는 이들을 죽인 범인이 다름 아닌 당가의 독제 당률임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그도 당률이 일전에 혁련천후에 의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신들을 모두 마차에 실은 적용세는 출발하기에 앞서 혁련천후의 거처에서 찻잔을 앞에 두고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또다시 신세를 졌소이다. 번번이 이렇듯 도움을 주시니 맹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
적용세가 두 손을 굳게 잡고 머리를 숙였다.
“별말씀을…….”
“생존자들의 말로는 독제가 독황의 경지에 든 것으로 말하더이다. 한데 그러한 자를 죽였다니 이야말로 무림의 크나큰 우환거리를 제거한 것이 아니겠소. 다시 한 번 성주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는 바이외다.”
혁련천후는 담담히 인사를 받았다.
사실 생강시나 독황 따위는 앞으로 나타날 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장 마교를 무너뜨린 철갑신마의 진경을 이은 자들만 하더라도 하나가 독제 당률과 맞먹은 엄청난 존재들이다.
더욱이 아직 그 모습을 제대로 나타내지 않은 광승 무요의 진경을 이은 자들까지 있지 않은가. 적용세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빛을 발했다.
“아! 십지신검이 곧 이리로 올 것이오. 허허!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간다는 것을 겨우 말리고 있소이다.”
‘큰일 났군.’
혁련천후는 독고무와 재회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십 년 동안 묵혔던 것들을 풀어 내려면 아마 며칠을 밤새워 술을 마셔야 할지도 모른다. 문득 지금껏 그를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자신을 자책하며 찻잔을 비웠다.
적용세가 일어섰다.
“성주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소만 해를 당한 사람들 때문에 이만 이 몸은 물러가겠소이다.”
적용세가 물러갔다.
천운으로 목숨을 구한 각파의 고수들은 신마성에게 급구 고마움을 표하며 적용세와 함께 정도맹으로 떠났다.
당률과 손규로 인해 불어닥쳤던 열풍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제2장 광승의 흔적
“무옥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흠…….”
“진무가 와야 뭘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혁련천후는 별관에 마련된 야외 탁자에 수하들을 불러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당률에 의해 중상을 입은 철무옥은 자객들이 주로 쓰는 귀식대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점혈을 한 후, 죽은 사람처럼 지내고 있는 중이다.
목숨엔 지장이 없었지만 무공은 그가 깨어나 봐야만 알 수 있었다. 운이 없다면 내공을 상실할 수도 있다.
철무옥의 상태 때문에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왕전이 물었다.
“묵련인가 하는 놈들이 언제쯤 움직일 듯싶습니까?”
“아직 모른다.”
“전에 족쳤던 놈이 육 개월 정도면 움직일 거라 했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수십 년, 아니 어쩌면 수백 년을 기다려 온 놈들이다. 그깟 몇 개월 늦어지는 것쯤은 놈들에겐 아무것도 아니겠지.”
금존청을 제쳐 두고 독한 화주 한 잔을 마신 혁련천후가 안주를 입으로 가져가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담대소천의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성과 빙궁이 놈들과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세 마두도 결국 마지막에는 함께 천하를 상대로 싸우려 했지 않았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 어쩌면 두 곳이 묵련의 하부 세력일 수도 있을 테고…… 어쨌든 너희들의 무력이 극에 이르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니 절대 수련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예!”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
혁련천후가 관산악을 보며 물었다.
“아이들의 수준은?”
“진천에게 환술을 수련 중인 아이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세 놈은 전과 비교하면 일취월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실전 경험을 쌓고 조금만 더 보강하면 꽤나 큰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제법이군. 그 정도면 진유 그 아이와 붙어도 비슷한 정도라고 봐야 하나?”
“진유 그놈은 노주께서 직접 가르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쩌면 조만간 우리가 잡아먹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하하.”
관산악이 짐짓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다.
이미 정점에 올라선 그들이다. 그 정점을 넘어서기 위해 수련 중인 그들을 따라잡기란 백 년이 걸려도 쉽지 않은 것임을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다.
술잔을 기울인 혁련천후가 독고혜가 건네준 육포를 씹으며 말했다.
“전에 그놈 말이야. 용성의 소성주라는…….”
“죽은 놈을 왜 거론하십니까?”
“느낌이 좋지 않아. 극성에 이르지 않은 혈마의 마공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강력하더군. 예상보다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렸으니까…….”
조윤이 말을 받았다.
“자식이 그 지경을 당했으니 놈들이 곧 움직일 수도 있겠습니다.”
혁련천후도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용성이 먼저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자식의 죽음까지도 야망에 묻을 수 있는 존재라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강적이 분명할 테니까.
그 정도 심기에 혈마의 마공을 극성으로 익혔다면…….
‘꽤나 힘든 상대가 되겠지.’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윤이 다시 말했다.
“놈들이 만약 묵련이라는 곳과 한 무리거나 관련이 있다고 가정하면 세를 집결하기 전에 먼저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세 곳이 만약 하나로 뭉치면 그땐 답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쩌면.”
“정도맹과 우리가 하나로 힘을 모은다고 쳐도 은거했던 전대의 고수들이 모조리 나오지 않는 한은 이쪽이 불리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이쪽의 세를 집결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만에 하나 세 곳이 하나로 전력을 합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다. 더구나 아직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할 수 없는 묵련까지 있지 않은가.
모두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혁련천후가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놈들의 이동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각개격파란 자칫 전력의 분산을 가져올 수가 있다. 차라리 그들이 수면 위로 부상할 때, 전면전으로 때려부수는 것이 지금으로썬 최선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정도맹의 첩보망에 용성이나 빙궁의 이동 경로가 드러나면 그때그때 산발적으로 제거하면 더 좋겠지만…….”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춰 버린 그들의 행적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정보망이 부실한 신마성의 입장으로는 정도맹의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더더욱 힘들다고 봐야 했다.
모두가 정보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만 돌아들 가서 쉬도록. 그리고 진무에게는 백홍을 보내서 좀 더 빨리 오라고 전하고.”
“화산의 아이들이 갔지 않습니까?”
“길이 어긋났을 수도 있으니 백홍을 보내 봐.”
“알겠습니다.”
달이 하늘의 한가운데 걸렸을 즈음 모두는 술자리를 끝내고 각자의 거처로 향했다.
영호수란과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가는 독고혜를 보며 조금은 아쉬움을 보이던 혁련천후, 그런 그를 보며 조윤 등이 몰래 웃었다.
북궁천소가 소리를 내어 웃다가 그만 들키고 말았다.
빡!
그의 뒤통수에 이내 불꽃이 작렬했다.
“윽!”
* * *
무당산을 내려와 신마성을 향하던 사공진무와 진천은 얼마 이동하지 못하고 또다시 공격을 받아야 했다.
관도의 좌우 숲에서 무수히 많은 암기들이 날아들었다.
따다다당!
검막을 일으켜서 날아든 강전들을 튕겨 낸 진천과 사공진무는 말을 버리고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좌우 숲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나타난 자들은 모두 아홉 명, 하나같이 번뜩이는 안광에다 태양혈이 불끈 솟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전에 상대했던 자들보다는 더 강해 보였다.
“이것들은 또 뭐야.”
“어디서 온 놈들이지?”
묻는다고 대답할 리가 있을까. 무척이나 날카롭게 생긴 적포인이 눈빛을 주자 다른 자들이 다짜고짜 진천과 사공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냥 죽여 버리자.”
진천의 양손이 시퍼런 빛을 둘렀다.
치르륵!
거미줄처럼 생긴 그것이 날아드는 자들을 향해 넓게 퍼지며 날아갔다. 맹렬하게 날아들던 아홉 줄기의 강기가 거미줄에 막혀 산산이 소멸되었다.
까가가강!
“좋았어!”
사공진무는 반대편의 인물들에게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화극이 사공진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사공진무는 막지 않고 몸을 슬쩍 틀어 흘려보내고는 검을 뻗었다.
퍽!
“컥!”
사공진무의 검은 화극을 휘둘렀던 자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다른 자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사공진무의 한 수는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놀람은 거기서 다가 아니었다.
사공진무가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돌연 다른 자들의 뒤쪽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여기다, 이놈들아.”
퍽!
흑포인 하나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술을 쓰는 놈이다! 조심해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적포인이 사공진무를 덮쳤다.
움직인다 싶은 순간 노인의 검은 사공진무의 목을 베어 가고 있었다. 사공진무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검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노인은 그것마저도 예측을 했는지 검을 거두지 않고서 쭉 앞으로 뻗었다. 기존의 검 끝에서 강기가 발출되면서 사공진무의 옷깃에 닿았다. 하지만 더는 앞으로 뻗지 못했다.
깡!
사공진무가 검을 수직으로 내려치자 노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검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사공진무는 재차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노인이 재빨리 뒤쪽으로 미끄러지듯 물러섰다. 하지만 그곳에 진천이 있었다. 초강력 환술로 벌써 네 개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진천은 자신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오는 노인의 등을 강하게 걷어찼다.
“어디다가 냄새나는 엉덩이를 들이밀어!”
진천의 발길질이 노인의 등에 작렬했다.
퍽!
“컥!”
노인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노인이 펄떡펄떡 뛰었다. 척추가 부러지면서 오장육부마저 박살이 나 버렸으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