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귀환무사 153화>
* * *
장원이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졌다.
수십 명에 달하는 정도맹의 고수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있었다.
대부분이 독에 의한 부상이어서 치료를 하기가 마땅치 않았는데, 다행히 천마사로의 독로가 오면서 한숨을 덜 수 있었다.
그 또한 당률에 못지않은, 어쩌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당률보다 더 고강한 독공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강자였기에 최소한 부상자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은 막아 낼 수 있었다.
수련 중이던 청룡단의 단원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부상자들 중에 그들과 같은 문파의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던 까닭에 분위기는 이내 침울하게 변해 갔다.
“이곳에서 이러고 있으면 치료에 방해가 되니 모두 돌아가라!”
악승이 청룡단원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들 돌아가라.”
백리추가 거들고 나서자 청룡단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거처로 돌아갔다.
“이자는 치워야겠네.”
독로가 악승을 불렀다.
치료하던 한 인물이 숨을 거둔 것이다. 복장으로 보아 청성파의 인물인 듯 보였다.
몇 명이 더 죽었다. 이미 심장까지 침투한 독은 제아무리 독로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회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위주로 우선 치료를 했기에 기다리는 와중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만 갔다.
사공진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 외에는 의술에 전혀 조예가 없었기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독고혜와 영호수란이 왕전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모두가 그녀를 정중하게 맞았다. 마교의 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그녀는 혁련천후의 부인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우리가 도울 일은 없나요?”
“중독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위험하니 멀찌감치 물러서도록 하시오.”
독로가 고개를 젓자 독고혜는 어쩔 수 없이 더는 나서지 못했다.
왕전이 백어산의 중턱을 쳐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분명 누군가 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단되었다. 설마 여태껏 그 괴물과 싸운 것은 아니겠지.’
당률을 상대하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렸다.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오자 왕전은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독고혜를 돌아보았다. 그가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그들의 뒤쪽에 혁련천후와 북궁천소등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어멋! 깜짝이야!”
영호수란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왕전이 재빨리 모두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영호수란이 눈을 휘둥그레 하며 물었다.
“한데 왜 전부 같이 오시는 거죠?”
수련동에 있어야 할 혁련천후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던 북궁천소 등과 같이 들어서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럴 일이 있었다.”
왕전이 조윤에게 물었다.
“놈은 어떻게 되었냐.”
“당연히 죽었지.”
“저기 저곳까지 이동하면서 싸운 거냐?”
“거긴 다른 놈들이 있었다. 물론 주공께서 놈들과 싸우신 거고.”
조윤이 혁련천후를 힐끗 가리키자 왕전은 이내 혁련천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을 돌아본 조윤이 말했다.
“이곳은 저희들이 수습하겠습니다. 거처로 드십시오.”
“부탁한다.”
혁련천후는 땀을 흘리며 치료에 열중인 독로에게 다가가 눈빛으로 수고하라는 인사를 건네고는 거처로 올라갔다.
“괜찮으세요?”
독고혜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혁련천후는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그는 곧장 조부 혁련강의 거처로 걸음을 놓았다. 연무장의 소란에도 혁련강은 붓을 들고 커다란 종이에 뭔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말없이 서서 종이를 응시했다.
“이게 뭔지 알겠느냐?”
“무엇입니까?”
“그동안 내가 수집했던 정보란다. 놈들의 흔적이 나타났던 장소들과 가문의 호위들이 당했던 장소들, 그리고 죽은 자들에게서 나타났던 마공의 종류 등이지. 그냥 정리를 해둘까 해서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꽤 중요한 것을 발견했구나.”
“…….”
“여길 좀 보아라.”
혁련천후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혁련강이 적어 놓은 것을 보았다. 지도처럼 생긴 그것은 여러 개의 선이 이곳저곳을 이어 놓고 있었는데 면밀히 살피던 혁련천후의 눈이 돌연 이채를 발했다.
“저 중심이 되는 곳이 섬서입니까?”
“그렇지. 이 모든 선들이 출발하는 것이 바로 섬서 쪽이지 않느냐? 네겐 아직 말하지 않았다만 그동안 내가 수집했던 것들 중 대부분은 섬서가 그 중심에 있었다. 최근에 남쪽과 북쪽에서 두 세력의 침공으로 다소 판단이 난해해지기는 했었다만 이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 역시 섬서를 의심할 수밖에 없구나.”
혁련천후는 크게 놀랐다.
지금 혁련강은 묵련의 거처를 파악하는 중이다. 한데 섬서라면 바로 정도맹의 본단이 있는 강호의 중심지가 아닌가.
“정도맹의 가장 가까운 곳에 어쩌면 놈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지. 사실이라면 놈들의 배짱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심정이구나. 허허허.”
수염을 쓰다듬으며 하던 것을 마저 한 혁련강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혁련천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천살강기를 끌어 올렸던 모양이구나.”
“……느껴지십니까?”
“극성에 이르지 않으면 펼친 후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이 남게 되어 있다. 물론 나와 너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지만.”
혁련천후는 씁쓸히 웃었다.
거의 다 되었다고 여겼는데 아직 멀었다니.
“누구와 싸웠느냐.”
“용성의 소성주라는 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사부라는 자 역시…….”
“죽였느냐?”
“사부라는 자는 살려서 놔주었습니다.”
혁련강이 의아한 기색을 비쳤다.
“그 정도의 고수라면 사전에 제거해 두는 것이 좋았을 터인데…….”
“부상을 입은 데다 이지마저 제압을 했으니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무조건 숨통을 끊어야 한다. 혈마의 진경을 익힌 자들이라면 제압당한 이지 정도는 쉽게 풀어 낼 수도 있으니까.”
“……예.”
“술이나 한잔 하겠느냐.”
“그러겠습니다.”
둘은 연무장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둘이 자주 술을 마시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 * *
무당산의 하늘이 매우 흐렸다.
무당 장문인과 담소를 나누고 막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온 진천과 사공진무는 도량이 마련해 준 간단한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철무옥의 일을 모르는 그들은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진천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곳 무당산은 터가 명당이야. 산세를 보나 주변을 두른 공기의 흐름을 보나, 가히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할 수 있겠군.”
“터만 좋으면 뭐해. 인재가 나와야지.”
사공진무가 투덜거리자 도량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진천이 도량의 어깨를 툭 쳐 주면서 말했다.
“이놈이 있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무당의 검이 될 거다.”
“지나친 과찬이십니다. 제가 감히 어찌…….”
“하하! 인마! 주공께서 널 거두신 것만으로 넌 미래를 보장받은 것이야. 알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진천이 술잔을 쓱 내밀었다.
“술 한잔 주랴?”
“아, 아닙니다.”
“크! 화산 놈들은 없어서 못 마시던데 넌 제대로 도인의 예를 익힌 모양이군. 하지만 말이야, 도가 별거 있겠어. 그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 진정한 우화등선의 지름길이 아니겠냐.”
진천이 웃으며 술잔을 입으러 가져갔다.
제법 심오한 말에 도량이 눈을 반짝이며 진천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겠어. 진인이 내게 전해 준 말을 서둘러 전해야 하니.”
“그러지. 아무튼 놀라워. 그자가 설마 그럴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비록 확실치는 않지만 그래도 죽어 가며 전해 준 말이니 믿어 볼 수밖에.”
둘의 대화에 도량이 눈을 반짝였으나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술자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 그들은 다음 날 새벽에 무당파를 떠났다.
명수진인의 장례를 치르고 가겠다고 버티던 도량은 사문의 어른들이 극구 등을 떠밀어 눈물을 머금고 무당산을 내려왔다.
그들은 무당 장문인이 안겨 준 선물을 양손 가득 들고, 마찬가지로 무당 장문인이 배려한 말을 탄 채 빠른 속도로 섬서로 향했다.
날씨는 무척 맑았다.
무당의 산문을 내려온 셋은 빠르게 신마성을 향해 질주했다. 초겨울로 접어든 날씨 탓에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는 찬 바람이 셋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그들이 무당의 권역을 넘어 어느 작은 고을이 보이는 야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가장 뒤쪽에서 말을 몰아가던 진천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우리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
그는 전음으로 사공진무를 세웠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말을 몰아가던 도량이 말 머리를 돌려 그들에게로 다가올 때, 숲 속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같이 칙칙하면서도 음습한 기운을 지닌 자들이었다.
진천이 대뜸 물었다.
“우리에게 볼일이 있냐?”
“당연하지.”
나타난 자들은 모두 다섯, 하나같이 잘 별러 놓은 칼을 보듯 지독한 날카로움을 풀풀 풍겨 냈다. 도량이 그 기세에 눌려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설마 이것들을 달라고 그 꼬라지들을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
사공진무가 안장에 주렁주렁 걸린 보따리들을 툭툭 치며 물었다.
무당 장문인이 전해 준 선물이었다.
“그거야, 네놈들이 죽으면 저절로 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그것보단 네놈들의 목이 더 필요해. 너희 신마성이 꽤나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군. 해서 네놈들의 목을 잘라 그곳으로 보내 줄 생각이다. 일종의 경고라고 보면 되겠지.”
진천과 사공진무의 눈빛이 변했다.
오왕이라면 몰라도 자신들은 그다지 소문에서 비켜나 있었던 존재들. 하지만 눈앞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신마성의 일원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오호! 이제 보니 처음부터 우리를 미행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놀라운데? 나의 이목을 속이고 쫓았다면 꽤 강한 놈들이라고 봐야겠어.”
사공진무가 거들었다.
“아니면 무당파에 네놈들에게 정보를 주는 첩자가 있든가.”
“쓸데없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게 바로 저승사자를 품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어쨌든 내일이면 신마성에 네놈들의 머리가 배달될 것이다.”
“거참,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단 말이야. 쯧쯧쯧.”
진천과 사공진무가 느릿하게 말에서 내려섰다. 둘은 도량에게 뒤로 물러나 있으라 하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채챙!
“우리가 신마성의 소속임을 알고 있는 것이 놀랍기는 한데……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신마성의 누구인지는 알고 있냐?”
“…….”
진천과 사공진무의 주변 공간이 강대한 기운으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저승사자를 품고 사는 것이라 했냐? 틀렸어. 상대를 모르고 덤빈 네놈들이 저승사자보다 더한 염라대제의 콧수염을 뽑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자식, 오늘따라 말 한번 잘하네.”
“닥치고 쓸어버리자.”
“당연하지.”
쾅!
사공진무와 진천이 먼저 움직였다.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하나같이 대단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상대는 오왕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진천과 사공진무였다.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서걱!
마지막 남은 자의 목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
“너 꽤 강해졌는데? 확실히 수련을 한 성과가 있는 모양이구나.”
“네놈도 확실히 전보다는 강해진 것 같은데 뭘 그래. 이거 돌아가면 노주께 비싼 술이라도 진상해 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