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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52화 (150/425)

# 152

<귀환무사 152화>

* * *

오 대 일의 싸움은 손규의 호위무사 두 명이 피를 뿌리며 날아가면서 팽팽함이 깨졌다.

손규의 놀람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대체 이놈이 누구이기에…….’

강해도 너무 강했다.

자신의 호위들은 하나하나가 초절정을 밟은 고수들이다. 게다가 용성의 다른 호위들과는 달리 그들은 아주 특별한 마공을 익혔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이 제대로 공격조차 못해 보고 목이 날아갔다.

그가 강하다는 건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터였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손규이기에 놀람은 클 수밖에 없었다.

놀란 것은 혁련천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죽인 자들이 펼치는 무공. 그것은 그토록 우려했던 혈마의 마공이었다.

‘이런 곳에서 혈마의 무공을 익힌 놈들을 만나다니…… 그렇다면 이놈들은 용성에서 온 놈들일 가능성이 높겠군.’

혁련천후의 눈빛이 이내 살기로 번뜩였다.

“용성에서 왔느냐.”

“그렇다면 어쩔 테냐!”

손규는 순순히 신분을 밝혔다.

“소성주!”

운봉이 놀라 외쳤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더불어 그 자신도 큰 실수를 범했다. 자신도 모르게 손규의 신분을 드러내었지 않은가.

혁련천후는 상대가 용성이라는 말에 비로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용성이 혈마의 아수라마공을 익혔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용성의 인물들이 왜 이곳까지 들어왔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물어봤자 대답을 해 줄 것도 아니니 방법은 한 놈을 사로잡아 족치는 것뿐이다.

‘분명 소성주라고 했다. 그렇다면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군.’

혁련천후의 검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을 두르기 시작했다.

치르륵!

손규가 먼저 움직였다. 강하게 바닥을 차고 오르며 혁력천후를 향해 섬전처럼 달려들면서 검을 쌍방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운봉이 혁련천후의 우측 방위를 차단하며 검강을 일으켰다.

‘대단하군!’

짓쳐 드는 기운의 정도가 호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해서 혁련천후도 긴장하며 보법을 펼쳐 공세에서 빠져나왔다. 동시에 손규의 움직임을 쫓아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첫 번째 공격은 무위에 그쳤다.

두 번째 공격은 손규의 검에 막혔다. 그리고 세 번째 펼친 공격도 손규의 검과 충돌하는 것으로 끝났다.

“욱!”

손규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검과 검이 부딪히자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강력한 반탄력이 오장육부를 뒤흔들면서 울컥 피가 올라왔다. 하지만 손규는 애써 도로 삼켰다.

“제법이군.”

쐐액!

혁련천후의 검이 벼락같이 회전하며 손규를 공격할 것처럼 보이더니 돌연 운봉의 허리를 향해 날아갔다.

꽝꽝!

그 역시 결코 만만치 않은 고수. 연속적인 공격에도 운봉은 검을 휘둘러 혁련천후의 공격을 무위로 돌려 놓았다.

“조심하시오! 소성주!”

운봉이 외쳤다.

손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를 고쳤다. 혁련천후는 오른 다리를 뒤쪽으로 슬쩍 옮겼다. 뒤이어 검을 비스듬히 아래로 늘어뜨렸다.

‘혈마의 진경을 어떻게 얻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그러자면 다른 두 놈을 최대한 빨리 처치해야 한다.’

사실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게까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릇 사로잡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법이다. 하물며 상대가 손규나 운봉이니 어지간한 천하고수라도 사로잡겠다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다.

쐐액!

뒤쪽에서 강맹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지금껏 싸움에 끼지 않고 물러섰던 호위 하나가 온몸을 던져 암습을 가해 온 것이었다.

혁련천후는 그 정도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든 검을 팔과 옆구리 틈에 끼웠다. 그러고는 팔꿈치를 이용해 상대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호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때를 노리고 운봉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운봉의 검이 복부에 거의 닿으려고 할 즈음, 혁련천후는 벼락같이 검으로 운봉의 가슴을 노렸다.

팟!

“크윽!”

운봉이 가슴을 움켜쥐고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운봉이 불신의 빛으로 흔들리는 시선을 들어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로 시커먼 핏물이 흐르는 것이 단순히 검에 베인 것은 아닌 듯 보였다. 혁련천후가 운봉을 향해 다가서자 손규가 측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꽈앙!

혁련천후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일부러 손규의 검을 후려치자 굉음과 함께 주변의 수풀과 흙먼지가 허공을 덮으며 치솟았다.

“으…….”

손규의 안색이 밀랍보다 더 창백하게 변했다. 입가를 타고 피까지 흘렀다. 그 역시 큰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생애 최초로 느껴 보는 두려움이다. 어쩌면 손규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감정일 수도 있었다. 손규의 불신으로 흔들리는 눈빛이 서서히 악랄한 빛을 머금어갔다.

더불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좋다. 나의 자존심을 보여 주마.’

화아악!

손규에게서 지독한 마기가 뿜어졌다. 혁련천후조차도 흠칫할 정도의 강력한 마기였다.

“소성주!”

운봉이 나지막이 부르짖었다.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손규의 변화 때문이리라. 그것으로 보아 지금 손규는 해선 안 될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혁련천후는 손규의 변화를 주시했다. 그러다가 눈빛이 무겁게 변해 갔다.

‘익힐 건 다 익혔군.’

혈마의 마공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것을 손규가 익히고 있었다.

‘극성에 이르렀다면 꽤나 힘들게 생겼어.’

만약 손규가 그 수준이 극성에 이르렀다면 승부를 결코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그만큼 지금 손규가 펼치려는 마공은 강력한 것이다.

더욱이 운봉까지 있으니 상황은 처음보다 훨씬 악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혁련천후는 이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혈마가 살아 돌아와도 나를 어쩌진 못한다.’

치르륵!

화산의 구룡검(九龍劍)이 녹아 깃든 검이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청광이 아니라 눈부신 백광이었다. 놀라운 것은 검이 서서히 그 형체를 잃어 가더니 종래에는 혁련천후의 빈손만이 보일 뿐이었다.

만약 손이 움켜쥔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검을 들지 않은 것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는 광경이었다.

운봉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저것은 이기어검의 경지를 넘어선 심검의 경지! 소성주가 위험하다!’

그는 재빨리 손규를 돌아봤다.

손규는 괴수처럼 붉어진 눈동자에다 본래의 육신보다 한뼘은 더 크고 우람하게 바뀌어 있었다.

순간 운봉은 절망했다. 저 상태면 이미 돌이키기엔 늦어 버린 것이다.

설혹 상대를 꺾을 지라도 다시는 과거의 총명했던 손규로 돌아가지 못한다. 물론 그 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운봉은 여겼다.

어쩌면 둘이 한꺼번에 덤벼도 승산이 없을지도 모른다. 저 투명하게 변해 버린 검이 그것을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손규가 운봉을 향해 말했다.

“사부는 끼어들지 마시오. 이건 저놈과 나의 싸움이오.”

“소성주…….”

“끼어들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운봉은 탄식하며 물러섰다.

손규는 자신의 주인이자 제자이다. 그런 그가 지금 죽음을 향해 걸음을 놓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막을 수가 없다. 아니 처음부터 막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

혁련천후가 둘을 도발했다.

“함께 덤벼도 상관없는데…….”

“닥쳐라!”

쐐액!

손규가 다시 달려들었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굉금과 섬광이 난무했다. 주변의 나무들이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날아갔고 파생된 여파가 떨어진 땅에는 커다란 구멍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꽈과광!

쩌저적!

백광과 적광이 한데 어우러지며 피어오르는 광경은 장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극성까지 익히지는 못했다. 하나 사로잡기는 불가능하다.’

혁련천후는 어쩔 수 없이 손규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그의 검이 두 배는 더 길게 늘어났다.

물론 손규와 운봉은 볼 수 없는 변화였다.

한편, 강적이었던 당률을 처치하고 돌아가던 북궁천소 등이 난데없이 들려온 싸우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좌측을 돌아보았다.

“누가 싸우는 모양인데?”

“그러게. 감히 어떤 놈들이 여기서 싸우고 지랄들이야.”

섬광이 번뜩이는 것이 마치 번개가 치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지켜보던 조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주공의 기운 같은데…….”

“……진짜냐?”

“섬광의 색이 달라져서 확신할 순 없지만 천살강기라는 것을 펼칠 때 저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진짜 그러네.”

북궁천소가 맞장구를 쳤다.

흑야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만약 주공이 맞으면 만만치 않은 놈을 만나신 모양이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야는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 뒤를 조윤과 북궁천소가 내달렸다.

엄청난 속도로 경공을 펼친 그들은 짧은 시간에 전장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뒤로 한발 물러서 있던 운봉은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북궁천소등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그는 한눈에 조윤과 북궁천소를 알아보았다.

‘창왕과 오왕…….’

용성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그들이다 보니 운봉이 몰라볼 까닭이 없었다. 다만 흑야는 워낙에 은밀하게 움직였던 까닭에 그가 살왕임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모두는 혁련천후와 맹렬히 싸우고 있는 손규를 응시했다.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하긴 천하에 혁련천후와 저토록 맹렬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그때 북궁천소가 운봉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그렸다.

“이봐, 너도 저놈과 한패냐!”

그의 손은 굉혈도를 쥐고 있었다. 그만큼 노인이 발산하는 기운이 강력했다.

“혈마의 마공을 제대로 익힌 놈이군.”

조윤이 중얼거리며 창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창에서 우웅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운봉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그는 혁련천후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들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저자가 혹시…….’

오왕을 수하로 거느리는 자는 세상에 한 명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운봉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에 하마터면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신마성주!’

그때 북궁천소가 다시 외쳤다.

“누구냐고 묻잖아!”

“멍청한 놈. 딱 봐도 한패로 보이는구만.”

흑야가 북궁천소를 보며 혀를 찼다.

히죽!

북궁천소가 난데없이 히죽 웃더니 돌연 운봉을 향해 달려들었다. 운봉이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아갈 즈음에 혁련천후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놈은 사로잡아야 한다.”

누구보다 운봉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뒤이어 그가 전신을 휘청거렸다. 흙먼지를 헤치며 걸어오는 혁련천후. 그 뒤에 상반신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채 쓰러져 있는 손규가 보였다.

“소성주…….”

기어코 손규가 죽었다.

운봉은 절망감에 그만 휘청거리고 말았다. 북궁천소의 거친 목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니가 지금 내 앞에서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퍽!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운봉이 가랑잎처럼 뒤로 날아갔다.

“자살을 할 수도 있으니 혈도부터 제압하도록.”

혁련천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흑야가 운봉의 혈도를 짚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혁련천후를 향해 부르짖었다.

“나의 주인께서 네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이다!”

“그 전에 네 사지부터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을 걱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용성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순순히 털어놓으면 고통 없이 죽여 줄 용의도 있다.”

“닥쳐라! 퉤!”

운봉이 침을 뱉었다.

혁련천후는 운봉의 두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고문에 입을 열 놈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뇌심공을 펼칠 수밖에…….’

혁련천후는 주저 없이 극악의 마공이라는 제뇌심공을 펼쳤다.

운봉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용성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다 끝났을 때, 북궁천소가 운봉의 목을 자르려 했지만 혁련천후는 그냥 놓아주라고 했다.

어차피 이지를 제압당했으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운봉은 그렇게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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