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귀환무사 151화>
제1장 용성의 소성주와 당률의 죽음
사공진무와 진천, 그리고 도량은 저 멀리 보이는 무당산의 그림자를 보며 빠르게 달렸다.
상대적으로 경공의 속도가 훨씬 떨어지는 도량이 아니었다면 벌써 도착했을 무당산이었다. 진천이 점점 가까워지는 무당산을 보며 농담을 늘어놓았다.
“떼거리로 달려드는 것은 아니겠지?”
“……옛?”
“그냥 해 본 소리다. 힘 좀 써 봐! 이러다가 또 날 새우겠다.”
“끙! 이게 최선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파파파팍!
태양이 무당산의 끝에 걸려 갈 즈음 그들은 무당의 산문을 넘어섰다. 도량이 서둘러 사공진무와 진천을 명수진인의 거처로 안내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도맹의 구천각주를 지내며 권력의 중심에 섰던 명수진인의 거처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이미 그와 자신의 주공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모든 일을 들어서 알고 있던 사공진무는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명수진인의 거처로 들어섰다.
‘응! 이 냄새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사공진무는 한쪽에 천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늙은 도인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들어왔음에도 그는 전혀 기척을 못 느끼고 있었다.
“사숙! 도량이 왔습니다! 사숙!”
도량이 명수진인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죽은 듯 누워 있던 명수진인이 힘겹게 눈을 뜨고 도량을 쳐다봤다.
“네가 왜 다시…….”
“사숙을 고칠 의원님을 모셔 왔습니다.”
“헉 헉! 이놈아! 신마성에 가라고 보냈더니 왜 쓸데없는 짓을…… 컥!”
명수진인이 시커멓게 죽어 버린 핏물을 울컥 토해 냈다. 사공진무가 재빨리 명수진인의 곳곳을 짚었다.
‘대라신선이 환생해도 살리긴 글렀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독한 마폐탕을 쓰다니…….’
명수진인의 맥문을 낚아챈 그는 잠시 진맥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마폐탕은 마취 효과가 있는 환약이다. 상처를 치료할 때 쓰이는 그것은 종종 죽기 전의 지독한 통증과 공포를 완화시키고자 할 때도 쓰인다.
지금 명수진인은 후자에 속한다고 봐야 했다.
도량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말을 끊고 잠시만 기다리시오.”
사공진무의 손길이 빠르게 명수진인의 곳곳을 두들기고 지나갔다.
그러자 명수진인이 시커멓게 죽은 선혈을 한 사발이나 게워 냈다. 놀란 도량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순간, 명수진인의 혈색이 건강한 사람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회광반조!’
죽기 직전의 마지막 생명의 불이 피어오른 것이다. 도량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명수진인을 쳐다봤다. 도량은 그 현상이 회광반조임을 몰랐다.
“허허! 덕분에 맑은 정신으로 끝을 볼 수 있게 되었소이다.”
명수진인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는 다가올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사공진무는 내심 떨떠름했다.
“신마성에서 오셨소이까?”
“그렇소.”
“허허! 생전에 그들에게 너무 몹쓸 짓을 많이 했소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전부 부질없는 짓이거늘…….”
명수진인이 도량을 응시했다. 이미 흐려진 눈동자엔 도량을 향한 진한 애정과 슬픔이 어우러져 있었다. 명수진인은 다시 사공진무를 돌아보았다.
“이 아이는 무당의 장래를 이끌어 갈 아이라오. 비록 지금은 혼탁한 탁기로 가득한 무당이오만 이 아이가 반드시 그 혼탁함을 걷어 낼 것이라 믿고 있소이다.”
“아니었다면 우리도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오.”
명수진인의 얼굴이 서서히 생기를 잃어 갔다.
“직접 그에게 용서를 빌고 싶소만, 보다시피 몸이 이지경이라…… 쿨럭!”
명수진인이 다시 피를 게워 내었다.
“사숙님!”
“이 아이를 부탁하오. 염치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화산이라면 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줄 거라 믿소이다.”
도량의 손길을 뿌리치는 명수진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가 힘겹게 도량을 돌아봤다.
“너는 잠시만 나가 있어라. 내 이분과 긴히 할 말이 있구나.”
눈물 범벅이 된 도량이 밖으로 나가자 명수진인이 사공진무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 눈빛을 발했다.
“내가 하는 말을 석수, 그에게 전해 주시오.”
“……알고 있었소?”
“허허!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그의 존재를 깨달았다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리다.”
사공진무는 그의 말이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직감했다. 명수진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빛이 서서히 꺼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이 다 끝났을 때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렀다.
“허헉! 무당을 용서하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명진, 그를 봐서라도 저 아이를 잘 좀 부탁드린다고…….”
그 말을 끝으로 명수진인은 숨이 끊어졌다. 삶에 대한 회한이 짙었을까.
그는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
사공진무가 부릅떠진 명수진인의 눈을 감겨 주며 중얼거렸다.
“다음 생에서는 부디 좋은 친구로 만나기를…….”
“어째 쫌 씁쓸하다.”
“그러게 말이다. 단칼에 목을 베어도 시원찮을 양반이었는데 이렇게 쓸쓸히 죽어 가는 것을 보니 사람의 삶이라는 게 참 허무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
둘은 명수진인을 내려다보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 * *
파파팟!
호신강기에 걸려든 당률의 독공이 불꽃을 튀기며 사방으로 튀었다. 경천지동을 할 대격돌이 점점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독황의 경지에 들어선 당률이라도 셋을 한꺼번에 상대할 순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폭주의 기운이 더해지면서 판단력은 더더욱 흐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당률은 자신의 그러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그였기에 차선을 무시한,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한 살수만을 전개하고 있었다.
방어력의 부재는 곧장 위기로 직결되었다. 당률의 허점을 포착한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당률의 오른팔을 자르고 지나갔다.
서걱!
“크으!”
당률의 입에서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뎅강 잘려 날아간 팔을 보며 괴성을 질러 댔다.
“크아아!”
“이제 그만 지옥으로 갈 때가 되었다!”
조윤의 창이 당률을 꿰뚫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당률의 등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게 결코 끝은 아니었다.
콱!
당률이 돌연 조윤의 창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조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관통한 창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예상하지 못한 반격에 조윤은 순간적으로 판단력의 혼란을 일으켰다. 북궁천소가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창을 놓아라! 어서!”
“함께 지옥으로 가자! 크크크!”
당률의 전신이 급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조윤의 낯빛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지금 당률은 스스로 폭발을 하려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번쩍!
당률의 뒤에서 섬광이 일었다.
당률의 목에 혈선이 일어나더니 이내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뒤에 흑야가 흑발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부풀어 올랐던 당률의 전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넌 내게 목숨을 빚진 거야.”
흑야가 조윤을 보며 웃었다. 조윤은 미간의 땀을 훔치며 숨을 토해 내었다.
“나중에 술 한잔 사마.”
“네 목숨 값이 그 정도밖에 안 되냐?”
“됐다, 망할 놈아.”
북궁천소가 다가왔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는 조윤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골로 갈 뻔한 소감이 어떠냐?”
“닥쳐.”
“크크큭!”
* * *
그저 평범한 야산에 불과했던 백어산, 그러나 지금은 신마성 때문에 천하의 그 어떤 명산보다 더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러한 백어산의 줄기를 타고 바람처럼 넘어가는 이동하는 자들이 있었다.
전신을 핏빛 적포로 감싼 그들은 모두 다섯, 하나같이 칼날 같은 예기를 풀풀 풍겨 내며 수림을 가르고 있었다.
이동 방향은 신마성이 자리하고 있는 백어산의 북쪽이었다. 한참을 달려가더니 선두의 청년이 갑자기 손을 들어 모두를 세웠다.
“소성주, 왜 멈추시는 것이오?”
“저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 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소이다. 늦으면 만나기로 한 빙궁의 고수들과 길이 어긋날 수도 있소이다.”
둘은 바로 용성의 소성주와 그의 사부가 되는 노인이었다.
지금 그들은 용성주의 특명을 받고 북해빙궁의 사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우연하게도 가는 길이 신마성과 가까운 쪽이었는데, 북궁천소 등과 당률이 싸우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노인이 다시 재촉했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소. 하니 어서 가십시다.”
“하루 정도의 여유가 있는데 어찌 그리 서두르십니까. 그리고 나의 이런 기질은 사부가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하니 가서 누가 싸우는지 확인만 하시지요. 혹시 압니까.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중원 곳곳으로 숨어든 본성의 무사들이 적들과 싸우고 있는 것일지도 말입니다.”
“허어, 그러다가 신마성의 놈들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하하! 놈들을 만난다면 더 잘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천하를 뒤흔들고 있는 그들과 관련된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신마를 사칭하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신마의 전설을 이을 자는 오직 천하에 나, 손규뿐이니 말입니다.”
용성의 소성주, 손규는 자신감이 넘쳤다.
얼굴을 복면으로 가려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광으로 번득이는 눈빛으로 보아 과거보다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을 짐작게 했다.
손규의 사부, 운봉은 도무지 말릴 수가 없는 손규를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손규가 그런 운봉을 보며 재촉했다.
“어서 가 보십시다, 사부!”
손규가 성큼 걸음을 놓았다.
다른 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난감한 기색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일단 스스로 결정한 것은 절대 되돌리지 않는 성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운봉이 주의를 주었다.
“싸움이 일어나면 부디 자중해야만 하오. 소성주 혼자만의 몸이 아님을 항상 가슴 깊이 새겨 두어야 하오.”
“알겠으니 어서 갑시다!”
휘이익!
손규와 일행들은 빠른 시간에 백어산을 넘어 신마성이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이를 수 있었다. 손규가 다시 손을 들어 모두를 세웠다.
전방에 흑발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혁련천후를 본 것이다. 혁련천후도 그들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내려섰다.
‘느낌이 좋지 않은 자들이군.’
순간 손규의 두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운봉의 눈빛이 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자는…….’
일전에 관도에서 혁련천후와 기 싸움을 벌였다가 내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던 손규이니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운봉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혁련천후만이 손규 등이 복면을 하고 있어서 알아보지 못할 뿐이었다.
손규의 두 눈이 안광을 번뜩였다.
“잘 걸렸다, 이놈.”
그는 대뜸 싸늘히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운봉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혁련천후는 손규의 두 눈을 직시하며 담담히 물었다.
“나를 아는 놈인가?”
“알다마다.”
챙!
손규가 대뜸 검을 뽑자 다른 자들도 덩달아 검을 뽑았다. 운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을 뽑았다.
혁련천후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엉뚱한 놈을 베게 생겼군.”
자신에게 원한이 있다면 보나 마나 적이다. 그렇다면 싸움을 마다할 이유도, 살려 둘 이유도 없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여겼다. 수련의 성과를 제대로 시험을 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스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