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귀환무사 150화>
“눈깔을 보니 마인이 맞네. 어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설치는 거야!”
“흐흐! 네놈은 누구냐? 혹시 저곳에 사는 놈이냐?”
“어쭈! 말은 제대로 하네.”
철무옥은 결코 여유롭지 못했다.
당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소위 장난이 아니었다. 순간 도움을 요청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자극하고 들었다.
그러나 철무옥은 대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강자를 보면 싸우고자 하는 특유의 기질이 발동한 것이다.
“크크크! 네놈부터 죽여 주마.”
당률의 눈에 또다시 녹색 광망이 어렸다. 광기마저 머금은 그의 녹안은 누가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것이었다.
팟!
당률이 손을 뻗자 허공이 아지랑이가 일어나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철무옥이 호흡을 멈추고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독공이군.’
철무옥은 재빨리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대도를 휘둘렀다. 당률이 날아드는 대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친…….”
꽈앙!
손과 대도가 부딪히며 굉음이 일었다. 철무옥은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강력한 충격에 두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이거 완전 괴물이잖아!’
당률의 손이 연이어 철무옥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철무옥은 간발의 차이로 공세를 피해 내고는 뒤쪽으로 훌쩍 물러섰다. 그는 지금 크게 갈등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독 때문에 호흡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 그렇다면 승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당률이 재차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주변 공간이 소용돌이치며 무지막지한 장력이 철무옥을 압박해 들어왔다.
꽝!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장력을 후려친 철무옥은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가 물러난 만큼 당률이 쫓아 들었다.
철무옥이 내뿜는 도강을 무시하며 달려드는 당률의 기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당률이 돌연 두 손을 교차하며 앞으로 쭉 뻗었다.
시커먼 독연이 피어나며 철무옥의 시야를 순간적으로 가렸다. 동시에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파공성이 울렸다.
‘암기!’
대경한 철무옥이 대도를 빠르게 휘둘러 도막을 형성했다.
따다다다당!
쇳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리며 튕겨 나간 암기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워낙 짧은 거리였기에 완벽하게 막아 내지는 못했다.
어깨에서 따끔한 통증이 솟아났다.
“으윽!”
순식간에 어깨가 마비되며 대도를 쥔 손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당률이 철무옥을 향해 천천히 다가서며 득의의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흐! 내공을 끌어 올리면 독의 침투는 더욱 빨라지지. 내공을 끌어 올리지 않는다면 내 손에 머리가 터져 죽을 것이고.”
당률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놀리는 고양이처럼 굴었다.
이를 악다물고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던 철무옥이 한쪽 다리를 휘청거렸다.
그 짧은 순간에 독이 하반신까지 내려간 것이다. 강대한 내공 탓에 즉사는 모면할 수 있었지만 지체하면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철그럭!
결국 대도를 손에서 떨어뜨린 철무옥이 한쪽 다리를 바닥에 꿇었다. 땅을 짚은 팔이 눈에 띄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왁!”
철무옥이 시커멓게 죽어 버린 피를 게워 냈다.
얼굴은 이미 푸르죽죽하게 변해 가고 있었고 눈동자도 흐릿하게 변했다.
“이제 그만 지옥으로 가 줘야겠다, 애송이.”
당률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그때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던 철무옥이 혼신의 힘을 다해 당률의 다리를 노렸다.
빠각!
“크악!”
생각지도 못했던 기습에 당률의 오른쪽 다리가 박살이 나며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놀랍게도 솟구치는 피마저도 녹색을 띠고 있었다.
당률이 다리를 부여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병신을 만들었으니 조금은 덜 억울하겠군. 우욱!”
철무옥이 다시 피를 게워 냈다.
마지막 남은 내공을 일격에 격발시킨 탓에 독의 흐름이 빨라졌다. 머릿속에서 흑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북궁천소와 왕전의 험악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이들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더니 종래에는 혁련천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젠장! 이제 좀 친해질 만했는데…….’
쿵!
철무옥이 쓰러졌다.
* * *
혁련천후는 수련을 잠시 중단하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조금만 더 수련하면 천살강기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구룡삼세의 위력도 배가될 것이다.’
수련의 성과가 눈에 띠게 나아지고 있었다.
치르륵!
그는 시험 삼아 천살강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려 보았었다. 여전히 제어되지 않는 감정의 폭주가 일어날 조짐이 느껴졌지만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내공의 소모량이 확실히 적었다. 생강시를 소멸시킬 때와 갈무극의 목을 벨 때, 극심한 내공의 소모 탓에 혼절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입가에 씁쓸함이 나타났다.
‘조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당했겠지…….’
혁련강의 말이 아니었더라면 천살강기의 후유증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묵련이라는 조직이 천하와 가문을 노린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강호로 귀환을 할 때, 자신보다 더한 강자는 없을 거라 자신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생각을 바꿔 버린 지가 오래전이다. 일단은 자신의 조부만 해도 자신보다 강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성도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전에는 그들보다 자신이 강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갈무극과의 대결 이후, 생각을 바꾼 것이다.
비록 일 초에 승부가 갈렸지만 갈무극은 대단한 고수였다.
그런 갈무극과 오성의 일인인 적용백이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였으니 간접적으로 비교를 하기에는 충분했다.
“후!”
심호흡을 토해 내고는 신마성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채를 머금었다.
왕전 등이 강을 건너 백어산 쪽으로 맹렬히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라면 저렇듯 전력을 다해 뛰지는 않는다.
철컥!
설무진은 검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산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감히! 내 다리를…… 갈기갈기 찢어 주마!”
당률은 괴물처럼 변해 있었다.
녹광과 혈광으로 뒤섞인 그의 눈동자는 마치 불타오르는 지옥을 연상시켰다.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철무옥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이노옴……!”
그의 오른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천 근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장력이 철무옥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 순간.
뒤쪽에서 강맹한 기운이 일어났다.
화아악!
“멈춰라!”
폭주를 일으켰음에도 당률은 손을 거두며 옆으로 미끄러지듯 물러섰다. 그가 섰던 자리에 강맹한 기운이 떨어짐과 동시에 왕전이 내려섰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철무옥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옆으로 북궁천소와 조윤, 흑야가 차례로 내려섰다.
“뭐야? 전에 죽었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다. 보아하니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린 것 같은데…….”
모두는 당률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썩어 문드러졌어야 할 그가 버젓이 살아 있다니.
그때 왕전이 외쳤다.
“저놈은 너희들이 맡아라. 나는 놈을 데려가야겠다.”
왕전이 철무옥을 들쳐 업었다. 한눈에 봐도 생명이 위급한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장원으로 데려가 사공진무에게 보여 줘야 했다.
왕전이 장내에서 빠져나가자 조윤이 창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놀랍군. 목이 잘려 죽었던 놈이 다시 살아나다니, 불사의 마공이라도 익힌 것인가?”
“크크크. 제 발로 찾아와 주다니.”
당률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폭사되었다.
스르릉!
북궁천소가 굉혈도를 뽑아 들었다.
“오늘에서 다시 한 번 느낀다만 역시 당가의 잡종들은 마음에 안 들어. 내 약속하는데, 네놈을 확실히 죽여 버리고 곧장 사천으로 달려가 개 새끼 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 주지.”
화르륵!
북궁천소의 대도에 불길이 일어났다.
그때 조윤이 외쳤다.
“호흡을 멈추고 싸워야 한다.”
“우리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잘난 척하기는.”
흑야가 느릿하게 당률의 옆으로 접근했다.
사실 당률을 보는 순간 모두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혼자서는 당해 낼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다는 것을.
당률의 시선이 흑야에게 돌아가자 북궁천소가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폭풍처럼 당률을 덮쳐 날아들었다.
“조심해! 무형지독이 사방에 깔렸다!”
“빌어먹을!”
북궁천소가 황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불꽃이 일어났다. 무형지독이 호신강기와 어우리지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쐐액!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당률은 가볍게 굉혈도를 피했다. 한쪽 다리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반응 속도였다.
사실 방심에 의해 철무옥에게 다리를 내주었지만 이미 그는 독황(毒皇)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 수준을 굳이 비교하자면 오성을 능가한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쐐애액!
당률의 손에서 수많은 암기가 북궁천소를 향해 날아갔다.
따다당!
당률이 펼쳐 낸 암기를 쳐 낸 북궁천소가 무작정 정면으로 당률을 덮쳤다. 조윤이 당률의 우측을 돌아 막아서며 당률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좁게 제한했다.
퍼퍽!
굉혈도가 지나간 곳의 모든 것들이 가루로 변해 날아갔다. 허공에 뜬 북궁천소의 주변을 녹색 연기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마라! 천소!”
조윤의 창이 다급하게 당률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창날의 끝에서 솟아난 강기가 쭉 늘어나자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북궁천소를 향해 손을 휘젓는 시늉을 하던 당률이 위기감을 느끼고는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콰지직!
애꿎은 아름드리 거목이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놈의 눈을 봐라! 저 정도면 완벽한 만독의 경지다. 자칫하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
“환장하겠군. 어째 요즘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놈들만 맞닥뜨리는지 모르겠군!”
조윤이 굳은 얼굴로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모두의 낯빛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사실 아무리 당률이 독황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무공만으로 본다면 조윤 등을 당해 낼 수는 없다.
문제는 독이였다.
눈에 보이는 독연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호흡을 파고들지 모르는 무형지독은 한시도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일단 호흡기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가면 끝장이다.
[거리를 두면 곤란해. 근접해서 일격에 놈의 목을 썰어 내야 한다.]
[아니야. 우리는 놈의 신경만 거슬리게 하면 된다. 뒤처리는 흑야, 저놈에게 맡기자.]
[알았다.]
[후후후. 이제야 네놈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군.]
흑야가 사라졌다.
최강의 은신술을 펼친 까닭에 당률도 미처 흑야가 사라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북궁천소가 다시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연이은 파괴적인 공세에도 당률은 요리조리 잘도 피해 냈다. 조윤이 득달같이 당률의 궤적을 좇아 창을 휘둘렀다.
앞과 뒤를 막혀 버린 당률이 양손을 빠르게 좌우로 휘둘렀다. 암기와 독이 동시에 둘을 향해 짓쳐 들었다.
따다다당!
둘은 황급히 대도와 창을 휘둘러 암기를 튕겨 내고는 좌우로 튕기듯 물러섰다. 그때 튕긴 암기 하나가 당률의 가슴팍에 박혀들었다.
“크아악!”
당률이 괴성을 질렀다.
암기가 박힌 곳에서 시퍼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당률의 두 눈에서 혈광이 사라지며 대신 진한 녹광이 넘실거리며 올라왔다.
“독성이 더 짙어지고 있다!”
“놀라기는. 이 정도는 되어야 싸울 맛이 나지.”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하여간에 그놈의 조심성하고는. 쯧쯧쯧.”
둘은 다시 당률을 향해 접근을 시도했다. 그때까지도 흑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왕전은 바람처럼 장원을 향해 달렸다.
등에 업힌 철무옥의 기운이 점점 약해지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왕전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빌어먹을!”
쾅!
바닥을 차고 오른 왕전은 생에 최고의 속도로 달렸다. 그러다가 얼굴이 휴지처럼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진무, 그놈이 없잖아!”
사공진무의 부재를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다.
지금 그는 진천, 도량과 함께 무당파로 떠났지 않은가. 왕전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공진무가 없다면 무옥을 살릴 방도가 없다.
그때였다.
왕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전방에서 혁련천후가 섬전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주공!”
혁련천후가 허공에서 회전을 하며 속도를 늦춘 다음, 왕전의 앞에 내려섰다. 한눈에 철무옥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그는 즉시 왕전을 응시했다.
왕전이 급히 대답했다.
“당률! 그 늙은 놈이 살아났습니다. 이놈도 그 늙은이에게 당했습니다.”
“…….”
“믿기지 않지만 분명 당률, 그 늙은이였습니다.”
혁련천후로서는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손으로 목을 잘라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되살아났다니.
미간을 좁힌 혁련천후는 다시 철무옥을 살펴보았다.
시커멓게 죽어 가는 그를 보자 자연스럽게 사공진무의 부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닥에 눕혀라.”
“어쩌시려고…….”
“서둘러라.”
“예.”
왕전이 황급히 철무옥을 바닥으로 내려놓자 혁련천후가 손으로 철무옥의 육신 곳곳을 빠르게 두들겼다. 철무옥이 시커멓게 죽은피를 울컥 게워 냈다.
그러나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짚으신 혈도는…….”
“사혈이다. 하지만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벌어 줄 뿐이다. 그동안 무당으로 사람을 보내서 진무를 불러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왕전은 다시 철무옥을 들쳐 업고는 바람처럼 장원을 향해 내달렸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혁련천후가 서서히 뒤를 향해 돌아섰다.
“다시 살아났다면 또다시 죽여 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