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46화 (144/425)

# 146

<귀환무사 146화>

“저, 저도 말입니까?”

진유의 눈은 좀처럼 작아지지 않았다.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혁련천후가 혁련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질이 있어 보이십니까?”

“넘칠 정도구나, 허허!”

혁련천후가 다시 진유를 돌아봤다.

“이분이 너를 가르치실 것이다. 하니 돌아가서 사문의 일은 장로들에게 위임하고 너는 당장에 짐을 싸 들고 이곳으로 돌아오너라.”

“……예?”

진유의 표정이 휘둥그레졌다.

혁련강이 자신을 가르친다니. 그가 혁련천후의 조부라서 크게 놀라기는 했지만 아직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상태다.

조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주께선 장문인께서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

화산의 제자들도 덩달아 혁련강을 응시했다.

사실 그들도 아직까지 혁련강이 천하 최강자인 일존 견오로 활동했음을 모르고 있었다. 조윤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분이 바로 천하제일인이신 일존이십니다.”

제8장 안 될 놈은 안 된다

정도맹의 드넓은 연무장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용성과 북해빙궁의 침공. 거기에 사련의 준동으로 급격히 얼어붙었던 정국이 다소 활기를 찾기 시작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꽤나 밝았다.

그들 모두는 연무장에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대략 백여 명 정도로 보이는 군웅들 중엔 남해검문의 무사들과 오대세가의 무사들도 제법 섞여 있었다.

그들은 지금 지난날 적들에게 당한 복수를 하고자 무턱대고 세력을 모아 정도맹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무런 상의 없이 벌어진 일이어서 정도맹의 수뇌부들은 지금 그들의 문제를 두고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멀리서 온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거야!”

한동안 맹에서 나서는 이가 없자 군웅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때 연무장의 연단으로 한 인물이 모습을 나타냈다.

청색 장포를 걸치고 손에 섭선을 쥔 초로의 노인이었는데 청성파의 장문인 소진자였다.

그의 뒤쪽에 관승의 모습도 보였고 하나같이 출중한 기운을 뽐내는 장한들, 넷이 뒤를 따라 모습을 나타냈다.

“반갑소이다!”

소진자가 섭선을 흔들며 가볍게 소리쳤다.

군웅들 중, 앞쪽에 있던 장한이 앞으로 나서며 대뜸 큰 소리로 물었다.

“장문인! 언제 출발합니까? 너무 오래 기다려서 다리에 좀이 날 지경이오!”

“그렇소! 얼른 출발합시다!”

다른 자들도 합세하여 소리쳤다.

소진자가 헛기침을 하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인솔자가 정해지는 대로 곧 출발할 것이오.”

“아니! 아직까지 인솔자도 정하지 않았단 말씀이오!”

“진짜 이거 너무하네!”

소진자의 말에 군웅들이 불만으로 술렁거렸다.

지켜보고 섰던 관승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네 명의 장한들도 불쾌한 표정으로 군웅들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정파의 기둥이라는 사천왕의 후예들이었다.

따로 소천왕이라 불린다.

소진자가 군웅들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전쟁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알 수가 없는 이 시점에서 어찌 저리도 가볍게 행동하는 것인지…….”

“어쩌겠소. 맹이 저들에 대한 통제권을 지니지 못했으니 말릴 방도가 없지 않소. 그래도 돕겠다고 천리를 마다 않고 와 주었으니 그저 고마워해야지요.”

“허어,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 무턱대고 칼을 뽑은 자들이오. 호법께서는 너무 관대하게 저들을 봐주시는 것 같소이다. 솔직히 이 몸은 저들이 되레 적의 사기만 높여 주는 것은 아닐지 그게 더 걱정이외다.”

대화를 주고받는 관승과 소진자는 심기가 꽤나 불편해 보였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적용세가 모습을 나타냈다. 모든 이들이 허리를 굽혀 그에게 예를 취했다.

소란스럽던 군웅들도 적용세의 등장에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군웅들을 느릿하게 살핀 적용세가 나지막한 어조로 내공을 실어 말했다.

“맹의 결정이 정해졌소이다.”

“어느 분입니까? 수석 장로님!”

예의 그 장한이 물었다.

“맹의 수뇌부는 이번 일에서 빠질 것이오. 해서 인솔자는 여러분들 중 한 분이 맡으셔야 하겠소이다.”

또다시 곳곳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여전히 가장 앞쪽에 섰던 장한이 다시 물었다.

“맹에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거란 말씀입니까? 이거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단 말이오!”

웅성웅성!

불만이 터져 나오자 적용세가 다시 외쳤다.

“아시다시피, 도처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적들이 언제 준동할지 아무도 알 수 없소이다. 사전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대처해야만 하기에 인원을 차출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오.”

할 말을 전한 적용세가 즉시 돌아섰다.

그러고는 소진자와 관승을 향해 말했다.

“곧 수뇌부 회의가 있으니 그만 들어가세.”

“이대로 말입니까? 괜히 나중에 말이 나오지는 않겠습니까.”

“말은 무슨 말. 요즘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대의를 잊고 사사로운 복수를 목적으로 무턱대고 전장으로 가겠다는 자들이 아닌가. 신경 쓸 필요조차 없네.”

적용세는 단호했다.

사실 그는 저 앞에 모여 있는 군웅들의 의도를 복수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저들은 지금 복수를 빙자하여 세가와 문파의 명성을 높일 심산으로 움직인 걸세.”

“…….”

소진자와 관승의 낯빛이 슬쩍 일그러졌다.

사실 그들도 그러한 생각을 진즉부터 하고 있었다. 다만 워낙에 민감한 사안이어서 겉으로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관승이 한마디 거들었다.

“신마성이 부러웠겠지요.”

“내 생각도 그렇소. 부러움 때문에 저러고도 남을 자들이지.”

용성, 사련과의 연이은 전쟁에서 신마성과 화산은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그 바람에 화산파는 장문인 태허가 고문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까지 맛보았다.

원래 무림인들의 속성은 전쟁을 통해 영웅이 되고 명성을 얻는 것을 꿈꾼다. 연무장에 모여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명분은 용성과의 전투에서 죽어 간 동료들에 대한 복수이지만 속내는 신마성과 화산파처럼 공을 세워 천하에 그 명성을 떨치고자 함이었다.

“썩었네, 썩었어!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도록 제대로 썩었어. 쯧쯧쯧!”

혀를 찬 적용세가 횅하니 몸을 돌려 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천왕들과 소진자도 그 뒤를 쫓았다. 관승이 군웅들을 보며 두 주먹을 잡아 보였다.

“무운을 빌겠소!”

그마저도 몸을 돌려 본관으로 돌아가자 군웅들은 더 큰 목소리로 정도맹의 비협조를 성토했다.

“본 세가의 무사들이 누굴 위해 죽었는데, 정도맹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옳소! 적들을 두고도 보신에만 혈안이 된 정도맹이 과연 천하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소이다!”

“우리만이라도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해 줍시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소! 당장 출발합시다!”

곳곳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정도맹의 뜻과는 달리 꽤 많은 군웅들의 표정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목소리도 혼란에 묻히고 말았다.

장한 하나가 나서서 외쳤다.

“정도맹에서 이토록 박하게 나오니 어쩌겠소. 우리끼리라도 나서야지 않겠소.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책임자는 각 문파에서 한 분씩 뽑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옳소! 그렇게 합시다!”

곧 책임자가 정해졌다.

각각의 문파에서 뽑힌 사람이 자신이 속한 문파를 이끌기로 하였다.

잠시 후, 군웅들은 정도맹을 비난하며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 * *

정도맹주 나백이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군웅들을 내려다보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비영전주 육승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저들의 진정한 속내를 맹이 다르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온 자들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적들과 싸우겠다는 일념으로 온 사람들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 노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죽은 동료의 복수를 하고자 함은 칼을 차고 살아가는 강호인들의 공통된 점이 아닌가. 하물며 저들은 상당수의 동료를 용성과의 전투에서 잃은 문파들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지원 병력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렇다고 해서 한 번 내려진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지. 하물며 언제 적들이 다시 준동할지 모르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라네.”

“자칫 저들이 화를 당하기라도 하면 그 위에 몰아칠 후폭풍이 두렵습니다.”

육승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백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것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맹의 뜻을 어긴 것은 저들이네.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정도가 바로 서는 법, 사소한 정에 이끌려 강호 전체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럴 때일수록 지휘 체계는 철저히 지켜져야 하네.”

육승이 여전히 어두운 기색으로 창문을 응시했다.

군웅들의 이동 방향은 남쪽이었다. 용성의 본거지로 전락한 남지부를 향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곳에 과연 어느 정도의 용성 무리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첩보에 의하면 대부분의 고수들이 중원으로 산개하여 숨어들었다고 했다.

운이 없어 도중에 북상을 하던 용성의 무리들과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모조리 몰살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백이 머리를 흔들며 몸을 돌려 탁자로 걸어가 앉았다.

“어찌 이리도 화합이 되질 않는단 말인가. 수백 년을 두고 이어진 이 병폐가 고쳐지지 않는 한 강호는 항상 외세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네.”

“항상 이런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이런 점에서는 마도나 사파의 무리들이 더 결속력이 좋더군요.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세나.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 속이 풀릴 것 같네.”

둘이 거처를 나섰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왔다. 창을 가린 천이 바람에 흔들리며 펄럭였다. 둘의 심란한 마음만큼이나 바람은 거셌다.

* * *

신마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 세워진 전각.

그곳에 영호수란의 거처가 있다. 지금 그녀는 커다란 동경 앞에서 얼굴을 비추며 입술을 샐쭉거리고 있었다.

“후! 아무리 봐도 이처럼 예쁜데 왜…….”

그녀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처럼 예쁜 자신을 마치 길가에 버려진 돌처럼 보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흠! 내가 포기할 것 같아? 절대 그렇겐 못하지! 흥! 흥!”

동경을 보며 온갖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횅하니 밖으로 나갔다. 번듯하게 자신만의 거처를 받아 낸 그녀는 문을 잠그고는 연무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병기 부딪히는 소리와 기합성이 들려왔다.

“응?”

연무장으로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던 영호수란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연무장의 왼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이 보였다. 일순 영호수란의 고운 아미가 하늘로 올라갔다.

“저 여우가 여긴 왜왔지?”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은 남궁소미였다.

여전히 지난날의 감정이 가시지 않은 영호수란은 잠시 남궁소미를 노려보더니 이내 그녀가 앉은 곳으로 걸음을 놓았다.

연무장을 응시하던 남궁소미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영호수란을 쳐다봤다.

영호수란의 미모에 새삼 가볍게 놀란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여기서 또 뵙는군요.”

“그러게요. 여긴 어쩐 일로…….”

영호수란이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남궁소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일전에 투왕께 도움을 받은 것이 있어 감사를 표하려고 들렀어요. 한데 저렇게 수련 중이시니…….”

“전투 중에 서로 돕는 것을 가지고 은혜랄 것까지야 있겠어요? 다 그런 거죠.”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불여우 같은 계집애야.]

영호수란은 속으로 남궁소미를 힐난했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는 것이 진짜 반갑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남궁소미가 물었다.

“백선녀께서는 여기 있는 분들과 무척 친하신가 봐요?”

“친하다 뿐이겠어요? 우린 가족처럼 지내는걸요.”

“아! 그렇군요.”

남궁소미의 얼굴엔 일순 부러움의 빛이 떠올랐다. 그 모습에 영호수란은 괜히 말해 놓고 심란해졌다.

‘쳇! 가족은 무슨…… 쳐다보지도 않는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혁련천후의 얼굴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 냈다.

남궁소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분은 평상시에도 그렇게 말이 없으신가요?”

“그분이라뇨?”

“이곳의 성주님 말이에요.”

남궁소미가 슬쩍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놓칠 영호수란이 아니다. 대번에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다.

“그분은 임자 있는 몸이에요.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울…… 아니 그건 왜 물으세요?”

“아,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워낙 유명한 분이잖아요.”

남궁소미가 다소 당황스러운 듯,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연무장에서 들려오던 기합 소리가 멈췄다.

여름이 지나가는 팔월의 끝자락이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첨벙!

무사들이 일제히 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달려가면서 옷을 벗어 던지는 자들도 있었다.

남궁소미와 영호수란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오왕이 다가왔다.

“안녕!”

영호수란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 평소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짓자 왕전이 멀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쟤 왜 저러냐?”

“글쎄다.”

북궁천소가 남궁소미를 보더니 씩 웃는다.

“제법 용감했던 처자가 오셨군.”

사련과의 싸움에서 남궁소미는 그 누구보다 용감했다. 그녀가 지닌 재주로 인해 꽤나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이 청년 고수들이었다.

그것을 목격했던 북궁천소는 남궁소미를 꽤나 반겨 주는 눈치였다.

남궁소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머리를 조아렸다.

명문세가의 고급스러움이 그녀에게서 풀풀 풍겨났다. 일반적인 격식에 무척이나 둔감한 그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남궁소미의 감사에 화답했다.

“되게 덥네.”

“오늘따라 좀 덥긴 하다.”

“확실히 그렇지?”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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