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45화 (143/425)

# 145

<귀환무사 145화>

담대소천이 왕전을 슬쩍 쳐다봤다. 흑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북궁천소는 여전히 송효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왕전이 다소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지금 신마성은 천하의 중심에 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느냐?”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쯤은 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다. 내 말은 언제 누가 칼을 들고 이곳으로 올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란 말이다. 그만큼 이곳이 위험하다는 뜻이지. 그래도 이곳에 몸을 담고 싶으냐?”

“겁나지 않습니다!”

겁을 먹은 표정으로 눈치만 살피던 송효가 난데없이 씩씩하게 외치고 나섰다. 송영마저도 깜짝 놀랐다.

왕전이 다시 물었다.

“그냥 송가장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지 않느냐? 한데 어째서 이처럼 험악한 곳에 들어오려는 것이냐.”

“……강해지고 싶습니다.”

“강해져서 나쁜 놈들 혼내 주려고?”

“저희 가문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없애고 싶습니다.”

송효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약한 몸으로 큰 소리로 연이어 대답을 하는 것조차 버거운 모양이었다.

모두는 다시 웃었다.

이럴 땐, 악을 응징하는 대협이 되고 싶다, 아니면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협객이 되겠다는 식의 대답이 보통이다.

꿈치고는 아주 소박한 꿈이다.

지금껏 말없이 가만히 있던 조윤이 몸을 일으켰다.

“들어가자.”

“……예?”

“들어가자고.”

“그럼…… 저희를 받아 주시는 겁니까?”

송영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눈동자가 조윤을 똑바로 쳐다봤다. 조윤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주공께 여쭤는 봐야지 않겠느냐. 허나 걱정 말거라. 거절을 하실 분이 아니시니까.”

송영의 두 눈이 점점 더 커지더니 기어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북궁천소가 몸을 일으키며 청진을 향해 히죽 웃었다.

“그러다가 입 찢어지겠다, 자식아.”

청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청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흑야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이제 졸따구 신세를 면하겠군.”

“으흐흐.”

청진이 활짝 웃었다.

* * *

“으아악!”

신마성의 모처에서 비명이 터졌다.

“에이! 엄살은…….”

“너 이 새끼. 일부러 아프게 하는 거 아니냐!”

관산악이 복부를 움켜쥐고서 바닥을 뒹굴었다.

그 옆에 사공진무와 모용미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둘 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관산악을 쳐다보았다.

“거, 좀 앉아서 운기를 하세요. 그러다가 약효 다 날아갑니다.”

“운기는 개뿔! 으악!”

“그만 좀 하시죠. 남자가 고작 그걸 가지고 이 난리를 치다니.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보다 못한 모용미가 혀를 차자 비로소 관산악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기조식에 들어가기 전에 사공진무를 향해 한마디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운기하고 난 뒤에도 효과가 없으면 넌 내 손에 뒈진다.”

“흘흘! 괜히 힘이 넘쳐 나서 사고나 치지 마세요. 그럼 저 갑니다.”

사공진무가 모용미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거처를 나갔다. 인사를 한 모용미가 다시 관산악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관산악은 이미 무아지경에 몰입한 상태였다.

‘놀라워, 그 짧은 시간에 벌써 무아지경에 들다니…….’

그녀는 관산악을 지그시 응시했다. 짧은 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가슴속에서부터 생겨나는 묘한 감정이 지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사랑인가…….

“풋!”

조금 전 바닥을 뒹굴던 모습에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모용단승이 안으로 들어왔다.

계속되는 수련으로 시커멓게 그을린 모용단승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과거와는 다른 따뜻함도 공존했다.

“비명을 듣고 왔는데 괜찮으시네?”

“운기 중이셔. 한데 어쩐 일이야?”

“그냥…….”

“앉아. 차라도 내어 줘?”

“생각 없어.”

모용단승이 의자를 끌어다 털썩 주저앉더니 턱으로 관산악을 가리키며 물었다.

“좋아?”

“……뭐가?”

“저 양반이 좋으냐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둘이 사귀는 것 같다고 말이야.”

순간 모용미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졌다.

그녀가 아무 말을 못하자 모용단승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모용미가 당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냥 소문일 뿐이야.”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 난 찬성이니까…….”

“…….”

“잘해 봐.”

쿵!

모용단승이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닫고 나갔다. 얼굴이 붉어진 모용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네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돌아가야겠어요.]

[그래야겠군.]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저 둘이 사랑에 빠지다니…… 솔직히 어울리지는 않는데.]

[산악은 좋은 놈이다.]

[그럼요. 어쨌든 축하를 해 줄 일이 생겼네요. 그나저나 다른 분들도 하루빨리 짝을 찾아야 할 텐데.]

어둠 속에서 두 인영이 몸을 돌렸다.

혁련천후와 독고혜였다.

관산악의 상태를 살피러 왔다가 모용남매의 대화를 듣고는 도로 발길을 돌렸다.

걸어가면서 혁련천후는 북궁천소와 왕전, 그리고 흑야를 떠올렸다. 저절로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 셋이 문제였다.

여자 보기를 돌처럼 하는 그들이다. 천하미녀를 품에 안겨 준다고 해도 술 한 병과 바꿀 작자들이 그들이다.

그는 자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독고혜를 돌아봤다.

“말없고 차가운 데다 사납고 무뚝뚝한 놈들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까.”

“그럼요. 당신도 그런 부류에 가까운 사람인데…….”

혁련천후가 슬쩍 쳐다보자 독고혜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말 많고 시끄러운 남자들을 싫어하는 여자들도 무척 많아요. 가령, 가장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진천 님과 흑야 님을 놓고 보면 두 분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반반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결국 진천이 말 많고 시끄럽단 말이었다. 솔직히 그건 사실이었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성격이 문제겠어요? 후훗!”

“의외군. 당신이 그런 말을 다 하다니.”

“자격이 돼요. 당신은…….”

“후후후.”

둘은 건물을 돌아 연무장이 들어선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늦은 시각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오왕과 사공진무, 진천도 있었는데, 그들은 수련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헉헉헉!”

화산의 제자들과 신마각의 무사들은 연신 거친 숨을 토해내며 헐떡거렸다. 그들을 담당한 북궁천소의 수련 방식이 워낙에 혹독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도를 주병으로 사용하는 신마각의 대원들은 그의 집중 지도를 받아야 했는데, 수련 중에 토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독고혜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다들 힘이 넘쳐 보여서 좋군요.”

“무사에겐 수련만큼 행복한 것도 없지. 특히 강자들의 지도하에서라면 더더욱 그렇고.”

“대단해요, 정말.”

“뭐가?”

“당신 말이에요. 저런 분들의 충성을 받고 있는 당신이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겠군요. 게다가 천하 최강의 조부님까지 두었으니…….”

혁련천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나가 빠졌군.”

“뭐가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이 내 여자라는 것도 행복한 이유 중 하나겠지.”

“확실히 변했어요. 그런 느끼한 말도 서슴없이 다 하고.”

독고혜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으니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그때 조윤이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성주님을 뵙습니다!”

신마각의 무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우렁차게 인사했다. 손을 들어 화답한 혁련천후가 조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적당히 쉬어 가면서 하지.”

“하하! 놈들이 쉬기를 거부합니다.”

찌릿!

조윤의 뒤통수에 모든 이들의 매서운 눈길이 쏠렸다. 조윤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혁련천후는 무사들의 표정을 보고서 알았다.

독고혜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화산의 제자들이 애원이 담긴 눈빛을 혁련천후에게 주었다.

“저 아이들은 내일부터 내게 넘겨라.”

“직접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생각이다.”

혁련천후의 말에 어째 기뻐하는 화산의 제자들은 별로 보이지가 않았다. 누구보다 혹독한 방식으로 수련을 시키는 이가 혁련천후이기 때문이다.

조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가 이채를 발했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두 청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윤이 웃으며 말했다.

“산동의 송가장에서 온 아이들입니다.”

정도맹에서의 일을 떠올린 혁련천후는 잠시 그들을 잊고 있었음을 자책했다.

그가 송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일부러 남장을 시켰나?”

“그게 더 편하답니다.”

“문도로 받아 준 것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다만 화산으로 할지 신마성으로 할지는 아직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혁련천후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알아서 결정해.”

“알겠습니다.”

혁련천후와 독고혜가 돌아갔다. 그러자 수련이 멈추기를 바랐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그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 조윤이 허리에 손을 얹고 물었다.

“그만할까?”

“아닙니다!”

“흠! 좋다. 그런 열정이 있어야만 더 강해질 수 있는 법이다! 지금부터 딱 한 시진만 더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모두의 얼굴이 소태를 씹은 것처럼 구겨지며 연무장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수련은 약속을 어기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 * *

다음 날, 화산에서 장문인 태허와 진유가 신마성을 찾았다.

정도맹의 고문으로 위촉된 태허가 맹으로 입성하기 전에 혁련천후에게 인사차 들른 것이다.

둘은 혁련천후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객청에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혁련강이 모습을 보이자 의아심을 보였다.

둘을 대접하고 있던 조윤이 공손한 태도로 그를 맞이하자 둘도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혁련강이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 화산파의 장문인을 이렇듯 뵙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이오.”

태허와 진유가 조윤을 응시했다.

조윤이 웃으며 혁련강을 소개했다.

“본 성의 노주이십니다.”

“노주시라면……?”

“허허! 천후의 할아비가 된다오.”

그 말에 태허와 진유는 황급히 의자를 밀치고 바닥에 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 줄기 잠력 때문에 도로 허리를 펴야 했다.

“화산의 장문인이 쉽게 허리를 굽혀서야 되겠소. 이 늙은이야 화산과는 연관이 없는 몸이니 예는 갖추지 않아도 된다오.”

“그래도…….”

태허가 난감한 표정으로 혁련강을 쳐다봤다.

혁련천후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하늘처럼 높고 대해처럼 넓었다. 그런 그의 조부라면 사문의 배분과는 상관없이 태사조로 여겨도 모자랄 판이다.

“이 아이가 매화무적이라는 그 아인가 보군.”

“진유가 태사조님을 뵙습니다!”

“태사조? 허허허.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불려도 되겠군.”

진유가 기어코 절을 했다. 혁련강도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았다.

“과연 뛰어난 무재(武才)로고, 너로 인해 화산의 미래가 참으로 밝음을 알겠구나. 장문께선 참으로 좋으시겠소. 뛰어난 인재들이 승천을 준비하며 몸을 갈고 있으니 문파의 수장으로 그보다 더한 복이 어디 또 있겠소.”

“모든 게 다 사숙의 덕분입니다.”

“허허! 놈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겠소. 그나저나 아직 오질 않은 것인가?”

“소식을 보냈습니다.”

조윤이 대답했다. 혁련강이 자리에 앉자, 그제야 태허와 진유가 밀친 의자를 끌어 와 앉았다.

주방을 담당하던 중년 여인이 찻잔을 내어 올 즈음, 혁련천후가 화산의 제자들과 함께 들어섰다.

“장문 사형!”

“대사형!”

다섯이 시커멓게 탄 얼굴로 활짝 웃자 치아가 유독 하얗게 빛났다. 태허와 진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둘은 혁련천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간 강녕하시었습니까.”

장문인 태허가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혁련천후도 가벼운 미소로 받았다.

“맹으로 가시는 길이오?”

“예. 가는 길에 문안이라도 여쭙고자 들렀습니다.”

“축하드리오.”

“이 모든 것이 다 사숙의 덕분인데,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식구끼리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오.”

태허가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자 혁련천후는 웃음으로 화답하고는 진유를 돌아봤다.

“같이 맹으로 가는 길인가?”

“아, 아닙니다. 저는 사숙조님만 뵙고 사문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제자들의 수련은?”

“태청검법을 지나 매화검보에 들어섰습니다. 몇몇은 곧 자하검법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진유의 말에 진호를 비롯한 다섯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자하검법에 입문할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누굽니까?”

진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자하검법은 장로급들이 되어서야 익힐 수 있는 화산의 극상승 무예였다.

진호조차도 아직 그것까지는 발을 디디지 못한 상태다.

물론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공을 배우고 있지만 말이다.

“너희들이야 그것보다 더한 것을 익히고 있지 않느냐? 사문의 모든 제자들은 너희들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하더라.”

“……그렇습니까?”

진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장문인 태허를 슬쩍 쳐다봤다.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태허는 그런 진호와 제자들을 보며 흡족함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혁련천후가 말하고 나섰다.

“시간이 되면 제자들의 수련에 참여를 할 생각이다. 그전에 각자의 능력에 맞게 적절히 나뉘어서 수련을 시키도록 해.”

“저, 정말이십니까?”

진유가 크게 놀랐다.

“교관은 산악과 왕전이 한다. 대부분이 검을 사용하니 비록 도를 사용하지만 섬세한 초식을 운용하는 그 둘이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따로 맡으실 분이 계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