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43화 (141/425)

# 143

<귀환무사 143화>

혁련강의 두 눈에 서서히 찬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산사람을 강시로 만들다니, 그러고도 어찌 하늘을 보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네놈은…… 누구냐?”

애써 거칠게 물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스르릉!

“신마성의 청소부라고 해 두지.”

스르릉!

혁련강의 손에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검이 쥐어졌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폭풍 같은 기운이 뿜어지며 주변 공간을 흔들었다.

인자했던 그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 혁련천후와 닮아 있었다.

“그대 같은 종자들을 처리할 때는 살인마가 되는 것도 마다않는 사람이지.”

스슥!

한 줄기 바람이 일자 혁련강이 사라졌다.

때를 같이하여 혁련천후가 사련의 고수들이 운집한 곳으로 그림자처럼 미끄러져 들어갔다.

퍼퍼퍽!

“크아아악!”

“으아악!”

진정한 지옥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 * *

적용백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왕을 비롯한 마교의 절대 고수들도 두 눈을 부릅뜨고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혁련강의 검이 베고 지나가자 그토록 강력했던 생강시가 너무나도 쉽게 사지를 잃어버리며 핏물 속으로 떨어졌다.

“환장하겠군. 저게 진짜 인간의 무공이란 말인가!”

“환술인가?”

“어쩌면…….”

하나같이 당대의 최강을 논하던 존재들이 그를 보며 넋을 놓았다. 청년 고수들의 눈에는 혁련강의 움직임이 그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혁련천후의 검도 그에 못지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깨끗하게 잘라 내는 혁련강에 비해 혁련천후는 산산이 부숴 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일까.

모두의 눈에는 혁련천후가 더 파괴적으로 보였다.

“으…….”

갈무극이 전신을 부들부들 떨더니 기어코 하늘을 올려다보며 괴성에 가까운 절규를 토해 내었다.

“크아아!”

부정하려 했지만 자신의 꿈과 야망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최후의 보루였던 생강시가 짚단처럼 쓰러지자 그는 더 이상 천하를 꿈꿨던 사련의 주인이 아니었다.

스슥!

“너 따위가 꿈꿀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한 곳이 아니다. 중원은…….”

혁련천후가 갈무극의 앞에 섰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혁련천후를 노려보던 갈무극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망쳐버린 원흉이 눈앞에 서 있었다.

두 눈이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혈광으로 가득 채워졌다.

“함께 지옥으로 가자꾸나. 이노옴…….”

쾅!

갈무극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분노에 이성을 잃어버린 그는 육탄으로 혁련천후를 덮쳤다.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갈무극 정도의 고수가 목숨을 내던지며 펼치는 수법은 혁련천후라도 감히 경시할 수 없다.

혁련천후의 검이 검강을 둘렀다.

그는 한 수에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미완성의 무공, 구룡삼세의 일초식을 검에 실어 돌진해 들어오는 갈무극을 향해 뻗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번쩍!

그의 검에서 시력을 앗아 갈 듯 거대한 광채가 솟아 나며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뭐야?”

“엇!”

지켜보던 신마성의 고수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태양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원형의 빛이 혁련천후와 갈무극을 감싼 채 휘몰아치고 있었다.

놀라우면서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모든 이들이 침을 삼키며 그곳을 직시했다.

어느 순간, 광포하게 날뛰던 생강시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혁련강에 의해 대부분이 제거된 생강시는 고작 세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사련의 다른 고수들이 모조리 죽어 버리자 그들 역시 움직임을 멈춰 버린 것이었다.

혁련강이 검을 거두고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혁련천후를 감싼 빛 무리는 사라지지 않고 요동치고 있었다.

혁련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허허허. 나를 넘어섰구나.”

그때였다.

털썩!

광채 속에서 갈무극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거목이 쓰러지듯 꼬꾸라졌다. 뒤이어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며 떨어져 나갔다.

빛 무리가 사라지며 오연하게 서 있는 혁련천후를 볼 수 있었다.

갈무극의 주검을 내려다보는 그의 낯빛이 조금은 창백해 보였지만 두 눈만큼은 여전히 차갑고 무심했다.

누군가 함성을 질렀다.

“우와!”

“이겼다!”

그러자 청년 고수들이 저마다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정파의 고수들이 안도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북궁천소가 히죽 웃었다.

“흐흐! 더 강해지셨군. 이거 이렇게 되면 영원히 넘을 수 없다는 건데. 쩝.”

“그런 걸 보고 개꿈이라고 하는 거다.”

“그럼 네놈도 개꿈을 꿨겠지.”

“내 말이…… 젠장.”

북궁천소와 왕전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사공진무가 재빨리 혁련천후에게도 달려갔다. 다소 창백해진 얼굴에 입가로 가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주공! 어서 이것을 복용하십시오.”

사공진무가 품속에서 환약을 꺼내 내밀었다.

“됐다.”

환약을 거부한 혁련천후는 사련의 본단을 향해 돌아섰다.

새카맣게 몰려들던 사련의 무사들은 이미 갈무극의 죽음을 목도하고는 더 이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용백과 살아남은 몇몇이 살기를 드리우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만!”

혁련천후가 그들을 세웠다.

적용백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젓는 혁련천후를 보며 적용백이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참에 뿌리를 뽑아야 하지 않겠소!”

담대소천이 대신 나섰다.

“그들은 고작 이류에 불과한 일반 무사들, 살려 둬도 그다지 해가 될 자들이 아니니 그만하시지요.”

혁련강이 다가오며 거들었다.

“저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우리나 저들이나 다를 게 뭐 있겠소. 허허허.”

적용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죽어 간 정도맹의 중진들을 살펴보며 고개를 숙였다. 가냘픈 인영이 적용백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적용유리였다.

“그만 가요, 할아버지.”

그녀는 적용백의 팔을 두 팔로 감싸 안고서 그를 이끌었다.

사련의 무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떤 자들은 혁련천후를 보며 살려 준 것에 감사하며 절을 하기도 했다.

혁련강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냐.”

“대수로울 정도는 아닙니다.”

담담히 대답을 한 혁련천후가 진천을 돌아보았다.

“산악을 업어라. 성으로 돌아간다.”

진천이 의식을 잃은 산악을 업으려고 뒤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누군가가 먼저 관산악을 업었다. 백리추였다.

“저희들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성까지 모시고 싶습니다.”

백리추의 눈동자엔 말로 표현 못할 열망이 서려 있었다. 혁련천후는 잠시 그 눈을 응시했다.

북궁천소가 그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조심해서 업어라. 깨어나면 너를 물지도 모른다.”

적용백이 다가왔다. 그는 혁련천후를 똑바로 쳐다보며 포권을 취했다.

“덕분에 젊은 아이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소. 이 은혜는 죽는 그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오.”

혁련천후는 그저 담담히 웃었다.

혁련강이 대신 답을 하고 나섰다.

“동도의 도리를 어찌 은혜라고 할 수 있겠소. 괘념치마시오.”

적용백이 그를 보며 눈빛을 발했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눈동자 안에 숨어 있었다.

“대협의 존성대명이라도 알려 주시지요.”

“허허! 그저 이름 없는 촌부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혁련강이 그렇게 나오니 적용백도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죽은 자들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워낙에 많으니 땅을 파고 그곳에 묻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곳곳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그중에 도량도 있었다. 죽은 장로의 시신을 묻어 주며 그는 오열하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도량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잠시 도량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물었다.

“네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서럽게 울던 도량이 눈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도량입니다.”

“명진을 혹시 아느냐.”

도량의 표정이 변했다. 혁련천후는 그 변화만으로도 자신의 예상이 맞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눈앞의 도량이 명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도량이 대답했다.

“속가에선 제 형이었고 사문에선 제 사숙이셨습니다.”

‘……!’

혁력천후의 눈빛이 한차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평소의 무심함을 되찾았다. 그는 도량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장례가 끝나면 신마성으로 오너라. 네게 전해 줄 것이 있다.”

“예…….”

혁련천후가 돌아섰다.

도량이 눈물을 훔치며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휘이잉!

후각을 자극하는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번져갈 때, 혁련천후를 비롯한 신마성의 고수들이 전장을 떠났다.

한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남궁소미가 돌연 눈빛을 발하더니 적용백에게 황급히 뛰어갔다.

“어르신! 소녀는 신마성에 잠시 들를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럼!”

적용백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신마성의 고수들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남궁소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적용유리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커다란 눈에 어린 빛은 갈등이었다.

휘이잉!

바람이 거세지며 적용유리의 머릿결을 휩쓸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섰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서 적용백의 뒤를 따랐다.

제7장 다가올 대적을 준비하다

사련의 멸망이 전해지자 천하가 환호했다.

이번에도 신마성의 이름이 천하를 진동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한때 남부 무림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던 용성의 움직임이 더는 전해지지 않았다. 수많은 동문들의 죽음이 전해지자 강호를 떠나 초야에 묻혔던 전대의 고수들이 다시 사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도맹이 그 어떤 곳보다 분주했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혈겁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그들은 천하 곳곳으로 공문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런 와중에 사천왕의 두 명이 정도맹을 돕겠다며 나섰다. 무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정도맹은 신마성과의 교류를 다지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다가올 겁난을 헤쳐 나가지 못할 거라는 의식이 팽배해지자 수뇌부는 화산파의 장문인 태허를 맹의 고문으로 임명했다.

역대 정도맹의 고문은 대대로 소림과 무당이 도맡아 왔던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맹주의 유고 시 고문이 맹주 대행을 할 정도로 막강한 자리가 그것인데 화산이 그 위에 오른 것이다.

화산파로서는 그야말로 경사라 할 수 있었다.

제자들은 기뻐서 춤을 추었고, 중진을 비롯한 장로들은 목 놓아 며칠을 울기까지 했다.

소식은 천하의 중심으로 올라선 신마성에게도 전해졌다.

탁! 탁!

사공진무의 거처 주변이 약 냄새로 진동을 했다.

전투가 벌어진 다음이면 어김없이 사공진무는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금도 그는 관산악을 치료할 약재를 제조하느라 한시도 쉬지 못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휴! 됐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허리를 펴는 사공진무, 그런 그의 옆에는 덩치가 제법 큰 청년이 앉아서 그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백리추를 따라서 신마성으로 들어온 백리관이었다.

“시원한 냉수라도 갖다 드릴까요?”

“이 늦여름에 시원한 냉수가 있냐?”

“헤헤! 진천 님의 환술로 그냥 얼려 버리면 됩지요. 저번에 드렸던 것도 진천 님이 얼려 주신 겁니다.”

“그래! 그 자식이 있었지. 가서 한 사발만 갖고 와라. 아! 그리고 홍무에게 말해서 술도 한 병 달라고 해.”

“넵!”

백리관이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공진무는 얇게 만든 금박에 환약을 돌돌 말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흠! 이건 산악 형님 거, 이건 백리초가 춘가 하는 그놈 거, 이건 무식한 천소 형님 거, 그리고 이건 창잡이 형님 거. 이정도면 충분하겠군. 휴우…….”

“나는…….”

차가운 음성이 뒤쪽에서 들려왔다.

누군지 아는 사공진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서 유들거렸다.

“형님이야 어디 다친 데가 있어야 말이죠. 원래 약이란 게 남용하면 독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다음에 다치면 드세요.”

툭!

흑야가 사공진무의 머리를 툭 치고는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공진무가 머리를 문지르며 물었다.

“청부 안 갑니까? 돈 벌어야죠.”

“갔다 왔다.”

“오우! 그럼 이번엔 얼맙니까? 오백 냥? 아니면 천 냥?”

흑야가 벽에 몸을 기대며 손가락 하나를 까닥였다. 천 냥이라는 뜻이다. 사공진무가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이러다가 우리 부자 되는 거 아닙니까? 벌써 형님이 벌어들인 돈만 해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게다가 며칠 후에 금치문이가 금도낀가 하는 놈이 온다면서요. 돈을 왕창 싸 들고 말입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헤헤! 주공께 졸라서 옷이나 몇 벌 사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이참에 단체로 멋들어지게 한 벌씩 뺄까요?”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내 검이나 고쳐라.”

흑야가 자신의 검을 건넸다.

사공진무는 의술만이 아닌 모든 잡학에 달통한 천재였다.

철의 제조에 있어서도 당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신술을 지니고 있었다. 검을 받아 든 사공진무가 검을 뽑아 살폈다.

“흠! 한철이 이가 나가다니, 확실히 그 생강시가 괴물은 괴물이었네요. 이거 상태를 보니 며칠을 걸리겠네요.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이틀 안에 뚝딱 처리를 해 놓겠습니다. 대신 다음 청부 때 저도 데려가깁니다.”

“네가 그곳엔 왜?”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흑야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렸다.

그때 백리관이 술과 요리를 들고 들어섰다. 흑야를 본 그가 황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 그거 금존청이잖아? 홍무 그 자식이 어쩐 일로 그걸 다 줬대?”

“흑야 님이 이곳으로 가셨다며 최상급으로 주시던데요? 요리도 쇠고기를 얇게 저며서 구운 특 상품 안심이라고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망할 놈! 우리가 달랄 때는 화주만 내주더니.”

흑야가 금존청을 냉큼 빼앗아 갔다.

홍무에게 있어 그는 신과도 같은 존재,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귀한 술과 값비싼 요리로 술판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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