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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42화 (140/425)

# 142

<귀환무사 142화>

적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정도맹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중진급 이상의 고수들이 상당수 목숨을 잃었다. 여전히 수적인 상황은 아군이 유리했지만 꼭 그것만도 아니었다.

사련은 그야말로 최강의 정예만이 남아 있었다. 생강시도 스물에 가까운 숫자가 여전히 개천 초기의 팔팔함 그대로 펄떡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진천과 사공진무가 열에 가까운 생강시를 죽였지만 그들도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내공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퉤! 주공이 올 때까지 견디기가 꽤나 버겁겠군.”

위기였다.

있으나 마나 한 청년 고수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수에서 밀렸다. 그의 눈에 막 왕전이 생강시를 후려치는 광경이 들어왔다.

순간 북궁천소가 외쳤다.

“뒤다!”

왕전의 뒤쪽에서 두 기의 생강시가 그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북궁천소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힘껏 던졌다.

쐐애액!

북궁천소의 고함을 들은 왕전이 돌아보지 않고서 그대로 앞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콰지직!

그가 섰던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까앙!

북궁천소의 내공이 담긴 대도가 생강시의 몸통을 그대로 가격했지만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실로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모면한 왕전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씩 웃었다.

“네 걱정이나 해, 자식아!”

“이럴 땐 고맙다고 하는 거다.”

“알고 있었다니까.”

“허세 부리기는…….”

둘은 다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관산악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생각보다 청년고수들을 노리고 다가온 사련의 고수들은 강했다. 생강시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던 관산악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개새끼들!”

콰악!

어깨로 적 하나를 날려버린 관산악을 향해 사련의 고수 세 명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천하의 관산악이라도 피할 도리가 없어보였다.

그때 남궁소미가 두 손을 힘껏 펼쳤다.

쐐애액!

발출된 은빛 암기들이 사련 고수들을 노리고 날아갔다.

바람의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심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것들은 여간해서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퍼퍼퍽!

“크악!”

둘이 피를 뿌리며 꼬꾸라졌다. 다른 하나는 관산악의 대도에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관산악이 남궁소미를 돌아보며 씩 웃어 보였다.

“제법인데. 조금 전에 그게 뭐지?”

“제가 만든 암기였습니다.”

“더 있냐?”

“이게…… 마지막입니다.”

관산악의 물음에 남궁소미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녀로서는 더 이상 적을 상대할 수단이 사라진 셈이었다.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거에 기분이 급속도로 암울해졌다.

“뒤로 물러서라.”

“……예.”

관산악은 풀죽은 모습으로 뒤로 물러서는 남궁소미를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전장을 향해 돌아섰다.

깡깡!

관포와 백리추가 각각 하나씩을 맞아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감당하기가 꽤나 버거워 보였다.

적용유리 역시 여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강맹한 도법을 구사하며 사련의 고수와 손을 섞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라!”

섬뜩한 용모를 지닌 초로의 노인들이 관산악에게로 날아들었다.

셋의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아 세쌍둥이가 틀림없었다. 관산악이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너희들 어미가 꽤나 고생했겠군. 지독히도 못생긴 놈들을 셋씩이나 낳는다고 말이지.”

“사지를 잘라 주마.”

“그게 가능하겠냐.”

쾅!

관산악이 먼저 달려들었다.

근접전에서 자칫 잘못하면 파생된 강기로 인해 다른 자들이 해를 입을 수도 있음을 염려하여 더 다가오기 전에 선공을 가한 것이었다.

까가가강!

콰지직!

주변이 삽시간에 치솟은 흙먼지로 가득 채워졌다.

“욱!”

조금 뒤쪽에서 묵직한 신음과 함께 백리추가 비틀거리며 밀려났다. 어깨에 상당한 부상을 입은 듯,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죽엇!”

그에게 부상을 입힌 사련의 고수가 숨통을 끊어 내려고 달려들었다.

“형님!”

백리관이 고함을 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백리추가 말릴 사이도 없었다. 상대의 검이 백리관의 검을 밀어내며 어깨를 강타했다.

쾅!

“으악!”

백리관이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 날아갔다. 상대는 그가 감당해 낼 고수가 아니었다.

오장 가까이 날아가서 떨어진 백리관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관아!”

백리추가 처절한 소리를 쏟아 냈다. 어깨를 부여잡은 백리추가 백리관을 향해 몸을 날리려고 할 때, 그의 목을 향해 한 줄기 검강이 떨어졌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수급이 허공을 날았다.

“헉!”

백리추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쓰러지지 않고 비틀거리던 목 없는 육신이 그에게로 넘어졌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백리추는 자신의 앞을 가리고 선 인물을 응시했다.

“뒤로 물러서라, 꼬마.”

관산악이었다.

세 노인을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백리추의 위기를 보고 재빨리 몸을 빼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전신 곳곳에 상처를 입은 그는 상당한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호흡 또한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네놈은 오늘 이 자리에서 무조건 죽는다!”

그와 상대하던 세 노인이 날아왔다. 그들의 공세는 오직 관산악 하나에게 집중되며 날아들었다.

콰아앙!

관산악이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받아치자 천지를 울리는 괴성이 터져 나오며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시야를 가려버린 흙먼지를 쳐다보며 백리추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주변의 모두가 관산악의 무사를 빌었다.

“제발…….”

털썩!

추악하게 생긴 머리 하나가 백리추의 앞에 떨어지며 피를 뿌렸다. 세 노인 중 한 명의 것이었다. 백리추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고개가 돌아갔다.

“대협!”

한쪽 무릎을 꿇은 관산악이 입에서 붉은 선혈을 게워 내고 있었다.

그 앞에 선 두 인물 역시 창백한 얼굴에 입가로 선혈을 흘려 내리고 있었다. 우측에 선 자가 검을 들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관산악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어 보였다.

“안 돼!”

백리추가 검을 비껴들며 관산악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애송이.”

“……!”

관산악이 백리추를 밀어내고는 날아드는 노인을 향해 아래에서 위로 칼을 그었다.

“크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좌측에서 달려들던 노인의 몸이 수직으로 쪼개지며 날아갔다. 관산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수중의 칼을 던졌다.

퍽!

“컥!”

칼을 얻어맞은 노인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빌어먹을!”

관산악이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일격에 둘의 몸을 베어 버린 그는 호흡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한계를 넘어선 그의 눈빛은 안개에 덮인 호수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진천과 사공진무는 생강시 때문에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둘이서 세기의 생강시를 쓰러뜨린 것만으로도 엄청난 역할을 한 셈이었지만 그들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사실 둘의 내공 역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후욱!”

거친 숨을 토해낸 관산악이 전장을 살폈다. 벗들은 여전히 용맹무쌍한 위력을 발산하며 좌충우돌 거침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적용백과 갈무극의 공전절후의 대결 역시 조금씩 적용백이 밀리는 양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역시 사련의 주인이라는 건가.”

오성의 하나인 적용백을 밀어붙이는 갈무극이 관산악의 눈에는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다른 곳은 역시 생강시가 문제였다. 내공이 떨어져가는 시점에서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무한한 체력은 그 어떤 강력한 무기보다 위협적이었다.

“크크! 완전히 불바다군. 그나저나 저것들까지 합세하면 꽤 힘들겠어. 이거 주공은 언제 오시려나.”

사련의 본단을 쳐다본 관산악이 웃었다.

거친 화염에 휩싸인 그곳에서 새카맣게 밀려 나오는 사련의 무사들이 보였다.

지치지 않았다면 수천이 있다 한들 위협이 되지 않을 삼류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다.

“어떻게 된 팔자가 쉬지를 못하냐. 퉤!”

관산악이 바닥을 나뒹굴던 아무 칼이나 주워 들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청년 고수들을 돌아보았다. 새카맣게 밀려 나오는 사련의 무사들을 보며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준을 넘어선 고수들의 싸움이 아닌 그야말로 고만고만한 수준의 무사들끼리 피와 살이 튀는 백병전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위험합니다!”

난데없는 외침에 관산악이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난전 중에 대열을 이탈한 생강시 하나가 그를 향해 덮쳐 오고 있었다. 거의 탈진상태에 이른 관산악이, 피할 거리도, 재간도 없었다.

순간 관산악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렇게 장가도 못 가 보고 죽다니. 빌어먹을 팔자하고는…….’

관산악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자 눈앞에 떠오르는 하얀 얼굴이 있었다. 모용세가의 가주가 된 모용미였다.

‘좋아한다고 고백이라도 해 볼 것을…….’

관산악은 손에서 검을 놓았다.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에 꼴사납게 발악을 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쾅!

관산악의 육신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아악!”

“대협!”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때, 날아가던 관산악을 허공에서 낚아채는 그림자가 있었다.

* * *

촤악!

관산악을 향해 재차 달려들던 생강시가 허리부터 통째로 날아갔다. 시커먼 핏물이 쓰러진 관산악의 육신을 덮었다.

혁련천후가 그 옆에 내려섰다.

백리추가 비틀거리며 뛰어왔다. 혁련천후는 그에게 관산악을 부탁했다.

“이 친구를 잠시 동안만 보호해 주겠느냐.”

자신을 내려다보는 혁련천후. 태양에 반사되어 그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백리추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알겠습니다.”

혁련천후의 고개가 천천히 전장을 향해 돌아갔다.

용맹한 움직임을 보이는 수하들과 마교의 인물들, 그리고 적용백과 정도맹의 고수들이 보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혁련천후는 죽은 자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본단을 포기했더라면 입지 않아도 될 피해였다.

팟!

두 눈에 살광이 떠올랐다. 뒤이어 늘어뜨린 검에서 하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혁련강이 그 옆으로 다가왔다.

“허허! 어쩔 수 없이 나의 신분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구나. 늦으면 아이들이 당하겠다. 얼른 가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혁련강이 느릿하게 검을 뽑아 들며 걸음을 옮겼다.

혁련천후가 뒤를 돌아보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관산악을 살펴본 흑야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혁련천후가 흑야를 향해 짤막하게 말했다.

“너는 여기에 남아 저들을 보호해라.”

흑야는 군말 없이 물러섰다.

“언제까지 보호받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희들도 싸우겠습니다!”

누군가가 쑥 튀어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막 걸음을 놓으려던 혁련천후가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상당히 눈에 익은 청년이었다. 순간 혁련천후의 눈앞에 죽은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과의 비무에서 패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 명진. 함께 싸우겠다며 나선 청년은 그를 닮아 있었다. 눈빛까지도.

도량이 붉어진 얼굴로 혁련천후를 똑바로 쳐다봤다.

“함께 싸우게 해 주십시오!”

“저희들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다른 청년들도 결의에 찬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혁련천후는 그들을 향해 무심히 말했다.

“당연히 동료들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지. 무사는 그래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싸우면 너희들은 모조리 죽는다. 그것만큼 부질없는 죽음은 없을 터, 힘을 길러라! 언젠가 너희들이 주역이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의 부끄러움은 가슴에 담아 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혁련천후는 전장을 향해 돌아섰다.

아무도 그를 쫓아 움직이지 못했다. 넘어가는 태양의 역광을 받은 혁련천후가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는 그런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모두 그 자리에서 주변을 경계한다.”

차가운 음성이 청년들의 흐려졌던 정신을 일깨웠다. 흑야의 차가운 얼굴이 청년들의 얼굴을 찔러 왔다. 혁련천후와 가장 비슷한 기운을 지닌 그를 보며 청년들은 대열을 정비했다.

흑야는 전장을 향해 다가가는 혁련천후를 보며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꽤 화가 나신 것 같은데…….”

* * *

“멈춰라!”

귓속을 울리는 한 줄기 외침이 혈전을 중단시켰다.

모두가 각각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한가운데로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천천히 들어섰다. 일순 전장에 질식할 것만 같은 정적이 흘렀다.

갈무극을 비롯한 사련의 고수들은 둘을 보며 적개심을 불태웠다. 그러나 선뜻 공격을 하는 이는 없었다.

혁련강이 모두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그대들은 이제 뒤로 물러나시게.”

그저 중얼거리듯 한 말이었다. 그런데 사련의 고수들 중 상당수가 귀를 움켜쥐면서 휘청거렸다. 몇 명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모습에 갈무극의 인상이 대번에 뒤틀렸다.

‘도대체 저자가 누구기에…….’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수하들이 지쳤다고는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저 지경이 될 수는 없다.

더욱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신의 수하들은 대부분이 구파의 장문들을 능가하는 절대 고수들, 그들이 지금 귀를 막고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장용백과 천마사로는 자신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혁련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혁련강이 그들을 향해 역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수고가 많았소. 허니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기고 쉬도록 하시오.”

“이들이 생강시임을 알고 하는 말씀이오?”

장용백이 물었다.

혁련강은 여전히 담담했다.

“알기에 물러나라고 했소이다.”

“……!”

혁련강이 시선을 갈무극에게 던졌다.

대해처럼 깊고 무거운 눈빛에 갈무극은 한껏 위축되는 자신을 느끼고는 애써 눈빛을 고쳤다. 그의 주변으로 살아남은 사련의 고수들과 생강시들이 몰려들었다.

전부 합치면 불과 서른 정도였다. 정파의 고수들만큼이나 사련도 실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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