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귀환무사 141화>
사공진무가 거들었다.
둘이 한껏 자신감을 드러내자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담대소천이 진중한 기색으로 물었다.
“정말 자신이 있는 것이냐.”
“생강시들 말입니까?”
“그래.”
“내공이 조금 딸리기는 합니다만 일단 방법은 찾았으니 최대한 숫자를 줄여 놓을 자신은 있습니다. 나머지야 주공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진천이 활짝 웃어 보이자 담대소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기수사 적용백을 돌아보았다.
때마침 그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담대소천이 말했다.
“대열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야 할 것 같소만.”
“알겠소이다.”
적용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파의 고수들을 죄다 오왕등에게로 이동시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섰던 마교의 고수들도 다가왔다.
북궁천소가 거칠게 침을 뱉고는 대도를 고쳐 잡았다.
“이제 진짜 화끈하게 싸워 볼까?”
“당연히 그래야지.”
“그 말은 아까는 대충 싸웠다는 말이냐?”
“당연하지.”
“미친놈들.”
쾅!
“내가 먼저 간다.”
담대소천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뒤질세라 왕전등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리면서 혈전이 재개되었다.
* * *
“으…… 놈들이 모조리 몰려왔습니다.”
백리관이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사련의 고수들을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청년 고수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잔뜩 위축이 되어 있었다.
비록 전장에서 비껴나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미 대부분은 생강시의 가공할 위력에 기가 질린 상태였다.
영웅심에 넘쳤던 젊은 혈기 따윈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백리추가 나섰다.
“사내로 태어나 이런 날을 기다리며 수련해 온 우리가 아니냐? 두려워 말고 힘껏 싸워 정도맹의 일원임을 보여 주자!”
“맞아요! 용기를 내어 저들과 맞서야 해요!”
남궁소미가 거들었다.
“흥!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어요! 다들 전장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세요!”
도후 적용유리는 이미 대도를 뽑아 들고 어깨에 두른 상태였다. 누구보다 용맹하다고 알려져 있는 그녀조차도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들 중 가장 강자에 속하는 질풍대주 관포는 사실 싸움에 끼지 못한 것이 매우 불만이었다.
워낙 싸우고 있는 존재들이 막강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 있었던 그는 상황이 이처럼 흘러가자 오히려 반기고 들었다.
“그러니까 냉큼 싸울 준비들을 하자고.”
그때였다.
“엇! 위험하다!”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억!”
“이쪽으로 옵니다!”
뒤쪽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생강시 두 기가 그들 쪽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워낙 창졸지간에 뛰어든 탓에 그들이 막아 내기엔 불가능한 거리와 속도였다. 기다렸다는 듯, 관포가 대도를 휘두르며 생강시를 막아섰다. 그리고 백리추 역시 검강을 뿜어내며 생강시를 향해 검기다발을 날렸다.
쾅!
쾅!
연이어 터진 폭발음, 공격을 펼쳤던 관패와 백리추가 튕기듯 뒤쪽으로 밀려났다.
관포와 또 다른 한 명은 백리추였다. 둘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관패는 불신에 찬 눈으로 생강시를 응시했다.
“이, 이 정도라니…….”
손목이 저려 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속이 뒤틀려 울컥하는 무엇인가가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가 그 정도면 백리추는 보지 않아도 훤했다.
울컥!
단 한 번의 충돌로 그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물러서라!”
시커먼 그림자가 생강시들의 뒤쪽에서 날아들었다. 진천이었다. 진천의 손에서 황금빛 섬광이 번쩍였다. 섬광은 곧장 생강시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쇳소리가 울렸다.
깡!
“이런!”
생강시의 목을 자르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진천은 당혹감을 드러내었다. 그는 재빨리 청년들의 앞으로 이동했다.
“아직 완전하지 못했구나.”
급조해낸 환술이라 아직까지는 완벽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생강시들이 진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천이 황급히 외쳤다.
“뒤쪽으로 물러서라!”
진천은 다시 검을 횡으로 그어 생강시의 목을 노렸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달리 힘보다는 속도와 날카로움에 중점을 두었다.
서걱!
쇳소리가 아닌 뭔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진천의 낯빛이 밝아졌다.
“그렇지! 요놈!”
그러나 목을 완전히 베어 내진 못했다.
반쯤 잘려진 머리를 달고 달려드는 생강시를 보며 청년 고수들은 창백하게 질려 갔다.
“저럴 수가…….”
“환장하겠군.”
진천이 다시 검을 잡아 갈 때, 뒤쪽에서 누군가 달려들어 생강시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퍽!
떼구르르…….
생강시의 목이 완전하게 떨어지며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공진무가 생강시의 뒤쪽에서 나타나며 히죽 웃었다.
“역시 네놈은 내가 있어야 한다니까.”
“다잡은 거에 손가락만 얹은 주제에 무슨.”
굴러간 생강시의 머리가 공교롭게도 적용유리의 발아래 멈추었다.
“어맛!”
퍽!
놀란 적용유리가 발로 걷어차 멀리 걷어 냈다. 제아무리 이름 높은 여고수라 해도 그 같은 상황에선 놀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저놈마저 죽여야지.”
“당연하지.”
진천과 사공진무가 하나 남은 생강시를 합공을 할 즈음, 그들과 달리 주전장은 폭풍 같은 기운들로 인해 주변이 초토화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같이 고수 아닌 사람들이 없으니 그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기운들로 인해 산천초목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콰아앙!
드드드드!
“으악!”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무리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당의 도복을 걸친 초로의 인물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사숙님!”
청년 고수들 쪽에서 도인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노도인을 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도량이란 이름을 가진 무당의 제자였다.
“도량! 위험하다!”
관포가 소리를 지르며 그를 잡아챘다. 도량은 지난날 무당의 명수진인에게 반발을 했던 그 청년도인이었다. 지금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도인은 무당의 장로 중 하나였는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즉사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콰직!
죽음을 확인이라도 하듯, 누워 있던 그의 육신 위로 파생된 기운이 떨어졌다.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흩어졌다. 그 처참한 광경에 청년 고수들이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숙님!”
도량이 절규했다.
“이거 놓으십시오!”
“안 돼! 너까지 죽을 셈이냐!”
관포가 그를 말리며 호통을 쳤다. 도량이 관패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퍽!
“욱!”
도량의 주먹을 복부에 얻어맞은 관포가 허리를 굽히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동시에 도량이 그늘 넘어 전장으로 날아들었다.
“저런 멍청한 놈!”
마침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관산악이 얼굴을 굳히고는 대도를 휘둘러 상대를 물러나게 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날아드는 도량의 앞을 막아섰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이성을 잃어버린 도량이 그를 아군으로 알아볼 리 없었다.
“죽엇!”
깡!
관산악이 대도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도량의 검을 쳐 냄과 동시에 그를 안고서 몸을 날렸다.
난전 중에 몸을 허공으로 띄우는 것은 지극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련의 고수들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쐐액!
강맹한 기운들이 관산악의 하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도량을 안은 탓에 놀림이 다소 느려진 관산악은 것을 피하지 못했다.
팟!
“윽!”
다행히 다리가 잘려 나가진 않았지만 상당한 깊이로 베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관산악은 도량을 놓치지 않고 청년 고수들이 있는 곳까지 날아가 내려섰다. 그를 노리고 날아들던 사련의 고수들이 허공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진천이 손을 쓴 것이다.
“형님! 괜찮습니까?”
진천이 놀라며 빠르게 다가왔다.
“어째 정파에는 하나같이 허약한 놈들뿐이냐.”
관산악이 거칠게 도량을 바닥으로 던졌다. 다리에서 흘린 피가 대번에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다행히 심맥은 손상이 없었지만 원활하게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부상이었다.
관산악이 도량을 꾸짖었다.
“죽으면 복수도 말짱 황이라는 걸 알아야지. 허니 이제부터는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라, 애송이.”
“형님! 일단 지혈부터…….”
“젠장! 제법 깊게 지나갔어. 움직이기 곤란한데…….”
지혈을 한 관산악이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심맥이 무사하다고는 하지만 근육이 잘려 나갔다.
상당한 고통과 움직임이기 곤란한 정도의 묵직한 느낌이 발목에서 전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이성을 찾은 도량이 안절부절못하며 관산악의 상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산악이 피식 웃었다.
“신경 꺼라. 괜찮으니까.”
“대협! 여기 금창약이라도 바르시지요.”
백리관이 재빨리 다가오며 품속에서 동그란 약통을 꺼내서 내밀었다. 진천이 사공진무를 돌아보았다.
의술이 뛰어난 그가 필요한데 생강시 때문에 몸을 뺄 수가 없는 처지였다. 진천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몸을 날렸다.
“형님! 잠시만 그곳에서 쉬고 계세요.”
금창약을 듬뿍 상처에 바른 관산악이 전장을 살피고는 뒤쪽을 돌아봤다.
뒤늦게 합류한 사련의 고수들이 청년 고수들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다가들고 있었다. 관산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였다.
[너는 거기서 쉬면서 아이들이나 보호해라.]
담대소천의 전음성에 관산악은 침을 뱉고는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횡렬로 늘어서서 놈들을 맞이한다! 강한 놈들이 가운데로, 다른 놈들은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한다!”
처처처척!
청년 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그의 말을 따랐다. 관산악은 대도를 거머쥐고는 다가오는 사련의 고수들을 매섭게 쓸어 보았다. 그러다가 이채를 발했다.
“생강시가 오지 않네?”
다행이었다.
청년 고수들의 수준을 가볍게 여긴 사련의 실수라고 봐야 했다. 질풍대주 관포를 비롯해 남궁소미와 백리추, 그리고 적용유리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질풍대의 관포가 인사드립니다!”
“이 상황에 인사는 개뿔. 네가 제일 강해 보이니 가운데를 맡는다. 대신 선공을 금물이다. 오직 놈들이 달려들 때, 반격을 가하도록.”
“알겠습니다!”
관포가 눈빛으로 대답한 후, 가운데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 옆을 백리추와 적용유리가 따라붙었다. 남궁소미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손에 쥐어진 물건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상당히 무겁다.
‘이게 마지막인데.’
손재주가 남다른 그녀, 스스로 제작한 암기였다.
운이 좋으면 몇 명은 그냥 보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암기였지만 아쉽게도 하나밖에 없었다. 지난날 용성과의 전투에서 모조리 소진을 한 것이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다가오는 적에게 시선을 던졌다.
‘나도 저분들처럼 용감한 무사가 될 거야.’
그녀의 두 눈은 적이 아닌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왕전과 북궁천소 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 *
쾅!
강력한 한 줄기 기운이 사련의 수뇌부가 거처하던 암흑대전을 강타했다.
두터운 문이 산산조각이 나며 내부가 드러났다. 그 앞에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내려섰다. 대전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빠르게 안을 살펴본 혁련천후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자신들을 찾아 움직여야 할 적들이 한 명도 보이지가 않았다.
혁련강이 옆으로 오며 중얼거렸다.
“놈들이 밖으로 나간 모양이구나.”
“우리를 끌어내기 위한 수작입니다.”
그때였다.
우와와아아!
구름 같은 함성과 함께 암흑대전의 외곽에서 수백의 무사들이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이 이류인 그들은 전력 외의 무사들, 혁련천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저들은 무시하고 최대한 시설만 파괴하고 합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두르자꾸나. 놈들의 주력이 모조리 밖으로 몰려 나갔으니 늦으면 꽤나 큰 피해를 입을 게야.”
“알겠습니다.”
혁련천후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암습을 펼치는 자신들을 쫓아올 방도가 없자 갈무극은 동료들을 노리고 성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물론 자신들을 끌어내기 위한 술책임을 알고 있었지만 사련의 중추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당장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조금은 더 견뎌 주겠지.’
수하들을 믿었다.
그들이라면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버텨 줄 거라고 믿었다. 물론 그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혁련천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서두르지요.”
“그러자꾸나.”
* * *
“빌어먹을 새끼들!”
갈무극은 생각과는 달리 혁련천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분통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정파인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동료들의 안위가 염려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콰르르…….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는 건물들을 돌아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으드득!
“신마성!”
신마성에 대한 적개심이 이제는 골수에까지 맺혔다. 대업의 첫걸음부터 그들을 만나 삐걱대더니 종국엔 이런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다.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은 오히려 자신과 사련이었다.
크악!
적용백의 검이 잘라 버린 수급이 갈무극의 앞에 떨어졌다. 갈무극의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가 적용백을 향해 돌아갔다.
“신기수사…….”
“네놈의 헛된 야욕이 이토록 참혹한 지경을 낳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느냐!”
“헛된 야욕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 당장은 네놈의 목부터 쳐 내 주마.”
갈무극의 거대한 육신이 바람처럼 적용백을 향해 날아갔다.
꽝!
둘이 그대로 충돌했다.
굉음에 이어 발생한 여파가 주변을 쓸었다.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적아의 무사들이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둘의 대결을 돌아본 북궁천소가 씩 웃었다.
“제법인데?”
“망할 놈! 그럴 시간에 칼질 한 번 더해라!”
왕전이 북궁천소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는 적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북궁천소도 다시 뛰어들었다. 굉혈도를 휘둘러 적의 몸을 잘라 버린 그는 재빨리 전황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