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귀환무사 140화>
“웃!”
강력한 반탄력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던 흑야는 밀려드는 힘을 역으로 이용하여 뒤쪽으로 훌쩍 물러섰다.
역시 정공에선 생강시의 무지막지함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스슥!
“네놈들은 나중에 보자!”
흑야는 미련 없이 생강시들을 피해 그곳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생강시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충분히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강시의 공격력을 견디지 못하고 전각의 한쪽 벽이 붕괴되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혁련천후등을 찾아 움직이던 사련의 고수들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갈무극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저쪽이다!”
휘리리릭!
모두가 바람처럼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흑야는 이미 기척을 감춘 뒤였다. 갈무극이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죽어 있는 괴량과 우상호의 주검을 보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상황이 까다롭게 되었습니다. 설마하니 본단으로 숨어들어 암습전을 펼치다니 말입니다.”
“대제! 이러다가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흩어져 있는 고수들을 한곳으로 불러모아 한 무리로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다.”
삐이익!
갈무극이 어쩔 수 없이 여러 갈래로 흩어졌던 고수들을 호각으로 불러모았다. 하지만 꽤 많은 자들이 보이지가 않았다.
혁련천후와 혁련강에게 당한 것이었다.
갈무극이 물었다.
“보이지 않는 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모두 적에게 당했습니다.”
“뭣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습을 해 오는 통에…….”
갈무극의 화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천하를 주름잡았던 사련이 고작 신마성이라는 신흥 무파에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었으니 분노가 치밀어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였다.
“놈들을 찾아낼 방도를 찾아내지 않고 뭣들 하는 것이냐!”
고함을 질러댔지만 대답하는 자, 아무도 없었다.
이런 식의 전투는 지금껏 없었던 방식이다. 대부분의 문파 간의 전투는 전면전으로 진행되었다.
갈무극도 철저하게 전면전을 신봉하는 위인이었으니 지금의 이러한 상황에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갈무극이 고함을 질렀다.
“사요승을 불러오너라!”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사요승뿐이었다. 수하 하나가 재빨리 본단의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 본단의 뒤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나며 불길이 확 솟구쳤다.
콰앙!
“무슨 일이냐!”
“헉! 무기고 쪽입니다!”
“뭣이!”
불길이 솟구친 곳은 무사들의 무기를 제조하고 보관하는 장소였다.
갈무극의 얼굴이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곳은 단순한 무기고가 아니다. 바로 사련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강시의 제조 시설이 있는 곳이다.
한번 파괴되면 복구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린다. 그것은 곧 갈무극의 야망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쾅!
갈무극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다른 자들도 황급히 갈무극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으아아악!”
갈무극이 괴성을 질렀다.
부릅떠진 두 눈에서는 분노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제6장 사련 멸망
콰우우우!
하늘을 뒤덮은 연기에 뜨거운 열기가 섞여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폭발의 여파에 휩쓸린 전각들은 이미 붕괴를 시작하고 있었다.
콰르르르…….
하늘을 뒤덮으며 솟아오르는 화염을 보며 혁련강이 중얼거렸다.
“이들이 이토록 오랜 시간, 치밀한 준비를 할 때, 대체 중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생강시의 제조시설을 완파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사련이 이 정도라면 곧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일 묵련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혁련천후가 먼 곳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놈들이 옵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혁련강이 갈무극을 비롯한 사련의 최정예들이 바람처럼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사람보다는 시설을 완벽하게 파괴시켜야지 않겠느냐.”
“가능하다면 죽일 수 있는 놈들은 미리 죽여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둘은 성난 황소처럼 달려오는 갈무극과 그의 수하들을 보면서도 한줌의 동요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정면 대결은 곤란하겠지?”
“흑야의 방식이 좋겠습니다.”
“그러지.”
둘은 빠르게 우측의 건물을 돌아 햇빛이 들지 않는 곳으로 스며들었다.
“크으윽!”
갈무극의 전신이 폭풍처럼 흔들렸다.
처참하게 붕괴된 현장을 보며 그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나마 전각 몇 채가 아직 불길에도 쓰러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 안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불길을 끈다고 해도 잿더미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을 지경이었다.
“대제…….”
다른 자들이 망연자실 넋을 놓았다.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시켜 줄 그곳이 회생 불가의 상태로 박살이 나 버리자 참담함에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콰앙!
우측에서 또다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모두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첨탑 하나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상당한 높이를 자랑하는 그곳은 내부에서 백 리 밖까지 살필 수 있는 주요 시설 중의 하나였다.
“놈들이 저곳으로 갔나 봅니다!”
“저곳까지 파괴되면 더는 희망이 없습니다!”
콰과과광!
거대한 첨탑이 자욱한 먼지 구름을 만들어 내며 완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먼지 구름 속을 날아가는 두 개의 신형이 보였다.
혁련천후와 혁련강이었다.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갈무극이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장로 하나가 다가올 때 갈무극이 혈광을 번뜩이며 부르짖었다.
“모두 성 밖으로 나가 함께 온 놈들부터 모조리 죽인다!”
“……예?”
“놈들은 포기하고 성 밖의 놈들부터 모조리 죽인다. 그다음에 신마성으로 직접 쳐들어가서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야 말 것이다!”
결국 갈무극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당하고만 있기엔 그의 분노가 너무 컸다.
물론 홧김에 내린 결론만은 아니었다.
혁련천후가 어차피 작정하고 몸을 숨긴다면 쫓아갈 방법이 없다. 해서 성 밖의 동료들의 죽음을 본다면 그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여겼다.
돌아오면 죽이고 안 돌아오면 신마성으로 곧장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때는 무조건 돌아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뼈째 씹어 먹고 말리라…….”
으드득!
* * *
“으악!”
조윤의 창이 적의 목을 꿰뚫었다.
전투가 재개되고 열두 번째 사망자였다. 물론 생강시는 두 기 정도가 쓰러졌을 뿐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달랐다.
집중적으로 생강시를 피해 자신들만을 노리는 왕전과 북궁천소등의 수준이 워낙에 강했기에 죽어 가는 자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정파의 고수들도 왕전등과 같은 방법으로 나서는 바람에 피해는 급속도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방위를 좁히고 놈들을 상대하라!”
사요승이 고함을 질러 가며 수하들을 독려했다.
그의 전신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갈무극이 없는 이곳에서 오직 자신만이 전장을 꾸릴 수 있기에 사력을 다해 적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나의 실수다. 이들이 이런 방법을 들고 나올 줄이야…….”
방원진을 펼친 것이 실수였다.
생강시를 공격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수비적인 진법으로 나서는 바람에 선기를 빼앗겼고 그때부터 지금껏 단 한 번의 공세조차 펼쳐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마교의 잔당들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천마사로와 장용백만 없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안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무공은 사련과는 상극이었다. 해서 오왕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본단으로 후퇴해야만 할까?’
이 시점에서 생강시들을 공격용으로 사용한다면 적의 숫자를 어느 정도 줄여 낼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있는 자신들을 막아 줄 방어막이 사라진다.
후일을 도모하자면 후퇴를 해야 하는데, 갈무극의 불호령이 염려되었다.
그는 잠시 갈등했다. 오왕을 비롯한 마교의 고수들이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네놈에게 과연 그럴 여유가 있을까!”
장용백이 다시 대도를 휘두르며 방원진의 외벽을 후려쳤다.
쾅!
다행히 생강시의 방어에 장용백이 되레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작정하고 수비만 한다면 과연 그 누가 저 방어막을 뚫어 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생강시의 위력은 가공할 만했다.
“으악!”
정파의 고수 하나가 무리하게 접근을 시도하다가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적용백이 크게 놀라며 모두에게 뒤로 물러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였다.
화르륵!
쾅!
불꽃이 이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울리더니 가장 뒤쪽을 차지하고 섰던 생강시 하나가 불꽃에 휩싸인 채 쓰러졌다.
“목을 쳐!”
“알았다고!”
번쩍!
불꽃에 휩싸인 채 다시 일어서려던 생강시의 목이 뎅강 잘려 날아갔다.
뒤이어 누군가의 환호성이 터졌다.
“하하! 잡았다!”
진천이었다.
은은한 금광이 어린 그의 손에 역시 은은한 금광을 두른 짧은 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 검에 의해 생강시의 목이 잘려 나간 것이다.
“목이 날아갔다…….”
“그토록 강력하던 생강시를 저리도 쉽게 끝장을 내 버리다니…….”
모두가 크게 놀란 눈으로 그를 직시했다.
누구보다 사요승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천하의 생강시가 목이 잘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데리고 온 생강시는 일전에 신마성주에게 몰살을 당했던 그 생강시들보다 더욱 강한 제조 과정을 거친, 그야말로 사련의 입장에서는 최강의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생강시가 신마성주도 아닌 철부지 소년처럼 펄쩍펄쩍 뛰는 진천에 의해 목이 날아가다니.
‘믿을 수 없구나! 어떻게 저런 놈이 생강시를…….’
그때 진천이 여전히 진안에 몸을 감추고 있던 사요승과 시선이 마주쳤다.
진천이 씩 웃었다.
“이 웃음의 의미가 뭔지 알아?”
“…….”
“이제 보니 저 시체들에게 환술이 약이군. 너희들 이제 다 죽었어. 전에 당했던 수모를 천 배로 갚아 줄 테니 기대해도 좋아.”
사요승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는 진천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천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매우 거슬렸다.
그때였다.
“대제께서 오신다!”
“장로님들도 오십니다!”
와아아!
사련의 고수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갈무극과 수백의 고수들이 시커멓게 허공을 덮으며 날아오고 있는 광경에 정도맹의 고수들은 돌처럼 굳어졌다.
그들의 뒤쪽 본단은 연신 굉음이 울리며 건물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사요승이 환한 얼굴을 어둡게 찌푸렸다.
‘본단이 쑥대밭이 되고 있는데 왜 이곳으로…….’
사정을 잘 모르는 사요승으로서는 갈무극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요승의 머릿속이 더 한 혼란에 휩싸여 갈 때, 갈무극과 최고 수뇌부들이 그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제! 어찌 이리로 오셨습니까!”
“이곳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예?”
“이놈들을 죽이면 놈들이 스스로 구하려고 달려올 것이다. 하니 대열을 정비하고 일거에 쓰러 버릴 준비를 하거라!”
갈무극의 태도를 보고 눈치가 빠른 사요승은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화염에 휩싸여 가는 본단을 잠시 응시하다가 어금니를 깨물며 전의를 다시 불태우기 시작했다.
갈무극이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거처야 다시 세우면 그뿐이다! 이 갈무극의 이름을 걸고 오늘 이놈들은 모조리 핏물로 만들어 버리겠다! 쳐라!”
“우와아아!”
“사련의 진정한 무서움은 지금부터다.”
극한의 분노를 넘어선 갈무극의 표정이 놀랍게도 매우 차갑고도 냉정하게 보였다.
사람은 당황하면 허둥대는 쪽과 반대로 더욱 냉철하게 변하는 쪽이 있는데, 갈무극은 후자에 속했다. 사요승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갈무극의 분노가 어떠한지 짐작이 갔던 까닭이다.
* * *
‘저놈들이 본단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죄다 몰려올 줄이야.’
조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갈무극이 설마 다시 돌아올 줄 생각조차 못했던 그는 적당한 때에 돌아가라는 혁련천후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물러서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후퇴하면 저들은 모조리 죽음이다.’
자신들만 있었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청년 고수들은 몰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생강시가 비록 움직임이 느리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수준에서 그렇단 소리다.
적어도 청년 고수들이나 어지간한 문파의 중진급들은 그들의 영역에서 도주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조윤은 담대소천을 돌아보았다.
[싸워야겠지?]
[저들을 모조리 죽게 둘 순 없다.]
예상했던 대답에 조윤은 씁쓸히 웃었다. 담대소천은 자신들 중, 그 누구보다 공명정대한 인물이다. 조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모두를 돌아봤다.
“주공이 돌아오실 때까지 어떻게든 버터야 한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똑똑한 척하기는.”
“망할 놈.”
동시에 비아냥거림이 터져 나왔다.
조윤은 화염에 휩싸인 사련의 본단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정도면 사련의 본단은 재기 불능의 상태로 봐야 했다. 통쾌함보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그때까지 정도맹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때론 도리가 의무보다 앞설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였다.
“새끼들이 괜히 끼어들어서 골치 아프게 만드네. 젠장! 그냥 내버려 두고 돌아갈까?”
“그러고 싶다만 주공께서 원치 않으실 거다.”
“빌어먹을!”
북궁천소와 왕전 등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말은 그러했지만 누구하나 정파의 젊은 청년들을 죽에 내버려 두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않았다.
그때 진천이 그들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망할 놈. 대체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온 거냐!”
“생강시 한 놈을 때려잡고 오느라구요. 이제부터 형님들은 그냥 마구잡이로 적들을 때려 부수면 됩니다. 생강시는 저와 진무가 맡을 테니까요.”
“뭐, 주공이 돌아오실 때까지만 어찌어찌하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 아니겠습니까? 힘들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