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귀환무사 139화>
상당한 규모의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사련의 본단이 틀림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이십여 장 거리 밖에서 사련의 고수들이 바람처럼 쫓아오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더 따돌릴 수도 있었지만 생각한 바가 있어서 일부러 적당한 거리를 허용했던 것이다.
“흑야!”
혁련천후의 부름에 흑야가 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생강시를 제외한 놈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알겠습니다!”
흑야가 빠르게 떨어져 나가더니 일행들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사련의 본단으로 스며들었다.
암습에서 그를 당할 자 천하에 없으니 전각 곳곳에서 각개격파를 시도한다면 어지간한 대문파의 위력과 맞먹는 이가 흑야다.
흑야가 먼저 사련의 본단으로 들어가자 혁련천후는 모두를 향해 계획대로 명령을 내렸다.
“안으로 들어서면 곳곳으로 퍼져 최대한 난전을 유도하고 반 시진 후에 이곳에서 만난다! 모두 둘씩 조를 이루어 갈라선다!”
“예!”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는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며 둘씩 조를 이루었다. 그러고는 사방으로 갈라지며 사련의 성곽을 넘어서 스며들었다. 성곽 위에 있는 경계무사들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적이다!”
“적이 성곽을 넘어온다!”
그저 고함을 지르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 *
“엇!”
정도맹 총호법 관승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산을 넘어 막 들판에 이르자 허공을 휙휙 날아가는 자들이 보였는데, 한눈에 그들이 사련의 고수들임을 알아보았다.
‘저자들이 대체 어디를 저리도 급하게 가는 것일까.’
관승은 눈에 힘을 주고는 사련의 고수들이 질주하는 방향의 전방을 응시했다.
사방으로 산개하여 사련의 본단으로 날아드는 자들이 보였는데, 관승은 그들이 신마성의 고수들이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뭐야? 누군지는 모르나 사련에게 쫓기는 것 같은데, 한데 하필이면 그 방향이 사련의 본단이라니…….]
그가 손을 들어 뒤를 쫓는 정도맹의 고수들을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사련이다.”
“예?”
“쉿.”
곽승이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사련의 고수들을 주시했다.
그때 막 청포를 걸친 자들이 바람처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곽승은 알 수 없는 기운에 압도되어 두 눈을 부릅떴다.
‘뭐지?’
그때, 적용백과 적용세가 옆으로 다가왔다.
[사련의 고수들이 누군가를 쫓아 달려가고 있습니다.]
곽승의 전음에 적용세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이미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곽승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사련의 본단으로 뛰어 들어간 사람들이 신마성의 사람들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왕전과 북궁천소는 아주 먼 곳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넘치는 위인들이 아닌가.
적용백이 눈매를 가늘게 하며 전음을 날렸다.
[저들이 사련의 본단으로 들어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을 여기서 막아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 좋겠다.]
착각이었다.
적용백의 착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먹이를 노린 범처럼 숲에서 뛰쳐나간 그가 휘두른 검에 사련 고수 하나의 목이 뎅강 날아갔다.
천하의 절대자, 오성의 일인인 그가 기습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느닷없는 상황에 사련 고수들은 일순 당황했다.
“정도맹이다!”
“반은 놈들을 상대하고 나머지는 놈들을 쫓아라!”
오십에 달하는 사련 고수들의 절반이 속도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갈무극을 포함한 다른 자들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신마성의 고수들을 추격하려 몸을 날렸다.
처처척!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정도맹 고수들이 죄다 모습을 드러내자 사련의 고수들이 저마다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남은 자들의 수장 노릇은 사요승이 해야만 했다. 그는 재빨리 정도맹의 고수들을 살폈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발산하는 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자신들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 자신했다. 자신들에게는 생강시가 열기나 있지 않은가.
사요승이 앞으로 나서며 싸늘히 외쳤다.
“감히 본련의 일에 끼어들다니!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해 주마!”
별다른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생강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정파의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적용백과 적용세가 앞으로 나서며 사요승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신마성에게 신세를 졌으니 당연히 갚아야겠지. 물론 그대들이 용성과 밀약이 있음도 이유가 되겠군.”
“네놈이 수장인가 보군. 정체를 밝혀라!”
“보잘것없는 이름이지만 그대처럼 사악한 망종에겐 알려 주고 싶지 않다네.”
“후후후. 어디 목이 잘려도 그따위 말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마.”
사요승은 적용백을 보며 거친 말을 쏟아 냈다.
적용백은 다짜고짜 사요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쳐라!”
“사마의 무리들을 멸해라!”
명령이 떨어지자 정도맹의 고수들은 수적인 우세를 믿고서 폭풍처럼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
* * *
“엇!”
뒤쪽에서 소란이 일자 북궁천소가 뒤를 돌아보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정도맹입니다!”
모두가 사련의 성곽 위에 몸을 세웠다. 조윤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혁련천후를 보며 말했다.
“저대로 두면 생강시에 몰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식들이 쓸데없이 끼어들어 가지고는 귀찮게 하네.”
왕전이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혁련천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필이면 이때에…….’
정도맹의 고수들은 생강시라는 존재를 모를 것이다.
붙어보고 당해 보기 전엔 적용백이라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제아무리 적용백이 있다고 해도 최악의 경우 몰살을 당할 수도 있다.
난감했다. 정도맹의 고수들이 죽어 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도와주려니 계획이 어긋나게 된다.
혁련천후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이미 흑야는 사련의 본단으로 스며들고 없었다. 백여 장 밖에서 사련의 고수들이 바람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슬쩍 미간을 찌푸린 그가 북궁천소 등을 돌아봤다.
“조부님과 나, 그리고 흑야만 사련의 본단을 맡겠다. 너희들은 가서 저들을 도와줘야겠다.”
“예에?”
“유격전은 숫자가 적을수록 효과가 높은 법, 너희들은 상황을 봐서 여의치 않으면 우리를 도울 생각은 말고 곧장 장원으로 후퇴하도록 해. 사로께서도 정도맹을 도아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마사로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생의 숙적이었던 정도맹이 아닌가. 그들을 도와주려니 내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몸을 날렸다.
둘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살로가 얼굴 근육을 실룩거리며 몸을 돌렸다.
“빌어먹을! 정파의 아해 놈들을 도와줘야 하다니!”
“퉤! 어쩌겠습니까. 신마성주의 부탁이니 그래야 할 수밖에요.”
장용백이 투덜거리며 대도를 어깨에 걸쳤다.
조윤등도 사련의 본진으로 사라져가는 혁련천후와 혁련강을 지켜보다가 어쩌겠냐는 표정을 하며 돌아섰다.
북궁천소가 정도맹의 고수들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저것들은 당최 도움이 안 되네.”
“그만 하고 가서 돕자. 주공의 명이 아니냐.”
“간다. 간다고. 망할 놈아!”
쾅!
북궁천소가 신경질적으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조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왕전이 그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몸을 날렸다.
“더 적게 죽이는 놈이 술 사기다.”
“그거 좋지!”
쾅!
“빌어먹을 놈들!”
다른 이들도 이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 * *
꽝!
“욱!”
생강시와 일격을 섞은 관승이 묵직한 신음성을 토해 내며 뒤로 주춤거렸다.
두 눈이 불신으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단 세 번에 걸쳐 충돌을 했을 뿐인데,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상대임을 온몸으로 깨달아 버렸다.
그때였다.
“조심하게! 이들은 전설에 나오는 마물, 생강시네!”
“생강시!”
적용백의 음성이 정도맹의 고수들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역시 신기수사란 별호가 그냥 붙은 것이 아니었다. 한번 겪어보고는 대번에 생강시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었다.
관승은 비로소 일방적으로 밀려 버린 자신을 이해했다.
“위험하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울렸다.
생강시 하나가 백리관의 뒤쪽에서 검을 뿌리는 모습에 모두는 기겁을 했다.
피할 수 없는 극히 짧은 거리였다. 검을 막아 낸다고 해도 백리관의 수준으론 최소한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뒤로 몸을 빼거라! 어서!”
백리추가 몸을 날리려는 순간!
꽝!
백리관을 덮쳐 가던 생강시를 향해 섬광이 날아들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생강시의 몸이 일순 거대한 불꽃에 휩싸였다.
뒤이어 날아든 새파란 강기가 생강시의 목을 삭둑 자르고 지나갔다.
“썩을 시체 주제에!”
북궁천소가 그 자리에 내려섰다.
뒤이어 조윤등이 속속 떨어져 내리자 정도맹의 고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신마성이다!”
“오왕께서 오셨다!”
생강시로 인해 위기에 처했던 군웅들은 북궁천소 등이 나타나자 천군만마의 지원을 받은 듯, 두려움을 걷어 내며 전의를 불살랐다.
조윤이 적용백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젊은 아이들은 뒤로 물리는 게 좋겠습니다.”
“고맙소! 도움을 주려다 오히려 짐이 되었으니, 면목이 없소!”
“별말씀을.”
적용백의 얼굴은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이봐!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 있어라.”
관산악이 큰 소리로 청년 고수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청년 고수들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뒤쪽으로 우르르 물러났다.
끝까지 나웅의 옆에 섰던 적용유리도 어쩔 수 없이 남궁소미등과 함께 뒤쪽으로 물러섰다.
정도맹이 느닷없이 돌아온 나타난 북궁천소 등과 함께 전열을 정비하자 지켜보고 섰던 사요승의 얼굴에 제법 긴장감이 어렸다.
이미 그들의 위력을 눈으로 겪어 본 그는 재빨리 자신들과 그들의 전력을 비교했다.
‘장담할 수가 없다!’
북궁천소등이 돌아올 것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었던 사요승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의 곁에는 수많은 생강시가 굳건히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다만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몸의 움직임이 다소 떨어지는 생강시다.
만에 하나 북궁천소 등이 생강시를 피해 고수들만 골라서 죽이자고 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자신도 크나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본단으로 돌아가야 하나?’
사요승이 재빨리 본단을 돌아봤다.
“새끼, 넌 여기서 뒈져야지.”
왕전이 험악한 웃음을 지으며 퇴로를 차단하고 나섰다. 그 옆에 진천과 사공진무가 싱글거리며 자신을 보고 웃어 대자 사요승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생강시를 앞에 두고도 저토록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새삼 위기감이 올라왔다. 사요승이 재빨리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방원진을 펼치고 생강시들이 외벽을 맡는다!”
처처척!
사련의 고수들이 둥근 원형으로 대열을 바꾸었다. 동시에 바깥쪽에 생강시들이 포진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지난날, 신마성의 장원에서 괴량이 펼쳤던 전술과 흡사했다.
“시체가 언제까지 네놈들을 지켜 줄지 두고 보마.”
붕! 붕!
장용백이 대도를 허공에서 돌리며 서서히 다가갔다.
천마사로도 서서히 접근을 시작했다. 한편, 그들을 지켜보던 신기수사 적용백과 정도맹의 고수들은 장용백과 천마사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골적으로 기세를 드러낸 그들의 전신이 강맹한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적용백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신마성에 저런 고수들이 더 있었단 말인가?’
오왕과 함께 있으니 당연히 신마성의 인물이리라.
적용백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정도맹의 고수들은 새삼 신마성의 저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먼저 갑니다!”
“조심하게!”
장용백이 먼저 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를 천마사로가 따랐다. 하지만 그들보다 북궁천소와 왕전 등이 더 빨랐다.
꽈광!
“모조리 죽여 주마. 사련의 잡종들!”
* * *
사련의 본단으로 숨어든 흑야에게 가장 먼저 걸려든 자는 괴량이었다.
괴량은 생강시 둘의 호위를 받으며 주변을 살피며 다가오고 있었다. 성곽을 넘어 숨어든 혁련천후와 흑야등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작정하고 숨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존재들이 그들이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땐 용케 살아서 돌아갔다만 오늘은 어림도 없다.’
흑야는 괴량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검이 소리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괴량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서면 무참히 그의 목을 베어 낼 검이다.
‘지옥으로 꺼져라.’
흑야가 움직였다.
허공이 반으로 갈라지는 현상에 이어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서걱!
생강시의 호위를 지나치게 믿었던 괴량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꼬꾸라졌다.
생강시가 흑야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흑야는 그 자리에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자체판단이 거의 유아기적 수준인 생강시들은 명령을 내리는 괴량이 죽어 버리자 그 자리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어느새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한 흑야가 생강시들의 움직임을 응시하며 싸늘히 웃었다.
‘결국, 조종을 하는 놈들만 없어지면 쓸모없는 것들이라 이거군.’
산 자들을 이용해 만든 것이라 자체적인 판단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서 허둥대는 꼬락서니를 보자 그것도 아닌 게 확실했다.
흑야는 다른 곳을 살폈다.
장대한 체구를 지닌 고수 하나가 역시 생강시를 대동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두 번째 제물이군.’
스슥!
흑야는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또 하나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사련의 무력 서열 이십 위권에 들었던 우상호라는 자가 흑야의 두 번째 사냥감이었다.
쐐애액!
생강시들이 공격이 시작된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는 검을 휘둘렀다.
미처 피하지 못한 흑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뒤틀며 날아드는 검을 후려쳤다.
꽈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