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38화 (136/425)

# 138

<귀환무사 138화>

“후후!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나치게 담담한 혁련천후의 태도에 갈무극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다.

지금 자신들의 전력은 사련의 핵심, 제아무리 오왕이 포함된 신마성이라도 결코 당해 낼 수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빙궁에 목줄을 내놓더니 자존심도 팔아먹은 놈들이군.”

갈무극이 장용백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발끈한 장용백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러나 상황의 무거움에 움직이진 않았다. 그 누구보다 마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살로의 두 눈은 지독한 한기를 담고서 갈무극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적어도 떨어진 떡고물을 주워 처먹으려 꼬리를 흔드는 개보다는 낫지.”

장용백의 말이 꽤나 통쾌했는지 천마사로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혁련천후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갈무극의 시선이 그를 향해 서서히 돌아가며 잔혹한 빛을 품기 시작했다. 혁련천후의 좌우를 여덟이 호위하듯 늘어섰다. 혁련강은 여전히 뒤쪽에서 한발 물러난 태도를 보였다.

혁련천후가 갈무극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그만 시작하지.”

“너희 신마성이 손톱만 한 명성을 얻었다만 그것도 오늘로서 마지막이 될 것이다.”

“명성을 얻는데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지난날의 패배를 들먹이자 갈무극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갈무극이 눈짓을 보내자 사련의 고수들이 생강시를 선두로 해서 천천히 접근을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발산되는 칙칙한 기운에 마교의 고수들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스르릉!

혁련천후도 검을 뽑았다.

치르륵!

검 끝에 맺힌 빛줄기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광동에 파견되었던 정도맹의 고수들은 한 줄기를 이루어 중원의 중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라진 용성의 고수들, 그들이 산개하여 중원의 중심으로 스며들었다는 맹의 정보 때문에 서둘러 길을 떠난 그들은 섬서의 초입에 이르러 있었다.

선두에서 이동 중인 신기수사 적용백은 주변을 둘러보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좌우로 적용세와 관승을 포함한 정도맹의 수뇌들이 호위하듯 포진하고 있었는데, 도천세와 탁철의 모습도 보였다.

탁철은 혁련천후와 신마성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 때문인지 인상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도천세가 그런 탁철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옅게 머금었다. 뭔가 둘만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가. 탁철은 사부의 시선을 철저히 외면했다.

관승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곳을 넘어가면 사련의 본단과 중앙 지부가 있습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회하시는 것이…….”

미간에 가벼운 주름을 잡은 적용백이 즉답을 못했다. 적용세가 관승을 보며 물었다.

“우회해서 돌아가면 시간이 어느 정도 지체되는가?”

“이틀 정도 더 걸립니다.”

“흠! 이틀씩이나…… 짧은 시간은 아니구먼.”

적용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적용백을 돌아봤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그를 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수뇌부들의 시선이 모조리 자신에게 몰려 있자 적용백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냥 가던 대로 가는 것이 좋겠네. 사파의 무리들이 두려워 길을 돌아갈 순 없는 법일세. 각각의 부대를 새롭게 편성하여 혹시 모를 사태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시게.”

관승이 염려스러운 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이란 겪어 볼수록 단련되는 것이니 내 말대로 하시게.”

청년들을 흘긋거린 적용백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그렇게 말하자 관승은 어쩔 수 없이 뒤쪽으로 걸어갔다. 짧은 시간에 부대는 굵은 줄기로 네 개의 부대로 나뉘었다. 이동 도중에 자신의 문파로 돌아간 고수들을 제외하고서도 총인원은 백을 넘어갔다. 이 정도면 상당한 전력이다.

그럼에도 적용백을 위시한 모두는 사련과의 부딪힘을 다소 염려했다. 사련은 결코 만만치 않은 강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마성과의 전투에서 상당한 전력을 상실했다고 들었네. 그러니 그들 전부와 맞닥트리는 경우만 없다면 괜찮을 것이야.”

“상당한 사상자를 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천하삼세의 하나라는 사련입니다. 척후조를 먼저 보내어 길을 살핀 후,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적용세의 말에 적용백은 그것까지는 말리지 못했다. 결국 질풍대주 관표와 대원 몇이 본대보다 반 시진 거리를 두고 먼저 출발했다.

휴식을 취한 그들은 반 시진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신마성이 생각보다 엄청난 전력으로 보입니다. 사련의 주축들과 벌인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적용세가 옆을 따르며 말을 건넸다.

“그 성주라는 사람은 측정이 불가할 정도의 고수가 분명하겠지. 가까이서 보았지만 결코 기운을 드러내지 않더군. 어쩌면 전투를 벌일 때도 전력을 드러내지 않은 듯하네. 그 막강했던 용성의 기마부대를 고작 다섯이서 제압했어. 그 정도면 우리 오성이라도 불가능한 것이지. 허허! 일존인들 가능할까 하는 의문마저 드는구나.”

“그들을 보니 용성의 기마부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지닌 듯 보였습니다. 필시 무력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제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아무리 오왕을 거느리는 자라고 해도 일존에 견주겠습니까?”

“다른 무엇이 있다고 가정해도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지.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사련과 전면전을 벌여도 지지 않을 게다.”

적용백이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그렇게 강한 고수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뱉은 말일 수도 있었다.

비록 도움을 받은 처지라고는 하지만 정도맹이 아닌 다른 세력이 강해지는 것이 꺼림칙했다. 관승이 빠르게 따라붙으며 끼어들었다.

“빙궁의 고수들도 중원으로 스며들었다고 가정하면 차후, 대응 방식에 대해 상당한 고민이 우려됩니다.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아낼 재간이 없잖습니까?”

모두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사실 정도맹의 입장에서 그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무리를 이루어 쳐들어온다면 막아 내기가 더욱 수월하겠지만 소수 전력들이 산개하여 이동한다면 그들의 위치를 추적해 낼 방도가 없었다. 천하제일의 첩보망을 지닌 비영전이 있다 한들 그건 무리였다.

적용백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겠지. 각 문파들에 고수들을 돌려보내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야.”

“고수들을 말입니까?”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맹의 본단이 있는 섬서가 될 게 확실하네. 그곳까지 오려면 상당한 시간과 거리가 소비됨은 당연하지. 그 와중에 중간 중간 구파나 오대세가들과의 부딪힘은 피할 수 없을 테고, 당연히 소규모라지만 싸움이 일어남은 필연일 게야.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최선일 테지만 그게 어디 우리 마음처럼 되겠는가.”

“그들이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해서 최단 거리로 섬서로 들어와 세를 집결시켜 본단을 친다면 전력의 공백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그 부분을 알면서도 일부 고수들은 돌려보내야지. 맹의 근간이 되는 그들이 해를 입는다면 그 자체로 맹이 피해를 입는 것과 같으니…… 허허! 맹주가 골머리를 썩겠구먼.”

적용백이 씁쓰름한 미소를 지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들의 이동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앞을 걸어가는 수뇌부들의 고민과는 달리 뒤쪽에서 따라가는 청년 고수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난세에 영웅이 되고자 하는 젊은 혈기 탓이다.

더욱이 천하에 이름 높은 미녀고수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어깨에 잔뜩 힘까지 들어가 있었다.

적용유리는 여전히 나웅과 함께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궁소미와 황보수란, 그리고 아미의 여제자들이 이동하고 있었고, 그녀들의 좌우를 각 문파의 청년 고수들이 흘긋거리며 이동 중이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척후조로 먼저 출발했던 관표가 돌아왔다. 얼굴은 제법 굳은 기색이다.

“표정을 보니 뭔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신마성과 사련이 붙었습니다!”

“뭣이!”

모두가 크게 놀랐다. 이동 중이라 신마성의 공격을 모르고 있었던 그들은 관표의 보고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적용백이 다시 물었다.

“진정 신마성과 사련이더냐?”

“틀림없습니다. 암흑대제까지 출격했습니다.”

“전면전인가?”

“대규모 집단전은 아니지만 두 문파의 최정예 고수들이 모조리 몰려들었습니다. 신마성은 신마성주와 오왕, 그리고 처음 보는 몇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만, 하나같이 엄청난 고수들로 보였습니다.”

적용백이 수염을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두 번째 전투라면 문파의 존립을 놓고 제대로 붙었다고 봐야겠구나. 허어! 장소가 사련의 본단이 위치한 곳이라면 신마성이 먼저 움직였단 소린데, 신마성이 먼저 선공을 가할 만큼 자신이 섰단 말인가?”

첫 격돌은 사련이 북쪽으로 이동 중에 벌어졌었다고 전해졌다. 상황을 자세히 알 순 없었지만 전면전으로 보기엔 조금은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완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적용백이었다.

그가 모두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세나!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그가 성큼 걸음을 옮기자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적용세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아이들이 보고 있소. 은혜를 입은 우리가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정도가 아니오. 어차피 사련도 언젠가는 우리와 검을 섞을 자들이니 가서 신마성을 도와주는 것이 좋겠소.”

그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빠르게 따라붙어라!”

관승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뭔가를 직감한 청년 고수들의 눈빛에 활기가 돌았다.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용성과의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맛봤던 그들이지만 젊은 혈기와 영웅심으로 그때의 처절함 따위는 이미 지워 내고 있었다.

* * *

한 시진, 싸움이 시작되고 흐른 시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건만 죽은 자는 사련의 고수 일곱이 전부였다.

그만큼 사련의 정예는 강력했다.

비록 하나하나를 비교하면 다소 밀리는 그들이었으나 수적인 우세를 적절하게 이용하며 백중세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백중세를 이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생강시였다. 무지막지한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생강시의 전신을 두른 호신강기를 뚫어내지 못하고 번번이 튕겼다.

엄밀히 말하자면 강기는 뚫어 냈지만 이미 파괴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생강시의 육신을 자르지 못한 것이다.

“빌어먹을!”

천하의 북궁천소가 당혹감을 비쳤다.

사련의 본단과 지부의 중간지점까지 밀려난 사련의 고수들은 곳곳에서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는 오왕과 다른 고수들을 절묘한 연수 합격으로 적절하게 방어를 해내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빠르게 전장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가 움직이면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는 이곳에서 쓸데없는 힘의 낭비는 피하고자 작정했다. 저들을 따로 분산시켜 각개격파를 노리는 것이 훨씬 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들을 넘어 사련의 본단으로 들어간다!]

혁련천후의 전음이 모두의 귓속을 울렸다. 이미 사전에 짜 놓았던 계획이었다.

모두는 지체 없이 앞을 막아선 사련 고수들의 위를 넘어 사련의 본단이 있는 곳으로 질주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갈무극이 두 눈을 치뜨며 외쳤다.

“놈들이 본단으로 간다! 막아라!”

그러나 작정하고 몸을 날리는 그들을 막아 낼 방도는 없었다. 치고 빠지는 유격전이 펼쳐졌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난전을 유도하면 개개인의 무공이 떨어지는 사련이 더욱 불리해질 것은 당연했다.

“역시 놈들은 걸음이 느리군요!”

조윤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생강시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그들이 제일 뒤쪽에서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괴력을 지닌 그들의 약점은 바로 속도에 있었다.

“본단으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생강시 제조에 관한 모든 시설을 부수고 나와야겠지.”

“아예 이번 기회에 놈들의 근거지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럴 생각이다.”

조윤의 물음에 혁련천후는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몸을 틀어 우측으로 질주했다.

모두가 그의 뒤를 쫓았다. 지금껏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던 혁련강은 뒤를 가끔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가능하면 저들만큼은 반드시 제거하는 것이 좋겠구나! 묵련이 움직일 때, 저 생강시는 꽤나 골칫거리가 될 테니까.”

“천살강기 외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극성이 아니라도 하나씩 제거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일단 적당한 때, 내가 돕겠다.”

“알겠습니다.”

달리는 와중에도 천마사로와 장용백의 눈은 혁련강을 향해 있었다.

매우 못마땅한 빛이 다분했다. 물론 싸우지 않고서 물러나 있었던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비록 빙궁에 패해 자존심이 떨어질 때까지 떨어진 그들이지만 사련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던 존재들, 작전을 모르니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대체 저자가 누구이기에 신마성주가 저토록 공손하게 대한단 말인가.’

장용백은 혁련강을 보며 내심 의아해했다.

혁련천후가 그에게 공경스럽게 대하는 것으로 보면 예사로운 신분이 아닐 게 분명했다. 물어보자니 그것도 이상해서 꾹 눌러 참고는 혁련강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실, 신마성의 수뇌부들 말고는 그가 일존 견오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신마성의 하위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휘이익!

모두는 섬전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달린 끝에 전방에 거대한 건축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곳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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