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37화 (135/425)

# 137

<귀환무사 137화>

갈무극의 호언으로 둘의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때 대전의 문이 열리며 인영 하나가 빠르게 들어섰다. 사요승이 눈빛으로 꾸짖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감히 이곳을 함부로 들어서는 것이냐!”

“시, 신마성이 쳐들어온답니다!”

그 말에 모두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듣게 되면 모두가 다시 묻게 된다. 사요승이 다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신마성이 본련을 치러 출진했다고 전서가 날아들었습니다!”

쾅!

“뭐야!”

갈무극이 탁자를 두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며 일어섰다. 수염까지 곤두세운 그가 고리눈으로 불길을 뿜어냈다.

“이놈들이 감히!”

“대제! 뭔가 착오가 있는 듯합니다. 제아무리 신마성이라도 단독으로 본련을 치다니요. 그 자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순 없습니다. 하니 그만 분을 가라앉히시고 한 번 더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착오는 무슨 착오란 말이냐! 전서가 날아들었다 하지 않느냐!”

사요승이 정보를 전한 인영에게 물었다.

“전서가 그곳을 경계하던 아이들에게서 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금양대주가 아닌 규보에게서 온 것인데, 분명 본련의 전서지가 사용되었습니다.”

사련은 혹시 몰라 전서지에 그들만의 문양을 새겨 놓았다. 워낙 첩보전이 횡횡하는 작금인지라 혹시 모를 조작을 피할 요량으로 특수 문자까지 넣은 사련이다.

사요승이 다시 물었다.

“이놈아! 놈들이 본련을 치러 가는 것을 어찌 알았단 말이냐? 그놈들이 ‘우리는 지금 사련을 치러 간다!’라고 소리라도 쳤단 말이냐! 금양, 이놈은 대체 어디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기에 이따위 되먹지도 않은 정보를 보낸단 말이냐!”

“저야 그것까지는…….”

사요승의 말이 옳았다. 갈무극이 뭔가를 느낀 듯, 분을 삭이고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때 또 다른 자가 대전으로 들어섰다.

“큰일 났습니다! 섬서 지부가 신마성의 무리들에게 기습을 받아 완전히 붕괴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놈들이 중앙 지부를 치러간다고 사전 경고까지 보냈다고 합니다!”

앉았던 갈무극의 장대한 육신이 눌러 놓았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섰다.

오보라 화를 냈던 사요승도 굳은 얼굴로 소식을 전한 자를 보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갈무극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뒤틀렸다.

“이런 건방진 놈들 같으니! 뭐라! 사전 경고? 오냐! 이참에 모조리 씨를 말려 주마!”

철컥!

벽에 걸린 대도를 움켜 쥔 갈무극이 성큼 대전을 빠져나가자 모든 수뇌들이 그의 뒤를 쫓았다.

제5장 신마성과 사련의 재격돌

투투툭!

시뻘건 불꽃을 피워 내며 타들어 가는 잔해들이 생의 마지막을 알리기라도 하듯 크게 요동쳤다.

콰다당!

균형을 잃어버린 건물이 기어코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불길을 하늘로 뿜어 냈다. 사방을 뒤덮은 화마의 잔해들이 무릎을 꿇은 무사들의 전신을 덮었다.

“끝났습니다!”

북궁천소가 주변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감히 사련을 건들고도 네놈들이 살 성싶으냐!”

무릎을 꿇은 자들의 가운데서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다.

사련의 중앙 지부를 책임지고 있던 봉기라는 자였다. 그는 오연하게 선 혁련천후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시작은 너희, 사련이 먼저 했다.”

그가 몸을 돌렸다.

혁련강과 마교의 고수들, 그리고 오왕과 관산악이 차례로 뒤를 쫓았다.

어쩐 일인지 진천과 사공진무는 그 자리에 남아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진천이 씩 웃으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목숨은 살려 주지. 하지만 다시는 칼을 잡지 못할 거야.”

그의 손에서 하얀 빛줄기가 생겨나며 서서히 여러 줄기로 갈라졌다. 옆을 지키고 선 사공진무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진천의 묘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무사들의 수만큼 생겨난 빛줄기가 일제히 각각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봉기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으나 이내 얼굴을 구기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단전에서 엄청난 통증이 솟아나며 전신의 모든 힘을 앗아갔다. 다른 사련의 무사들도 모두 그와 같았다.

“오늘로서 네놈들은 강호의 무사가 아닌 일반 백성이 된 거야. 알겠어? 혹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강도질을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그러다간 영영 다리 병신이 될 테니까. 앞으로 착하게 잘들 살아 봐.”

진천이 손까지 흔들어 주고는 사공진무를 보며 웃었다.

“네놈이 준 영단이 제법 효과가 있는데, 내 환술이 더 위력적이 된 것 같단 말이야.”

“나중에 톡톡히 갚아라.”

“가자. 또 착한 백성들을 만들러 가야지.”

둘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화르르!

우르릉!

화염에 휩싸였던 마지막 전각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 사련의 지부는 그 끝을 다했다.

콰르르!

사련의 거점 한 곳을 쓸어버린 일행들은 섬서의 끝자락에 이르러 잠시 이동을 멈췄다.

“저곳입니다. 사련의 분타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중앙 지부라는 곳입니다.”

담대소천이 손으로 산의 초입에 제법 큰 규모로 세워진 건물을 가리켰다. 이 층 규모로 세워진 그곳엔 상당수의 인물들이 검과 도끼 등을 꼬나 쥐고서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놈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소식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조윤이 창을 매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시작할까요?”

이미 손에 은빛 대부를 쥔 북궁천소가 물었다. 혁련천후가 혁련강과 천마사로를 차례로 돌아봤다. 마지막 시선은 살로에게 고정되었다.

“가급적 살상은 금해 주셨으면 고맙겠소.”

이미 그들은 몇 곳의 사련 지부를 쓸어버렸다. 그 와중에 살로가 가장 많은 사련의 고수들을 죽였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살로가 얼굴 근육을 실룩거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어차피 죽여야 할 놈들인데 어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게요.”

“모조리 다 죽이면 그들과 다를 게 없소.”

“크흠! 성주의 뜻이 그러하다면 알겠소. 대신 덤비는 놈까지는 살려 주라는 말씀은 마시오.”

시큰둥한 살로의 태도에 혁련천후는 담담히 웃어 보였다.

“흐흐! 나중에 먹음직한 먹이들은 회를 쳐도 괜찮지요? 주공!”

왕전의 물음에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죽여야 할 놈들은 죽여야겠지. 다만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를 버리는 자들은 살려 주도록.”

살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빛으로 혁련천후를 쳐다봤다.

‘어째 교주를 쏙 빼닮았군.’

그랬다.

혁련천후와 뇌어양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살로는 젊은 그가 한편으로 못마땅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동질감이 생겨남을 느끼고는 스스로 당황했다. 요즘 들어 자신이 점점 뇌어양을 닮아 가는 듯했다. 살로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마교는 패도를 추구하는 마인들의 대지, 약해져선 곤란하지. 암!’

스스로 의지를 다잡은 그는 검을 뽑아 들고는 가장 먼저 사련의 분타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속내를 대충 짐작한 장용백이 히죽 웃으며 다른 삼로를 쳐다봤다. 그들도 어색한 표정이기는 살로와 같았다.

“가시죠.”

장용백이 손을 앞으로 뻗는 시늉을 하자 나머지 삼로도 살로의 뒤를 쫓았다. 혁련강은 천마사로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만 하면 꽤나 도움이 될 자들이다.]

[살기가 지나친 노인들입니다.]

[저 정도의 고수들이라면 살기를 지우는 것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척 쉬운 법, 묵련과의 싸움을 대비해서라도 저들을 잘 다루는 것이 좋을 게야.]

[알겠습니다.]

천마사로 정도면 상당한 전력이다.

묵련을 몰랐으면 모르되, 알았으니 전력 보강이 시급했다.

물론 그들이 전면에 나서면 정도맹도 함께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자신들은 자신들이다.

장원에 남아 있는 뇌어양을 비롯해 모처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마교의 고수들 역시 꽤나 중요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은 뇌어양과의 협약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일단, 사련을 치는 것에만 집중하자꾸나.]

둘은 이내 천마사로의 뒤를 쫓아 걸음을 놓았다.

* * *

이미 신마성의 공격을 들어서 알고 있던 사련 중앙 지부의 고수들은 작은 기척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주변을 철통같이 경계했다.

조금 전 내린 비로 인해 대지는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뿌연 수증기가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정문을 경계하던 삼십 대 중반의 무사가 동료에게 물었다.

“공기가 칙칙한 것이 꼭 무슨 일이 터질 것 같군. 그나저나 본단에선 지원군을 보내 준다고 하더냐?”

“그걸 내가 어찌 알겠냐. 다만 지부장님이 전서를 보냈으니 무슨 조치라도 있겠지. 설마 우리가 죽게 내버려 두진 않겠지. 그동안 우리 지부가 세운 공이 혁혁하니 반드시 지원군을 보내 주든가 아니면 다른 조치라도 취해 주실 거다.”

“젠장! 오왕이 모조리 몰려오면 우린 그냥 뒈지는 거요.”

“오왕뿐이겠냐? 신마성주가 오면 대제께서 오시기 전엔 방법이 없다고 봐야지. 어쩌면 대제께서도 힘들 수도 있고.”

“이 자식이! 너 그러다가 신마성이 오기도 전에 목 날아간다.”

동료의 나무람에 무사는 입을 다물고서 주변을 살폈다. 상관이 들었다면 말따나 목이 잘리고도 남을 위험한 발언이었다.

“네, 말이 맞다.”

그때 섬뜩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둘의 전방에 사람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북궁천소가 히죽 웃으며 둘을 쳐다봤다.

“누, 누구냐!”

“누구긴, 너희들을 착한 백성으로 만들어 줄 사람이지.”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모두 전투준비!”

곳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짧은 시간에 지부의 모든 고수들이 대거 몰려 나왔다. 그것으로 보아 그들이 얼마만큼 대비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고수로 여겨지는 자가 무리들의 선두에 서서 일행들을 굳은 표정으로 직시했다. 지부장 곽효란 자였다.

“신마성에서 왔느냐?”

제법 무게를 잡고 외치자 북궁천소가 앞으로 나서며 히죽 웃었다.

“새끼! 꼬락서니를 보니 대가린가 본데, 그 건방진 주둥이 때문에 넌 가장 먼저 죽어야겠다.”

붕! 붕! 붕!

북궁천소가 은빛 대부를 빙빙 돌리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목숨으로 지부를 사수한다!”

곽효의 명이 떨어지자 오십에 달하는 사련의 고수들이 일행들을 에워쌌다. 대부분이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천하의 싸움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으니 긴장하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다.

“지금 칼을 버리면 곱게 놓아준다. 아니면 각오들 하라고.”

왕전이 마지막 경고를 하며 나섰다. 그러나 사련의 고수들 중, 무기를 버리는 자, 아무도 없었다.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죽음으로 그들을 막고자 했다. 사련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그동안의 가혹한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보다 더 앞선 것이다.

혁련강이 뒤로 슬쩍 물러섰다. 혁련천후도 물러섰다.

“사로께선 잠시 쉬어도 되실 것 같소.”

혁련강이 천마사로를 보며 옅은 미소를 보냈다.

그 말에 천마사로도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수준을 가늠해 보니 오왕을 비롯한 여덟과 장용백만 뛰어들어도 쉽게 제압할 수준으로 여긴 것이다.

“죽여도 되오?”

장용백이 혁련천후를 보며 물었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가로젓자 장용백은 입맛을 다시고는 대도를 뽑아 들었다.

곽효의 얼굴이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 꿈틀거렸다. 자신들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그들의 태도에 그가 지녔던 최소한의 자존심이 얼굴에 드러났다. 분노였다.

“꼴에 자존심은 있었던 새끼군. 너는 내가 제대로 인간을 만들어 주마.”

장용백이 다짜고짜 곽효를 덮쳤다.

동시에 북궁천소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사련의 고수들, 한가운데로 날아들며 전투는 시작되었다.

퍼퍼퍽!

“크아악!”

싸움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일방적인 구타가 펼쳐졌다. 비록 사련의 일개 지부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상황으로 몰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오십의 고수들 중, 절정에 든 자만 십여 명이 넘어갔다. 비록 일대일로는 도저히 상대할 재간이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적절히 대열을 유지하며 싸운다면 상당한 시간을 벌 수도 있을 전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왕에 대한 선입감에 지레 몸이 굳어 있었다. 그것이 전투의 향방을 압도적으로 몰아가는 요인이 된 것이다.

“내가 천산의 폭뢰도 장용백이다!”

장용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검의 귀신들만 모였다는 마교 검마전의 전주인 그는 특이하게도 대도를 무기로 사용한다.

괜히 폭뢰도가 아니었다. 포탄이 작렬하는 듯, 파괴적인 도강이 장용백의 대도에서 불을 뿜어 댔다.

꽝꽝꽝!

어지간한 고수라 인정받던 곽효가 수비에 급급하며 물러서기 바빴다.

하지만 장용백은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다. 맹호를 연상시키듯 험악한 그의 얼굴이 구겨지며 바닥을 차고 올랐다.

“감히! 사련의 졸자 새끼가!”

“흥! 빙궁에 작살이 난 주제에!”

곽효가 지지 않고 받아쳤다. 비록 수세에 몰렸지만 기백만큼은 절대 기죽지 않는 곽효였다. 지켜보던 혁련강의 먼 곳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력이 오는 모양이구나.”

혁련천후도 같은 곳을 응시하고는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사련의 고수들, 암흑대제 갈무극을 비롯한 사련, 최정예들이 지척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생강시의 숫자만 무려 스물에 달했다. 그들은 전과는 달리 청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한 번 경험을 해 봐서인지 날아오는 자세만을 가지고도 그들이 생강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쿵!

갈무극이 땅을 구르며 내려섰다.

천마사로와 모두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장내를 쓸어 보는 갈무극의 두 눈이 대단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와 혁련천후의 시선이 부딪혔다.

“네놈이 신마성의 성주인가 보군. 가소롭구나! 감히 본련에게 먼저 수작을 걸어오다니…….”

“저번의 결과를 잊었나 보군. 가소롭다는 표현은 내가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땐 네놈들을 얕보고 그랬다만 오늘은 살아서 돌아가는 놈은 절대 없을 것을 약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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