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귀환무사 130화>
제2장 재회
주변을 둘러본 곡영은 꽤나 쾌적한 분위기에 내심 감탄했다.
‘흠! 여느 무파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군.’
딱히 넘쳐 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건물 곳곳에서 전해졌다. 곡영은 자꾸만 긴장감이 올라오자 몰래 심호흡을 했다.
곡영을 중심으로 모두는 탁자의 좌우로 앉아서 혁련천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혁련천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곡영을 비롯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청룡단원들이 일시에 굳어졌다. 당대 천하를 뒤흔드는 신마성주를 보고 있자니 절로 숨이 막혔다.
“성주를 뵙소이다.”
“어서 오시오.”
곡영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예를 취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맞이한 혁련천후는 모두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하고는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맹주의 서신입니다.”
곡영이 재빨리 서찰을 내밀어 건넸다.
서찰을 읽은 혁련천후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담대소천에게 서찰을 건넸다.
서찰을 읽은 담대소천이 혁련천후를 쳐다봤다. 잠시 찻잔을 입으러 가져간 혁련천후가 곡영을 담담히 바라봤다.
“용성과 빙궁을 감당하기에 벅찰 텐데, 본 성을 지원하겠다는 맹의 뜻에 감사드리오. 하지만 우리들만으로 사련을 감당할 정도는 되니 맹과 맹주의 뜻만 감사히 받겠소.”
“용성과의 전투에서 도움을 받은 것에 보답하는 것이니 부디 거절치 말아 주십시오. 비록 보잘것없는 아이들이지만 꽤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곡영의 어조는 간곡했다.
곡영을 흘긋거린 혁련천후는 좌우로 앉아 있는 청룡단의 무사들을 쳐다봤다.
지금 정도맹은 저들을 사련과 싸우고 있는 자신들에게 지원군으로 보내겠다는 서찰을 전해 왔다.
모든 대원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긴장감을 드러냈던 젊은 무사들은 이내 상기된 표정으로 뭔가를 갈망하는 빛을 품고 있었는데, 자신들을 받아 달라는 것임을 혁련천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약삭빠른 자였군.’
나백의 심중을 짐작하고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도와주는 것보다는 자신들과 적당한 선을 연결시켜 놓을 목적이 다분했다.
청룡단은 정파의 미래를 이끌어 갈 유망주들의 집합체다. 그들을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선 자신에게 보낸다는 것은 신마성이 정도맹에게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확연하게 보여 주고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가 담대소천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 담긴 뜻을 이해한 담대소천이 청룡단원들을 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들었다시피, 본 성은 지금 사련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것은 곧, 그대들도 그 전쟁의 한복판에서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 그래도 본 성에 합류하고자 하는가?”
그의 말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청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청룡단을 맡고 있는 무당의 속가제자 이전(李典)입니다! 배우기를, 정의를 위해서 죽는 것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희 청룡단원 모두는 사련과의 전쟁에 신마성과 함께하고자 이곳을 찾았습니다. 성주께서는 부디 저희들 받아 주시길 소원합니다!”
무당이라는 말에 혁련천후의 눈가에 살짝 이채가 생겨났다.
짙은 눈썹에 총기가 흐르는 눈동자는 자신이 알고 있던 무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이익을 좇는 타락한 집단이 그의 뇌리에 남아 있는 무당의 모습이었다.
아니 딱 한 명은 예외였다.
그 옛날 자신의 벗이었던 명진은 진정한 도인의 기질을 타고 났었다. 그러한 명진과 이전은 매우 닮아 있었다.
혁련천후가 곡영을 돌아봤다.
“본인들의 뜻이 저러하니 정도맹의 성의를 고맙게 받겠소. 단, 우리와 함께하는 동안은 신마성의 규칙에 따를 것이니 맹주께 그러한 점을 전해 주셨으면 고맙겠소.”
“감사합니다!”
대답은 청룡단원들이 했다.
모두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며 들뜬 표정들을 했다. 씁쓸함을 지우지 못하는 혁련천후와 담대소천을 보며 곡영은 미소 지었다.
‘이렇게 되면 이들과 맹의 관계는 동맹이자 우군이 되는 것인가? 허허! 엄청난 힘을 우군으로 두게 되었으니 맹의 경사로다.’
정도맹이 노렸던 것을 쉽게 얻어 내자 곡영은 기분이 좋았다. 그때 지객청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장용백이었다.
“정도맹에서 오셨소이까?”
“누구……?”
“마교의 검마전주 용백이오. 나 맹주께 전할 서신을 가져왔으니 돌아가시면 전해 주시기 바라오.”
“헉!”
“마, 마교.”
청룡단원들의 얼굴이 급변했다.
비록 한시적인 동맹을 맺었던 마교라고는 하지만 천년을 이어 온 생사대적의 수뇌부 중 하나가 눈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어려서부터 마교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아갈 수 없는 마인들이라 배워 왔지 않은가. 하니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혁련천후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당분간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으니 그 부분도 전해 주시오.”
곡영이 대답을 못했다.
이미 신마성과 마교가 사련을 상대로 함께했음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그였다.
이미 세상은 두 집단의 관계에 대한 억측이 난무하고 있었다. 당사자인 신마성주의 입에서 그들과 함께한다는 말을 듣자 곡영은 내심 상당히 놀라고 있었지만 내색을 할 순 없었다.
“먼 길을 오셨으니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야지.”
혁련천후가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껏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이 곡영을 안내해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청룡단원들도 함께하고자 했으나 담대소천이 그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청룡단이 간 곳은 신마각의 무사들이 기거하는 건물이었다.
환영 인사조차 없이 대뜸 거처부터 배정하는 것에 다소 의아함을 보였던 청룡단원들은 패도적인 기운을 풀풀 풍겨 내는 신마각의 무사들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막 수련을 끝내고 전신을 땀으로 적신 악승이 이전을 소개받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께한다는 말씀입니까?”
담대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든 살리든 네가 알아서 맡아 봐.”
그 말을 남기고 담대소천은 물러갔다. 이전이 조금 긴장한 빛으로 악승을 쳐다봤다.
악승의 매서운 눈길이 이전과 청룡단원들을 쓸어 봤다.
“약골들이군.”
무심코 던진 악승의 말에 이전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악승의 그의 속내를 보기라도 한 듯 씩 웃었다.
“난 약한 놈들을 무척 싫어하지. 마음에 들고 싶으면 내일부터 죽도록 수련하면 돼. 물론 방식은 신마각과 동일하게 할 것이다. 오늘은 너희들의 자리 배정만 하고 모든 것은 내일부터 시작한다.”
악승과 신마각의 무사들이 땀으로 범벅이 된 육신을 씻으러 강가로 나갔다.
남은 청룡단원들이 거처를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했다.
“단주님! 저들이 용성과의 싸움에서 용맹을 떨쳤다던 그 무력 부대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직접 보니 꼭 패도를 추구하는 마인들처럼 보이는군.”
“눈빛이 하나같이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잔뜩 긴장감을 드러내는 대원을 보며 이전이 입술을 깨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고생은 사서도 할 가치가 있다. 천하의 오왕이 이곳에 계시다. 우리가 언제 그분들과 함께해 보겠나. 무사로서 좋은 기회라 여기고 최선을 다한다. 알겠느냐!”
“예!”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은 했지만 얼굴에 떠오른 긴장은 여전했다.
이전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우리는 강호의 무인이다. 무인이라면 강해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지 않겠느냐. 하니 다들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다.”
“예!”
몇몇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 * *
혁련천후는 자신의 거처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꽤 오랫동안 눈을 뜨지 않다가 창문을 통해 한 줄기 바람이 들이치자 비로소 눈을 떴다.
탁!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뜨거운 여름바람이 후끈한 열기를 동반하고서 밀려들었다.
강가에서 멱을 감는 신마각의 무사들이 보였다. 서로 업어치기를 하며 어린아이들처럼 노는 그들의 모습이 눈을 찔러 왔다. 강가로 다가가는 인물이 있었다.
관산악이었다. 웃통을 벗어젖히더니 그도 강물로 몸을 던져 무사들과 어울렸다.
피식.
혁련천후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걸렸다.
잠시 후, 진천과 사공진무도 그들과 섞였다.
천하를 뒤흔든 사련과의 전쟁을 치르고도 저들에게서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언제나 혁련강으로 인해 답답해진 가슴을 저들에게서 보상받는 자신이었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고 새하얀 얼굴이 쑥 나타났다.
영호수란이었다.
“혼자 뭐 하고 계세요?”
“무슨 일이지?”
그 무뚝뚝함에 영호수란의 밝았던 얼굴이 대번에 샐쭉하게 변했다.
“저녁 드시러 내려오시랍니다!”
쾅!
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게 닫아 버린 영호수란이 일 층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쓴웃음을 짓고서 머리를 흔든 혁련천후도 일 층으로 내려갔다.
먼저 와 있던 뇌어양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몸은 좀 괜찮으시오?”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짧은 시간 함께 싸우면서 꽤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말을 건네는 뇌어양이나 대답을 하는 혁련천후나 표정이 꽤나 밝았다. 천마사로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성주.”
혁련천후도 담담한 미소로 화답했다.
당초 정도맹으로 길을 떠나고자 했던 마교의 고수들은 사련 때문에 당분간 장원에 남아 있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첫눈에 혁련천후에게 마음이 쏠린 뇌어양 때문이기도 했지만 관산악의 부탁이 가장 큰 이유였다.
관산악은 뇌어양에게 천하의 혼란이 가실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 것을 간곡하게 청했었다. 다른 마교의 고수들도 뇌어양을 설득했다.
마지막으로 천마사로가 관산악의 뜻에 동조하자 뇌어양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혁련천후가 왕전을 보며 물었다.
“정도맹의 장로는 어디 있느냐.”
“지금 화산의 아이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도맹의 호법이다. 이곳으로 모셔라.”
“예.”
왕전이 눈짓을 주자 홍무가 재빨리 곡영을 데리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곡영이 진유를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뇌어양을 비롯한 마교의 고수들을 보고는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 곡영을 보며 모두가 가볍게 쓴웃음을 지었다.
곡영의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제아무리 느긋한 성정을 지닌 그라도 당대 최강을 논하는 존재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마교의 고수들과 오왕을 슬쩍 흘긋거린 곡영은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련이 꽁지를 뺄 법도 하구나.’
천하엔 사련이 먼저 꼬리를 말고 후퇴했다고 전해져 있었다. 곡영은 그 소문이 비로소 사실임을 확인했다.
반면에 이런 마교의 고수들을 물리친 북해빙궁에 대한 두려움이 새삼 생겨났다.
‘그야말로 난관에 봉착했구나. 용성에 빙궁까지, 게다가 세외의 다른 세력들까지 준동이라도 한다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곡영은 전신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담대소천이 물었다.
“정도맹에서는 북쪽을 어떻게 대처할 계획이시오?”
상념을 떨쳐 낸 곡영이 대답했다.
“곧 부대를 편성하여 출진시킬 예정이오만, 아직 그들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확실한 날짜와 규모는 잡히지 않은 상태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더 무서운 법이오.”
“맹주께서 조만간에 결단을 내리실 듯하니 결정되면 그때 인편을 통해 전해 드리겠소이다.”
이번에 장용백이 물었다.
“남쪽에서도 제법 고전하고 있다고 들었소만…….”
“신마성 덕분에 그들도 다소 주춤하고 있소. 남부 지역에 은거했던 전대의 고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훨씬 강력한 세를 집결할 수 있을 것이오.”
곡용이 혁련천후에게 고마움을 담은 눈빛을 전했다.
묵묵히 걷고 앉았던 뇌어양이 혁련천후에게 말을 건넸다.
“사련 놈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미리 방도라고 세워 놓는 것이 좋겠소만…….”
“마땅한 방도랄 게 있겠습니까. 그저 오는 대로 싸워주면 그뿐인 것을…….”
마교의 인물들은 혁련천후의 지극히 담담한 반응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보인다면 오만이라 여길 테지만 혁련천후는 전혀 다르게 비쳤다.
[허허! 승냥이 같은 그놈들이 행여, 수작을 부리지는 않을까 염려되는구려. 생강시를 제조할 정도면 결코 만만히 볼 놈들은 아닐게요.]
뇌어양이 갑자기 전음으로 건넸다. 생강시 때문이다. 아직 세상에 그것이 드러나선 안 된다고 판단해서 전음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 부분은 생각을 해 둔 바가 있습니다.]
[오! 그렇소.]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우리도 힘이 닿는 데까지는 돕겠소. 도움을 받은 값은 해야지 않겠소. 허허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는 젓가락을 놓고서 물로 입을 가셨다. 그때 문이 열리며 진천이 들어섰다.
항상 활달하고 밝은 그의 얼굴이 제법 굳어진 것을 본 담대소천이 의아한 듯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그가 왔습니다.”
“그라니?”
진천이 대답을 않고서 혁련천후를 쳐다봤다. 뭔가를 느낀 혁련천후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