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28화 (126/425)

# 128

<귀환무사 128화>

* * *

“훅!”

호숙아는 손목이 찌르르 울리자 이를 악물고서 칼을 바꿔 잡았다. 그 앞에 창을 비껴 잡은 조윤이 서 있었다.

이미 그의 창날에 목숨을 잃은 수하들이 열을 넘어갔다. 처음 보였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은근한 두려움이 호숙아의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뒤늦게 조윤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었다.

“창왕…….”

천하에 창으로 사련의 정예를 무 썰듯 베어 버리는 존재는 오직 창왕 조윤뿐이다.

그들이 아주 먼 곳에 있을 거라는 보고만 믿고 출정에 나섰던 호숙아와 그의 수하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호숙아의 시선이 빠르게 우측으로 돌아갔다.

한 마리 맹수처럼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는 북궁천소가 보였다.

도신에 핏빛 강기를 두른 저자는 물어보지 않아도 도왕임이 분명해 보였다. 호숙아의 얼굴이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역시 강하다! 한데 왜 이렇게 늦는단 말인가!”

호숙아는 사련의 최고 고수들이 오기만을 기대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신호를 봤다면 반 시진 정도면 도착할 그들이다. 한데 그들이 여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불안감은 더해질 수밖에 없었다.

‘믿을 거라고는 생강시뿐이다.’

호숙아는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생강시를 방패삼아 견뎌 내기로 마음먹었다.

“네놈을 잡아 물어볼 것이 많아.”

조윤이 중얼거리며 호숙아를 향해 다가왔다.

“재주가 있다면 그렇게 해 보시지. 하지만 쉽진 않을 거다! 조윤!”

“내 눈에는 쉬워 보이는데. 후후후.”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안 그래도 해 보려고.”

조윤이 공간을 점하고 달려들었다.

한편, 혁련천후를 상대하던 사련의 고수 하나가 느닷없이 뒤쪽에 물러나 있던 독고혜와 영호수란을 덮쳤다. 그 역시 생강시였다.

상황을 타파하려는 호숙아가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은밀히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워낙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혁련천후를 비롯한 그 누구도 미처 막아주지 못했다.

“물러서!”

독고혜가 영호수란을 뒤로 밀어내며 생강시를 막아섰다.

꽝!

독고혜의 검과 생강시의 대도가 부딪혔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둘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밀려났다. 화산의 제자들과 모용단승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크르르…….”

괴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괴성이 생강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놀라거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낄 리 없는 생강시가 독고혜를 보며 혈광을 번뜩였다.

찌르르…….

손목이 저려오자 독고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혁련천후에게서 받은 내공 탓에 그녀는 생강시와의 충돌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검후라는 여중 최강의 여고수, 이전의 상태였더라도 쉽게 당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손목이 마비되는 충격은 피할 수가 없었다.

‘너무 강해…….’

[가급적 정면 충돌은 피하도록 해.]

혁련천후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럴게요.]

화산의 제자들이 재빨리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검을 겨누었다.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조심들 하세요.”

“예!”

생강시가 다시 독고혜를 향해 달려들 때, 조윤과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던 호숙아가 독고혜를 응시하며 다시 한 번 굳어졌다.

여인의 몸으로 생강시와의 정면충돌을 하고도 멀쩡하게 버텨 내다니.

‘젠장! 하나같이 괴물 같은 인간들뿐이구나.’

호숙아는 당혹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독고혜라도 어떻게 해서 혁련천후를 비롯한 셋의 신경을 분산시키려고 했었는데 그나마 그것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뒤늦게 호숙아의 의도를 간파한 조윤이 안광을 번뜩였다.

쐐액!

“감히!”

조윤의 창이 호숙아의 심장을 노리며 허공을 갈랐다.

호숙아는 황급히 검을 휘둘러 창대를 후려쳤다. 뒤이어 반격을 노렸지만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장거리 무기인 창은 근접전에 그 취약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조윤은 접근 자체를 불허했다.

사련에서 알아주는 고수인 호숙아는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조윤의 창날을 피하며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그때였다.

쾅!

다시 한 번 강력한 폭발음이 뒤쪽에서 터졌다.

호숙아는 조윤이라는 막강한 적을 앞에 두고도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두 눈을 부릅떠야 했다.

“저럴 수가!”

생강시가 반쪽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지상의 그 어떤 병기로도 자를 수 없다는 생강시의 육신인데, 마치 두부를 자른 것처럼 잘린 단면이 매끄럽다 못해 깨끗하기조차 했다.

“네게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쐐액!

호숙아는 파공성을 듣고는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간발의 차이로 그가 섰던 곳에 조윤의 창이 떨어졌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구덩이가 생겨났다.

한편, 생강시 하나를 무참히 토막을 내어 버린 혁련천후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소리를 낼 수 있는 생강시라니…….’

뭔가 이상했다.

조금 전에 자신의 손으로 토막을 내어 버린 생강시가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신음을 내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생강시는 죽은 자의 육신을 수십 년에 걸쳐 약물과 주술로써 제조하는 것이기에 결코 소리를 낼 수는 없다.

‘설마…….’

뭔가를 떠올린 혁련천후는 조윤을 피해 달아나기 바쁜 호숙아를 돌아보았다.

“조윤, 멈춰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윤이 뒤쪽으로 물러섰다.

혁련천후가 성큼 호숙아를 향해 다가갔다. 가볍게 움직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호숙아의 코앞에 이르러 있었다.

“설마 산 자를 이용해서 강시를 만들었느냐.”

“…….”

호숙아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압도되어 그저 우물거렸다.

혁련천후는 그것을 수긍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전신을 두른 천살강기의 줄기들이 불꽃처럼 커지며 사납게 일렁거렸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군.”

드드드…….

그의 주변 대지가 서서히 진동을 시작했다.

콰아아!

흙과 바위들이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하며 주변이 폭발을 일으킨 듯 소용돌이를 치기 시작했다.

“화나셨다.”

“그런 것 같은데.”

“좀 일찍 화를 내지 않으시고.”

퍽!

“모두 뒤로 물러서라.”

조윤이 모두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사련의 고수들도 심상치않음을 느꼈는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뒤쪽으로 물러섰다.

오직 아홉 기의 생강시만이 혁련천후의 앞을 막아선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점점 강대해지는 소용돌이를 지켜보던 호숙아는 다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본대의 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절망감이 호숙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모두 장원으로 돌아가라. 어서!”

혁련천후의 전음에 조윤을 비롯한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주공…….”

“여긴 내가 처리하겠다.”

뭔가 말을 하려고 나서려던 독고혜의 팔을 영호수란이 잡았다.

“그냥 저분의 말씀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장원으로 가시지요.”

조윤마저도 그렇게 나오자 독고혜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때 혁련천후의 폭갈이 터졌다.

“어서!”

모두가 적을 버려 두고 장원으로 질주했다.

몸을 날리면서도 뒤를 돌아보던 독고혜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 혁련천후가 보이는 증상은 마치 폭주를 일으키기 전의 마인과 같았다.

‘갑자기 왜 저런 현상이…….’

그녀의 눈은 정확했다.

지금 혁련천후는 평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일거에 생강시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천살강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린 뒤부터 일어난 변화였다.

문제는 그 스스로는 조금도 자신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윤등이 물러가자 호숙아의 낯빛이 환해졌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여겼던 그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제아무리 혁련천후가 강하다고 해도 아홉 기의 생강시를 감당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건 신이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보니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 자였군.’

그러나 그건 호숙아의 착각이었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살아 있는 사람을 강시로 만들다니…….”

콰아아아!

“헉!”

혁련천후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무지막지한 기운에 삶의 희망에 젖어가던 호숙아가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대체 이건…….”

그때 혁련천후가 움직였다.

번쩍!

콰콰콰!

시력을 앗아갈 만큼의 엄청난 섬광이 백어산의 능선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인간이 일으킨 것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산천초목을 뒤흔들었다.

* * *

사련의 비밀 암살 부대를 통괄하는 곽소(郭蘇)가 난데없는 폭음에 손을 들어 이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저게 무슨 일이냐?”

그는 산의 능선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뒤를 따르던 고수하나가 답했다.

“누군가 벽력탄을 사용한 것 같소.”

“필시 신마성의 놈들이 생강시를 상대하기 위해 격뢰나 벽력탄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소.”

곽소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후후후. 벽력탄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생강시가 아니지.”

“모르긴 해도 지금쯤이면 생강시의 위력에 절망을 하고 있을 것이오. 후후후.”

사련의 고수들은 저마다 확신에 찬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 다른 자가 말하고 나섰다.

“조금 전의 폭발은 단순한 벽력탄이 아닌 것 같소.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소.”

“너무 과민하게 보는 것 아니오?”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너무 안이한 것 같소. 우리가 여기 왜 왔소. 괴량과 호숙아의 부대 때문이 아니오. 무슨 일이 없으면 그들이 왜 아직까지 합류를 하지 못했겠소.”

일리가 있는 말에 곽소마저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조금 전의 폭발이 그들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 가 보는 게 좋겠소.”

“그럽시다.”

휘이익!

곽소와 사련의 고수들은 신마성이 있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들이 숲을 넘어 사라졌을 때, 능선에서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났다.

번쩍!

꽈르릉!

* * *

콰르르…….

투투툭!

떨어진 돌가루들이 수북이 쌓인 곳에 피투성이 손 하나가 삐죽 나와 있었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살아나기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손은 느리게 움직이며 주변의 돌들을 밀어냈다.

“크으…….”

머리를 내민 것은 머리가 반쯤 날아간 생강시였다.

콰직!

혁련천후가 돌무더기 속으로 검을 쑤셔 넣었다.

퍽!

돌 속에서 생강시의 머리가 박살이 나 버렸다.

혁련천후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혁련천후의 흑발을 날렸다.

드러난 눈동자에 어려 있던 은은한 혈광이 서서히 걷히면서 흐릿하게 변해 갔다.

창백한 낯빛과 입가를 타고 흐르는 가는 선혈은 그가 엄중한 내상을 입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느릿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파괴된 흔적뿐, 사련의 고수들도, 생강시도 두 발로 서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후우…….”

철컥!

혁련천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검을 거두었다.

세상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하니 하늘도 어둡게 변해 가고 있었다. 분명 해가 중천에 뜬 낮이었지만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파르르…….

눈빛이 흔들렸다.

뒤이어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대지를 밟고 섰던 두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기어코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말았다.

털썩!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입가를 흐르는 선혈의 양이 점점 늘어가며 그는 의식을 잃어 갔다.

뒤늦게 조부 혁련강의 경고가 환청처럼 울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완벽해지기 전에는 천살강기를 극성까지 끌어 올려서는 안 된다.”

‘죄송합니다…….’

혁련천후는 나락을 향해 떨어지는 의식의 끈을 잡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서서히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철컥!

육신이 서서히 앞으로 무너지면서 검집이 먼저 땅에 닿았다.

뒤이어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주공!”

“호들갑 떨지 마라. 난 괜찮으니까…….”

“악! 천후!”

“걱정 마라. 혜 매. 나는 결코 당신을 두고 죽지 않아. 절대로…….”

털썩!

* * *

신마성과 사련의 격돌은 천하에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사련의 광풍대주 괴량과 지살전주 호숙아를 포함한 아흔두 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에 반해 신마성은 사망자 전무에 부상자만 몇 있었을 뿐, 그 어떤 피해조차 없었음이 전해지자 천하는 신마성을 새삼 평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혁련천후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진정 누구인가?

당대최강의 전사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마교의 대종사와 그 수하들마저도 아우르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전해져 온 전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신마의 전설.

누군가 물었다.

그가 진정 신마일까?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껏 이토록 단시간에 천하를 진동시킨 인물은 고금을 통틀어 아무도 없었다.

천하의 강자로 자부해 온 천하고수들은 고개를 저었다.

신마의 전설은 그저 만들어진 소문일 뿐이라며.

휘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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