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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26화 (124/425)

# 126

<귀환무사 126화>

제1장 사련, 신마성과 붙다

관산악은 찜찜한 기분을 떨쳐 내려고 더더욱 빠르게 질주했다.

산의 능선에서 보았던 사련의 인물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쉬지 않고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 그와 신마각의 무사들은 희미하게 장원이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싸우고 있다!”

그 정도면 관산악의 눈에는 당연히 장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보인다.

번쩍거리는 빛들이 난무하는 강가를 보며 관산악이 두 발에 힘을 실었다.

악승과 신마각의 무사들이 뒤를 쫓아 속도를 높였지만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까강!

장용백의 곡괭이가 괴량의 검을 후려치고 돌아갔다. 한철을 녹여 만든 괴량의 검에 부딪히고서도 곡괭이는 멀쩡했다. 하지만 장용백의 얼굴은 다소 굳어졌다. 괴량의 경지가 생각이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람은 괴량이 더 컸다.

손목이 은은히 저려 왔다. 영락없는 촌부처럼 생긴 장용백이 이전의 흑발 사내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였던 것이다.

주변에서 수하들의 비명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괴량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자신과 싸웠던 흑발 사내와 낫을 든 노인들이 수하들을 베어 넘기는 모습이 보였다.

괴량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이 상태로 더 지나면 청포인들을 제외한 다른 자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청포인들은 사련이 가장 믿고 있는 병기들, 만에 하나 그들이 적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

‘이대로 더 지나면 몰살이다. 서둘러 호숙아의 원군을 청해야 한다!’

괴량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가까운 거리 밖에서 자신들과 합류를 위해 느리게 이동 중인 호숙아의 지원이 절실했다. 그가 와 주지 않으면 살아서 빠져나갈 수가 없으리라.

품속에서 기다란 원통을 꺼낸 괴량이 하늘을 향해 그것을 쏘아 보냈다.

휘이익!

펑!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간 원통이 화려한 폭발을 일으키며 불꽃을 만들어 냈다. 신호탄이었다.

* * *

“뭐야? 불꽃놀이라도 하는 건가?”

왕전이 하늘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을 수놓았던 불꽃이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소멸되어갔다. 더 지켜보았지만 불꽃은 더 이상 터지지 않았다.

담대소천이 미간을 좁혔다.

“신호탄이군. 방향이 장원이 있는 쪽인데.”

“진천, 놈이라면 저런 허접한 것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군병들이 훈련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소문에 시국이 어지러워 관병들의 훈련이 잦다고 들었다.”

조윤의 말에 담대소천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군부의 신호탄은 저렇지 않아. 저건 사제탄일 가능성이 높아. 화약은 군부의 허가 없인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모를 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주대낮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면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

말을 마친 그가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그 역시 북쪽 하늘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왕전이 물어 왔다.

“장원 쪽입니다. 아무래도 저희들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혁련천후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왕전을 비롯한 모두가 빠르게 장원으로 경공을 펼쳤다.

혁련천후가 다시 하늘을 흘긋거렸다. 하늘을 수놓았던 불꽃이 희미하게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문득 혁련강이 떠올랐다.

자신을 보며 회한에 물든 빛을 보이던 그의 두 눈과 돌아설 때, 양 어깨에 나타났던 그 쓸쓸함이 새삼 가슴에 다가왔다.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다.

혈육에 대한 감정 따윈 지워 내겠노라 다짐했지만 광동에서 돌아올 때, 그가 마음에 걸렸었다. 그곳에 더 있었더라면 그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아쉬움일까.

‘번뇌 따위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

상반된 감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 냈다.

그의 눈에 앞을 걸어가는 화산의 제자들과 모용단승이 보였다. 그 위에 사부가 겹쳐 떠올라 있었다.

제자들의 옷소매에 새겨진 화산의 매화 문양이 진한 향기를 발산하며 자극해 왔다.

“우리도 달려요.”

독고혜가 어두워진 그를 보며 웃었다. 표정만으로 그의 속내가 어지러움을 짐작한 것일까. 그녀는 절로 가슴이 포근해질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옆에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흥! 나 먼저 갑니다!”

쾅!

흙먼지가 혁련천후의 얼굴을 덮었다.

* * *

흑야는 자신의 검에 목이 날아간 자를 보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후욱!”

싸움은 생각보다 거친 혈전이었다. 마교의 고수들이 합세하고도 승부는 좀처럼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다만 아직 이쪽에서 죽어나간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믿을 수 없군.”

검노(劍老)의 얼굴은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상대의 경지가 실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특히 청포를 걸친 자들의 무공은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그조차도 쉽사리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자들이었다.

비록 초식의 정교함은 떨어졌지만 파괴적인 강력함은 뇌어양과 별반 차이 없는 자신이 둘 이상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그 정도면 하나가 초절정을 넘어선 고수라고 봐야 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 시진을 이어온 싸움에서 상당한 내공을 쏟아부었지만 그들의 놀림은 처음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이 지금 사련을 상대하는 모든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두목보다 수하가 더 강하다니…….”

장용백은 거친 숨을 토해 내었다.

그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적의 수준이 막강하자 마교의 고수들은 자신들의 주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대로를 꼬나 쥔 장용백이 침을 뱉어 내고는 칼을 적의 얼굴로 겨누었다.

“누가 죽는지 끝까지 해 보자고! 퉤!”

그때였다.

진천의 놀람에 찬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생강시!”

“뭣이! 생강시!”

“생강시란 말이냐!”

모두가 크게 놀랐다.

흑야조차도 낯빛이 대번에 변했다.

생강시라면 살아 있는 인간에 가장 가까운 강시를 말한다.

일반 강시와는 차원이 다른 그들은 관절의 움직임이 산 자와 같을 정도다.

게다가 육신의 주인이 생전에 강한 고수였다면 그 힘이 훨씬 강력해지는,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최종병기가 그것인데, 진천의 입에서 그 엄청난 존재가 튀어 나왔다.

모두가 빠르게 뒤로 물러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섰다.

흑야가 진천에게 물었다.

“확실히 생강시가 맞느냐.”

“청포를 걸친 놈들은 모조리 생강시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단 놈들을 제외하고 산 자들부터 죽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돌아 버리겠군.”

흑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눈빛은 더욱더 강렬한 빛을 번뜩였다.

산 자들부터 처치하자는 진천의 말에 검노를 비롯한 마교의 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노가 눈가에 지독한 살기를 드리우며 괴량을 노려봤다.

“무사의 혼을 팔아먹은 놈들이군. 너희 사련은…….”

“흐흐! 제법 빨리 알아채는군. 그렇다. 이들은 바로 천하무적 생강시! 본 사련에게 강호를 선물할 아이들이지.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진 것 아닌가?”

흑야가 검 끝을 손으로 슬쩍 문지르며 괴량을 차갑게 노려봤다.

“좋아할 일이 아닌 것 같군. 덕분에 생강시와 그렇지 않은 네놈들이 확연히 구분되었으니 이젠 네놈들이 죽은 일만 남은 것 같은데, 고작 열 정도 남았으니 빠른 시간에 끝을 볼 수 있게 되었어.”

흠칫!

‘그걸 생각하지 못했구나!’

괴량은 자신의 착각을 깨달았다.

그랬다. 생강시를 제외하고 살아 있는 사련의 고수는 고작 열에 불과했다. 그들이 작정하고 자신들만을 노리고 달려든다면…….

무조건 죽는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이 망할 인간은 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것인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괴량은 아직 오지 않고 있는 호숙아의 부대를 원망했다.

그는 재빨리 생강시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사방을 두른 철벽과도 같은 그들의 존재감도 이제는 전처럼 확실한 안도감을 심어 주지는 못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호숙아가 올 때까지…….’

지원군이 올 때까지 자신은 이 안에서 생명을 보전해야 한다.

다른 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조리 생강시의 보호 간격 안으로 몸을 이동했다.

“흥! 그 안이라면 안전할 줄 알았느냐!”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진천의 손이 백색의 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공진무 역시 손에 쥔 검을 허공으로 던지며 주술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신마성을 건든 것이 네놈들, 최악의 실수임을 처절하게 느끼게 해 주마!”

“같이 해.”

진천과 사공진무가 벼락같이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그의 주변공간이 울렁거리며 강대한 기류가 둥글게 방원을 형성한 생강시를 향해 날아갔다.

장풍은 아니었다. 공간 전체가 거대한 진공 상태를 만들어가며 생강시들의 육신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 안에 몸을 숨긴 자들은 상당히 긴장한 빛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자신들을 향해 밀려오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생강시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순간 그들 주변에서 응축된 공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쾅!

인간이 일으킨 폭발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생강시들 지척에서 일어났다.

뒤쪽에 빠졌던 사람들이 그 엄청난 위력에 얼굴을 굳혔다. 저 정도의 위력이라면 어지간한 고수들은 그냥 갈기갈기 찢겨 죽어 나갈 것이 뻔했다.

자욱한 흙먼지가 주변을 가리며 솟아올랐다.

가장 약한 청명과 청진, 그리고 홍무는 이미 오래전에 전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그들이 있는 곳까지 폭발의 위력이 덮쳤다. 잠시 모두는 드러나는 상황을 기대하며 폭발이 일어난 곳만을 응시했다.

휘이이…….

바람이 불자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장내가 서서히 드러났다. 곳곳에 찢어진 장포자락들이 널렸고 죽은 자들의 찢어진 육신의 파편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젠장!”

진천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쏟아졌다.

흙먼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생강시들, 그들은 모두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육신 또한 멀쩡했고 두 눈 역시 부릅뜬 그대로였다.

“하아! 빌어먹을! 더 이상 쏟아 낼 힘이 없어.”

“뭐 저런 괴물들이 다 있지? 후욱!”

“주공이 아니면 답이 없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털썩!

사공진무가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천 역시 다리를 휘청거리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둘은 진력이 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전력을 퍼부었건만 결국 실패를 하고 말았다.

검노가 뒤쪽을 돌아봤다.

이젠 뇌어양을 비롯한 모두가 몰려나와야 했다. 그의 속내를 짐작이라도 했는지 이미 뇌어양과 고수들이 그들의 뒤쪽에 나타나 있었다.

“믿기지 않는군. 수백 년 전에 사라졌던 생강시를 살아생전 보게 될 줄이야.”

뇌어양이 무거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살로가 섬뜩한 눈빛으로 생강시들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었군. 그 덩치 큰 괴물 같은 놈들에 이어 생강시까지 나타나다니…….”

비록 빙궁의 그 괴물 같은 거한들보다야 못하겠지만 저 정도면 상당한 난적이다.

어쩌면 더 힘든 상대일 수도 있다. 거한들이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지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들은 평생을 싸워도 지치지도, 두려움도 모른다. 어쩌면 목이 잘려 날아가도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지도 모른다.

챙!

“모두 물러서서 호흡을 가다듬게!”

살로는 검을 뽑아 들며 지친 자들을 뒤로 물렸다.

“헉!헉!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러시게.”

“곧 다시 오겠소.”

사공진무가 그 와중에도 뇌어양을 향해 씩 웃었다.

흑야가 날아왔다.

“팔을 잡아라.”

“고맙습니다, 형님.”

흑야가 진천과 사공진무를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켰다. 지치기야 흑야도 철무옥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사련에 있었으면서도 전혀 생강시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철무옥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록 스스로 뛰쳐나온 사련이지만 추살전주를 맡았던 자신에게도 비밀이 존재했음에 화가 치민 것이다.

“잠시 몸을 다스리도록 해.”

“알겠소.”

흑야가 그 자리에 서서 운기에 들어갔다. 철무옥도 이내 운기를 시작했다. 청명과 청진, 그리고 홍무가 그들의 주변을 경계했다. 스스로 느끼기에 도움이 될 턱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검을 잡은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 * *

호숙아는 추살전과 더불어 사련의 양대마차로 불리는 광혈전의 전주이자 초절정을 넘어선 강자였다.

그는 지금 오십에 이르는 수하들을 이끌고 신호탄이 떨어진 신마성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저 능선을 넘으면 신마성이다! 속도를 올려라!”

호숙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괴량이 신마성을 쓸어버리고 자신들과 합류를 했어야 했다.

오왕이 빠진 신마성이라면 괴량이 끌고 간 전력으로 반 시진이면 가능하다고 판단했었던 사련이었다.

하지만 합류는커녕, 자신이 그들을 도우러 가야 하지 않는가.

“평소에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빌어먹을!”

팍!

호숙아의 육신이 선두에서 제비처럼 능선을 타고 올랐다. 능선을 넘어서자 장원이 보이며 그 앞에 강가에서 한데 어우러져 싸우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억!”

바닥으로 내려서던 호숙아가 놀란 소리를 냈다. 자신이 떨어지는 지점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혁련천후였다.

“비켜라!”

호숙아가 허공에서 그대로 혁련천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쾅!

장력이 떨어진 바닥이 흙먼지를 피워 냈다.

바닥에 내려선 호숙아의 표정이 급변했다. 자신의 공격을 피한 혁련천후가 어느새 저만치 앞에서 자신을 무심히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의 뒤쪽으로 쉰에 이르는 사련의 고수들이 줄지어 떨어졌다. 혁련천후가 장원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돌려 호숙아를 쳐다봤다.

혁련천후의 시선이 호숙아를 넘어서 뒤쪽에 선 적포인들을 향해 고정되었다. 순간 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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