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19화 (117/425)

# 119

<귀환무사 119화>

한편, 적용세는 굳은 얼굴로 적용백을 보며 말했다.

“이대로 다시 싸우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차라리 뒤로 물러섰다가 전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돌아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그와 같은 심정이리라.

적은 더 강한 자들만이 남아 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대충 오백여 명일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이제 그들이 달려들면 솔직히 견뎌 낼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야 극소수에 불과했다.

적용백이 무겁게 굳은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혁련천후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이까?”

“우리는 따로 할 일이 있으니 정도맹은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저들과 싸우겠단 말씀이오?”

“알아볼 것이 있어서…….”

잠시 그를 지그시 쳐다본 적용백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는 것이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갑시다.”

“먼저 가시오.”

적용백은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악양에 본대를 둘 것이니 혹시라도 일이 끝나면 그리로 오시오.”

“그러겠소.”

잠시 후, 정도맹의 고수들이 일제히 썰물 빠지듯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가온 독고혜와 영호수란이 물었다.

“우리는 안 가요?”

“먼저 저들과 악양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저들과 싸울 생각인가요?”

독고혜의 낯빛이 일순 굳어졌다.

혁련천후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알아볼 것만 알아보고 금방 돌아갈 테니 저 아이들하고 함께 가는 게 좋겠다.”

“……알았어요.”

독고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의 검수들과 신마각은 선뜻 정도맹의 고수들을 따라 나서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왕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있으면 방해만 된다. 그러니 돌아가서 술상이나 거나하게 봐 둬.”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자신들은 있어 봤자 도움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릴 때, 독고혜는 혁련천후의 옷매무새를 만져 주며 그윽한 시선을 주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그러지.”

영호수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팔을 독고혜가 끌었다.

영호수란은 혁련천후를 한 번 돌아보고는 독고혜의 손에 끌려 무사들의 뒤를 따랐다.

“놈들이 몰려옵니다.”

왕전이 평원의 너머를 가리켰다.

먼지가 일고 있었다.

정도맹의 고수들이 갑작스럽게 전장을 빠져나가자 뒤를 쫓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의 목적은 금역에서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하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알겠느냐.”

“예!”

“저들 중 한 놈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혁련천후가 유달리 청광이 강한 자들을 가리켰다.

그의 오감을 자극했던 자들이었다.

앞의 전투에서 혁련천후와 영호도성의 손에 의해 다섯이 죽는 바람에 반으로 줄어 있었다.

왕전이 씩 웃었다.

“한 놈만 남기고 모조리 죽이면 됩니까?”

“가급적 최대한 빠른 시간에 끝내고 돌아간다.”

“흐흐! 사실 일부러 힘을 감추고 있으려니 열불이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자빠질 말을 한 왕전이 검을 쥐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으드득!

“죽을 둥 살 둥 달려오는 꼬락서니들하고는.”

“후후후. 그러게 말이다.”

혁련천후의 뒤에 넷이 늘어섰다.

두두두!

오백의 전마가 그들을 짓밟고 지나갈 듯 광포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붉게 떨어지는 석양이 혁련천후의 검을 붉게 만들었다.

치르륵!

혁련천후의 검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쭉 늘어났다.

지금까지의 교전에서는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공포의 살상강기, 천살강기를 펼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단단히 마음을 잡수셨군.]

[모조리 다 죽여 버리실 모양이다.]

[이거 피를 된통 뒤집어쓰게 생겼군.]

[시끄럽다. 집중해라.]

우우웅!

혁련천후의 주변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지상최강의 대량살상용 강기가 그의 육신을 두를 때, 적은 십여 장 앞까지 쇄도해 들고 있었다.

두두두!

“쳐라!”

“예! 주공!”

* * *

악양루로 철군한 정도맹의 고수들은 북쪽에서 들려온 소식에 망연자실 넋을 놓았다.

마교의 패배.

북해빙궁이라는 강력한 적을 막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마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북쪽에 문파를 둔 사람들의 넋을 빼 놓기에 충분했다.

누구보다 큰 충격에 휩싸인 이들이 있었다.

마교의 혈영대에서 신마성의 신마각으로 옷을 갈아입은 악승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악승은 거처에 틀어박혀 며칠 동안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속내를 안타깝게 여긴 진유와 화산의 제자들이 위로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별조차 떠 있지 않은 어두운 밤에 악승이 악양루의 지붕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우는 모습에 신마각의 제자들 역시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악승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혁련천후와 오왕이 돌아왔다.

침울하게 가라앉았던 악양루가 잠시 활기를 되찾았다.

수뇌부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그들은 이내 일행들이 머무는 객잔으로 올라갔다.

악승이 고개를 숙이고 앞에 앉았다.

“들었다. 마교의 소식은…….”

악승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혁련천후가 그와 신마각의 무사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형제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하라. 복수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겠다.”

악승을 비롯한 모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를 어찌 모르랴.

혁련천후가 그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산악이 오면 그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악승이 그제야 대답했다.

지금 그들이 가장 기다리는 존재는 바로 관산악이었다.

그에게 마교의 멸망을 알리고 그의 뜻에 따르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물론 신마성에 대한 충성이 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기엔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도무지 참아 낼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왕전 등도 악승을 위로했다.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서 지켜보던 독고혜가 악승을 향해 말했다.

“우리, 술 마시러 가요.”

“…….”

왕전이 맞장구를 치며 일어섰다.

“역시 주모님이십니다! 뭣들 하느냐! 내려가서 술로 마음이나 달래 보자꾸나!”

이럴 땐 그저 술이 최고다.

악승이 독고혜의 배려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모두는 악양루의 일 층으로 내려갔다.

조금 늦은 시간인 탓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정도맹의 고수들 때문에 혜월랑은 일반 고객들은 거의 받지 않고 있었다.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공짜로 준다고 해도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오늘만큼은 실컷 마셔도 좋다!”

덕분에 넓은 일 층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일행들은 술과 음식을 시켜 악승과 신마각의 무사들을 위로했다.

그러기를 반 시진 정도가 흘렀다.

문이 덜컹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섰다.

그를 본 악승과 신마각의 무사들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일어섰다.

“야 인마!”

“어라? 저놈이 여긴 어쩐 일이래?”

왕전 등이 눈을 휘둥그레 치뜨며 일어섰다.

들어선 이는 관산악이었다.

“아니 너희들은…….”

악승과 대원들을 본 관산악은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졌다.

마교에 있어야 할 그들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들이 오기 전에 모용세가로 가 버린 까닭에 알 도리가 없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악승이 대주님을 뵙습니다!”

악승을 시작으로 모두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 갔다.

관산악이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잠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느릿하게 몸을 돌려 혁련천후에게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산악이 주공을 뵙습니다!”

“회포나 풀어라.”

“감사합니다, 주공.”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산악의 어깨를 툭 쳐 준 그는 이내 객실로 올라갔다.

독고혜가 영호수란의 팔을 끌고 자신들의 거처로 올라가자 오왕들도 관산악에게 씩 웃어 주고는 각자 거처로 올라갔다.

“오늘은 빠져 주마.”

“울지 마라. 계집애처럼. 흐흐흐.”

탁철과 모용단승,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이 잠시 멀뚱거린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더니 이내 후원으로 돌아갔다.

관산악이 악승을 보더니 대뜸 물었다.

“설마 나를 찾아 중원으로 나온 것이냐?”

“……예.”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악승. 관산악은 황당해하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악승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표정이 왜 그러느냐?”

주르륵!

악승이 돌연 눈물을 흘리자 관산악은 미간을 찡그렸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본교가…… 빙궁에 패했다고 합니다.”

“……!”

관산악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마교의 패배를 모르고 있었다. 그 소식은 아직까지 저잣거리까지는 흘러나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크흑!”

악승이 오열을 터트렸다. 다른 대원들도 숨죽여 울었다.

“빌어먹을!”

쾅!

탁자 하나가 박살이 나 버렸다.

관산악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비록 주인을 찾아 중원으로 떠나왔지만 뇌어양이 자신에게 보여 준 정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그에게 고마움을 지니고 있었던 관산악이었다. 한데 그 뇌어양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뇌어양이 무너졌다니.

“대주님!”

악승이 결연한 빛으로 관산악을 쳐다봤다.

관산악이 악승의 두 눈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비록 옛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제겐 부모와 같았던 분입니다. 수하가 아닌 형제로서, 자식으로서 마교를 돕고 싶습니다. 결코 주공께 대한 충성이 흩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고 제 뜻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

관산악은 즉답을 못했다.

악승이 말을 이었다.

“주공께서 대주님의 결단에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대원들도 대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내 뜻에 따르겠다면서 그런 말은 왜 하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관산악은 술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한 줄기 전음이 관산악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함께 가도 좋다!]

관산악은 전음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혁련천후의 배려에 가슴이 저민다. 더불어 뇌어양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무척이나 잘 대해 줬던 그였고 세상에 알려진 마교의 주인과는 달리 그는 무척이나 인자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관산악은 잠시 고민했다.

[은혜를 준 자에게 보답하지 않음은 도리에 어긋나는 법이다.]

또다시 혁련천후의 전음이 들려왔다.

관산악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주인은 이래서 좋았다.

그가 눈을 빛내며 악승을 쳐다봤다.

“출발 준비를 해야겠다.”

“예! 대주님!”

악승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몸을 일으켰다.

모두는 밖으로 나서다가 이 층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혁련천후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악승이 몸을 떨며 그 자리에 다시 무릎을 꿇어 절을 했다.

신마각의 무사들도 그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죽지 마라! 그것은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

악승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는 가슴에 오른손을 놓으면서 몸을 일으켜 다시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길을 떠났다.

관산악도 머리를 조아리고는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그런 그가 깜박한 것이 있었다.

바로 모용세가의 사람들이 남쪽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해 주지 못한 것이다.

제9장 또 한 번의 복수

관산악을 떠나보낸 혁련천후는 왕전 등과 함께 심각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왕전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용성에 아수라마공이 전해진 것이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면 또 다른 세력들에게도 충분히 유출이 되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속단하기엔 이르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도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대답을 한 것이다.

조윤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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