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귀환무사 118화>
“삼류살수! 저 강물에 뛰어들어 봐!”
“옛? 제가요?”
“그럼 내가 들어가랴?”
홍무가 바람처럼 몸을 날려 얼어 버린 강으로 뛰어들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소리가 울렸다.
풍덩!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아닌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에 청명과 청진이 진천을 돌아봤다.
진천이 히죽 웃었다.
“환술이 괜히 환술이냐? 정말 얼게 만들면 그게 환술이냐? 완전 개사기지! 나는 낮잠 자러 갈 테니 너희들은 그동안 배웠던 모든 것을 복습하고 들어와.”
진천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공진무가 청명과 청진을 보며 씩 웃었다.
“너희들, 꽤 늘었어. 저놈이 저래도 그 분야에선 고금제일이 아니냐. 힘들어도 열심히 배우면 꽤 유명해질 거야.”
사공진무가 둘의 어깨를 툭 쳐 주며 장원으로 들어갔다.
청명과 청진은 여전히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저게 정말 우리가 한 거 맞지?”
“그래! 솔직히 나도 믿기지 않는다. 그저 굴리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언제 이런 실력이 생겼지?”
“그러게. 다시 한 번 해 볼까?”
둘이 다시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강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힉!”
놀란 홍무가 재빨리 강에서 빠져나왔다.
쩌저적!
조금 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물이 어는 소리까지 들리며 강물은 다시 얼어붙었다.
둘의 눈동자에 존경의 빛이 가득 담기며 장원을 향해 돌아갔다.
“우리도 고수가 될 수 있어.”
“으흐흐!”
둘은 기어코 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
둘이 그러고 있을 때, 정문에 누군가 찾아왔다.
정도맹 호법 곡호는 장원의 뒤쪽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자 그곳으로 걸음을 놓았다.
그는 장원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신마성이라고 해서 대단한 줄 알았더니 하나같이 일반 백성들뿐이군. 뭔가 잘못되었나? 아니면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인가?”
그는 수십에 달하는 사람들을 살피며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분명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무공을 익힌 흔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곡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기를 갈무리하는 수준의 절대 고수들?’
문득 그런 생각에 미치자 곡호는 몸이 굳어지는 착각을 일으켰다.
그때 밭을 일구던 노인 하나가 곡호를 보며 물었다.
“뉘시오?”
곡호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 예! 저는 정도맹의 곡호라고 합니다. 이곳이 신마성이 맞는지요?”
곡호의 어조는 무척 정중하고 공경스러웠다.
노인이 곡호의 전신을 살피며 다시 물었다.
“맞소만, 여긴 어인 일이시오?”
“맹주님의 친서를 전하러 왔습니다.”
노인이 곡호를 빤히 응시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전표야! 손님이 왔다고 장원에 전하고 오너라!”
뒤쪽에서 열 살 남짓 들어 보이는 꼬마아이가 장원으로 뛰어갔다.
곡호는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노인들이 짚고 있는 제법 굵은 나무기둥이 보였는데, 그 기둥의 위쪽이 매끄럽게 잘려 있었다.
‘이건 엄청난 고수의 수법이다.’
잘려나간 단면이 유리처럼 매끄러웠다.
이 정도의 나무를 범인들이 자르려면 톱으로 썰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톱으로 저렇게 깨끗한 단면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법, 검공의 고수가 검으로 단번에 쳐 낸 것이 분명했다.
“허허! 이 칼도 이제는 다 되었군.”
소박한 갈의를 걸친 장한이 손에 쥔 박도를 내려다보며 혀를 차는 모습이 곡호의 눈에 띄었다. 곡호는 그 장한이 나무를 벤 주인공이라 여겼다.
오싹!
너무나도 평범한 장한의 모습에 곡호는 등골에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누구시오?”
차가운 음성이 뒤쪽에서 들려오자 곡호가 반사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그곳에 얼음처럼 차가운 사내가 서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은 칼날을 보듯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홍무였다.
“저, 정도맹에서 왔습니다. 맹주님의 친서를 가지고 온 곡호라 합니다.”
“이리 따라오시오.”
홍무가 몸을 돌려 걸어가자 곡호는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았다.
문 두 개를 거쳐 곡호가 들어선 곳은 상당히 넓은 대청이었는데 그곳에 금발 청년과 범상치 않아 보이는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정도맹에서 왔다고?”
“그렇습니다!”
곡호가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진천이 그런 곡호를 보며 ‘저게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공진무가 다시 물었다.
“정도맹에서 왜 우리를 찾아온 것이오?”
곡호가 재빨리 품 안에서 서찰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서찰을 읽어 가던 사공진무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마교가 밀렸다는군. 놀라운데? 뇌어양, 그 인간이 밀리다니 말이야.”
“빙궁이 생각보다 막강한가 보군. 그런데 그들이 밀린 것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지?”
둘이 이웃 동네에서 패싸움이 난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곡호는 그런 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세상에! 그 정도의 큰 사안을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다니, 역시 이곳은 오왕이 몸을 담고 있을 만한 엄청난 집단이다!’
진천이 다시 물었다.
“물었잖아!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저, 저기 서찰이 한 장 더 있습니다.”
곡호가 안절부절못하자 슬쩍 미간을 찌푸린 진천은 사공진무를 보며 말했다.
“얀마! 한 장 더 있다고 하잖아!”
“어떤 자식이 서찰에 침을 발랐어! 붙어서 미처 못 봤잖아.”
‘헉! 저거 맹주님 친필인데…….’
곡호가 어깨를 움찔했다.
서찰을 다 읽은 사공진무가 곡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더러 정도맹을 도와 북쪽으로 좀 가 달라, 이 말인가?”
왠지 사공진무의 말투가 조금은 삐딱했다.
곡호가 재빨리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습니다! 지금 용성과의 전쟁으로 많은 분들이 광동으로 몰린 상태라 고수들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우리가 왜?”
“……!”
“웃기는 작자들이군. 아직 정식으로 개파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 협조공문이 아닌 요청을 해 와? 이거, 맹주가 보낸 게 확실하냐?”
“그,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흑야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얼음물에 뛰어든 것 같은 한기가 전해지자 곡호는 그만 부동자세가 되었다.
“무슨 일이냐?”
“형님! 정도맹이 북쪽으로 출진을 요청해 왔습니다.”
“요청?”
“예! 웃기는 작자들 아닙니까! 부탁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인데 요청 공문을 보내다니요.”
흑야가 곡호를 응시했다.
곡호는 지금껏 흑야처럼 차가운 기운을 지닌 사람은 단연코 본 적이 없었다.
“나백이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터지니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 고작 종잇조각 하나로 우리를 움직이려고 들다니 말이야.”
“일단 알았으니 냉큼 가 보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정도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 괜히 산 채로 잡아먹히기 싫으면 서둘러 가 보는 게 좋을 거야.”
곡호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는 재빨리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지옥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곡호가 정문을 몇 걸음 앞두고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헉!”
누군가 또 그를 떨게 만들었다.
막 정문을 들어서던 철무옥이 곡호의 아래 위를 쓸어 보며 물었다.
사납기로는 북궁천소와 버금가는 그의 살벌한 눈빛에 곡호는 오금이 저려 왔다.
“누구냐, 너는.”
“……!”
그가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자 철무옥이 더욱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저, 저는 정도맹의 곡호라고 합니다. 맹주님의 심부름으로 다녀가는 길입니다.”
“맹주? 나백의 심부름을 왔다고?”
곡호에겐 하늘과도 같은 존재를 철무옥은 뒷집 개처럼 입에 담았다.
곡호가 그것에 대해 항의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 오한이 스며드는 그에게 곡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좋은 표정으로 웃어 주는 것뿐이었다.
“가봐.”
철무옥이 곡호를 스쳐 장원으로 들어갔다.
가슴을 쓸어내린 곡호는 자신 인생의 최대 빠르기로 경공을 펼쳐 장원을 벗어났다.
그 후로 곡호가 다시는 장원을 찾지 않았다는 소문이 훗날까지 이어졌다.
* * *
“놀랍군. 뇌어양이 깨지다니. 빙궁이 그 정도로 강했었나?”
철무옥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홍무가 차를 끓이고 있었는데 벌써 석 잔을 더 마신 진천이 한 잔을 더 따르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동안 마교가 너무 놀고먹은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하는군요.”
철무옥이 흑야를 쳐다봤다.
“형님은 왜 아무 말씀이 없소?”
나이가 한 살 더 어린 철무옥이 흑야를 형님으로 대하고 있었다.
흑야가 찻잔을 입으러 가져가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완 상관없는 일이다. 혹, 빙궁이 중원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그때 상황을 봐 가며 적당히 도와주면 된다. 쓸데없는 걱정 따윈 집어치우고 술이나 한잔 하자.”
철무옥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주공께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형님과 똑같은 대답을 하셨겠지요?”
“당연하지.”
흑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홍무가 재빨리 흑야의 뒤를 따랐다.
그것을 본 철무옥이 투덜거렸다.
“충신 났군, 충신 났어. 내게 그거 반만큼만 해 봐라.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자식아!”
철무옥의 말에도 홍무는 아랑곳없이 그저 흑야의 뒤만 쫓았다.
사실 홍무는 요즘 흑야에게서 수련을 받고 있었다. 우상과의 수련은 홍무에게 크나큰 행복이었다.
흑야를 바라보는 홍무의 그야말로 사랑에 푹 빠진 여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저러다가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진천의 중얼거림에 흑야의 어깨가 움찔했다.
진천이 황급히 입을 막으며 눈을 동그랗게 했다.
“늦는 놈은 벌주로 술 단지째로 마실 각오를 해야겠지.”
순간 셋의 육신이 환영을 남기고 밖으로 사라졌다.
제8장 천년금역의 흔적을 찾아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적의 기마대가 반 수 이상이 죽는 극심한 피해를 입고 물러갔다.
모두는 돌아오는 이들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누구보다 혁련천후를 향한 환호성이 컸다.
선두에서 보여 주었던 가공할 무력은 모두에게 마치 꿈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용성은 끊임없이 공격을 가해 왔다.
그러는 와중에 용성의 일천 무사들 중, 절반이 죽어 갔다.
압도적인 무력 차는 수배를 넘어가는 숫자상의 우위로도 극복할 수 없는 철벽과도 같았다.
그러나 상황은 시간이 흐르고 죽어 가는 용성의 무사들이 늘어나면서부터 전황은 서서히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잔주름이 생겨났다.
‘차륜전을 쓰다니.’
그는 비로소 용성의 작전을 간파할 수 있었다.
용성의 무사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뒤쪽에서 적당히 진을 이루고 있던 자들이 앞선 동료들이 모두 죽어 나가자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들은 강자였다.
그 강자들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뛰어들기 시작한 이후로 정도맹의 희생자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그들이 어느 정도 공격을 하다가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그 바람에 모두는 천금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악독한 자들이군. 지금껏 차륜전을 펼쳤단 말인가?”
영호도성이 탄식했다.
그 역시 적이 차륜전을 펼쳤음을 깨닫고 있었다.
비록 적이지만 승리를 위해 무작정 던져진 그들의 주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전장을 벗어나 대열을 갖추려는 용성을 정도맹이 쫓지 않은 탓이었다.
적용백이 다가왔다.
전신을 선혈로 적신 그는 제법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그가 그 정도였다면 다른 고수들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특히 사상자가 많은 청년 고수들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독고혜를 돌아봤다.
“전 괜찮아요. 수고했어요.”
그녀는 혁련천후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며 미소를 건넸다.
혁련천후는 화산의 검수들을 둘러보았다.
씩씩하게 웃어 주는 진청 등을 발견하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친 곳은 없느냐?”
“멀쩡합니다!”
셋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자 주변의 모두가 웃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웃는 이들은 그들이 유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