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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17화 (115/425)

# 117

<귀환무사 117화>

적이지만 살인은 언제나 암울함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원수, 용백을 죽였을 때도 그랬다. 어쩌면 자신을 쫓던 강호인들과의 일인전쟁 이후부터 살인에 대한 혐오감이 은연중에 자신의 잠재의식에 내재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저들을 놔두면 중원전체가 피로 물들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해야만 한다.

그의 눈동자에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시작하지!”

쾅!

혁련천후의 육신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동시에 좌우를 오왕이 함께하고 달렸다. 적용백과 다른 고수들도 일제히 달려드는 기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최초의 접점은 혁련천후가 만들어 냈다.

콰지직!

번쩍!

“크아악!”

히이잉!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기마와 사람이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피가 튀고 잘려진 사지육신이 곳곳으로 비상하며 피를 뿌렸다. 뒤이어 북궁천소와 조윤이 기마대의 측면을 후려쳤으며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가 그어지자 말과 사람이 한꺼번에 두 동강으로 잘라졌다.

“지옥으로 보내 주마!”

왕전의 광포한 음성이 전장을 울리며 그가 펼친 대도에 의해 전마대의 고수 둘이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았다.

“크아악!”

히이잉!

사람과 말이 구슬픈 비명을 터트렸다.

적용백과 영호도성의 검이 빛을 번쩍이며 적의 수급을 베어 가자 질세라 나웅과 진유이 그 뒤를 이었다.

“나 도천세가 예 있노라!”

콰지직!

꽈과광!

굉음과 함께 나웅이 뒤로 날아갔다.

제아무리 천하가 인정하는 신진고수라도 상대는 너무나 강했다.

두필의 인마와 충돌을 하자 한 번에 십 장 가까이 밀려 버리고 말았다.

쐐애액!

섬광이 나웅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자세를 고친 나웅은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쥐고는 날아드는 섬광을 후려쳤다.

꽈앙!

“웃!”

“크악!”

나웅이 휘청거리며 밀렸다.

그와 손을 섞은 자는 피를 뿌리며 말에서 떨어졌다. 나웅의 승리였지만 그 역시 내상을 입고 말았다.

“애송이 새끼!”

쐐액!

나웅의 목을 향해 검이 날아들었다.

순간의 충격으로 휘청거리던 나웅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나웅의 눈에 절망감이 어릴 때, 허공을 번뜩이는 섬광이 일었다.

삭둑!

나웅을 향해 달려들던 자의 목이 날아갔다. 뒤이어 말과 사람이 앞으로 꼬꾸라지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나웅은 황급히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미 그는 적의 한복판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신마성주…….’

혁련천후였다.

* * *

“우…….”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성을 흘렸다.

“저게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냐?”

진호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지금 혁련천후를 보고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건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마치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쾅!

폭발음이 터지며 혁련천후를 노리고 달려들었던 자의 육신이 산산조각으로 터져 날아갔다.

담대소천의 갑주가 태양빛에 반사되며 그 찬란한 빛을 발했다.

거대한 청룡언월도가 질세라 눈이 부시는 빛을 발산하며 적을 사살해 나갔다.

상식을 벗어나는 싸움이 시작된 지 이각 정도가 지났다. 그 짧은 시간에 적의 전마는 벌써 백여 기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역시…….”

“으하하하!”

진청이 돌연 대소를 터트렸다.

이미 그들에게 신처럼 자리 잡은 혁련천후의 가공할 무력을 보니 절로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전마대의 수장은 혁련천후를 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왜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단 말인가!”

전마대의 수장이 혁련천후를 보며 싸늘한 한기를 발산했다.

요주 대상에 없었던 사내였다.

성주 손유의 정보에 없던 그가 무지막지한 무공으로 수하들을 쓸어버리는 것을 보니 소름이 다 끼쳤다.

정보에 없던 인물은 또 있었다.

연신 검을 번쩍이며 이곳저곳에 피를 뿌리는 영호도성이 바로 그였다.

오성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무공은 소문을 뛰어넘은 대단한 것이었다.

전마대의 수장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성주가 이런 실수도 할 줄 아는군.”

그가 손을 들어 누군가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

뒤쪽에서 다른 자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들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짙은 감청색 장포를 걸친 그들의 전신에서 지독한 사기(邪氣)가 물씬 풍겨났다.

“당신들은 저자들을 막아 주시오!”

더욱 진한 청광을 뿌려 대는 그들은 모두 열, 수장도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들이 말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들은 내려서기가 무섭게 혁련천후와 영호도성을 차갑게 응시하더니 이내 그들에게로 몸을 날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이동방향을 막아선 동료들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 버렸다.

“네놈들이었군.”

혁련천후가 손을 거두고 그들을 차갑게 노려봤다.

교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자신의 오감을 자극하던 기운들이 있었다.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그것을 느끼고 있었던 그는 눈앞의 인물들이 그 기운의 주인공들임을 확신했다.

“심상치 않은 자들이오.”

영호도성이 검에 묻은 피를 내공으로 태워 버리며 인물들을 쳐다봤다.

괴이한 죽음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그들은 서서히 좌우를 벌리며 둘을 에워쌌다.

그때 뒤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청년 고수들이 섰던 곳에 일부 전마들이 뛰어든 것이다. 맹호도 팽린과 백리추가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적의 목을 자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수많은 전마들에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혁련천후는 다급히 외쳤다.

[조윤! 저들을 도와라!]

쾅!

조윤이 즉시 몸을 빼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가 막 도착하기 전에 독고혜의 검이 적의 수급을 쳐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검은 한 번에 둘의 죽음을 만들었다.

영호수란이 상기된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혁련천후의 내공이 비록 자신의 것으로 융화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힘이 강해진 것은 꽤나 도움이 되고 있었다.

파괴적인 적의 창질에도 그녀는 전혀 흔들림 없이 얇은 검으로 그들의 모든 공세를 차단했다.

이백여 전마들이 청년 고수들이 있는 곳을 휩쓸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들은 절대 고수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하고 적의 수를 줄이기 위해 그들을 친 것이다.

“검후님을 보호해라!”

“방어진으로 전환한다!”

처처척!

질풍대와 신마각의 무사들이 대열을 이루고 방어진을 펼쳤다.

악승와 관포가 그 용맹을 뽐내며 선두에서 적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고 화산의 제자들은 산발적으로 옆을 튀어나오는 전마들을 상대했다.

그곳에서 탁철의 파괴적인 움직임이 단연 발군이었다.

“개새끼들!”

대도를 휘둘러 눈에 보이는 대로 베었다.

무공으로만 따진다면 독고혜보다 밑으로 봐야 했지만 그 파괴력이 워낙 대단했기에 적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뒈져!”

진청의 검이 사람이 아닌 말의 다리를 잘라 냈다.

바닥으로 뛰어내리던 적은 진호의 검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좋았어!”

“제가 죽인 겁니다!”

“적이나 신경 써라, 이놈아!”

그들은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이 살벌한 전쟁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 * *

중원의 북쪽과 남쪽에서 건곤일척의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즈음, 정도맹의 비영전주 육승은 북쪽에서 날아든 한 마리 전서구를 손에 쥐고 몸을 떨었다.

서찰에 적인 내용이 워낙 큰 사안이었기에 그는 전서구를 날릴 생각조차 못하고서 잡은 손에 힘을 주는 바람에 그만 전서구가 죽어 버렸다.

그만큼 놀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전서의 내용은 그를 부르짖게 만들었다.

[마교가 무너짐. 빙궁의 본대가 마교를 포위하고 모든 퇴로를 차단했음. 그리고 빙궁의 일부 세력이 신강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됨.]

놀랍게도 마교가 빙궁과의 일차 전면전에서 패한 것이다.

전서를 쥔 육승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들이 무너지면 정도맹은 남과 북, 양쪽에서 적을 맞는 형국에 놓이게 된다.

그는 남쪽에서 날아든 전서를 황급히 살폈다.

그러나 아직 승전 소식이 적혀 있는 전서는 없었다. 육승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큰일이구나. 이렇게 되면 북쪽을 방비할 세력을 별도로 모아야 한다!”

그는 재빨리 맹주실로 달려갔다.

* * *

천하가 전운의 먹구름에 휩싸였건만 장원은 어느 때처럼 평화로웠다.

그곳에서는 수련이 한창이었다.

진천은 땅에 머리를 박고서 끙끙거리는 청명과 청진을 보며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자식들아! 환술이 어디 애들 장난인 줄 아냐? 고작 그따위 정신머리로 무슨 환술을 배운단 말이야! 이 자세로 한 시진 동안 꼼짝도 하지 마! 알겠냐?”

끙!

이미 반 시진을 그 자세로 있었던 둘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진천의 입에서 한 시진이 더 떨어지자 둘은 죽을상이 되었다.

“애들 잡겠다. 살살 좀 해라.”

장원의 문이 열리며 사공진무가 나왔다.

그의 옆에 홍무가 손에 쟁반을 들고 따르고 있었는데 쟁반 위에 먹음직한 돼지고기가 담겨 있었다.

“밥 먹고 하자!”

“밥 좋지! 이봐 삼류살수! 술도 좀 가져와 봐!”

“여기 가져왔습니다!”

“오호! 좋았어!”

진천이 눈을 반짝이며 술병을 낚아챘다.

사공진무가 그를 흘긋거렸다.

“저 아이들도 먹여야지. 넌 어떻게 된 놈이 허구한 날 벌만 주냐?”

“고수 되기가 어디 쉽겠냐. 이봐! 너희들! 힘들면 말해라!”

“괜찮습니다!”

둘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진천이 사공진무를 보며 히죽 웃었다.

“괜찮대.”

“에레이!”

퍽!

진천의 뒤통수에 사공진무의 주먹이 작렬했다.

홍무가 장원을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야 님이 아직 주무시나 봅니다. 깨울까요?”

“주무시게 놔둬. 요즘 돈 버신다고 정신이 없으니, 흘흘!”

“제법 벌었지?”

“제법 될걸. 건당 황금 오백 냥을 최하로 본다면 벌써 네 건을 하셨으니, 우와! 엄청 버셨네!”

진천이 입을 쩍 벌렸다.

황금 이천 냥이면 어지간한 성에서 갑부 소리를 듣고 살 수 있을 만큼 거액이었다.

자금을 마련하라는 혁련천후의 말에 흑야는 지금껏 네 건의 청부를 맡아 모조리 해치운 것이다.

물론 청부대상은 흑야, 그만 아는 비밀이었다.

“일어나! 밥 먹고 해!”

청명과 청진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며 일어섰다. 혹독한 수련을 한 탓에 둘의 얼굴은 볼이 홀쭉하게 변한 모습이었다.

홍무가 그들을 보며 측은한 표정으로 돼지고기와 술 한 병을 건넸다.

둘이 진천을 쳐다봤다.

“먹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둘은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고 술을 마셨다.

사공진무가 혀를 찼다.

“완전히 애들 잡았군, 잡았어. 너 그러다 주공께서 돌아오시면 어쩌려고 그러냐?”

“주공께서 왜?”

“쟤들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쳇!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자식아! 주공이 그 정도를 모르는 분으로 보였냐?”

사공진무의 말에 청명과 청진은 갑자기 혁련천후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진천이 둘의 얼굴을 슬쩍 살피더니 눈을 반짝 빛냈다.

“어느 정도 늘었는지 한번 볼까?”

“배운 게 있어야 보여 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청명이 따지듯 대답했다. 진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시 박을까?”

“아, 아닙니다.”

청명이 황급히 시선을 회피하고 마지막 남은 돼지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식사를 끝낸 둘은 강가에 섰다. 진천이 둘을 보며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둘이 마지못해 손을 앞으로 뻗더니 오른손을 허공에서 원을 그렸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일어났다.

흐르던 강물이 모조리 얼어 버렸다. 모두가 크게 놀랐다. 당사자들이 더 크게 놀랐다.

“쯧쯧! 아직 한참은 멀었다, 자식들아!”

진천이 혀를 차며 둘을 꾸짖었다.

그러나 둘은 상기된 얼굴로 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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