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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14화 (112/425)

# 114

<귀환무사 114화>

용맹한 질풍대가 가장 먼저 용성의 군진 가운데를 향해 돌파를 시도하자 그에 질세라 신마각의 무사들이 전마에 몸을 실고서 거대한 창과 도끼로 무장한 용성의 돌격부대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콰지직!

“끄악!”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청년 고수들은 각 부대들의 뒤쪽에서 산발적으로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기 바빴는데 그들의 선두에 백리추가 검을 휘두르며 그 용맹을 뽐내고 있었다.

“주공! 놈들의 전력이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습니다. 암수가 있는 듯 여겨집니다만…….”

조윤이 눈매를 가늘게 하며 용성의 군진을 응시했다.

확실히 그랬다.

중원 정벌을 노리고 침공을 해 온 용성이라고 보기엔 그들의 힘이 지나치게 약했다.

정도맹 진영에서 최고라고 할 수 없는 징풍대와 신마각의 돌파조차도 막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절대 고수들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인가?”

질풍대나 신마각의 무사들 정도면 절대 고수 한둘 정도로 그 걸음을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광포한 움직임을 제어하는 고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장 용성의 고수들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질풍대의 무사 몇이 벌써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특히 엄청나게 빠른 극쾌의 움직임을 보이는 초로의 노인은 단연 발군이었는데 바로 육지신마였다.

그 용맹한 관포조차 그의 검을 막아 내기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육지신마의 주변에서 함께 싸우는 자들도 상당히 강했다.

질풍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길을 내주고 있었다.

뒤이어 신마각, 즉 흑영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혁련천후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천소! 신마각을 도와라!”

“예!”

혁련천후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북궁천소의 육신이 전장으로 날아들었다.

북궁천소가 뛰어들자 용성의 진영이 늑대에게 쫓기는 양 떼처럼 들썩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 뒤쪽으로 물러서라!”

북궁천소의 외침에 신마각의 무사들이 일제히 북궁천소의 뒤쪽으로 물러섰다.

전방에 오직 적들만이 놓이게 되자 북궁천소는 특유의 살벌한 웃음을 머금었다.

“제대로 한번 놀아 볼까?”

쾅!

바닥을 차고 날아간 북궁천소의 대도가 핏빛 무지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크악!”

“으아악!”

검과 사람이 통째로 날아가며 순식간에 열 명에 달하는 용성의 고수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육지신마가 관포를 제쳐 두고 북궁천소에게 달려들었다.

퍽!

“켁!”

막 한 명의 머리를 잘라 낸 북궁천소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육지신마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었다.

“죽을힘을 다해 덤벼야 할 거다.”

“닥쳐라!”

육지신마의 검이 불꽃을 일으켰다.

“요새는 불꽃을 일으키는 게 유행인가 보군. 허나 내겐 촛불보다 못할 뿐이지. 후후후.”

콰아…….

북궁천소가 대도를 크게 휘두르자 주변 공기가 크게 울렁거리며 흔들렸다.

중원에 다시 나온 그가 이처럼 광포한 기세를 뿜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공께서 허락하셨다. 닥치는 대로 죽여도 된다고. 후후후.”

콰아아아!

바닥을 차고 오른 북궁천소가 육지신마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 * *

“고작 이 정도로 중원을 넘본 것이더냐!”

총호법 관승과 적용세가 용성의 고수들을 몰아가며 연신 살수를 전개했다.

초절정을 넘어가는 그들의 손짓에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용성의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앞을 막아서는 자들에 의해 둘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 했다.

복면을 뒤집어쓴 자들이었다.

그들에게서 발산되는 지독한 한기에 적용세와 관승의 얼굴이 굳어졌다.

“인자들입니다.”

“조심하시게.”

“예!”

둘은 검을 고쳐 잡으며 상대를 향해 겨누었다.

“네놈이 정도맹의 장로 적용세였군.”

“오늘 너희들은 이곳에서 모두 죽는다. 쳐라!”

관승이 먼저 뛰어들었다.

인자는 중원의 살수와 같은 맥락의 무공을 구사하는 자들이다. 당연히 암습에 일가견을 지닌 그들이라 정공엔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겼던 관승과 적용세는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나 둘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그들의 한 수 한 수가 그저 놀랍고도 대단했다. 관승은 도법이 극에 달한 고수, 막강한 내력을 담은 그의 대도를 얇은 검으로 후려치고도 끄떡없었다.

“괴물 같은 놈들!”

관승은 이를 악물고 폭풍처럼 몰아쳤다.

적용세 역시 자신을 막아선 자들의 경지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여겨지자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야 했다.

번쩍!

팟!

적용세의 잘린 옷자락이 허공을 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죽음을 모면한 적용세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굳어졌다.

“크윽!”

북궁천소를 막아섰던 육지신마의 오른팔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제아무리 육지신마라도 도왕을 당해 낼 순 없었던 모양이었다.

“도왕! 도왕이다!”

“헉! 죽음의 사자라는 도왕이다!”

주변을 에워쌌던 적들이 북궁천소를 뒤늦게 알아보고는 황급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도왕은 용성에도 그 위명이 알려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그만 꺼져라.”

굉혈도가 번뜩였다.

퍽!

비틀거리던 육지신마의 육신이 둘로 쪼개지며 허무하게 쓰러졌다.

북궁천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싸울 맛이 나지.”

싸움은 난전이자 혈전이었다.

당초 생각보다 약하게만 느꼈던 용성이 새로운 고수들을 투입하면서 전황은 팽팽하게 바뀌어 있었다.

북궁천소는 혁련천후와 벗들을 응시했다.

지금껏 자신의 주인은 칼질 한 번 하지 않고 전장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는데 그 주변에 다가오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윤과 왕전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날아드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조윤의 창과 왕전의 대도는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이었으면 정도맹의 고수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히죽!

“자식들. 신이 났군.”

조윤과 왕전이 자신만큼이나 파괴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북궁천소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놀고만 있을 테냐!”

왕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궁천소는 옷소매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는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콰지직!

“크아악!”

가장 난폭하고도 파괴적인 북궁천소가 본격적으로 굉혈도를 뿌려 대자 그가 있는 전장이 일시에 좌우로 갈라지며 공간이 생겨났다.

북궁천소의 눈에 관승과 적용세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몰아붙이는 복면인들도 보였다.

“섬나라 원숭이 새끼들이군. 마침 잘 걸렸다.”

스슥!

그가 환영을 남기고 그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등 뒤에서 강대한 기운을 느낀 부상막의 고수들이 흠칫하며 몸을 좌측으로 물러섰다.

그중 가장 우측에 있던 자에게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떨어졌다.

쾅!

검으로 맞받아친 부상막의 고수가 휘청하며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마침 그곳이 관승의 코앞이었다. 강력한 충격에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부상막의 인자는 관승의 칼을 피하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

“컥!”

“고맙소!”

관승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북궁천소가 관승을 보며 씩 웃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북궁천소는 재차 부상막의 고수들을 덮쳤다.

졸지에 싸울 대상을 잃어버린 적용세와 관승은 잠시 손을 놓고 그를 지켜봤다.

북궁천소의 무지막지함이 극에 달할 즈음, 용성의 진영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뿌우우!

그러자 용성의 고수들이 서서히 뒤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천소! 물러서라!”

조윤의 외침에 북궁천소는 도망치는 인자들을 쫓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한 놈 정도는 잡을 수 있었는데.”

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혁련천후의 곁으로 몸을 날렸다.

관승과 적용세는 북궁천소의 무지막지한 무공에 혀를 내두르고는 뒤돌아섰다.

“전열을 정비하라!”

“부상자들을 뒤로 물리거라!”

피비린내가 주변을 진동했다.

죽은 자들이 흘린 피로 바닥은 질퍽했고 곳곳에서 화염이 짙은 연기를 뿜어내며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흑영대의 부대주, 지금은 신마각의 부각주로 변신을 한 악승이 혁련천후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꽤 어두웠다. 왕전이 그를 보며 물었다.

“피해는?”

“넷 사망에 다섯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수많은 날을 함께했던 동료들의 죽음에 악승을 비롯한 신마각의 무사들은 비통함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악승을 위로했다.

“무사는 전장에서 죽을 때가 가장 명예로운 것이다.”

“……예.”

악승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죽은 자들을 한곳에 모으며 흐느끼는 자들은 대부분 젊은 고수들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독 시선을 끌었다.

대도를 땅에 박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는 인물, 바로 하북팽가의 맹호도 팽린이었다.

그는 이번 싸움에서 자신의 막내 팽무린을 잃었다.

지난날의 충격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팽무철 대신 이번 전투에 자원했던 동생의 죽음에 팽린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오열을 터트리고 있었다.

“저놈도 눈물이 있었군.”

“동생을 잃었다는군. 그러게 이런 싸움에 왜 오냔 말이지. 그저 전공을 세워 명성을 얻을 요량으로 왔으니. 쯧쯧쯧!”

왕전과 담대소천이 팽린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화산에서 보았던 팽린의 오만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오열하는 그를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영호수란이 흠칫했다.

그녀는 재빨리 혁련천후와 독고혜의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왜 그래?”

“쉿! 조용하세요.”

독고혜가 묻자 영호수란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정도맹의 수뇌부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지금 막,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선두에 영호세가의 인물들이 있었다.

정도맹의 호법 영호찬이 두 사람과 함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바로 십전무제 영호도성과 영호수란의 오빠 영호진이었다.

영호도성이 들어서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신기수사 적용백 역시 영호도성에게 머리를 숙였다.

같은 오성에 속한 그라도 영호도성보다 배분이 낮았던 까닭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영호도성의 시선이 혁련천후에게서 멈추었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혁련천후의 등 뒤에 숨어 고개를 내밀던 영호수란을 발견한 것이다.

“냉큼 이리오지 못하겠느냐!”

“쳇!”

영호수란은 발로 땅을 걷어차며 앞으로 나섰다.

“얼른 가 봐. 괜히 혼나지 말고.”

“거, 일전에 다쳤던 것, 반드시 말해 줘라.”

왕전과 북궁천소가 히죽거리자 영호수란이 독하게 노려보고는 영호도성에게로 날듯이 뛰어갔다.

그녀를 보면 언제나 웃음을 보이는 영호도성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 험한 전장에서 그녀를 보자 정색을 하고서 그녀를 꾸짖었다.

“네놈이 언제 철이 들겠느냐? 이런 험한 곳으로 오면서 이 할아비에게 연락조차 주지 않다니!”

“그만 화 푸세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이놈이 그래도!”

“할아버지.”

손녀의 애교에 영호도성은 말문이 막혔다. 영호수란은 자신을 노려보는 영호진에게 혀를 날름거리고는 영호도성의 손을 잡아끌었다.

“인사시켜 드릴 분이 계세요. 할아버지!”

“인사? 누구 말이냐?”

“아마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얼른 오세요.”

영호도성은 그녀의 팔에 이끌려 혁련천후 앞까지 다가왔다.

자리에 앉아 있던 혁력천후가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서로를 향한 둘의 눈빛이 평소보다 무겁다.

“신마성의 성주님이세요. 그리고 이분은 제 조부님이세요. 서로 인사들 나누세요.”

“화산을 위해 중재를 서셨다고 들었소. 화산을 대신하여 감사드리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오. 그나저나 천하를 쩌렁쩌렁 울리는 신마성의 주인을 보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이외다.”

둘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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