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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13화 (111/425)

# 113

<귀환무사 113화>

* * *

영호수란과 적용유리는 서로를 향해 놀란 눈으로 숨을 헐떡였다.

지켜보던 모두의 눈은 영호수란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적용유리야 세상이 알아주는 여고수였지만 그런 그녀와 동수를 이룬 영호수란이 그들은 믿기지 않았다.

놀람이 극에 달했던 적용유리의 얼굴이 짧은 시간에 차가운 본색을 되찾았다.

“당신이 누군지 알겠군요.”

‘짜증 나!’

영호수란의 미간이 슬쩍 꿈틀거렸다.

그녀와 대결 도중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세가의 무공을 사용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자신이 패배할 것이 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적용유리의 눈빛을 보니 그것을 알아본 모양새였다.

그녀가 알아봤다면 정도맹의 수뇌들은 당연히 알아봤을 것이다.

그녀가 슬쩍 적용백 등이 있는 곳을 돌아봤다.

자신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그들이 보였다. 역시 들킨 것이다.

영호수란의 얼굴 근육이 실룩거리더니 폭발적인 아름다움이 펄펄 풍겨나는 본모습이 드러났다.

“속일 마음은 없었어요. 사정이 있어서…… 아무튼 비무! 즐거웠어요.”

영호수란이 적용유리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청년 고수들의 주변이 뜨거운 열기로 휩싸였다.

천중삼화의 하나인 백선녀 영호수란이 자신들의 코앞에 있었다.

무덤덤한 화산의 제자들에 비해 정도맹의 청년 고수들은 뜨거운 흠모의 빛을 담은 눈길을 영호수란에게 주기 바빴다.

가볍게 미간을 찌푸린 영호수란이 왕전이 건넨 물을 마셨다.

“죄송해요. 저 여우가 너무 강해서 그만 세가의 무공을 사용하고 말았군요.”

“란 매도 충분히 강했어요.”

독고혜가 그녀를 위로했다. 혁련천후는 영호수란을 보며 눈가에 주름을 잡았다. 지금 그녀의 몸 안에는 자신의 내공 일부가 들어 있다.

지금 그녀는 그것을 아직 자신의 기운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아서 깨우치겠지.’

그 기운만 그녀 스스로의 기운과 합친다면 도후 적용유리는 그녀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겼기에 그는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순간 내공을 심어 줄 때 보았던 영호수란의 알몸이 떠오르자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려 버렸다.

비무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날아든 전서에 따르면 다른 부대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고 곧장 남지부로 들이닥칠 것이라 알려 왔기 때문이다.

모두는 부리나케 이동을 시작했다. 남지부까지는 경공을 펼치면 한 시진 정도의 짧은 거리였다.

제6장 남풍(南風)

중원 정벌을 감행한 용성의 주인, 손유는 평원을 늘어선 정도맹의 고수들을 바라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의 옆에 손무와 육지신마가 함께하고 있었고 뒤쪽에 용성의 정예들이 패도적인 기운을 뿜어내며 손유의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알려진 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군. 고작 저 정도로 본 용성을 치러 왔단 말이지?”

“신기 수사, 그자가 총사령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곧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보입니다.”

“오성, 전부가 와주기를 기대했건만, 고작 적용백, 그 늙은 놈, 하나만 왔단 말이냐?”

“아직은…….”

육지신마가 머리를 조아렸다.

지금 평원을 늘어선 정도맹의 고수들 중, 당대의 이름 높은 고수들이 즐비했건만 손유의 눈에는 그저 그런 고수들로 여겨졌다.

그는 천하를 밝히는 별이라 불리는 오성 정도만이 자신의 적수라고 여기는 대단한 자존심의 소유자였다. 물론 그만한 실력도 있는 절대의 영역에 접어든 고수이기도 했다.

손유가 싸늘한 비웃음을 떠올렸다.

“기습을 나갔던 부상막의 피해는?”

“사망 열둘에 행방불명이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다만 본 성의 무사들은 백이 넘어가는 사망자를 냈습니다.”

손무의 보고에도 손유는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유소의 복수를 한다고 중원으로 나섰던 다섯은 소식이 없느냐?”

“아침 무렵에 광동에 들어섰다며 전서를 통해 알려 왔습니다. 다만 합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했습니다.”

“독자적으로 움직이겠다고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옆에 섰던 육지신마가 얼굴을 실룩거렸다.

“놈들의 오만이 지나칩니다! 일이 끝나면 그냥 처치하시는 것이…….”

“그럴 순 없다. 잘만 활용하면 꽤 유용한 전력이 부상막이다. 독단적으로 움직이게 그냥 놔두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 그들이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어 낼지 우리가 모른다면 당하는 정도맹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래도…….”

“그만! 일단 사자를 저들에게 보내도록. 적이지만 격식은 제대로 갖추고 시작할 것이다.”

손유가 몸을 돌려 성곽을 내려갔다.

손무와 육지신마가 그림자처럼 그를 호위했다. 잠시 후, 남지부의 성문이 열리며 흰색 천을 꽂은 전마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정도맹의 진영을 향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 * *

“꼴에 격식은 다 갖추고 지랄들이군.”

왕전이 용성의 사자를 보며 고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자(使者)를 맞은 정도맹의 수뇌부는 그 즉시 사자를 돌려보냈다.

검을 뽑아 죽일 듯, 위협까지 해서 보낸 그들은 이내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무림 세력 간의 분쟁은 대부분 국지전 형태가 아니면 치고 빠지는 유격전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 통례였다. 지금처럼 대대적인 전면전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돌격 대형으로 바꾼다!”

“돌격 대형으로!”

뿌우웅!

외침과 나팔 소리가 울리자 고수들은 사전에 미리 정해진 대열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담대소천이 적용백을 응시하며 말했다.

“정면으로 성을 칠 생각인가 봅니다. 의외로 과격한 면이 있는 자로군요.”

“성공하면 쉽게 끝을 낼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적에게 승기를 내줄 수도 있는 다소 위험한 작전입니다.”

왕전이 거들고 나섰다.

혁련천후는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정도맹의 고수 하나가 혁련천후에게로 달려왔다.

총호법 관승이었다.

그는 혁련천후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총 공격을 개시하려 합니다! 좌측을 맡아 주시기 바란다는 총사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알겠소.”

혁련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승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혁련천후는 주변을 느릿하게 둘러보았다.

모두가 잔뜩 긴장을 한 얼굴로 적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긴장을 하지 않은 이들은 오왕이라 불리는 그의 수하들뿐이었다.

혁련천후는 그들을 향해 나지막이 명령을 내렸다.

“두 명 정도는 방어적으로 나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했기에 내려진 명령이었다.

뿌우웅!

“진격하라!”

우와아!!

나팔 소리가 평원으로 퍼져 나가자 정도맹의 고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전진을 시작했다.

* * *

마교와 북해빙궁이 기어코 격돌했다.

고란평원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다.

“놀랍구나. 저들이 누구인데 감히 천마사로와 접전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마교의 대종사, 뇌어양은 천마사로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거한들을 보며 불신의 빛을 드러내었다.

봉인된 힘을 다시 얻은 천마사로는 그 무력이 극에 이른 극강의 고수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거한들, 다섯을 맞아 고전을 치르고 있었다.

고작 하나가 더 많을 뿐임에도 천마사로는 좀처럼 거한들을 꺼꾸러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전장에 뛰어들지 않은 뇌어양은 거한들의 놀라운 무공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콰지직!

쩌저적!

굉음과 섬광이 난무하는 전장은 이미 죽은 자들이 흘린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뇌어양이 아직 전장에 뛰어들지 않은 까닭에 빙궁주 요성제 역시 뒤쪽에서 물러나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발군의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마교의 검마전주 장용백을 주시하고 있었다.

“으합!”

“크아악!”

장용백의 기합성이 전장을 울리며 그의 주변이 핏빛 안개로 자욱하게 변해 갔다.

어지간한 빙궁의 고수들도 그의 주변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휘두르는 검의 파괴력이 실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퍽!

“크악!”

간혹 용기를 내어 뛰어든 자는 어김없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산하는 장용백은 이리 떼를 쫓는 한 마리 맹호의 모습과도 같았다.

전투가 벌어지고 난 뒤, 빙궁의 고수들을 가장 많이 죽인 자 또한 그였는데,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뇌성제가 누군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놈의 숨통을 끊어 버려라!”

“제게 맡겨 주십시오!”

빙궁 진영에서 거대한 신형이 솟구쳐 오르더니 장용백을 막아섰다.

북해의 별이라 불리는 율탄이었다.

“이놈!”

그는 다짜고짜 장용백을 덮쳤다.

둘의 싸움은 용과 호랑이의 그것을 보듯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율탄이 장용백을 막아 주자 숨통이 트인 빙궁의 고수들은 다른 적들을 향해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온 마교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각 분야에서 그 끝을 본 자들이었다.

장용백보다 못한 자가 거의 없었으며 그보다 더한 자들도 몇 있었다.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빙궁의 피해는 점점 늘어 가고 있었다.

“역시 마교는 마교라는 것인가?”

요성제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잠시 뒤로 물려야겠습니다. 피해가 너무 커지고 있습니다, 주군.”

수하의 말에 요성제는 어쩔 수 없이 병력을 뒤로 물리기로 결심했다.

“퇴각시켜라.”

“예, 주군!”

“모두들 뒤로 물러서거라!”

내공이 담긴 사자후가 전장을 울리자 거짓말처럼 빙궁의 고수들이 뒤로 밀물처럼 물러났다.

그들을 쫓으려던 마교의 고수들을 뇌어양이 말렸다.

뿌우우!

양 진영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서로가 서로의 진영으로 빠르게 물러서면서 혈전은 잠시 중단이 되었다.

뇌어양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적진의 선두에 나와 있는 요성제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 뇌어양을 분기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보던 요성제가 입을 열었다.

“직접 나서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본좌가 없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소수 정예들만 데리고 온 것을 보니 본궁의 전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생각을 하는 것이냐!”

“제대로 보았네.”

담담한 반응에 요성제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똑같이 상대를 해 주지. 여봐라!”

요성제의 부름에 지금껏 싸움에 나서지 않았던 백발의 노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하나같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이 나서자 뇌어양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요성제가 그런 뇌어양을 향해 내공을 담아 외쳤다.

“이번 싸움엔 본좌도 나설 것이니 그대도 칼을 뽑고 나서야 할 것이다!”

요성제와 고수들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뇌성제의 손에도 검이 쥐어졌다.

천마사로가 다가왔다.

“조심하시오, 대종사.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자들이외다.”

“허허허! 사로께서 함께해 주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소. 자! 그럼 우리도 나가 봅시다.”

뇌어양이 성큼 걸음을 놓자 천마사로가 그 뒤를 따랐다.

* * *

국가의 군병들은 공성전을 가장 힘든 전쟁의 하나로 꼽는다. 방어군보다 수배의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가능한 것이 공선전인데 무림인들 간의 공성전은 확연히 달랐다.

발 구름 한 번에 성곽을 넘어서는 존재들이 정도맹에 수두룩했다.

적의 방어망을 넘어서 남지부의 성곽 안으로 내려선 그들은 짧은 시간에 성문을 파괴하여 다른 고수들의 입성을 가능케 했다.

쾅!

우지끈!

가장 선두에 선 자가 바로 담대소천이었다.

그의 청룡언월도가 성곽을 가르자 그 단단했던 성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 버린 것이다.

별다른 저항 없이 남지부로 입성한 정도맹의 고수들은 좌우를 빽빽이 둘러싼 용성의 고수들을 보며 각자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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