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귀환무사 111화>
* * *
마교와 북해빙궁이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는 고란평원.
빙마 요성제는 평원을 길게 늘어선 마교의 고수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드디어 직접 나섰군. 뇌어양!”
적진의 한가운데에 뇌어양이 나와 있었다.
자신의 적수이자 빙궁의 영원한 숙적이기도 한 그를 보자 저절로 투기가 들끓었다.
빙궁의 장로가 요성제에게 명령을 재촉했다.
“어서 명령을 내려주시지요. 궁주!”
“서두를 것 없소. 뇌어양이 직접 나섰다면 필시 놈들도 강한 놈들을 모조리 끌고 왔을 것이오. 어차피 이번 싸움이 대업의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게 될 것이니 놈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대처하는 것이 좋겠소!”
요성제는 뜨거운 가슴과는 달리 머리는 차가웠다.
그는 결코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서둘러서 될 상대도 아니다.
천하의 마교가 그 주인을 몰고 지금 자신들의 지척에 칼을 벼르며 서 있었다. 자칫 잘못 달려들었다가는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다.
“서장의 아이들은 불렀소?”
“얼마 후면 도착할 듯합니다.”
“그자들이 전장에 도착하면 그때 총공격을 하겠소. 그 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먼저 도발을 해서는 안 될 것이오!”
요성제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자신이 거론했던 존재들은 빙궁전력의 삼할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비밀 전력이다.
요성제는 그들과 함께 마교를 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장담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라면 분명 우리에게 필승을 안겨 줄 것이다.’
요성제의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 * *
“놈들의 움직임이 전혀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교의 검마전주 장용백이 빙궁의 군영을 응시하며 눈초리를 가늘게 했다.
옆에 선 뇌어양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군진 앞에 나와 있는 빙마 요성제를 주시했다.
천마사로의 얼굴은 꽤나 불만이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당장 쳐들어가지 않는 뇌어양이 못마땅했다.
“서두를 수는 없겠지. 오랜 시간을 준비했던 저들이니 쉽사리 결판을 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네. 하물면 우리의 숫자가 적음을 보았으니 더더욱 신중하게 움직이려고 들겠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용백이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었다.
숫자가 적은데 더더욱 신중하다니. 뇌어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숫자가 적은 데다 이놈이 직접 나섰으니 분명 본교 최강의 고수들만 몰려왔다고 여길 것이네. 당연히 저들도 그에 상응하는 전력을 갖추고 움직이겠지. 숫자상의 의미가 결코 크지 않음을 모를 요성제가 아니지.”
그제야 장용백이 알아들은 눈치였다. 천마사로의 살로가 뇌어양을 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들이칠 생각은 없으신 게요?”
“허허! 그 문제는 조금 더 기다려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소. 수백 년 동안 칼을 갈아 온 저들이니 섣불리 우리가 뛰어든다면 자칫 범의 아가리 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음을 유념하시오.”
“확실히 교주는 너무 약해지셨소! 전대의 교주셨다면 벌써 저놈들의 머리통을 잘라 놓았을 것이오!”
살로가 다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언성을 올렸지만 뇌어양은 그저 옅은 미소로만 대답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장용백이 뭔가를 발견한 듯, 빙궁의 군영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요상한 놈들이 보입니다. 지금껏 저런 놈들은 본 적이 없는데…….”
모두의 시선이 장용백의 손끝을 향했다.
이 척을 넘어가는 장대한 키에 어지간한 장정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거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빙궁의 군영,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모두의 눈에 보였다.
하나같이 민 대머리를 한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 질리게 만드는 넓은 대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대단한 놈들입니다. 그 기세가 여기까지 전해지다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시간을 끈 이유가 저자들에게 있었던 같습니다.”
장용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움직입니다!”
뒤에 섰던 자들이 일제히 지독한 마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한들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용성의 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만으로 가득했던 천마사로의 얼굴이 그제야 밝아졌다.
“드디어 본 사로의 무서움을 보여 줄 때가 되었군.”
“모조리 핏물로 만들어 주지. 후후후.”
막상 싸움의 전조가 일기 시작하자 지금껏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독로(毒老)가 그 흉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그의 얼굴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는데 대량 살상을 주 무기로 하는 독공을 끌어 올렸다는 징조였다.
천지가 진동하고 산천초목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두 세력 간의 전쟁의 시작은 빙궁주 빙마 요성제의 일갈(一喝)로 그 막을 올렸다.
“빙궁의 영원한 숙적! 마교를 무너뜨릴 때가 되었다! 전군은 마교를 향해 진격하라!”
와아아아!
* * *
칙칙한 어둠이 사위를 두르고 음습함이 지옥을 연상시키는 지하대전(地下大殿)의 주변은 악마의 형상으로 조각된 청동거인들이 그 흉험함을 드러내며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고 서 있었다.
죽은 자의 머리로 장식된 거대한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고 앉은 자의 눈은 지독한 한광을 발산하며 머리를 조아린 자의 어깨를 직시하고 있었다.
“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일전에 섬서에서 보고되었던 낭인이 바로 그였습니다.”
“믿을 수 없군. 그토록 심한 상처를 입고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건만 기어코 살아서 돌아왔단 말인가. 역시 영백은 놈이 죽인 거였어.”
모두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언젠가 혁련천후를 두고 음모를 모의했던 자들이었다.
태사의에 몸을 묻은 적포인의 적염(赤髥)이 가늘게 떨렸다.
“이 손으로 직접 놈의 심장에 칼을 쑤셔 넣었거늘…….”
그때였다.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문제도 생겼습니다.”
“다른 문제라니?”
“견오, 그자가 강호에 나왔습니다.”
“뭣이!”
보고를 올린 자가 말을 이었다.
“악양루의 뒷산에서 견오와 그자가 일전을 벌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지금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알아보고 있습니다.”
“놈이 견오와 붙었단 말이냐!”
“예! 확실한 것은 광룡전의 아이들이 돌아오면 그때 상세하게 보고드리겠습니다.”
“제아무리 석수, 그자라도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견오를 당해 내지는 못할 터, 한데 어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네놈들이 진정 사실을 내게 고하는 것이 맞더냐?”
“아이들의 보고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보고드린 것입니다.”
보고하는 자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적포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대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자가 살아서 돌아왔다.
거기에 오랫동안 종적이 묘연했던 천하제일인까지 동시에 나타났다.
‘그때 확실히 숨통을 끊어놓았어야 했는데…….’
그는 한참을 말없이 움직이지 않고 뭔가를 생각하듯 눈을 굴렸다.
그렇게 대략 반각의 시간이 흘렀다.
적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당은 어찌하고 있다더냐?”
“그들은 완전히 정도맹에서 세력을 철수시킨 상태라고 합니다. 화산과의 대결에서 패한 것이 원인인 듯합니다.”
“병신 같은 놈들! 그토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건만 고작 화산 정도에게 밀려나다니, 구파의 일원으로 들어가 천하를 손에 넣으려던 본좌의 대업이 고작 그깟 도사 놈들 따위에 발목이 잡혔단 말이냐?”
“그것이 석수, 그자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화산에 지금껏 없었던 자들이 상당수 몸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석수로 예상하는데, 신마성의 고수들과 동일 인물인 듯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적포인은 눈빛을 가라앉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뭔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사라진 것에 대해 나백이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더냐?”
“놈이 어떻게 주공을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용성과 빙궁의 성과가 어느 선에 이르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비영전주라는 놈이 꽤나 영특하니 자칫 잘못하면 꼬리를 물고 늘어질 수 있습니다.”
적포인이 그 말에 섬뜩한 빛을 번득였다. 적염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가늘게 한 그가 다시 물었다.
“생강시의 제조는 어찌 되어 가느냐?”
“거의 구 할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완벽해지려면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순간, 적포인의 두 눈이 살광을 머금었다.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경고 하나만 하겠다.”
“……!”
“앞으로 추측이나 여겨진다는 말 따위,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네놈의 목을 본좌의 손으로 직접 썰어 줄 것이다. 정해진 것! 확실한 것만 보고하도록! 알아듣겠느냐!”
“예! 주군!”
“빙궁과 마교는 어찌 되어 가느냐?”
“조만간에 대대적으로 한판 붙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서장의 아이들은 빙궁에 예속된 것이 확실하겠지?”
“그렇습니다! 빙마, 그자는 그 아이들이 대제의 분신인 줄은 결코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쯤, 빙마의 군영에 그 아이들이 도착했을 것이니 곧 좋은 소식을 전해 올리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놈들 하나하나에 든 돈이 무려 황금 십만 냥이다. 가치를 따진다면 그놈들 다섯이 빙궁 전체보다 높다는 말이다. 너는 향후 그놈들의 제어 상태를 완벽하게 살피고 전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곧장 거처로 달려오너라! 알겠느냐!”
“존명!”
쿵!
적포인이 말을 이었다.
“마교는 곧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미리 사련에 손을 넣어 중원의 후방을 교란하게끔 한 뒤, 상황을 보고 직접 나설 것이니 각별히 준비토록 해라!”
* * *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는 별다른 적의 공격 없이 계속해서 남하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동하는 동안 다른 경로로 남지부를 향하던 다른 부대들도 적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남지부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워진 정도맹의 본진이 속속 입성하는 고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부대의 수장들은 신기수사 적용백이 도착하자 이내 대책 회의에 돌입했다.
적용백은 혁련천후도 회의에 초청했다.
그러나 혁련천후는 정중히 거절하고는 수하들과 함께 별도의 대책을 강구했다.
작전은 대부분이 담대소천이 짰다.
누구보다 대규모 전투에 대한 경험이 많은 그라서 일부러 그에게 맡긴 것이다.
“정도맹과 함께 움직이되, 우리의 가장 주된 목적은 아수라마공이 어떻게 유출이 되었느냐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자라는 놈들을 사로잡아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에겐 당면 과제였다.
만약 혈마의 무공 외에도 다른 것들까지 세상으로 흘러들었다면 꽤 심각한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용성의 침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을 정도였다.
물론 강호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다.
오직 그와 일행들, 그리고 자신의 조부라고 칭했던 혁련강만이 알 뿐이다.
“저자들도 회의가 끝난 것 같군요. 상황의 심각함치고는 꽤나 간단하게 끝을 본 모양입니다. 이처럼 빨리 나오는 것을 보니…….”
“별다른 작전이 필요할까? 그냥 머릿수로 쓸어버릴 작정들을 했겠지.”
왕전의 말에 북궁천소가 그다운 대답을 했다.
적용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혁련천후에게 함께 식사를 할 것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것까지는 거부하지 못한 혁련천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용세가 돌아가고 본격적으로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백을 넘어가는 고수들이 몰려 있었던 탓에 출발할 때 아예 쌀과 식재료들을 준비하고 왔는지, 솥을 걸고 불을 지피는 모습이 마치 국가 간의 전쟁을 앞두고 식사를 준비하는 군병들을 연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