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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08화 (106/425)

# 108

<귀환무사 108화>

혁련천후는 숲 곳곳에서 느껴지던 기운들이 감쪽같이 사라짐을 느꼈다.

왕전의 압도적인 무력이 그들을 숲 속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기운들이 사라지자 안개 역시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동영의 인자들이 사용하는 환영진(幻影陳)입니다.”

남궁소미가 주변을 살펴보며 조윤에게 말했다.

조윤이 조금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어린 그녀가 그것을 알아본다는 거 자체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약간 긴장된 얼굴로 주변을 날카롭게 살펴보던 남궁소미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주변사물로 변신할 수 있는 극상승의 변환술과 은신술을 지녔으니 사람의 신체와 비슷한 크기의 모든 사물을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귀식대법을 자유자제로 펼치는 자들이니 기운만으로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그녀의 말은 모든 이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혁련천후의 눈길이 그녀를 향했다.

마침 그를 돌아보던 남궁소미의 눈길과 마주쳤다.

얼굴을 살짝 붉힌 남궁소미가 재빨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남궁세가의 지혜는 제갈세가를 뛰어넘었다더군요. 무척 지혜로운 소저예요.]

독고혜가 전음으로 남궁소미의 재주를 칭찬했다.

‘기운이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유가 귀식대법 때문이었군.’

귀식대법은 일시적으로 호흡과 피부의 온도까지 낮출 수 있는 상승무학이다.

주로 살수들이 애용하는 그것은 시전하는 자의 무공 수위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극심하게 갈린다고 알려져 있었다.

수준에 오른 자들이 시전하면 그 시간 동안은 천하의 그 누구라도 숨어 있는 시전 자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호흡과 온기가 없다면 돌이나 흙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주변에 은신한 자들이 그것을 펼쳐내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주변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동 속도를 줄여야겠다.”

잠시 후, 모두가 속도를 줄여 가며 전진했다.

제4장 신기수사 적용백

보이지 않는 적을 신경 쓰며 이동하던 군웅들에게 남궁소미의 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다소 뒤처져서 걷던 백리추를 노리고 인자의 검이 허공에서 쑥 나타나더니 그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헛!”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지점에서 느닷없는 살수가 쇄도하자 다급한 신음성을 내뱉은 백리추가 황급히 몸을 틀어 검을 피했다.

북궁천소의 육신이 환영을 남기고 백리추의 좌측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백리추를 노렸던 검이 순간 흔들리는가 싶더니 감쪽같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쾅!

북궁천소의 대부가 굉음을 일으키며 검이 나타났던 언저리에 떨어졌다.

산산조각으로 날아가는 바윗덩어리들과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며 자욱하게 허공을 덮었다.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쥐새끼들!”

북궁천소는 숲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헉!”

다급한 비명성이 이번엔 뒤쪽에서 들렸다.

곤륜파의 청년 고수가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어깨에서 붉은 핏물이 솟아올랐다.

조를 책임지고 걷던 나웅이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제법 굵은 나무 하나가 연기처럼 퍽 하더니 사라졌다.

“이런 사술이…….”

나웅이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은신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에 대단히 놀란 것이다.

그의 옆에 섰던 적용유리가 순간 대도를 뽑아 앞쪽 숲 속을 향해 벼락같이 휘둘렀다. 강력한 도강이 뇌전처럼 숲을 덮쳤다.

꽝!

핏물이 자욱하게 솟아오르더니 그들이 섰던 앞쪽을 적셨다.

“잡았다!”

백리관이 소리쳤다.

모두가 적용유리를 보며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왕전의 말이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일러 줬다.

“이런 산돼지잖아!”

“칫!”

적용유리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앞에 떨어져 있던 돼지의 다리 하나를 발로 걷어찼다.

공교롭게도 그것이 날아간 방향이 혁련천후의 머리를 넘어 앞쪽 숲으로 떨어졌다.

순간 혁련천후의 두 눈이 섬광을 발함과 동시에 돼지다리가 떨어진 숲을 향해 전광석화와도 같은 몸짓을 보였다.

“크윽!”

비명이 울리며 혁련천후가 숲에서 나왔다.

그런 그의 손아귀엔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정색 천을 두른 인영이 잡혀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인자를 제압하고 혈도까지 짚은 그의 솜씨에 오왕은 혀를 내둘렀다.

순간, 모두가 혁련천후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놈들은 눈이 아닌 오감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움직인다. 귀식대법의 단점이지.”

혁련천후의 중얼거림에 왕전이 물었다.

“그럼, 방금 날아간 돼지 다리에 이놈이 반응했던 것입니까?”

혁련천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공격으로 느꼈겠지. 모두들 나뭇가지나 돌들을 주워서 사방으로 던지며 이동한다.”

혁련천후는 제압한 부상막의 인자를 북궁천소에게 건네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든 인원이 돌과 나뭇가지에 내공을 담아 숲의 곳곳으로 던졌다.

내공이 실린 그것들은 명중당하면 뼈가 부러질 만큼 강력한 암기와도 같았다.

그것은 곧 부상막의 인자들이 반응하지 않고 숨어 있기 곤란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측에서 왕전의 웃음이 들렸다.

“흘흘! 걸렸지? 새끼야!”

퍽!

큼지막한 바위가 부서지며 피가 튀었다.

털썩!

왕전의 발아래에 머리가 터져 죽어 버린 복면인의 주검이 나타났다. 뒤쪽에서 조윤과 진유가 또다시 둘의 목을 베었다.

“젠장! 이런 놈들에게 몰살을 당했다니…….”

좀처럼 거친 말을 하지 않는 나웅이 순우진의 죽음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나를 깨우치니 이처럼 쉬웠다. 그 순간 나웅의 기감에 수십 개의 기운들이 감지됐다.

“적이다!”

청년 고수들이 사방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귀식대법을 풀었군. 어리석은 놈들.”

오감으로 대상의 기를 느껴 암습하던 부상막의 인자들이 귀식대법을 풀고 눈으로 대상을 찾기 시작하자 그들의 존재가 일거에 드러났다.

그것은 곧 내가 여기 있으니 와서 죽여 달라는 것과 같았다.

그들이 노린 상대는 정면 대결로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길 수 없는 존재들이니 귀식대법을 푸는 순간 죽음은 정해진 것과도 같았다.

왕전을 비롯한 넷의 육신이 벼락처럼 숲의 곳곳으로 날아갔다.

나웅과 진유도 극쾌의 움직임을 보이며 숲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크악!

곳곳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번쩍이는 섬광들이 터지기를 일각 정도가 흘렀을까. 숲으로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모조리 죽였습니다.”

북궁천가 혁련천후를 보며 씩 웃었다.

그 말에 청년 고수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적을 섬멸한 나웅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는 지금 순우진의 성급함을 원망했다. 그가 조금만 더 침착하고 냉철했다면 아까운 인재들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흐! 너 때문에 제법 쉽게 풀렸다.”

왕전이 적용유리를 보며 히죽 웃었다.

적용유리가 눈빛으로 화답했다. 우연찮게 걷어찬 족발이 이런 결과로 나타나자 그녀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혁련천후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놀라워.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파악하다니…….’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신비 단체, 신마성. 그녀는 그 신마성의 성주라는 사람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 * *

컁!

흰색 여우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커다란 늑대를 보며 하얀 송곳니를 드러냈다.

자신보다 열 배 이상은 큰 늑대에 맞서는 흰색 여우의 무모한 행동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거슬리는 행동이다.

크르르…….

침을 흘리며 흰색 여우를 향해 서서히 다가드는 늑대의 눈동자가 먹이에 대한 탐욕으로 번득였다.

캉!

흰색 여우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자신이 먼저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종종 어이없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 어이없는 일이 늑대에게 생겼다.

흰색 여우에게 목덜미를 물려 버린 늑대는 어이없게도 즉사를 하고 말았다.

캉!

죽은 늑대의 주검을 빙빙 돌던 흰색 여우는 이내 숲을 벗어나 쏜살같이 질주를 시작했다. 그 속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었는데 넓은 평원을 지르고 산을 넘어가는데 걸린 시각은 고작 일각에 불과했다.

“상당히 빠른 짐승이군. 뭐지? 고양이처럼 생겼는데…….”

숲을 빠져나온 일행들은 적당한 분지에 앉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장 뒤쪽에 앉아 경계를 서고 있던 나웅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하얀 짐승을 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했다.

“요놈!”

백리관이 잡으려고 손을 벌렸으나 여우는 백리관을 훌쩍 뛰어넘어 앞으로 내달렸다.

어지간한 무림의 고수들도 혀를 내둘 속도에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백랑 왔구나!”

담대소천이 웃으며 팔을 벌리자 흰색 여우, 백랑은 그의 품 안으로 쏙 안겼다.

담대소천의 얼굴을 핥아 준 백랑은 이내 그의 품을 빠져나와 북궁천소에게로 달려갔다.

바닥을 차고 오른 백랑이 그의 머리 위에 앉았다.

“어머! 귀여워라!”

영호수란이 꺅 소리를 내며 백랑을 앉으려고 손을 뻗었다.

순간 북궁천소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좀처럼 낯선 사람에게 가지 않는 백랑이 덥석 그녀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꼴에 수놈이라고 밝히기는…….”

“그러게 말이다.”

“뭐예욧?”

영호수란의 쌍심지가 사납게 올라갔다.

“진천이 일을 끝냈나 봅니다. 저놈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보니 전서도 완벽하게 완성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섬서에서 이곳 광동까지 주인을 찾아온 여우를 보며 모두는 진천이 혁련천후의 명을 끝냈음을 짐작했다.

북궁천소가 혁련천후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비단 조각이었다.

[지시하신 일은 완벽하게 해 놓았습니다. 곧 전서응이 주공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산악 형님과도 연락이 가능하게끔 손을 써 놓았으니 필요하실 때마다 백랑이를 이용하십시오. 그놈이 우리 신마성의 정보 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염려하셨던 십지신검님이 정도맹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다만 부상을 입으셨다고 해서 진무를 그곳으로 보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전서응을 통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장원의 식구들이 제법 늘었습니다.

인근 고을의 주민들이 좀 데려왔습니다. 황제가 바뀐 탓에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덕분에 흑야 형님이 불철주야 청부를 받고 있습니다만,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해서 금옥장을 조만간 찾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차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서를 읽은 혁련천후의 눈가에 주름이 슬쩍 잡혔다.

‘일반 백성들을 데리고 왔다니…….’

인근의 백성들을 데리고 왔다면 장원도 더 넓혀야 했다.

몇 명을 데리고 왔다는 말은 없었지만 진천의 성격을 감안하면 모조리 다 데리고 왔다고 봐야 했다.

천성이 정이 많고 약자를 돌보기 좋아하는 진천이다. 분명 상당한 인원을 데리고 왔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신검께서 돌아오셨다는군.”

독고혜의 고운 얼굴이 비로소 밝아졌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의 유일한 근심거리가 해결된 것이다.

십지신검의 부상소식은 일부러 거론하지 않은 혁련천후는 영호수란과 얼굴 비비기에 열심인 백랑을 응시했다.

“산악에게 저놈을 보내.”

“산악은 사천에 있는데 백랑이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진천이 가능하게끔 만들어 놨다는군.”

조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먼 곳까지 찾아온 놈이니 산악, 놈도 충분히 찾겠군요. 그나저나 진천, 놈의 재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촉한의 제갈공명이 되살아온다 해도 진천에겐 상대가 되지 않겠지요.”

“아마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가 몸을 일으켰다.

하늘을 보니 곧 해가 떨어질 시각이었다. 산맥을 넘어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했다. 저 산맥을 넘어가면 그때부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출발하지.”

아쉬운 얼굴로 백랑을 관산악에게로 떠나보낸 북궁천소가 앞장을 섰다.

산맥의 정상에서 다른 부대들과 합류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일행들은 빠르게 질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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