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07화 (105/425)

# 107

<귀환무사 107화>

거친 비명이 무리의 뒤쪽에서 터져 나왔다. 장한이 고개를 돌리자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하의 모습이 보였다.

철갑을 둘렀음에도 그의 가슴을 삐죽 뚫고 나온 창이 장한의 눈을 찔러 왔다.

‘빌어먹을!’

거친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전력으로 질주한다!”

전마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그 속도가 바람처럼 빨라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놀랍게도 죽어 간 자들은 하나같이 창에 관통을 당해 쓰러졌다.

적들과 자신들과의 거리는 화살이나 가능한 거리였다. 그럼에도 창을 던져 살상을 할 만큼 대단한 고수가 적들 중에 있었다.

첫 전투에서는 분명 없었던 극강의 고수들이 섞여 있음을 짐작한 장한은 초조함을 내비쳤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본진에 그들의 출현을 알려야 했다.

그저 평범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손을 휘젓자 거대한 창이 공기를 찢으며 섬전처럼 날아갔다.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울리며 날아간 창은 어김없이 전마 위의 적을 꿰뚫었다.

모두 스물에 달하는 자들은 놀랍게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관절의 움직임조차 없었다.

창을 날리던 노인이 더 이상 던질 창이 없자 이번엔 그 옆을 질주하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스르릉!

소름끼치는 금속성과 함께 노인의 손에 반월형의 륜(輪)이 쥐어졌다.

적을 향해 살기를 번득인 노인이 손을 펼치자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륜이 쏘아졌다.

창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간 그것은 전마와 사람을 동시에 잘라버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날아가기를 반복하자 수백에 달하던 전마들 중, 오십여 기가 피를 뿌리며 평원 위로 쓰러졌다.

“저런 허약한 놈들에게 물러섰단 말인가?”

동공이 거의 없는 노인의 백안(白眼)이 살기로 번득였다.

“그 정도로 해 두시게. 죽일 놈들은 따로 있다네.”

뇌어양이 앞쪽으로 나서며 노인들을 만류했다.

순간 노인들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나타났다. 뇌어양의 좌우로 늘어선 자들이 호위하듯 에워쌌다.

“살로(殺老)께서는 뒤로 물러서시오!”

장로 동초가 륜을 잡은 노인의 앞을 막아서며 날카롭게 외쳤다.

노인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한 기운으로 번득였다. 동초가 지지 않고 노인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뇌어양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오르며 동초를 뒤로 물렸다.

“이들이 나를 과하게 여겨서 그러니 이해하시게.”

“교주를 허약하게 만든 놈들이니 일이 끝나면 그 죄를 반드시 묻겠소!”

노인, 살로라 불린 그는 동초와 좌우를 늘어선 모두를 노려보며 싸늘한 한광을 발했다.

그의 뒤쪽에 늘어선 셋의 표정 역시 그와 같았다.

이들이 바로 천마사로였다.

마교의 숨겨진 힘이라 불리는 그들의 진정한 정체는 뇌어양 그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뇌어양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천마사로를 달랬다.

“자! 그만 놈들에게 가 보세나. 당신들이 나왔으니 어쩌면 그들도 우리가 모르는 전력을 드러낼지도 모르네. 물론 천마사로를 감당할 자들이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처신해 주기를 바라네.”

뇌어양의 말에 천마사로의 시선이 다시 고란평원을 향해 돌아갔다.

원만한 곡선을 이루며 평원의 끝을 가로막아 선 둔덕 위로 빙궁의 깃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로 새카맣게 모습을 드러내는 빙궁의 고수들이 있었는데 선두에 빙마 요성제가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마교의 성곽을 바라보며 싸늘히 웃었다.

“곧 마교는 강호의 역사에서 그 흔적을 남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휘이잉!

고란평원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 * *

정도맹의 총사령은 신기수사 적용백으로 결정되었다.

당초 적용세가 맡기로 되어 있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적용백의 합류로 스스로 물러섰다.

당초 여덟 부대로 나뉘었던 정도맹은 세 부대로 통합하여 용성의 주둔지인 남지부를 향해 출발했다.

신마성과 화산의 제자들은 구파의 후기지수들과 함께 같은 부대를 이루었는데 책임자는 여전히 진유가 맡았다.

다른 부대들보다 반나절 일찍 출발한 그들은 광동의 초입을 넘어 용현(蓉峴)이라는 작은 고들을 넘어서고 있었다.

북궁천소가 앞을 걸어가는 젊은 청년 고수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귀찮은 짐들만 왕창 데리고 가는군. 빌어먹을 새끼들! 누굴 보모로 아나.”

그는 가장 약한 청년 고수들과 한 부대로 엮인 것이 불만이었다.

그와는 달리 화산의 제자들과 악승을 비롯한 신마각의 무사들은 희희낙락한 표정이었다.

남궁소미를 비롯한 여인들이 모조리 자신들과 같은 부대에 편성된 것이 그저 즐거울 나름이었다.

모용단승만은 예외였다.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오대세가의 자제들이 몇 있었기 때문인데 가끔 눈이라도 마주치면 대뜸 싸늘하게 변하곤 했다.

혁련천후의 옆은 독고혜와 영호수란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바짝 붙어 있었다.

그것이 남궁소미의 눈에는 꽤 거슬렸다.

가서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자신을 알아볼까 하는 염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드러난 그의 신분이 지나치게 크고 높았던 탓도 있었다.

‘삼왕을 거느리는 사람이라니…….’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용성의 침공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삼왕을 수하로 거느리는 그는 이미 정도맹주 나백과 버금가는 거물로 올라선 것이다.

청년 고수들 사이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나웅이 그였다.

그는 신기수사 적용백과 떨어져 일부러 진유가 이끄는 부대에 합류했다.

이유는 적용유리가 이부대로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를 보호해 달라는 신기수사의 부탁이 있어서였는데, 그는 줄곧 혁련천후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장차 정파의 수장이 될 야망을 지닌 그로서는 혁련천후와 같은 거물의 등장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더불어 과연 그가 언제까지 정파와 함께할 것인지, 그 점도 걱정이었다.

‘저런 자가 만에 하나 정파와 돌아선다면 마교나 빙궁에 버금가는 강적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텐데…….’

나웅은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걸었다.

빠른 속도로 용현을 빠져나온 부대는 곧 넓게 펼쳐진 수림 지역을 맞았다.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보이는 그곳은 곳곳이 파헤쳐지고 부러진 창과 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인적이 끊어진 지 제법 오래된 듯, 수풀은 뒤쪽에 우뚝 솟아 있는 산까지 상당한 너비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앞장서서 걷던 진유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져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와 혁련천후에게 보고했다.

“숲이 상당히 넓고 높은 것으로 보아 적들이 매복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우회해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만…….”

“돌아가면 목적지까지 얼마나 지체되지?”

“산맥을 돌아가야 한다면 대략 일주일가량은 더 걸릴 듯 여겨집니다.”

혁련천후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생겨났다.

일주일이라면 지나치게 길었다. 그의 표정을 살핀 조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색조를 편성하여 먼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아니다! 그냥 곧장 돌파한다.”

“부상막의 인자들이 포진하고 있다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만…….”

“의사를 물어보고 가고 싶다는 자들만 데려간다. 전쟁에서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담대소천이 자신이 뒤쪽에서 이동하던 청년 고수들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일에는 그가 적격이었다.

담대소천이 다가오자 청년 고수들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자동적인 반응이었다.

“저 숲에 적의 매복이 포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날카로움과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대들도 잘 알고 있을 터! 함께하고 싶은 자들만 앞으로 나서라. 단 그렇지 못한 자들은 우회해서 최종 목적지에서 합류하면 될 것이다.”

청년들은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천하의 오왕이 있고 그들을 수하로 거느리는 혁련천후가 함께하고 있다.

거기에 나웅과 매화무적 진유가 있었으니 적의 매복 따위에 두려움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 간단하게 정해지자 담대소천은 머쓱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모두 함께하겠답니다.”

혁련천후가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느릿하게 뒤돌아서더니 청년 고수들을 느릿하게 쓸어 봤다.

꼴깍!

누군가의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혁련천후가 진유를 눈짓으로 불렀다.

“각자 열 명씩 대형을 이루어 들어간다. 대형의 정점에 강한 자들을 배치하도록.”

“알겠습니다!”

진유가 청년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각, 열 명씩 여섯 개의 대형으로 나뉘었다.

적의 매복이 있다면 한 무리로 뭉쳐서 이동하는 것은 더욱 대처 속도를 느리게 할 뿐이다.

열 명씩 대형을 나누어 한 무리에 강한 자를 하나씩 배치하면 그만큼 적의 기습에 대응하기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왕전을 비롯한 모두는 각자 다른 조로 갈라졌다.

북궁천소만이 혁련천후와 같은 대열에 끼었다.

그의 호위 때문이다. 딱히 호위야 필요 없었지만 쓸데없는 일에 자신들의 주인이 힘을 사용하는 것이 싫었던 그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산개한다!”

“산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두는 숲 속으로 들어섰다.

칙칙한 안개가 숲 안을 뿌옇게 채워 놓고 있었다.

주변에 작은 강이 하나 있었지만 오후임을 감안하면 이상 기후로 여겨질 만큼 지독한 안개였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무슨 안개야.”

영호수란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가까운 우측에 조윤이 들어간 조가 걸음을 맞추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 조에 남궁소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한 그녀는 이내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위적인 안개다.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살피며 이동한다!”

진유가 내공을 담아 나지막이 소리쳤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숲 속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자 청년 고수들의 얼굴이 제법 굳어졌다.

가장 바깥쪽을 이동하는 조에 담대소천과 왕전이 각각 포함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운데를 이동하는 조들보다 적의 기습에 취약한 위치였던 탓에 일부러 담대소천과 왕전을 포함시킨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신분을 알고 있는 청년 고수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기위한 세세한 배려였다.

사사삭!

모두는 최대한 기척을 죽여 가며 전진했다.

혁련천후는 기감을 열어 주변을 감지했다.

미세한 호흡소리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저 정도면 극상승의 은신술을 지닌 최상급의 살수로 봐야 했다. 그는 기척의 주인들이 동영의 인자들일 거라 확신했다.

[반드시 한 놈은 사로잡아야 한다!]

혁련천후는 동시에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수하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천리회청술(千里回聽術)을 시전한 것이다.

절대자들의 전유물인 그것은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전음을 날릴 수 있는 극상승의 수법이었다.

파팟!

깡!

좌측에서 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놀란 소리들이 쏟아지며 왕전의 고함이 울렸다.

“이 새끼!”

쾅!

거대한 나무 몇 그루가 동강이 나며 숲 한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솟아나는 그곳으로 왕전이 몸을 날려 들어갔다.

“대열을 유지해라!”

진유가 고함으로 한쪽으로 몰리려는 청년 고수들을 제어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슬쩍 감탄의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이 대단히 뛰어났다.

기습이 벌어진 곳으로 몰리면 다른 쪽이 허술해진다. 당연히 허술해진 쪽의 무사들이 기습에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모두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왕전이 들어간 숲으로 가운데를 이동하던 조윤이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왕전과 조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전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북궁천소가 물었다.

“놓쳤냐?”

“그게 아니고, 그만 죽어 버렸다. 스스로 독단을 물고 뒈지다니, 에잉! 독한 새끼들!”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혁련천후에게 머리를 긁적인 왕전은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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