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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06화 (104/425)

# 106

<귀환무사 106화>

그들을 수하로 거느릴 정도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될 거라 예측했던 것이다.

‘당대 무림에 그 정도의 수준에 오른 이는 일존, 견오만이라 말하고 있거늘, 설마 저자도 그와 비슷한 경지란 말인가.’

혁련천후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적용백이 돌연 고개를 갸웃하며 적용세를 돌아보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신분이건만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이냐?”

“그게, 한사코 이곳에 있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백부님처럼 번거로운 자리를 싫어하는 듯합니다.”

“흠.”

적용백은 다시 한 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점원이 음식과 술을 내어오면서 적용백은 혁련천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 * *

고수들이 더 몰려왔다.

당초 정도맹에서 발표했던 인원보다 더 많은 고수들이 집결지로 몰려들었다.

대부분이 중간에서 합류한 사람들인데, 거물급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제자들을 데리고 왔다.

실전 경험을 쌓으려는 것과 천하의 이목이 집중된 전쟁에서 그 명성을 얻고자 함이 주목적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예.”

식사를 끝낸 혁련천후 일행은 번잡한 객잔을 벗어나 객잔의 뒤쪽 강가로 이동했다.

그곳엔 임시로 세워진 천막들이 있었는데 신마성이라는 글귀가 들어간 제법 큰 천막이 눈에 보였다.

혁련천후는 천막을 바라보며 묘한 감흥에 젖었다.

신마성이라는 문파로서의 공식적인 첫 걸음이었다. 전쟁이 거듭될수록 그 이름은 천하에 널리 알려질 것이다.

‘가급적이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 좋겠지.’

뜻하지 않았던 용성의 침공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지만 어쩌면 천하에 신마성을 알리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신마성이라…… 이거 괜히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주공.”

어지간한 북궁천소가 다소 격동의 빛을 보였다.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뒤를 따르던 흑영대원들도 묘한 감흥에 빠져 있었다. 자신들은 이제 화산 신마각 소속의 무사들이다. 비록 화산과 신마각이 그 이름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다고 봐야 한다.

마교의 전귀에서 신마성의 전사가 되었으니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진유가 소식을 가져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도록 해.”

“예. 주공.”

신마각과 화산의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앉았다.

신마성 바로 옆에 화산의 천막이 있었기에 구분 없이 넓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 오자 경비를 서던 정도맹의 무사들이 난리가 났다.

감히 마주 볼 수 없는 엄청난 존재들이 설마 허름한 천막으로 울 줄이야 누군들 생각이 했을까.

그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은 내막을 모르는 무사들은 허겁지겁 객잔에 있는 수뇌부에 그 사실을 알리러 뛰어갔다.

혁련천후는 그 모습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은 모용단승을 향해 물었다.

“물건은 장원에 두고 왔느냐?”

“예. 이 층 금고에 넣어 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조윤을 보며 물었다.

“금옥장이 물건 매매도 한다고 했지?”

“그렇게 들었습니다.”

“전서가 오면 진천에게 금옥장을 한번 들르라고 전해.”

조윤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금옥장을 말입니까?”

“단승이 가져온 것을 금치문에 가져가 적당한 가격에 팔라고 해.”

“알겠습니다.”

혁련천후는 용성과의 전쟁에서 신마성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준 다음에 본격적으로 개파에 박차를 가할 심산이었다.

그러자면 당장에 돈이 더 있어야 했다.

전력은 그 어떤 문파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자금력은 여전히 보잘 것이 없었다.

일전에 금치문이 사과조로 일정 금액을 약속했지만 그것으로는 턱도 없다.

독고혜가 말을 건넸다.

“오라버니를 만나면 제가 의논해 보겠어요.”

말을 하던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직 독고무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던 까닭이다.

혁련천후가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고는 말을 건넸다.

“강한 분이시다.”

“십지신검이 강하다는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모!”

왕전이 거들었다.

위로가 되었는지 다소 그늘을 지워 낸 그녀가 말을 이었다.

“금전적인 부분은 일시적인 해소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문파를 운영하려면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문파와 연계된 이익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해요.”

“맞아요. 저희 세가도 직접 운영하는 곳이 제법 많아요. 물론 그 자식 때문에 몇 년 동안 적자를 보긴 했지만 그곳에서 발생하는 이익금으로 세가를 꾸려 나갔어요. 뭐, 잘될 때면 제법 큰돈이 들어오곤 했으니까 좋은 자리에 인기 있는 업종을 차려 잘만 운영하면 문파를 운영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거예요.”

조윤이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말했다.

“상점을 내든, 다른 무엇을 하든, 그것을 차릴 돈이 없다는 게 문제군요.”

“돈이야 금치문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기로 했으니 그쪽 분야에 정통한 인물을 우선 구해야 합니다. 저희들이야 싸울 줄만 알았지 그쪽 방면으로 영…….”

왕전의 너스레에 모두는 수궁하는 빛을 보였다.

그의 말이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문파들은 직영이든 아니든 직접적인 수입원을 곳곳에 두고서 지속적으로 수입을 창출해 내고 있다.

문도들의 수가 많을수록 자금력의 압박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도장이 아닌 문파이기 때문에 문도들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력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이지만 그것은 사파들이나 하는 짓, 정당한 사업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해야만 했는데, 하나같이 천하를 떨어 울리는 존재들이지만 그쪽 방면에 재주가 없다 보니 상단 쪽에 근무했었던 인물 몇 정도는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 진유가 달려왔다.

그 표정이 제법 심각하게 굳은 것을 본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라도 터졌느냐?”

“마교와 북해빙궁이 드디어 전면전을 벌였답니다!”

“헉!”

놀란 음성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혁련천후를 비롯한 오왕들은 조금도 놀라운 빛이 아니다.

다만 악승과 신마각의 무사들,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진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혁련천후가 물었다.

“소규모 국지전이 아니고 전면전을 벌였단 말이냐?”

“고란평원에서 대대적으로 충돌을 했다고 합니다. 비영전의 소식에 의하면 마교의 장로 둘이 전사하고 빙궁 역시 장로, 넷 이상이 전사하는 치열한 접전이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 번의 충돌에 양측의 장로 여섯이 죽다니. 모두는 충돌의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상황은?”

진유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 이후로는 서로를 견제하며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맹에서 예측하기로는 마교가 곧 대대적인 공격에 나설 거라고 합니다.”

“당연하지. 그 자존심 강한 위인이 장로 둘이 죽었다는데, 스스로 칼을 뽑아 달려가고도 남을 일이지. 그나저나 이거, 판이 제대로 커지는데…….”

말을 흐린 조윤이 진유에게 다시 물었다.

“수뇌부들은 뭐라고 하더냐?”

“당분간은 지원군을 보낼 생각은 없다고 하십니다만, 상황이 마교에 불리하게 전개되면 지원군파견은 불가피할 듯 보입니다. 그들이 무너지면 중원 북쪽이 위험해지니까…….”

묵묵히 듣고 앉았던 담대소천이 혁련천후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때도 도와주실 생각이십니까?”

조윤의 물음에 혁련천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교가 위험에 처하면 반드시 부탁을 해 올 것이다. 공식적으로 어떤 상관 관계를 그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정도맹을 도왔으니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부분은 잠시 고민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두가 그의 입만을 주시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다소 허망한 대답이 혁련천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진유의 보고는 일각을 더 이어졌다.

물론 대부분이 북해빙궁에 관한 정도맹의 입장을 전한 것이지만 신마성의 출현에 대한 수뇌부의 반응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마성과 화산이 동행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보이는 수뇌부들의 반응도 들어 있었다.

* * *

광활한 고란평원(高欄平原)을 내려다보는 뇌어양의 얼굴은 평소의 인자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두 눈 가득 분노를 담은 그는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포가 심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적진을 노려보는 두 눈이 좀처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런 뇌어양의 옆을 지키고 선 인물들, 거대한 체구에 핏빛 대부를 양어깨에 두른 백발 노인과 쌍검을 교차하며 두르고 있는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은 마교의 장로들인 송학(宋學)과 동초(同超)였다.

“장례는 모두 끝났는가?”

“모두가 성대한 장례를 치른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초가 허리를 숙였다.

뇌어양의 시선이 허공을 향해 던져졌다. 죽어 간 수하들의 영령이 그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껏 그대들은 나의 유약함을 질책했었지. 천하에 마교의 위대함을 보이자고 수많은 나날을 재촉하지 않았던가.”

둘은 입을 닫고 자세를 경건히 했다.

뇌어양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말일세, 피가 난무하는 전쟁이 싫다네. 무척이나……. 정파인들은 나를 천하에 둘도 없는 대마두라 비난했지만 사실 그동안 나는 본교와 상관없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죽인 적이 없었지. 물론 그러한 점 때문에 교도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말일세.”

“교주님을 비난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만 교주님의 하늘에 닿은 능력이 그저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뇌어양이 웃었다.

좋아서 웃는 미소가 아니었다.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그런 살소(殺笑)였다.

뇌어양의 육신이 서서히 뒤로 돌아섰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지나치게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군. 곽 장로와 곤 장로의 피 묻은 주검을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네.”

그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둘은 보조를 맞추며 옆을 따랐다.

“동 장로.”

“예! 교주!”

“천마동(天魔洞)을 열게나.”

“교주!”

둘의 육신이 세차게 떨렸다.

천마동은 마교 최강의 무력이 깃든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그곳을 연다는 말은 단천신마(斷天神魔) 뇌어양이 세상에 그 모습을 공식적으로 드러낸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놀람은 이어졌다.

“천마사로(天魔四老)의 봉인을 풀고 그들을 내게 데려오게나.”

“천마사로! 그분들을 말씀입니까?”

“교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니 당연히 불러야지. 한 번 겪어 봐서 알겠지만 적은 그리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동초가 재빨리 뒤쪽으로 날아갔다.

뇌어양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많이 생겨났다.

마교 최강의 고수들을 불렀음에도 가슴 한구석을 차지한 불안감은 지워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두두두!

전마가 지나간 평원은 자욱한 먼지로 하늘을 가렸다. 수백을 넘어가는 전마들의 위에 한눈에도 거칠어 보이는 사내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거대한 칼을 뽑아 들고 앉아 있었다.

태양혈이 불끈 솟아난 그들은 군병들의 갑주와는 다른 형태의 철갑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 위세가 무지막지했다.

선두에 선 장한이 사자후를 토해 냈다.

“멈춰라!”

거침없이 질주하던 전마들이 순간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세웠다.

명령을 내렸던 장한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전방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런 장한의 눈동자에 평원의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단의 무리들이 채워져 있었다.

순간 장한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뒤틀렸다.

“놀랍군. 직접 나섰단 말인가?”

장한은 선두에서 느릿하게 걸어오는 초로의 노인을 직시하며 중얼거렸다.

상당한 거리였음에도 이곳까지 전해지는 은은한 기세에 장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전마를 돌렸다.

“본진으로 돌아간다!”

수백의 전마가 일거에 방향을 틀어 질주를 시작했다.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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