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05화 (103/425)

# 105

<귀환무사 105화>

의외의 상황에 놀란 당곽이 고수들을 시켜 그들을 쫓으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관산악과의 싸움에서 대부분 부상을 당한 상태인지라 제대로 쫓을 수가 없었다.

당곽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모조리 도륙을 내주마!”

그들 쯤이야 자신 혼자면 충분하다고 여긴 당곽.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몸을 날리지 못하고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퍽!

“크흑!”

날아든 강기가 그의 왼다리를 부러뜨렸다.

뼈가 살갗을 헤집고 나오는 중상을 입은 당곽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떼굴떼굴 굴렀다.

관산악의 솜씨였다.

그가 모용세가의 무사들을 추격할 것을 짐작한 그는 당률에게 위장 공격을 퍼붓고는 강기를 날려 당곽을 저지한 것이다.

자신의 코앞에서 벌어진 일에도 당률은 더욱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 대단한 애송이로다. 허면 노부도 상대해 보겠느냐!”

당률이 양손을 벼락같이 앞으로 뻗었다.

관산악은 감히 마주칠 엄두를 못 내고 몸을 회전시켜 공세에서 벗어났다.

허공에서 지면으로 떨어질 그 순간, 관산악은 바닥을 차며 생겨난 탄력을 이용해 당률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쾅!

두 번에 이어진 공격은 당률조차도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괜히 마교 최강의 전귀라는 별명을 얻은 관산악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률은 그보다 더한 고수였다.

관산악은 그의 옷깃조차 건들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그는 내심 생각했다.

‘그들이 거리를 벗어날 시간만 끌어 주고 나 역시 도망쳐야 한다. 여기서 놈에게 죽으면 그저 개죽음일 뿐이다.’

관산악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당률은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당률의 눈동자가 이내 가늘어졌다. 관산악의 속내를 짐작한 것이다.

“시간을 벌어 주고 도망을 치겠다는 생각을 먹었다면 함부로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괜한 고통을 자초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빌어먹을!’

관산악은 터져 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참았다.

상대는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관산악은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찾아내었다.

‘제발 먹혀야 할 텐데…….’

당률이 자신의 꾀에 넘어와 주기를 빌면서 벼락같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늙은이! 너는 모용세가를 쫓아라! 이 몸은 잘난 네놈의 세가를 작살내러 간다!”

“……뭣이!”

순간 당률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몇 수 겪어본 관산악의 무공 정도라면 자신이 없는 세가에서 그와 손을 섞을 만한 고수는 자신의 손자이자 당대의 가주인 당효뿐이다.

그조차도 관산악을 이겨 낼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렇다면 당가는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이놈!”

당률이 관산악을 쫓아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제3장 오왕을 수하로 둔 존재

“여우같은 계집애들 같으니!”

영호수란이 먹던 숟가락을 놓으며 투덜거렸다.

광동에 접어든 그들은 광동 최고의 객잔, 광동제일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이 정도맹의 이 차 집결지였다.

지금 맞은편 탁자에서 계속 이쪽을 힐끔거리는 남궁소미의 태도가 그녀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남궁소미의 눈빛에 어린 뜻을 짐작한 독고혜 역시 혁련천후를 살며시 노려보기도 했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이해 못한 혁련천후는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다른 이들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신마성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터라 담대소천은 더 이상 옷을 걸치지 않았다.

은색갑주에 붉은색 흉갑을 입은 그대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청년 고수들은 흠모에 찬 눈빛으로 힐끗거리기 바빴다.

북궁천소가 담대소천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낯이 따가워 밥을 먹을 수가 있나. 인마! 넌 저쪽에서 밥 먹어!”

“술이나 마셔라.”

영호수란이 왕전을 보며 농담을 건넸다.

“그렇게 먹으면 살이 쪄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어요?”

“남 걱정 말고 너도 많이 먹어둬. 전에처럼 또 기절하지 말고.”

“뭐예요!”

와장창!

눌러 놓은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서던 영호수란이 그만 탁자를 건들자 접시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객잔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는 영호수란을 보며 왕전을 비롯한 모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독고혜가 미소 지으며 짐짓 왕전을 나무랐다.

“너무했어요.”

“저게 자꾸 시비를 겁니다. 죄송합니다.”

왕전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이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천하의 전왕이 머리를 조아리는 여인이 있었단 말인가.

객잔의 모두는 그들은 독고혜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무리 검후가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감히 전왕이 머리를 조아릴 순 없다.

당연한 반응이다.

혁련천후와 그녀가 부부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행뿐이었으니까.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북궁천소가 으름장을 놓았다.

“신경 끄고 밥이나 먹어라!”

객잔은 이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시간이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광동제일루는 정도맹의 무사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관승이 이끄는 질풍대를 마지막으로 몰살을 당한 순우진의 부대를 제외한 칠로의 부대들이 모두 모였다.

화산파와 적용세가 이끄는 부대, 그리고 전멸당한 순우진의 부대 말고는 별다른 공격을 받지 않은 듯 모두가 밝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젊은 고수들은 의욕에 넘친 모습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을 적용세가 이끌던 부대에 소속이 되어 있던 청년들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쳐다봤다.

지나치게 소란스러웠던 까닭이었다.

대부분이 용성의 무리쯤이야,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고 있었는데,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들로서는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그들이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백리추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던 황보수란이 코웃음을 쳤다.

“흥! 저러다가 한번 된통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잘나가는 구파의 신진 고수들이 모조리 몰려왔군. 저기! 소림의 십팔나한도 있네. 와우!”

백리관이 황색가사에 어깨를 드러낸 열여덟 명의 승려들을 보며 탄성을 발했다.

못마땅한 기색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다른 청년들도 승려들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소림의 십팔나한은 자신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들이다.

하나하나가 절정의 초입을 밟고 있는 그들이 펼치는 십팔나한진의 위력은 강력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엔 영웅 대회 최종 사강에 들었던 광한도 섞여 있었다.

모두가 속속 들어서는 이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백리추의 눈동자가 순간 섬광을 발하며 한쪽으로 돌아갔다.

훤칠한 용모에 멋들어진 백색 장포를 걸친 미청년이 객잔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객잔 안에 있던 모든 청년 고수들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정도맹의 대공자 나웅이다!”

“역시 멋지다!”

후기지수 최강자라 불리는 나웅이 백발 노인과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함께 객잔을 들어서고 있었다. 나웅을 보며 탄성을 지르는 청년 고수들과는 달리 백발 노인을 본 왕전이 혁련천후에게 말을 건넸다.

“오성의 하나라는 신기수사(神奇修士) 적용백입니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현신이라고 불리는 자입니다. 듣기에 그의 명성을 들은 황제가 그를 태자의 사부로 초빙하려고 했다더군요. 용성이 꽤나 골치 아프게 생겼군요. 당대 최고의 머리가 이곳에 왔으니…….”

조윤이 적용백을 지그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혁련천후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적용백의 옆에 선 면사의 여인을 쳐다보던 영호수란의 얼굴이 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쳇! 여우들이 모조리 몰려왔군. 호랑이라도 풀어야 할까?’

자신에게 있어 최대의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여중제왕이라 불리는 검후 독고혜에 가장 근접한 여고수라 불리는 도후(刀后) 적용유리가 바로 면사의 여인이었다.

별호에 걸맞게 그녀는 여인이 지니기엔 지나치게 큰 칼을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북궁천소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것은 적용유리의 어깨에 걸린 칼을 보았을 때였다.

“유리도(琉璃刀)를 여기서 보다니, 그렇다면 저 계집은 그 늙은이의 제자쯤 되겠군.”

왕전이 말했다.

“유리도라면 광도(狂刀), 그 늙은이의 것이 아니냐? 목숨처럼 여기던 자신의 칼을 저 계집에게 내주었다면 죽었다고 봐야 하나?”

“그 양반이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지. 헌데 웃기는군. 여자 보기를 짐승처럼 대하던 그가 제자를 계집으로 두다니…….”

묵묵히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던 담대소천이 중얼거리자 북궁천소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 광도지. 미친놈 속을 누가 알겠느냐.”

넷이 가볍게 웃었다.

짙은 선홍색 무복을 걸친 적용유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오왕이 나란히 앉아 있는 탁자를 쳐다봤다.

순간 면사가 바람이라도 분 듯, 가볍게 흔들렸다.

‘투왕 담대소천!’

은색갑주에 붉은 흉갑, 그리고 탁자에 비스듬히 걸쳐놓은 거대한 청룡언월도를 보고 투왕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녀는 미처 왕전과 다른 이들의 정체를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담대소천의 복장이 눈에 띄었던 까닭이었다.

“뭣 하느냐? 어서 오지 않고…….”

적용백이 부르자 그제야 그녀는 걸음을 옮겨 적용백의 옆에 앉았다.

나웅이 그녀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나웅과 적용백은 담대소천과 왕전 등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적용세 등과 아직 만나지 못했기에 그들이 화산파와 함께 남하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적용유리가 눈빛으로 담대소천을 가리켰다.

“투왕이 계시더군요.”

“……!”

나웅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나웅은 자신도 모르게 포권을 취했다.

담대소천을 보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왕전이 그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벌써 몇 번에 걸쳐 보았던 그였지만 그때마다 소름이 돋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뒤이어 혁련천후과 북궁천소, 그리고 조윤이 보였지만 영웅 대회에서의 모습과 다르게 변장한 그들을 나웅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독고혜 역시 몰라봤다. 그녀 역시 변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시선을 거둔 나웅은 적용백을 보며 말했다.

“투왕과 전왕이 왔습니다.”

적용백도 마침 담대소천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나웅의 말에 입을 열었다.

“외세의 침입에 손을 보태고자 온 것이라면 감사해야 할 일이지. 그나저나 언제까지 배를 굶길 작정인 게냐.”

“아!”

당황한 나웅이 재빨리 점원을 불러 간단한 요리와 술을 시켰다.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인 오성의 일인이 등장하자 객잔 안은 소리 없이 들끓었다. 그때 수뇌부들과 함께 이 층에서 머물고 있었던 적용세가 내려왔다.

“백부님! 오셨으면 위로 올라오지 않으시고…….”

적용백은 그에게 백부였다.

“골치 아픈 자리는 질색이다. 그나저나 순우 호법의 일을 들었다. 다른 피해는 없었느냐?”

“신마성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신마성? 오호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그들이 이곳엘 왔단 말이냐?”

“저기…….”

적용세는 눈짓으로 혁련천후와 오왕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흑발을 늘어뜨린 저 인물이 성주라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하의 오왕을 수하로 부리는 인물이 있었다니…….”

“……!”

그 말에 천하의 적용백도 두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오왕을 수하로 거느린 존재가 있었다니.

“허어, 참으로 놀라운 일이로다.”

적용백은 혁련천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얼음으로 빛은 듯, 차갑기 그지없는 그에게서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질 않자 적용백의 눈동자가 섬광을 발했다.

‘놀랍구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다니, 설마 조화경에 든 고수란 말인가?’

세상을 담은 듯, 고요하고 지혜롭던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기운을 갈무리할 수준은 절대의 반열에 든 고수들이라면 누구든 가능한 경지였다.

자신도 그 정도의 수준을 밟고 있었지만 조화경은 그런 절대의 반열에 든 자들만이 노릴 수 있는 신의 영역이다.

그가 혁련천후를 그 정도로 생각한 이유는 오왕을 거느린다는 점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