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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02화 (100/425)

# 102

<귀환무사 102화>

* * *

악양루에서 집결한 정도맹의 고수들은 다음 날 각자의 방향으로 나뉘어 광동을 향했다.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그들은 비보(悲報)를 접했다.

호법 순우진을 비롯한 전원 몰살.

본대보다 반나절 먼저 출발했던 척후조가 가져온 비보에 모두는 침통함을 금치 못했다.

소식은 다른 방향을 통해 남하하고 있던 다른 부대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혁련천후와 그 일행들에게도 역시 전해졌다.

무섭도록 차갑게 변해 버린 혁련천후를 힐끔거리던 화산의 제자들은 날아든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실전경험이라야 고작 화산에서 당가와 벌였던 싸움이 전부였던 그들은 최초의 적과의 접전에서 몰살해 버린 아군의 비보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극도의 긴장감을 드러냈다.

진유가 조심스럽게 전서를 혁련천후에게 전했다.

“순우 호법이 이끌던 부대가 전멸을 당했다고 합니다.”

혁련천후를 대신하여 전서를 받아 쥔 조윤이 읽어 보지도 않고서 재로 만들어 버렸다.

진유는 혁련천후의 눈빛을 보고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차가워도 너무 차가웠다.

“속도를 빨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공!”

“……!”

“놈들이 각개격파를 노리는 듯합니다. 산악 지역에서 부상막의 인자들이 암습을 해 온다면 다른 부대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윤의 말에 혁련천후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명령을…….”

그 차가움에 조윤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돌려 화산의 제자들을 쳐다봤다. 자신을 보며 두려운 기색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눈을 찔러왔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악승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보았던 혈육, 혁련강의 얼굴이 도저히 지워지질 않았다.

그와 화산의 제자들이 함께 교차되며 떠올랐다.

심장이 뜨거워졌다 차가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저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조윤!”

“예! 주공!”

“각각 흩어져 사방을 경계하며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조윤을 비롯한 넷이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의 기습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첫 전투는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대지를 덮어 가던 바로 그 시각에 벌어졌다.

일행들보다 조금 앞서 걷던 북궁천소가 느닷없이 숲 안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동시에 조윤이 외쳤다.

“방원진을 펼쳐라!”

사사사삭!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산 제자들과 흑영대원들이 일제히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 선두에 진유가 섰으며 뒤는 조윤이 맡았다.

“크악!”

우지끈!

북궁천소가 뛰어든 숲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왕전과 담대소천은 혁련천후의 옆에 서서 그저 숲을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영호수란이 그런 둘을 보며 말했다.

“친구 맞아요?”

“그럼!”

“쳇! 친구가 싸우는데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친구야?”

왕전이 씩 웃었다.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는데 우리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 않느냐.”

“그 조무래기들이 정도맹의 호법과 고수들을 몰살시켰단 말이에요! 걱정되지도 않아요?”

“걱정은 개뿔, 우리가 도와주면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들 놈이다. 저놈은…….”

왕전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본 영호수란이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렸던 그녀는 그냥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그는 차가웠다.

악양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 이후로 그는 곁에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한기를 풀풀 풍겼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독고혜에게 물어봤으나 돌아온 대답은 그저 미소뿐이었다.

‘쳇! 가뜩이나 얼음 강시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이젠 저승사자처럼 변했네.’

영호수란은 그를 슬쩍 쳐다보고는 북궁천소가 들어간 숲을 쳐다봤다.

번쩍이는 빛들이 수풀사이로 연속적으로 비쳤다.

그리고 잠시 후, 북궁천소가 숲에서 나왔다.

분명 용성의 고수, 아니면 부상막의 인자들과 싸웠을 그였지만 호흡은 그저 잠을 자는 어린아이처럼 평온했다.

북궁천소가 머리를 긁적이며 혁련천후 앞에 섰다.

“죄송합니다. 새끼들이 죽자 살자 덤비는 바람에 생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멍청한!”

왕전이 북궁천소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혁련천후가 물었다.

“인자라는 놈들이 몇 명 있었지?”

“둘이었습니다.”

혁련천후가 조윤을 부르자 재빨리 조윤이 옆으로 달려왔다. 그는 다시 인자들의 숫자를 물어보았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곳에 있을 때는 스물을 넘어가지 않았었습니다. 혹, 부상막 전체가 용성으로 넘어왔다면 그 수는 백을 넘어갈 것입니다. 동영이라는 곳에서 가장 큰 세력이니 그 정도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혁련천후는 더 묻지 않았다.

그가 말없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독고혜가 그를 따라붙었다.

“화가 나셨나?”

“당연하지. 생포를 하라고 하셨지 않느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머쓱한 표정으로 섰던 북궁천소가 왕전의 부라림을 받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북궁천소는 슬쩍 뒤로 빠져 화산의 제자들과 걸음을 맞추었다.

조윤이 앞서 걸어가는 혁련천후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으신 모양이군. 검후님께도 말을 하지 않으시니…….”

“그렇겠지. 나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둘의 대화를 듣던 진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사숙조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냥 그럴 일이 조금 있었다. 자! 놈들이 언제 다시 습격해 들어올지 모르니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이동한다!”

조윤이 주변을 돌아보며 가볍게 소리쳤다.

더 묻지 못한 진유는 아쉬움을 접고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 * *

스스로 한 부대를 이끌고 남하하고 있던 적용세는 뒤를 따르는 고수들을 돌아보며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대부분이 명문세가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그의 부대는 상황의 무거움을 모르는 듯, 분위기가 지나치게 산만했다.

지나친 긴장도 문제가 되겠지만 지나친 방심은 더더욱 문제가 된다.

저런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암습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대처 속도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피해를 입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적용세가 옆을 걸어가던 장한에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경계심을 심어 주게나.”

“예!”

장한이 빠르게 뒤쪽으로 이동했다.

‘저리도 철들이 없어서…… 쯧쯧!’

내심 혀를 찬 적용세는 전방을 주시하며 눈을 빛냈다.

걷는 와중에도 그는 최대한의 기감을 열어 주변을 감지하고 있었다.

아직 다른 부대들이 기습을 당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가장 최적화된 정보기구를 지닌 정도맹이다. 여타 전서구와는 달리 그들은 이동 중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특화된 전서구를 지니고 있었다.

각 부대 간의 거리는 경공을 펼쳤을 때 반 시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산이 걱정이군.’

진유가 이끄는 부대는 여러 문파들로 구성된 다른 부대들과는 달리 화산, 단독 부대였다.

그나마 함께 했던 질풍대도 악양루에서 새로운 부대로 편성이 되어 버렸다.

당초 정도맹의 지시와는 다르게 편성된 이유는 화산이 그렇게 해 주기를 요청한 탓이었다.

적용세는 혁련천후의 차가운 얼굴을 떠올렸다.

‘지나친 자신감은 되레 큰 화를 당할 수도 있거늘.’

그는 혁련천후가 여전히 껄끄러웠다.

화산의 단독 작전도 어쩌면 그가 원했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수석 장로님!”

청아한 목소리가 적용세의 생각을 방해하며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적용세의 눈에 상당히 아름다운 소녀가 보였다.

“오! 너는 소미가 아니냐?”

“그간 강녕하셨어요, 장로님!”

“허허! 그래. 헌데 너도 참전했더냐? 악양루에선 보이질 않더니 언제 온 것이냐?”

“조부님을 뵙고 뒤늦게 합류했어요.”

환하게 웃는 남궁소미를 보며 적용세 역시 미소로 답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는 노부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알겠느냐?”

“풋! 싫어요. 저는 젊은 총각들과 같이 갈래요. 저 갈게요, 장로님!”

남궁소미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재빨리 뒤쪽으로 돌아가자 적용세가 머쓱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머금었다.

장한이 상황을 주지시키자 뒤쪽을 따르던 무리들이 제법 조용해졌다.

그들을 쳐다보던 적용세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가운데를 이동 중인 백색 장포를 걸친 헌앙장부가 그의 눈을 찔러왔다.

‘흠! 백리가의 복이로다.’

그의 눈을 찔러 온 청년 고수는 바로 백리세가의 대공자 백리추였다.

천하에 그 자질을 인정받고 있는 백리추를 보며 적용세는 감탄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곧은 성정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야말로 강호인들이 꿈꾸는 대협의 기질을 백리추가 지니고 있었다.

백리추의 주변은 아름다운 소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호탕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대하는 백리추의 모습에 적용세는 자신의 늙어 버린 나이를 잠시 한탄했다.

그때였다.

쐐액!

공기를 가르는 소음이 적용세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적용세의 고개가 벼락같이 뒤로 돌아갔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방심을 자책한 그는 굳어진 얼굴로 몸을 날렸다.

깡!

금속성이 울리며 번쩍하는 불꽃이 주변을 밝혔다 사라졌다.

검을 들어 암기를 막아 낸 인물은 백리추였다.

“기습이다!”

채챙!

누군가가 소리치자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가며 병장기를 꺼내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백리추의 옆에 내려선 적용세는 날카로운 안광을 발하며 주변을 쓸어 봤다.

기감에 걸려든 자들의 숫자는 대략 스물, 만약 자신의 기감에 걸려들지 않은 고수가 있다면 상황은 꽤 위험하다고 볼 수 있었다.

“방어진을 형성하고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하여라!”

그때였다.

숲이 흔들리며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흐흐흐! 애송이들만 모였군.”

순간 적용세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가장 염려했던 부상막의 인자들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전면전은 자신이 있었다.

자신과 신분을 감추고 일행들 속에 섞여 있는 정도맹의 비밀 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신비에 가려진 고수들, 바로 사천왕이 직접 길러 낸 고수들이었다.

담대소천!

정도맹의 수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적용세의 옆으로 평범한 인상의 장한들이 섰다.

모두 넷인 그들이 바로 사천왕의 직계제자, 담대소천 들이다.

조금 전, 청년 고수들에게 주의를 주었던 장한이 차가운 시선을 발하며 입을 열었다.

“용성의 조무래기들이냐!”

“잠시 후에도 조무래기라고 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후후후!”

청색 무복을 걸친 초로의 인물이 섬뜩한 빛을 발산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주변을 늘어섰던 자들의 검에서 강맹한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적용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한 놈들이군.’

저 정도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는 수준이다.

숫자는 자신들이 많았지만 몇은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어린 청년들이었다.

적용세는 속전속결을 결심하고는 장한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의 눈빛을 받은 장한들이 벼락같이 용성의 고수들을 덮쳤다.

“쳐라!”

“쓸어버려라!”

상대의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삼각형을 이루고 대열을 정비한 용성의 고수들은 날아드는 장한들을 향해 일제히 검을 뻗어 냈다.

곧이어 피와 살이 튀는 혈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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