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99화 (97/425)

# 99

<귀환무사 99화>

* * *

질풍대주 관포는 악양루의 삼 층으로 올라갔다.

팔로의 고수들을 총괄하는 수석호법 적용세가 오대세가의 몇몇 가주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눈에 번쩍 띄는 미녀들이 관포의 눈에 들어왔다.

잠시 그녀들을 보며 눈을 빛낸 관포는 적용세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질풍대주 관포가 수석 장로님을 뵙습니다.”

“허허! 그래. 오는 길에 별일은 없었느냐? 이쪽으로 앉거라.”

적용세가 인자한 표정으로 관포를 맞이했다.

맹호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체격의 노인과 한 자루 칼날 같은 예기를 풍기는 흑발 노인, 그리고 학사의 고고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중년인이 관포를 응시했다.

“과연 소문대로 뛰어난 젊은이로다! 옛다! 내 술 한잔 받으시게!”

맹호를 연상시키는 노인이 술잔을 내밀었다.

관포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정도맹의 질풍대주라면 결코 낮지 않은 위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관포가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술잔을 받는다면 노인들의 신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능히 짐작이 갔다.

그들은 바로 황보세가의 전대가주 황보력과 단리세가의 전대가주 단리황, 그리고 천하제일현자로 칭송받은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였다.

그들이 바로 오성(五星)의 일인들이었다.

하나 같이 절대의 영역에 들어선 그들이 삼 층의 정중앙 탁자에 모여 있으니 주변 인물들은 숨죽여 식사와 술을 먹고 마셔야 했다.

정도맹의 수석 장로인 적용세조차도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있었다.

이번 출전군의 총사령을 맡지 않았다면 그들과 동석은 불가하다고 봐야 했다.

단리황이 관포를 보며 물었다.

“네가 화산의 아이들과 함께 이동했다고 들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

“뒤뜰에 있습니다.”

“허어! 놈들을 혼내 줄 생각인가?”

황보력이 물었다. 단리황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놈아! 내가 무슨 심술이나 부리는 그런 추물로 보이느냐? 지난날 오해로 인해 그들에게 빚을 안겨 주었던 것이 있어 말로서라도 풀고자 그런다. 되었느냐?”

“크흠! 네놈이 백 년을 살더니 이제야 철들었군.”

“네놈은 죽어 흙속으로 들어가야 철이 들겠지? 몸뚱이가 크니 자리도 더럽게 차지하겠구먼. 쯧쯧쯧!”

천하인들의 공경을 받는 오성의 대화치고는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소탈함에 각 문파의 수장들로만 채워진 삼 층의 모든 인물들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만나 보시겠습니까, 어르신!”

적용세가 공손히 물었다.

단리황이 적용세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네놈도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구나. 이놈아! 막 도착한 아이들 배를 굶겨 죽일 일 있느냐?”

한 자루 검을 연상시키는 지독한 날카로움과는 달리 단리황은 해학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천하의 적용세도 단리황 앞에선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단리황이 관포을 인자한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매화무적 진유라는 아이가 인솔자라 들었다. 식사를 끝내면 그 아이를 잠시 내게 들르라 전해 주겠느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머리를 조아린 적용세는 관포에게 물었다.

“진유와 제자들, 그들 말고 다른 인물들은 함께하지 않았느냐?”

“신마각 소속의 무사들 서른과 속가제자들이라고 하는 인물들 다섯이 함께 왔습니다. 아! 그리고 검후 독고 소저와 삼화의 한 분인 영호소저도 함께 왔습니다.”

관포의 대답에 놀란 사람들은 삼 층의 다른 인물들이었다.

특히 젊은 청년 고수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천하제일의 여인들이라 불리는 천중삼화! 그중 두 명이 이곳에 왔다니.

반면 오성과 함께 있던 여인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다만 적용세만큼은 다른 거에 놀랐다.

적용세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신마각 소속이라니, 그들이 왔단 말이냐?”

“화산에 그러한 집단이 있었더냐? 금시초문이로구나.”

황보력의 궁금증을 적용세가 재빨리 풀어 주었다.

“이번에 신설된 무력 부대라 합니다. 일전에 영웅 대회에서 구천각주를 물리쳤던 자도 그곳에 속해 있습니다.”

“오! 그 소식은 노부도 들었지. 허허허! 화산이 이제야 옛 영광을 찾으려나 보군. 진유라는 아이만 출중한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아이들이 있다지 않은가.”

“두고 봐야 알 일이지.”

황보력의 말에 단리황은 다소 차갑게 말을 받았다.

단리소와 그들 간의 악연을 그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제아무리 오성이라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자리가 불편했던 관포는 이내 질풍대가 머무르는 뒤뜰로 내려갔다.

그런 관포를 따라 일어서는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먼발치에서라도 검후와 영호수란을 보고자 관포의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 저희들도 아래 층으로 가 볼게요.”

“허허! 그러려무나.”

오성의 옆에 앉았던 여인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들도 하나같이 경국지색의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바로 지난날 섬서에서 화산의 제자들과 잠시 인연이 있었던 황보수란과 남궁소미였다.

* * *

역시 악양루의 금존청은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

처음엔 살짝 독한 맛이 돌다가 이내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맛에 일행들은 벌써 열 병을 넘게 마셨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서민들 몇 달 치 생활비와 맞먹는 술값이지만 영호수란 덕분에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사실 영호수란의 소맷자락엔 금 오천 냥이라는 엄청난 거금이 들어 있었다.

바로 금치문에게 정신적인 피해 위자료로 받은 돈이었다.

모두가 술맛에 취해 있을 때, 담대소천만이 다른 일행들과 달리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국가를 수호하는 병사들을 오 년 동안 이끌었던 그였다.

목숨을 걸고 나라와 백성들을 지켜 내는 그들이 과연 죽기 전에 냄새조차 맡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담대소천은 술잔을 기울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혁련천후가 그런 담대소천을 쳐다보며 한마디 건넸다.

“적당히 즐기는 것도 괜찮아.”

담대소천의 속내를 짐작한 그는 술병을 들어 담대소천의 잔에 술을 채워줬다.

북궁천소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병사들이야 제대로 된 황제가 들어서면 저절로 형편이 나아지겠지. 네놈이 궁상떨며 걱정한다고 그놈들 밥상이 달라지기도 한단 말이냐?”

“그냥 술이나 마셔. 헛소리 그만하고…….”

담대소천은 혁련천후가 따라 준 술이라 마지못해 단숨에 들이켰다.

혁련천후는 그런 담대소천의 잔을 계속해서 채워주었다.

한편, 신마각의 무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질풍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관포가 내려오자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그 뒤를 따라오는 청년들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남해검문의 소문주 전진과 팽가의 맹호도 팽린이 청년들 사이에 섞여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질풍대보다 그들을 먼저 발견한 쪽은 바로 화산파의 제자들이었다.

진호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자식들을 하필이면 이런 데서 또 보네.”

“한번 붙어 보시렵니까? 원하시면 제가 자리를 마련할 수도…….”

말을 건네던 진명이 진호의 싸늘한 눈초리에 입을 닫았다.

술잔을 기울이던 모용단승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과거의 악연을 떠올린 그는 전진을 싸늘히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역시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던 진청이 어느 순간에 표정이 급변했다.

황보수란과 남궁소미가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들며 내려오고 있었다.

진호와 진명도 마침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치뜨며 진청을 돌아봤다.

“아는 소저들이냐?”

“누구냐? 엄청난 미인들인데, 이 자식이 이런 재주도 있었네?”

“그런 거 아닙니다.”

둘의 너스레에 고개를 흔들던 진청이 무심결에 혁련천후를 돌아보더니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시지?’

진호와 진명도 진청의 시선을 쫓아 혁련천후를 쳐다봤다.

혁련천후의 얼굴이 상당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그런 그의 시선이 뒤뜰의 옆쪽에 나있는 작은 출입구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 백포를 걸친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제9장 당대의 제일 고수를 만나다

‘놀랍도록 강한 자군.’

혁련천후는 귀환을 한 이후에 사람을 보고 전율을 느끼는 최초의 경험을 맛보고 있었다.

능을 자극하는 기묘한 기운이 백포인의 전신에서 발산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지?’

백포인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다.

그때였다.

팍!

백포인과 혁련천후의 한가운데 솟아 있던 작은 향나무가 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에 앉아 있던 질풍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용맹한 관포조차도 굳어진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질식할 듯 파괴적인 무형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허허허! 참으로 대단한 젊은일세. 잠시 후에 뒷산으로 올 수 있겠는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나 들어 봅시다.]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그저 호기심이 동해서 그런 것이니 부탁함세. 허허허.]

혁련천후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인 백포인은 그대로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주변을 몰아쳤던 무형의 기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혁련천후는 그가 모습을 감춘 뒤에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돌연 눈빛을 발했다.

‘혹시 저 사람이…….’

그는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한 존재를 떠올렸다.

어쩌면 자신의 행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존재다.

만월(滿月)이 자신을 태우며 그 빛을 천하에 뿌리는 심야(深夜), 사위는 벌레 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혁련천후는 악양루의 뒤쪽에 우뚝 솟아난 산을 향해 느릿하게 걸었다.

산책이라도 하듯 여유롭기까지 한 그의 걸음걸이는 결코 느린 것이 아니었다.

한 걸음에 이 장을 미끄러지는 극상승의 보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일각이라는 시간을 걸어가던 그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전방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 한 인물이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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