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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97화 (95/425)

# 97

<귀환무사 97화>

영호수란을 살핀 독고혜가 이마를 찡그렸다.

그녀는 혁련천후를 눈짓으로 불렀다.

“여기를 좀 보세요. 뭔가 이상해요.”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영호수란은 식은땀을 흘리며 점점 의식을 잃어 갔다.

상의를 조금 흘러내린 영호수란은 가슴골이 조금 비칠 정도였는데 그것에 개의치 않은 혁련천후는 상처 부위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가 급격히 눈빛이 흔들렸다.

‘이것은…….’

“왜 그래요? 뭔가 짚이는 것이라도 있나요?”

“습격했던 자들의 검강이 무슨 빛이었지?”

“마공을 익힌 자들로 보였어요. 일반적인 검강과는 다른 붉은빛과 주황빛을 섞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혁련천후의 얼굴이 무겁게 굳어졌다.

지금껏 이처럼 굳은 표정을 보인 적이 없는 그였다.

뭔가 심각함을 느낀 독고혜는 말없이 그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혁련천후가 뒤를 돌아보며 담대소천과 일행들을 불렀다.

독고혜가 영호수란의 풀어졌던 상의를 끌어 올려 몸을 가리자 모두가 다가왔다.

굳어진 혁련천후의 얼굴을 본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혁련천후가 조윤을 보며 물었다.

“부상막이라는 곳의 놈들과 싸워 본 적이 있느냐?”

“시비가 붙은 적은 있지만 제대로 싸워 본 적은 없습니다. 한데 그것은 왜 물으시는지요?”

“어쩌면 놈들이 그곳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그곳이라시면…….”

“금역!”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금역이란 혁련천후가 십 년을 살았던 곳을 말하는 것이다.

조윤이 놀란 빛을 감추지 못하고서 물었다.

“혹시 저 아이의 부상이 그곳에 있는 마공에 의한 것으로 보십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아수라멸천공(阿修羅滅天攻)의 흔적으로 보인다. 아니면 다행이겠지만…….”

일순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금역엔 절대 세상에 나와선 안 될 극악한 마공들이 즐비하다.

하나만 세상에 나와도 강호는 피바람에 잠기고 말 것이다.

그중 하나가 아수라멸천공이다.

오백 년 전,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혈마(血魔) 공소(孔韶)의 독문 무공인 그것을 혁련천후가 언급하고 있었다.

“놈들이 어떻게 그것을…….”

“반드시 금역에서 그것이 유출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공소의 출신지가 어쩌면 부상막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전투가 벌어지면 놈들 하나 정도는 사로잡아서 정보를 캐내 보는 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왕전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에 아수라멸천공이 맞으면, 저대로 두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혁련천후는 영호수란을 응시했다.

이미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는 그녀는 입술이 파리하게 변해 있었고 심장의 박동소리 또한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사공진무가 있었다면 별문제가 될 게 없었지만 그가 없는 지금, 그녀를 구할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혈마 공소보다 더 강력한 내공을 지닌 고수가 아수라멸천공의 독강을 체내에서 몰아내는 것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혁련천후뿐이다.

“주공.”

그것을 알고 있는 왕전이 그를 응시했다.

치료 방법이 그러함을 모르는 독고혜는 심각한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먼저 출발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왕전이 밝은 표정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화산의 제자들과 흑영대, 그리고 질풍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화산의 제자들은 그들을 보며 의아함을 보였지만 재촉하는 진유 때문에 숲의 건너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용성의 거대한 깃발이 첫 승전의 기쁨을 자랑하듯 바람에 거세게 휘날렸다.

뒤늦게 합류한 본대로 인해 정도맹의 남지부였던 그곳은 이천을 넘어가는 용성의 고수들로 넘쳐 났다. 연무장 주변을 가득 메운 수백의 천막들에서 대지를 가를 듯, 강대한 기운들이 줄기줄기 뻗쳐 나왔는데 그런 연무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용성의 성주에게 육지금마가 공손한 태도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정도맹의 고수들이 팔로로 나뉘어 이곳을 향하고 있음이 보고되었습니다. 그중 셋 정도의 무리는 이미 호북을 넘어 빠른 시일 안에 광동으로 접어들듯 보입니다. 하오니 허락하신다면 아이들을 보내 중도에서 요격, 섬멸하겠습니다!”

육지금마는 자신감에 넘쳤다.

용성주는 그런 육지금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빙궁을 두고 이곳으로 몰려온다는 것은 그들과 마교 간에 암묵적인 계약이 성사되었다고 봐야겠군. 역시 뇌어양! 그 늙은이가 문제였어.”

“부상막주를 직접 보내 그자를 암살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아니다. 일단 우리는 정도맹과 일전을 벌여야 할 것이니 마교는 당분간 빙궁과 놀게 내버려 둬라. 그대는 즉시 전투 부대를 편성하여 놈들이 들어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다 모조리 참살하라!”

“흐흐! 그리하겠습니다!”

“기선제압이 중요하니 강한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록! 그리고 부상막의 인자들도 각 부대에 몇 명씩 포함시켜 놈들을 이끄는 수장들을 제거하도록 하여라!”

“존명!”

육지신마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른 자가 나섰다.

“놈은 돌아왔느냐?”

“호북지부에 계신다고 합니다. 다만 가셨던 일은 뜻을 이루지 못한 듯 여겨집니다.”

용성주의 얼굴이 가볍게 일그러졌다.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낸 그가 불만을 토해 냈다.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 못하도록 돌아오면 내성의 모든 업무를 놈에게 맡겨라! 그리고 놈의 주변에 흑살전의 아이들을 붙여 다시는 말없이 본좌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용성주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뿌렸다.

“삼 년이다. 그 삼 년이 지나기 전에 천하를 본좌의 발아래 둘 것이다.”

용성주의 야망이 가득한 두 눈동자는 성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중원 대륙을 보며 번쩍 그 빛을 뿌려 댔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연무장을 가득채운 자신의 수하들을 응시했다.

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표정부터 몸짓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저들이라면 충분히 본좌의 대업을 이루어 줄 것이다.”

* * *

눈을 뜬 영호수란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독고혜를 보며 힘없이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잠시 잠을 잤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움직이는 것은 무리이니 그대로 잠시 더 누워 있어요.”

독고혜가 영호수란의 얼굴을 깨끗한 천으로 닦아 주며 따뜻한 말로 그녀를 달랬다.

주변을 돌아보던 영호수란이 저만치에 앉아 있는 왕전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자신을 돌아보던 왕전이 반가운 표정을 짓는 것이 보이자 그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 의식을 잃었다.

‘누가 나를 구해 주었지?’

그녀는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면 영영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살 만하냐?”

왕전과 일행들이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영호수란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독고혜가 부드럽게 웃어 주며 말했다.

“잠깐 운기 중이세요. 조금 있으면 오신답니다.”

영호수란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무심결에 혁련천후를 찾은 자신의 행동이 어쩌면 그녀의 속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미안함이 생겨났다.

“영호소저도 얼른 운기를 하세요. 조금은 고통스럽더라고 참고 혈맥을 다스리세요.”

“고통스럽다고요? 지금껏 운기를 할 땐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해 보면 알 거예요. 어서 시작하세요. 그리고 절대 입을 벌리면 안 된다는 거 명심하세요.”

“…….”

영호수란은 독고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운기 도중 입을 벌리면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쯤이야 자신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럽다니, 그녀는 그 말이 이해되질 않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영호수란의 얼굴이 비 오듯, 땀방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복이 거저 굴러들어 왔음을 알고 있을까?”

“지금쯤 몸의 변화를 깨닫고 있겠지. 주공의 내공이 심어졌으니 깨어나면 펄쩍 뛰면서 놀라워할 거다. 그나저나 이러면 곤란한데…….”

왕전이 말을 하던 도중에 슬쩍 독고혜의 눈치를 살폈다.

퍽!

[네놈이 고쳐 주라고 부탁을 했지 않느냐!]

북궁천소의 면박에 왕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북궁천소가 말을 이었다.

[이거, 이러다가 작은 주모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주공이 자신의 알몸에 손을 댄 것을 알면 가뜩이나 집요하던 저 아이가 절대 떨어질 리 없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주모님 혼자서 차지하기엔 주공이 너무 대단하신 분이지 않냐. 일처 사첩도 그분에겐 부족하다고 봐야지.]

[이러다가 세상에 예쁜 여인들은 모조리 주공께서 차지하시겠군.]

왕전과 북궁천소가 전음으로 너스레를 떨고 있을 때, 영호수란이 눈을 떴다.

토끼처럼 눈을 크게 한 영호수란이 자신을 응시하는 독고혜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봤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혁련천후가 왜 운기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누구 때문에 깨어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몸속을 떠다니는 강대한 기운이 누구의 것인지도.

영호수란이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깨어났느냐?”

귓속을 파고드는 무심한 목소리에 영호수란의 고개가 빠르게 뒤로 돌아갔다.

숲 속에서 걸어 나오는 혁련천후가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많이 가진 사람은 좀 베풀어도 돼요. 이제 가요. 많이 늦었어요.”

영호수란의 속내를 짐작한 독고혜가 그녀의 팔을 잡아 이끌며 웃었다.

혁련천후를 힐끗 쳐다본 영호수란은 고개를 숙이고서 걸음을 옮겼다.

왕전이 씩 웃었다.

“나중에 제게 한턱 쏘셔야 합니다.”

퍽!

왕전의 뒤통수에 북궁천소의 주먹이 작렬했다.

제8장 시작되는 혈전

정도맹 호법 순우진은 칙칙한 안개가 자욱한 산악 지역을 뚫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광동을 빨리 가기 위해 편한 관도를 두고 산악 지역을 가로지르기로 작정한 그는 서른에 달하는 고수들을 이끌고 제법 높은 산맥의 끝을 넘어서는 중이었다.

“저곳만 넘으면 광동의 초입이다. 속도를 내자꾸나!”

가장 먼저 전공을 세울 욕심에 순우진은 쉴 틈을 주지 않고서 고수들을 재촉했다.

뒤를 따르는 고수들 몇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으나 순우진은 그것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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