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95화 (93/425)

# 95

<귀환무사 95화>

“이, 이놈이!”

모욕적인 언사에 당곽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성정이 악독하고 거칠기로 유명했던 그가 관산악의 그 같은 발언에 화를 안내면 그게 비정상이다.

관산악이 모용조에게 손을 내밀었다.

“검을 잠시 빌려야겠습니다.”

서슴없이 자신의 검을 내주는 모용조의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

무림인이 자신의 병기를 남에게 주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러나 모용조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검을 관산악에게 건네주었다.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리라.

“주공께서 그러시더라. 네놈들이 한 번만 더 설치면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 버리라고.”

싸아아!

관산악의 몸에서 한기가 폭풍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7장 남행

혁련천후와 일행들은 섬서와 사천, 그리고 호북의 경계를 잇는 삼각 지역에 위치한 제법 높은 산의 초입에서 화산의 제자들과 합류했다.

당초 곧장 호남으로 향하려 했던 정도맹의 무력 부대 질풍대는 어쩐 일인지 화산의 제자들과 함께 이동을 하고 있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렸다.

단연코 가장 많은 눈길을 받은 이는 독고혜와 영호수란이었다.

질풍대 전원은 두 여인의 폭발적인 미모에 잠시 정신 줄을 놓을 정도였는데 특히 미혼인 청년 고수들은 같은 여대원들이 눈치를 주고서야 제정신을 찾았다.

진유는 혁련천후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흐흐! 당연하지. 덕분에 수입도 짭짤했다.”

진유의 물음에 왕전이 히죽거리며 대신 대답했다. 왕전이 진유를 보며 물었다.

“저놈들이 정도맹의 최강무력 부대라는 질풍대냐?”

“목소리를 좀 낮추심이…….”

진유가 눈짓을 주었으나 왕전이 어디 그런 것에 연연할 위인인가. 씩 웃은 왕전이 북궁천소를 돌아봤다.

“기왕 문파를 제대로 세우려면 우리도 저 정도의 무력 부대는 몇 개쯤 있어야겠지?”

“쟤들 있잖아.”

북궁천소가 흑영대를 보며 말을 받았다.

조금 뒤쪽에 앉아 있는 흑영대원들은 질풍대를 보며 제법 굳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는데 왕전이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흐흐! 놈들이 저놈들을 보더니 잔뜩 굳었군.”

“불과 얼마 전까지는 서로 간에 호적수였으니 당연하지. 그나저나 저놈들이 마교의 흑영대임을 알면 꽤 재밌겠는데?”

북궁천소의 장난기 가득한 말에 왕전이 히죽 웃는다.

“한번 붙여 볼까?”

“헙!”

진유가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쏟아 냈다.

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존재들이다. 진유는 재빨리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독고혜의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혁련천후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일각 후에 출발할 거니까 조금이라도 쉬어 두는 게 좋을 거다.”

“쩝!”

왕전이 입맛을 다셨다.

안도의 숨을 내쉰 진유는 그제야 질풍대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질풍대주 관포는 그의 막역한 친우였다.

악승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관포는 진유가 옆에 앉자 넌지시 물었다.

“누구시냐? 화산에 자네의 공경을 받을 분들이 원로들 말고 또 있었나?”

“아! 사숙들! 속가의 신분이라 사문의 제자들만 알고 있는 분들이지.”

“혹시 영웅 대회에 오셨던 그분들이냐?”

“어, 아니다.”

진유는 거짓말로 둘러댔다.

괜히 밝혀지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혁련천후에게 미안해서였다.

“저기 저 친구는 누구지? 아까부터 자꾸 노려보는데, 내가 화산에 무슨 죄라도 지었냐?”

관포가 악승을 가리켰다.

여전히 관포와 질풍대를 힐끔거리며 눈을 번쩍이는 악승을 진유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쳐다본 후 대답했다.

“사숙들이 키운 제자들이다. 성격이 화끈해서 그러니 이해해라.”

“화끈하면 처음 보는 사람을 저렇게 노려봐도 되는 것인가? 두 번 화끈하다간 대판 싸움 벌어지겠군.”

“하하!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대월들을 봐라. 저게 어디 사람 눈빛이냐?”

관포가 질풍대원들을 돌아봤다.

순간 그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하나같이 흑영대를 쳐다보며 눈빛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눈알 빠지겠다!”

관포의 말에 질풍대원들은 그제야 흑영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절대 한곳에 공존할 수 없었던 두 전투 부대가 지척에 마주 보고 앉았다.

흑영대가 비록 화산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본능 때문에 잔뜩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관포가 혁련천후를 슬쩍 쳐다보며 진유에게 물었다.

“저 양반이 대빵이냐?”

“이런, 저 양반이라니. 말조심하지 못하겠느냐.”

“어라? 네 표정이 그게 뭐냐? 마치 장문 사형을 대하듯 하다니,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꽤나 대단한 양반인가 보군.”

“목소리를 낮춰.”

진유가 정색을 하자 관포는 멀뚱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들과 그들은 제법 떨어져 앉았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자신들이 속삭이는 말을 듣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마치 자신의 말을 그들이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진유가 관포는 이해되지 않았다.

멀뚱거리는 관포를 노려본 진유는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다.

찌릿!

왕전의 두 눈이 섬광을 발하는 것을 본 진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여튼 그 입은…….”

관포를 어깨를 툭 때린 진유가 왕전과 북궁천소의 곁으로 날 듯 뛰어갔다.

머리를 긁적이는 진유를 보며 북궁천소가 히죽 웃었다.

“친구라며?”

웃는다고 웃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는 진유는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놈이 워낙 칼 밥만 먹고 살아온 터라 말투가 좀 거칩니다. 죄송합니다.”

“저놈 주둥이에 칼 밥을 먹어 주랴?”

“제가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진유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진유의 곤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포는 그저 독고혜와 영호수란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일각이 흐르고 일행들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팔로로 출진한 정도맹의 고수들이 중간에 합류할 일차 집결지는 호남의 악양루로 정해져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도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아야 당도할 거리였다.

“서쪽으로 가면 모용세가가 나오는데, 한번 들러야지 않겠습니까?”

담대소천의 물음에 왕전이 대신 대답을 하고 나섰다.

“그놈은 우리가 오는 걸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거다. 어쩌면 지금쯤 깨가 쏟아지겠지.”

말을 하던 왕전이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모용단승이 앉아 있었다.

왕전이 다시 말했다.

“저놈은 화산의 옷을 벗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용세가의 위명을 떨칠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놈이 모용세가의 장자임을 밝히고 참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만…….”

“오호! 그 대가리에서 그런 생각이 돌더냐? 허! 이거 오래 살다 보니 별 희한한 꼴을 다 보는군.”

“그러게. 여인을 후리는 법에 통달을 하지 않나. 너! 오 년 동안 소 잡더니 다방면으로 발전했군. 뭐 다른 재주는 없나?”

북궁천소와 조윤이 동시에 빈정거렸다.

왕전이 히죽 웃었다.

“흐흐흐! 귀찮은 놈들을 떼거리로 몰고 온 네놈들보다야 이 몸이 백번 훌륭하지. 안 그렇습니까? 주모님!”

독고혜가 웃음으로 화답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미소에 왕전은 머리를 긁적이며 옆의 영호수란을 무심결에 쳐다봤다.

찌릿!

독한 그녀의 눈빛에 왕전은 멀뚱한 표정이 되었다. 요즘 들어 툭하면 째려보는 영호수란, 왕전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성질을 부리지 않고 시선을 회피했다.

[주모님! 주모님! 그 주모님을 아예 입에 달고 사시는구만.]

영호수란의 전음이 왕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너 그거 모르지?]

[뭘욧!]

[주공께선 전음도 도청하신다는 사실!]

[정말……요?]

어깨를 움찔거린 영호수란이 재빨리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여전히 앞만 보고 걷는 그의 모습에 놀랐던 표정이 이내 샐쭉하게 변했다.

그런 그녀의 귓속으로 차가운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다 들린다.]

[흥! 거슬리면 귀를 닫으세요!]

홱 고개를 돌리는 영호수란.

그런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독고혜였다.

“재주도 좋으셔요.”

“무슨 말이지?”

“흥!”

의미 모를 말을 던진 독고혜는 성큼 영호수란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녀의 하얀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남자들 땀 냄새가 거슬려요. 우리 저만치 떨어져 걸어요.”

독고혜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한 영호수란은 영문도 모른 채, 저만치 떨어진 곳으로 끌려갔다.

마침 그녀들이 간 곳은 질풍대원들과 가까운 곳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에 거친 호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미간을 슬쩍 찌푸린 그녀들은 이내 일행들보다 훌쩍 앞선 곳으로 몸을 날리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혁련천훈는 저만치 앞서 걷는 둘을 보며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왕전 역시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친해지면 곤란한데…….”

“뭐가 곤란해진다는 말이냐?”

“아, 아닙니다!”

혁련천후가 물어오자 왕전은 내심 뜨끔했다.

저 철석간장을 지닌 자신의 주인은 영호수란이 자신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 리가 없다.

혁련천후는 왕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조차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좋군!’

요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심신이 안정된 상태였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았고 수하들도 모두 모였다. 그리고 기거할 거처 문제 역시 제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자금에 있어서는 다소 황당했지만 금옥장이 한 방에 깔끔하게 해결을 해 주었다.

자신을 살려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금치문이 상당한 액수를 약속했다.

대신 정도맹이나 구파, 그리고 사련이나 마교는 금옥장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을 끊는 조건으로 살려 준 것이다.

좋은 생각만 하던 혁련천후의 뇌리에 불현듯 당가의 한 인물이 떠올랐다.

저절로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는다.

‘광동을 갔다가 당가를 들러야겠군.’

당가의 그 늙은이를 죽이면 일곱이 남는다.

나머지는 그리 서두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영백의 죽음을 전해 들었으니 어쩌면 하루하루가 편치 않은 나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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