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92화 (90/425)

# 92

<귀환무사 92화>

* * *

혁련천후는 진유의 보고를 받았다.

“참전이라고 했느냐?”

“장문 사형께서 전서를 통해 그렇게 알려 왔습니다. 모든 문파에서 빠짐없이 출전한다고 하니 저희 화산도 함께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참전하는 인원은 어느 정도라고 했느냐?”

“인원의 수는 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대부분의 문파에서 서른 정도가 차출되었다고 하니 저희들도 그 정도는…….”

혁련천후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을 해 왔으니 뒤로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화산을 원한 것이었지만 이미 화산을 용서한 그로서도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나 진유가 말한 서른이라는 숫자는 화산의 입장에선 무리였다.

생과 사가 순식간에 결정되는 전쟁에 투입될 실력을 갖춘 고수급이 서른이 되질 못했다.

타 문파와의 형평성 때문에 무리해서 실력이 모자란 제자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혁련천후의 두 눈이 빛을 발했다.

“너와 수련을 받은 셋만 참전한다!”

“저희들만 말입니까?”

진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고작 넷으로 뭘 어쩐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들만 참전하면 타 문파들의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혁련천후가 악승을 돌아봤다.

“어때? 싸워 줄 수 있겠나?”

악승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교의 흑영대를 참전시킨다니…….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저들도 나와 함께할 사람들이니 너희들과 무관하지는 않아. 지금 당장 화산의 무복을 저들에게 지급하고 출전 준비를 하도록 하거라.”

진유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거부한다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다.

흑영대라면 천하에 소문난 전귀들의 집단이 아닌가. 그들이라면 그 어떤 문파보다도 훨씬 뛰어난 전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진유가 악승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아닙니다. 우리야 싸우면 그것으로 좋은 일입지요. 사실 그동안 지나치게 나태한 생활을 했더니 몸이 굳었지 뭡니까. 오히려 저희를 믿고 중용해 주시는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전쟁이 삶이나 다름없는 악승으로서는 지극히 담담했다.

진유를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은 그런 그를 보며 괜히 마교 최강의 전투 부대라는 소릴 듣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남쪽으로 간다니까 산악, 그놈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군. 그런 거냐?”

왕전의 말에 악승이 머리를 긁적였다.

왕전이 혁련천후를 보며 물었다.

“저희도 합류합니까?”

“금옥장을 간 이후에 결정하도록 하겠다.”

“흐흐! 알겠습니다.”

“흑야와 무옥, 그리고 너희 둘은 이곳에 남는다. 돌아올 때까지 너희들은 내가 지시한 것을 모두 해 놓도록!”

“옛?”

사공진무와 진천이 울상으로 변했다.

혁련천후는 보다 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얼마만큼 빨리 되느냐에 따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빨라질 수 있다.”

“알겠습니다.”

셋은 아쉬움을 접어야 했다.

그때였다. 영호수란이 다가왔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멀뚱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던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독고혜가 함께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놀랄 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그 어떤 말씀을 하셔도 소용없으니 제가 탈 말도 미리 준비해 주세요.”

“말을 준비하도록 해.”

“주공!”

혁련천후는 뜻밖에도 쉽게 허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를 했지 않은가.

“저도 데려가는 거죠?”

영호수란이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왕전이 인상을 그리며 영호수란을 가볍게 노려본다.

“너는 그냥 이곳에 남아서 공사나 돕지?”

“흥! 내가 내 발로 가겠다는데 무슨 상관!”

매섭게 받아친 그녀가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영호세가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것이니 다른 말 마세요!”

“…….”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나오니 말릴 재간이 없었다.

혁련천후가 몸을 일으켰다.

“그만 출발하지.”

“예, 주공!”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얼굴이 상반된 표정이다.

사공진무와 진천, 그리고 철무옥과 흑야는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거처로 들어갔다.

나란히 말을 몰아갈 때, 독고혜가 물었다.

“전쟁을 지켜보기만 할 건가요?”

“…….”

“그러지 말아요.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중원을 위해 싸워야 할 때이니 화산과 함께 참전을 하도록 하세요.”

혁련천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산은 용서했지만 중원은 여전히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독고혜의 권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가 원하는 것은 천하군림이다. 하나 그것도 중원무림이 세외 세력에게 무너지면 의미가 없어진다.

모든 이들이 바라는 가장 큰 의미의 복수는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위에 서서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닌가.

세외 세력의 침공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그는 그 점에 대해 고뇌하고 있었다.

제6장 금옥장의 위기

북해빙궁과 용성의 침공은 예상과는 달리 더 이상의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북해빙궁은 여전히 신강의 평원에서 주둔한 채 그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고 용성 역시 정도맹의 남지부만을 점령하고는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숨 가쁘게 돌아갔던 정도맹은 오히려 폭풍전야와도 같은 침묵에 더욱더 긴장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석 장로 적용세가 마교로 떠났다.

한시적인 동맹 관계를 목적으로 소수의 무리만을 이끌고 길을 떠난 지 열흘이 지나갔다.

마교와의 일이 제대로 성사만 된다면 정도맹은 한시름 덜면서 당장에 남쪽으로 병력을 출진시킬 수가 있게 된다.

특명을 받고 떠난 적용세는 밤을 새워 가면서 천산을 향했고 그렇게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정도맹에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전서에는 마교주 뇌어양이 정도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크게 고무된 정도맹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파에서 차출된 고수들을 팔로(八路)로 나누어 광동을 비롯한 남쪽으로 출진시키기에 이르렀는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당대의 이름난 고수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로는 정도맹의 수석호법 관승.

이로는 역시 정도맹의 호법 순우진.

삼로는 무당의 장로이자 전 구천각주 명수진인.

사로는 소림의 사대천불.

오로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용.

육로는 하북팽가의 가주 팽우진.

칠로는 정도맹 최강의 돌력 부대 질풍대 전원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팔로는 화산의 매화무적 진유가 이끄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 외에 영웅이 되기를 갈망하며 천하를 떠돌던 낭인들도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남쪽을 향했다.

그동안 태평성세를 누려 왔던 정도맹의 고수들은 두려움보다는 전공을 세워 명성을 떨쳐 보리란 결의를 내세우며 보무도 당당하게 남쪽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각설하고.

천하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금옥장주 금치문은 자신을 향해 저승사자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흑백쌍괴(黑白雙怪)는 사파의 인물들로 오십 년 전부터 천하에 그 흉성을 떨치던 고수들이다.

구파의 장문인들을 상회하는 무공을 지닌 그들은 가진 무공만큼이나 악독한 심성으로 십 년 전, 공동파의 제자들 수십을 살해하고 무림 공적으로 몰린 다음 그 종적을 감추었던 자들이다.

나이가 이미 백 살을 훌쩍 넘긴 그들이 금옥장의 모처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금치문이 그들과 함께였다.

거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넓은 그곳은 금치문이 흑백쌍괴를 위해 별도로 지어 준 대전처럼 넓은 별관이었다.

그야말로 어지간한 조정의 대신보다 더한 호사를 누리고 있는 흑백쌍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서 한시도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하여간에 저는 두 분만 믿겠습니다.”

“걱정 말게. 헌데 놈들이 분명 다시 온다고 했단 말인가?”

검은 피부에 비쩍 마른 체형을 지닌 흑괴(黑怪), 한탁의 입에서 쇠를 긁는 듯한 꺼림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 놈들 입으로 그랬으니 조만간에 이곳을 찾아올 것입니다.”

“고루쌍마가 놈들 앞에서 오금을 못 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그자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받은 돈이 얼만데 찍소리 하나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지 뭡니까!”

금치문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일전에 담대소천등에게 만년삼왕을 빼앗길 때, 자신을 호위했던 두 노인이 바로 전직 사파의 고수 고루쌍마였다.

얼굴이 시뻘게진 금치문을 보며 백괴(白怪) 홍성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노부들이 놈들을 처치해 주마! 대신 쌍마, 그놈들에게 주던 돈을 몽땅 우리에게 줘야지 않겠느냐?”

“그래만 주신다면 당연히 두 배를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허니 제발 놈들의 목을 삭둑 잘라 주십시오!”

“클클! 우리가 누구야? 놈들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 봤자 우리를 어쩌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파견 나갔던 아이들도 곧 돌아오질 않으냐? 놈들이 온다면 바로 그날이 놈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흑괴가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금치문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들이라면 전의 그 불한당들을 모조리 베어 버릴 것이라 확신했다.

금 이백 냥!

흑백쌍괴에게 한 달에 들어가는 금액이었다.

이런 날을 대비하여 피 같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는가.

비록 그들이 자신을 아랫사람처럼 대해서 기분이 나쁜 적도 많았지만 그들만 제거해 준다면 그 정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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