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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89화 (87/425)

# 89

<귀환무사 89화>

“그래! 그러세! 허허허!”

둘은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는 뒤로 누웠다.

비록 고단한 노역이었지만 보수는 약속대로 은자 한 냥씩이 주어졌다.

이 돈이면 가족들 배고픔은 몇 달 치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기다릴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여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둘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때였다.

“어!”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던 왕삼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서 장원의 입구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전삼이 멀뚱한 표정으로 장원의 입구를 돌아봤다.

“서, 선녀다!”

백색 궁장의를 입고 나긋나긋한 걸음으로 장원을 들어서는 여인이 보였다.

선녀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가 자신들을 향해 눈길을 주자 둘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어머! 못 보던 분들이 계시네? 안녕하세요?”

영호수란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의 자태는 사내의 혼을 홀리고도 남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반쯤 넋을 놓은 둘을 보며 생긋 웃어준 그녀는 장원의 뒤쪽을 보며 두 팔을 활짝 벌려 크게 흔들었다.

“산적 아저씨!”

“오호! 제법 예쁜데?”

“선녀가 따로 없군.”

왕전과 담대소천이 영호수란을 보며 감탄을 했다. 정도맹에서 한 번 봤던 담대소천이지만 화려한 궁장의에 적당히 화장을 한 영호수란의 아름다움에 그답지 않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북궁천소와 조윤은 무덤덤한 표정이고 진천과 사공진무는 아예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 있었다.

향긋한 사향이 주변을 진동하며 영호수란이 왕전의 옆에 내려섰다.

“안녕! 산적 아저씨!”

“그렇게 입으니 이제야 좀 여자처럼 보이네. 한데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요. 때가 되면 온다고 했잖아요.”

주변을 돌아본 영호수란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물었다.

“어디 가셨어요?”

“네가 그분은 왜 찾는데?”

“그야 보고 싶으니까 그렇죠! 다들 땀을 흘리며 일하는데 혼자 일은 안 하고 어딜 가셨데?”

그때였다.

북궁천소가 살벌한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

“주공은 왜 찾는 것이냐?”

그는 지금 장난을 하려고 일부러 더 무섭게 물었다.

“댁은 누구세요?”

두려움이라곤 개털만큼도 보이지 않는 쌀쌀한 음성에 북궁천소는 멀뚱한 표정이 되었다.

“내 친구다.”

왕전이 대신 대답했다.

그때였다.

이 층의 문이 열리고 혁련천후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영호수란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저 왔어요!”

어지럽게 손을 흔드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짓에도 혁련천후는 그저 무심할 뿐이었다.

영호수란의 얼굴이 대번에 샐쭉하게 변했다.

“깨어나셨습니까, 주공!”

왕전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영호수란이 왕전에게 물었다.

“누구를 말씀하는 것이에요? 누가 다쳤나요?”

“넌 몰라도 된다!”

모두가 이 층으로 걸음을 놓았다.

영호수란이 의구심어린 표정으로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 * *

영호수란의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여인, 천하에 그 미모로 명성이 자자한 자신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 때문에 전신의 피란 피는 모조리 식어 버린 느낌이었다.

‘이 여자는 누구지? 누군데 여기 있어?’

불길함이 일었다.

그녀를 쳐다보는 혁련천후의 따뜻한 눈길을 보자 불길한 마음은 불길처럼 거세어져만 갔다.

‘뭐야? 저런 눈빛은…….’

따뜻했다.

마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쳐다보듯 했다. 지금껏 자신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게 행동했던 혁련천후임을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고혜의 시선이 영호수란을 향했다.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독고혜라고 해요.”

“여, 영호수란이라고 합니다.”

얼떨결에 대답한 영호수란은 뒤늦게 크게 놀랐다.

독고혜라는 이름은 그녀가 놀라고도 남을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검후!’

강호를 살아가는 여인들에겐 이상처럼 여겨지는 존재가 검후 독고혜다.

자신도 그녀를 목표로 살아가지 않았는가.

영호수란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검후를 쳐다보는 눈빛이 역시 따뜻했다.

사랑을 해 보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알 만한 나이였다.

‘그랬어. 그래서 반응조차 없었던 거야.’

자신에게 항상 차가운 태도만을 보이던 그의 태도가 비로소 짐작이 갔다.

검후라면, 검후가 그의 정인(情人)이라면 자신이 설 자리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가슴이 찌르르 하며 아파 왔다.

‘괜히 왔어.’

영호수란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녀를 응시하던 독고혜의 눈이 살짝 이채를 발했다.

혁련천후도 영호수란을 보며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독고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뜨끔!

혁련천후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이내 ‘내가 왜’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독고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뭐 하세요? 손님이 오셨으니 식사라도 대접을 해 드려야죠.”

“준비하겠습니다!”

왕전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영호수란이 혁련천후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던 왕전은 영호수란의 얼굴을 측은한 빛으로 슬쩍 돌아보고는 일 층으로 내려갔다.

“완쾌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독고혜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인 독고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를 감도는 강대한 기운을 새삼 느끼고는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마침 그의 시선도 그녀를 향해 있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전해졌다.

마침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영호수란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눈가는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귓속으로 혁련천후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모두들 내려가지.”

언제나 차가웠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님을 알기에 영호수란의 가슴은 더욱 아파 왔다.

누군가에겐 행복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주 슬픈 날이었다.

제5장 참전

어둠이 사위를 덮은 저녁에 모두는 장원의 연무장에 모였다.

결투의 후유증으로 상당 시간을 운기에 힘쓰던 흑야와 철무옥의 모습도 보였다.

독고혜 역시 완전하지 않은 몸 상태라 들어가고 없었는데 영호수란은 그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맑았던 평소와는 다른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술잔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혁련천후와 오왕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을 때였다.

덜컹!

장원의 문이 열리며 몇 명이 들어섰다.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도시로 떠났던 모용단승과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모두에게 허리를 숙여 보인 그들은 영호수란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완연한 꽃처럼 아름다운 그 미모에 놀랐고 그녀의 어두운 표정에 다시 놀랐다.

“쓸 만한 소식이 있었냐?”

왕전의 물음에 진호가 대답했다.

“정도맹의 남지부가 용성의 손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남지부면 광동 쪽이겠군.”

“그렇습니다. 제법 많은 고수들이 죽음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부장 유진걸 대협을 비롯한 전원 사망이라고 합니다.”

조윤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용성을 이끄는 자의 이름은 알아냈느냐?”

“특별히 알려진 자들은 없었습니다. 워낙 신비에 가려졌던 집단이라 맹에서도 직접 부딪혀 보기 전엔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하더군요.”

당연했다.

몸을 담았던 조윤마저 그들을 제대로 모르는데 하물며 정도맹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엔 북궁천소가 물었다.

“북쪽은?”

“북쪽은 아직까지 직접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강 북쪽에서 진을 치고만 있다는데 아마도 마교의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듣고만 있던 담대소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벌써 중원에 진입했어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다니,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다른 뜻?”

“이상하지 않습니까? 북해빙궁주가 직접 나섰다면 빙궁의 모든 전력이 쏟아져 나왔다고 보는데 지금껏 신강 북쪽에서 머물고 있을 리 없잖습니까? 혹시 다른 세력들과의 연계를 노리고 시간을 벌려는 수작은 아닌지 의심이 갑니다.”

담대소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야욕이 중원 정벌에 있다면 단독 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다른 세외의 세력들과 힘을 모아 치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그들이 언제 마교를 돌파하고 중원에 들어서느냐가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혁련천후가 말하고 나섰다.

“마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자칫 서두르다가는 오히려 북해빙궁이 먹힐 수도 있다.”

마교는 마도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전력은 사련에 버금가며 북해빙궁 단독으로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왕전이 고기를 씹으며 말했다.

“혹시 빙궁이 중원이 아닌 마교를 도모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빙궁이 지금껏 중원을 넘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마교 아닙니까?”

혁련천후가 모두에게 물었다.

“거긴 됐고, 용성이라는 곳이 중원을 노렸다고 가정한다면 그들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 어디지?”

“지리적으로 본다면 대막의 혈랑단이 되겠지만 그곳은 제가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으니 천축의 뇌음사나 서장의 포달랍궁이 가장 유력합니다.”

담대소천의 대답에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천소가 말하고 나섰다.

“거리가 너무 멀지 않느냐? 도중에 합류를 하려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텐데 말이다.”

담대소천이 말을 이었다.

“거리는 분명 먼 곳이지. 하지만 직선으로 진출하면 그들이 만나는 접점은 청해나 사천의 북쪽 산악 지역이 된다. 그곳에 본거지를 마련한다면 정도맹의 입장에선 상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워낙에 험준한 산악 지역이라 공격을 하기엔 상당히 까다롭고 수비하기에 상대적으로 쉬운 천연의 요새와도 같은 곳이 그곳이니까.”

담대소천은 군부의 장수로서 천하를 누비고 다녔던 전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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