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87화 (8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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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87화>

제4장 또 한 명의 수하

어둠에 잠긴 장원은 사람의 숫자에 비해 매우 조용했다.

서른에 달하는 흑영대원들이 있었지만 워낙에 과묵한 성격들을 지니고 있어서 불빛만 없었다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 장원을 쳐다보며 눈빛을 발하는 자가 있었다.

철무옥이었다.

장원을 향한 그의 시선은 관산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어디에도 관산악은 없었다.

‘어딜 간 거냐, 관산악!’

며칠 동안 찾았지만 지금껏 볼 수가 없었다.

지금 장원의 일 층을 가득 메운 무사들은 마교의 흑영대가 분명했다.

흑영대가 있다면 반드시 관산악이 있어야 했다.

의구심으로 눈을 빛낸 철무옥의 시선이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자신을 매료시켰던 북궁천소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존재들.

‘대단하군. 어디서 저런 자들이 한꺼번에 나타났지?’

하나하나가 북궁천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지닌 힘의 경지를 눈으로 봐서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단지 본능은 그에게 경고를 이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모두가 결코 자신의 하수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본능에 굴복을 할 철무옥은 아니었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북궁천소를 주시했다.

‘관산악이 없으면 저자와 싸운다!’

죽더라도 싸우고 싶었다.

그래야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철무옥은 눈을 감았다.

기왕에 마음을 먹은 거, 내일 해가 뜨면 그에게 도전을 하기로 작정했다.

죽고 사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 이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잠을 청하려던 철무옥은 이내 눈을 떠야 했다.

장원으로 들어서는 마차가 있었다. 모두가 밖으로 나서서 마차를 맞고 있었다.

뒤이어 마차에서 내리는 혁련천후를 볼 수 있었다. 뒤이어 천하절색의 여인이 부축을 받으며 마당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 드러난 여인의 아름다움에 철무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째 이곳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인간들만 모였군.’

비정상적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독고혜의 아름다움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혁련천후는 악승을 소개받았다.

그가 관산악이 주공으로 모시는 존재임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악승은 마교의 교주를 대할 때처럼 공손히 굴었다.

잠시 대화가 오간 뒤에 혁련천후가 물었다.

“흑영대라면 마교주가 꽤나 아끼는 부대라고 들었는데,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느냐?”

“대주님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다 죽었을 목숨들입니다. 이미 천산을 내려올 때 대주님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를 했으니 쫓아내지만 말아 주십시오.”

“신강이 그것을 묵인할 것이라 보느냐?”

“그곳에서 배우기를 이렇게 배웠습니다. 자신이 따르는 자에게 목숨을 바치라고…….”

“그대들이 궁극적으로 따라야 할 사람은 뇌어양, 그자가 아닌가?”

천하만마의 주인이 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거론이 되었다.

마교의 인물들이 보기엔 죽음을 결할 정도의 태도였지만 악승은 혁련천후의 그런 태도가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직 저희들의 주인은 대주님, 그분뿐입니다!”

지켜보던 북궁천소가 특유의 거친 웃음을 머금으며 물었다.

“주공께는 충성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그의 눈이 섬광으로 번득였다.

악승은 그 눈빛만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지만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대답했다.

“지금 당장은 대주님에 대한 충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법 많은 뜻이 함축된 대답이었다.

혁력천후는 악승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관산악을 처음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혁련천후가 진천을 돌아봤다.

“산악이 올 동안 네가 이들을 맡아 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주공.”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지.”

혁련천후가 일어서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주공!”

“이제는 저희들이 주모님을 지켜 드릴 테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흐흐흐!”

혁련천후는 담담히 웃어 주고는 자신의 거처로 올라갔다.

그가 사라지자 지금껏 의연한 태도를 보이던 악승과 흑영대 전원이 거친 숨을 일제히 토해 냈다.

“자식들! 그래도 제법인데? 산악이 그놈이 부하 하나는 제대로 만들었군.”

“놈에겐 과분한 수하들이지.”

“그나저나 뇌어양, 그 늙은이가 쳐들어오는 것 아니냐? 이놈들 내달라고.”

“올 테면 오라지.”

악승은 천하의 뇌어양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 그들을 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괴물 집합소가 따로 없군.’

다음날 아침 일행들은 연무장에 모였다.

당장의 일과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이 강호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서 도시로 나갔다.

왕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다시 장원의 공사에 달려들었는데, 혁련천후와 사공진무는 이 층으로 올라가 하루 종일 내려오지 않았다.

왕전이 코를 실룩거리며 이 층을 응시했다.

“진무, 이놈이 제대로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놈의 재주를 믿어 볼 수밖에.”

사공진무는 지금 그들이 구해온 만년삼왕과 천년하수오를 가지고 독고혜를 치료할 약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능력을 믿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을 때, 사공진무가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되었냐?”

“후! 제 걱정은 안 됩니까?”

“자식아! 얼른 대답 안 해?”

왕전이 눈을 부라리며 재촉하자 그를 노려본 사공진무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상당히 지쳐 있었다.

“약의 제조는 만족할 만큼 잘되었는데, 그래도 결과는 주모님께서 깨어나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주공께선 뭐 하시지?”

“그냥 옆에 계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사공진무가 뒤로 벌렁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사공진무를 응시하던 모두가 이 층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주공께서 내려오실 때까지 일이나 하자!”

“나무나 자르러 가 볼까?”

모두가 산을 오를 때, 혁련천후는 독고혜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후욱!”

독고혜의 몸에서 떨어진 혁련천후의 입이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흘린 땀으로 인해 장포가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가볍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독고혜의 아름다운 얼굴에 고정되었다.

그녀의 잠든 얼굴은 무척 평화로웠다.

그녀의 옆에 누워 함께 잠을 자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약속하마. 다시는 옆을 떠나지 않겠다고…….’

옥을 빚어 만든 듯 곱디고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런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은 십 년 만이다.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떠올린 그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벼운 입맞춤.

짜릿한 전율이 몸속을 타고 흘렀다.

혁련천후는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돌아보니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그는 몰랐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는 자신의 내공을 독고혜에게 심어 주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도 몰랐지만 적어도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정도는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천하에 그녀를 해할 자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물론 자신이 항상 옆에 있다면 전무하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힘들군.’

일시적인 내공의 공백이 지독한 피로를 동반했다.

잠시 독고혜를 지그시 내려다본 그는 몸을 돌려 거처를 나섰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 까닭에 장원의 주변이 안개로 자욱했다.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흑야는 강가에 몸을 담그기 위해 장원의 문을 열고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냉수 마찰을 즐길 정도로 목욕이 취미인 흑야는 장원의 옆을 흐르는 강에 몸을 담그고자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틀이 잡혀 가는군.”

주변을 돌아보니 장원은 제법 틀이 잡혀 가고 있었다.

이 층이었던 본관은 사층으로 높아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제법 큰 규모의 건물 세 곳이 거의 완성 직전의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다.

저 정도면 최소 수백은 수용 가능한 규모였다.

“후욱!”

아침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자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했는지 차갑기만 한 그의 얼굴이 다소 부드럽게 풀어졌다.

고개와 어깨의 근육을 풀며 걸음을 옮기던 흑야가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고 섰다.

느릿하게 돌아선 흑야의 두 눈동자가 정문을 향했다.

자신을 보며 장승처럼 서 있는 칼날 같은 사내, 철무옥이었다.

흑야의 눈동자가 날카로운 예기를 발산했다.

철무옥은 말없이 흑야를 똑바로 쳐다봤다.

둘 사이에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철무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관산악을 찾아왔다.”

“놈은 왜 찾는 것이냐?”

순간 철무옥은 새심 놀랐다.

그저 날카롭기만 한 눈앞의 사내가 관산악을 평대로 거론했다.

그것은 눈앞의 사내가 적어도 관산악의 아래는 아니라는 뜻, 철무옥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흑야의 전신을 다시 살폈다.

‘별것 아닌데…….’

그랬다.

그 날카로움은 지독했지만 그 외의 기운은 지극히 평범했다.

철무옥은 관산악이 없으면 북궁천소나 조윤과 싸워 보고 싶었다. 그들과 싸우고 싶은 열망에 서슴없이 장원을 찾은 것이다.

“우스운 놈이군. 그 이유 때문에 며칠을 숨어서 지켜봤나?”

“……뭐?”

“우리가 모를 줄 알았다면 넌 산악의 적수가 못 된다.”

철무옥이 다시 놀랐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산악을 찾는 이유와 네 이름이 무엇인지 밝혀라.”

철무옥은 비로소 눈앞의 사내가 관산악에 못지않은 고수임을 확신했다.

투기가 불길처럼 솟구친다.

“철무옥이라고 한다. 흑영대주 관산악과 싸우고자 사련을 떠나 이곳을 찾았다.”

“전혀 반갑지 않은 곳에서 왔군.”

“이름을 밝혀라!”

철무옥의 외침에 흑야는 싸늘히 웃었다.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고작 추살전의 전주 따위가…….”

지극히 모욕적인 말에 철무옥의 두 눈이 불길을 일으켰다.

“지금 이 순간 싸우고자 하는 대상을 너로 바꾸겠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

흑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천하를 주유하며 강자들을 상대로 죽음의 비무를 치르고 살아가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상대를 꺾음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올리려는 자, 다른 하나는 스스로의 경지를 키워 가는 자들인데 철무옥이 후자에 속한 부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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