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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85화 (83/425)

# 85

<귀환무사 85화>

두 눈은 청수곡의 한 모옥을 향한 채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곳의 마당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 독고혜였다.

심장이 떨린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녀가 눈앞에 있었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조윤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혁련천후의 뒷모습만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혁련천후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전음을 날렸다.

[서둘러야 합니다. 주공.]

혁련천후는 비로소 걸음을 놓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늪에 빠진 것처럼 무겁기 그지없었다.

십 년 만이다.

그 긴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가슴에 품었던 여인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자신이 다가감에도 그녀는 초점이 없는 눈을 들어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공을 잃어버리고 눈까지 멀었으니 자신이 다가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그가 걸어가는 주변의 사물들이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독고혜의 가녀린 육신이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살기를 가라앉히십시오!]

독고혜가 다칠 것을 우려한 조윤이 재빨리 전음을 날렸다.

“누구……시죠?”

검후의 입에서 한없이 약해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가슴이 미어졌다.

더불어 그녀를 저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누구시요!”

이자겸과 연지가 놀라서 뛰어 나왔다.

그들은 독고혜를 향해 다가서는 혁련천후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했다.

그들의 눈에 분노한 혁련천후는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게 보일 뿐이었다.

조윤이 그들을 막아섰다. 그러고는 자초지종을 알려 주었다.

“후욱…….”

혁련천후는 거친 숨소리를 참지 못하고 기어코 흘려 냈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여기 있느냐.”

“당신이군요.”

대뜸 날아온 대답은 혁련천후의 전신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그저 한마디만으로 자신임을 알아본 그녀,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뭔가를 억누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당신이죠? 천후, 당신이죠?”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독고혜를 보며 혁련천후는 기어코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나다.”

와락!

가녀린 육신이 품속에 묻혔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부둥켜 앉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연지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이자겸은 독고혜가 걱정되어 한숨을 내쉬었다.

조윤은 돌아섰다.

그런 그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둘의 해후를 축복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흐렸던 하늘에 먹구름이 가시며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 * *

거대한 전각의 정문은 황금을 조각해 만든 갖가지 문양들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자그마치 삼 장을 넘어가는 높이에 한 척은 될 만한 두께는 황궁의 성문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했다.

문 하나에 든 돈만 해도 어지간한 전각 한 채는 사고도 남을 이곳이 바로 금옥장이었다.

그 앞에 왕전 등이 서 있었다.

“과연 이곳에 만년삼왕이 있을까?”

“놈이 주모님을 그렇게 만든 것이라면 반드시 있을 거다.”

“제발 놈이 범인이기를 바라야겠지.”

“놈이 사건 전에 당가 놈들을 만났다고 했으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뭐, 아니면 그냥 강제로 뒤져 보고.”

담대소천이 특유의 중얼거림으로 대답하고는 청룡언월도를 오른손에 쥐었다.

담대소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옥장 정도야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한 줌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고수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돈에 팔린 자들 따위야 신경조차 쓸 필요가 없었다.

“시작하지.”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가 금옥장의 거대한 정문에 그대로 작렬했다.

쾅!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정문에 금이 쩍 갔다.

뒤이어 북궁천소가 검을 휘둘렀다.

콰앙!

금이 간 곳이 옆으로 쩍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두텁던 정문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냥 담을 넘어가면 될 것을.”

“경고라도 해 두지.”

투덜거리는 왕전을 향해 담대소천이 말했다.

“무슨 일이냐!”

“저, 정문이 부셔졌다!”

북궁천소가 장원 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무사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뛰어나오는 꼬락서니들하고는.”

수십 명의 무사들이 검을 꼬나들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중에 육중한 체구를 지닌 장한이 장검을 겨누며 나섰다.

“감히 금옥장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한 새끼들…… 크악!”

장한의 육신이 피를 뿌리며 엄청난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그 앞에 왕전이 머리를 밟은 채 서 있었다. 장한의 머리를 이미 박살이 난 상태였다.

“새끼가 뒈지려고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뭣 하는 놈들…… 우악!”

다른 무사 하나가 또다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이번에는 북궁천소가 아예 목을 잘라 버렸다.

담대소천이 앞으로 나섰다.

“가서 너희들의 주인을 나오라고 하거라. 만약 나오지 않으면 이곳을 모조리 불태워 버릴 것이라고 전해라.”

쿵!

청룡언월도를 들어 땅을 내리치자 주변이 지진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무사들은 사색이 되었다.

그때 북궁천소의 시선이 장원의 안쪽을 응시했다. 여섯 명이 제비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새끼들! 황금충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 제법이군.”

하나 같이 날카로운 기색을 보이는 그들은 금옥장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로서 묘산육괴(墓山六怪)라는 별호를 지녔는데, 인근에서는 꽤 알아주는 고수들이었다.

묘산육괴의 첫째 육괴가 살기를 드리우며 일행들을 노려봤다.

“감히 예가 어디라고 소란을 피운 것도 모자라 살인을 하느냐! 썩 정체를 밝히지 못…… 컥!”

말을 하다 말고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 앞에 흑야가 서 있었다.

“대, 대형!”

“쳐라!”

나머지 다섯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싸늘한 죽음뿐이었다.

담대소천은 넋이 빠진 무사들을 향해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외쳤다.

“늦으면 오늘부로 이 금옥장은 지상에서 사라진다.”

무사 하나가 바람처럼 안으로 달렸다.

흑야가 싸늘히 뱉었다.

“저곳인 모양인데,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휙휙!

바람처럼 날아가는 일행들을 본 흑야는 쓴웃음을 짓고는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금치문의 얼굴이 휴지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옆을 지키고 선 두 명의 노인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두 노인은 천하가 알아주는 고수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천금을 들여 고용한 자들인데, 맞서 싸우기는커녕 그저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분노가 치민 금치문이 두 노인을 향해 막 입을 열어 갈 때였다.

“네가 금치문인가?”

담대소천이 나서며 물었다.

“검후님은 우리의 주모가 되신다. 우리가 이곳에 왜 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움찔!

금치문은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그 일을 알고 찾아왔단 말인가!’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려 했지만 그것을 놓칠 담대소천이 아니었다.

“역시 그랬군. 네놈의 짓이었어.”

싸아아!

실내에 강력한 살기가 몰아쳤다.

“뭣들 하시오? 저놈들을 두고만 볼 셈이오?”

금치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상당한 거금을 주고 고용한 그들이었다. 한 달에 지출되는 임금만 금 오십 냥이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일류 고수 수십을 부릴 수도 있는 거금이다.

그때였다.

마른 얼굴에 뺨에 섬뜩한 칼자국이 난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담대소천을 향해 지극히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용건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소?”

그 말투에 금치문은 또다시 열불이 치밀었다.

평소 자신에게도 지금과 같은 정중한 어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였다.

노인의 물음에 왕전이 대신 대답하며 나섰다.

“돈보다는 목숨이 소중한 법. 죽기 싫으면 물러서서 구경이나 하시지.”

그에게서 뿜어지는 살기는 두 노인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두 노인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빛을 주고받은 둘은 슬쩍 금치문의 옆에서 뒤쪽으로 물러섰다.

“지금 뭐하자는 것이오!”

금치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때였다.

스슥!

차가운 검의 촉감이 목에서 전해지자 금치문의 허여멀건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흑야가 그런 금치문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가진 돈이 많다고 들었다. 그 돈을 조금이라도 써 보고 죽으려면 신중하게 입을 놀리는 것이 좋아. 지금부터 묻는 말에 고개만 끄덕인다. 만약 엉뚱한 말을 한마디라도 지껄이면 손가락부터 하나씩 잘리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스슥!

검이 살짝 목을 파고들자 피가 흘렀다.

사색이 되어 버린 금치문은 그제야 전신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검후님게 독을 썼느냐?”

“그, 그게…… 크악!”

털썩!

잘린 손가락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만 끄덕이라고 했다. 다시 묻겠다. 검후님께 독을 썼느냐?”

끄덕! 끄덕!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북궁천소가 검을 겨누며 달려 나오다가 담대소천의 저지를 받고 멈추어 섰다.

흑야가 다시 물었다.

“만년삼왕을 지니고 있나?”

금치문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어김없이 두 번째 손가락이 잘려 날아갔다.

“크아악!”

“다시 묻겠다. 만년삼왕을 가지고 있나?”

끄덕끄덕!

금치문의 머리가 자동으로 상하로 움직였다.

흑야가 다시 물었다.

“하수오라는 것도 있나?”

고개를 끄덕이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좋다. 지금 당장 그것을 가져와라. 시간은 한 식경. 촌각이라도 늦으면 너는 대가리만 달랑 남은 인간 돼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휘익!

금치문은 바람처럼 돌아섰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머리를 돌렸다.

‘보고의 문을 잠그면 신이라도 들어오지 못한다. 어디 네놈들 마음대로 되는지 두고 보자. 으드득!’

그때였다.

“설마 너 혼자 보낼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스슥!

왕전이 옆에 섰다.

금치문은 기절을 하려다가 간신히 견뎌 냈다.

금치문과 왕전이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한 식경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왕전의 손에 금보로 싸인 작은 나무 상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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