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84화 (82/425)

# 84

<귀환무사 84화>

악승이 다가와 물었다.

“대주님이 저곳에 계십니까?”

“글쎄…….”

“계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금발 청년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악승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금발 청년이 고개를 홱 돌려 악승을 노려봤다.

“말투가 어째 이상하다?”

“제 말투가 어때서요?”

“어째 내 귀에는 개기는 것처럼 들리는데?”

“흠! 제가 언제 그랬다고 이러십니까.”

“지금도 딱 그렇게 들리는데?”

악승이 시선을 외면하자 잠시 그를 째려본 금발 청년은 능선을 성큼 내려갔다.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던 청명과 청진은 산을 내려오는 금발 청년과 흑영대를 발견하고는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들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금발 청년이 갑자기 코앞에 나타나자 크게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분명 저만치 앞에 있었던 사람이 눈 한 번 깜박이니 코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장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너희들만 있느냐?”

“……예. 한데 누구신지…….”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다들 볼일이 있어 출타를 하셨는데, 근데 누구신지…….”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생긴 사람들은 다 왔느냐?”

“어! 그분들을 어떻게 아십니까?”

청명과 청진은 금발 청년이 왕전 등을 알고 있자 화들짝 놀랐다.

그때였다.

흑영대가 다가왔다. 때마침 연무장으로 들어서던 홍무는 흑영대에게서 발산되는 마기를 감지하고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주변을 둘러본 악승이 금발 청년에게 물었다.

“이곳이 맞긴 맞습니까?”

“볼일 보러 나갔단다.”

악승은 눈을 부릅뜨며 청명에게 다시 물었다.

“관산악이라는 분이 정말 이곳에 계시느냐!”

“예. 한데 누구십니까?”

청명은 벌써 세 번째 이들의 신분을 물었다.

악승이 뭐라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난데없이 연무장으로 들어서는 문이 박살이 나며 날아갔다.

쾅!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은 사공진무였다.

그를 본 금발 청년의 표정이 단박에 변했다.

“진무!”

“지, 진천…….”

스슥!

금발 청년, 진천은 사공진무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유령처럼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야, 인마! 너 왜 이래?”

“주공을, 주공을 뵈어야 한다.”

“지금 어디 가시고 안 계신다. 그나저나 너 몸부터 좀 살펴봐야겠다!”

사공진무가 진천의 손길을 뿌리치며 다급히 말했다.

“진천! 너의 환술로 주공께 신호를 올려라! 한시가 급하니 어서 내 말대로 해라!”

“어이!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지?”

“예. 일각 정도 전에 저쪽으로 가셨습니다.”

“멀리 가지 않았어야 할 텐데…….”

진천이 사공진무를 악승에게 건네고는 연무장보다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진천이 양손을 하늘을 향해 올리며 주문 같은 것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우와! 저게 뭐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청명과 청진이 눈을 휘둥그레 치뜨며 놀라워했다. 흑영대도 마찬가지였다.

진천의 양손에서 피어나는 백색의 빛줄기, 그것은 서서히 새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

뒤이어 마치 살아 있는 새처럼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봐! 분명 저쪽이라고 했지?”

“예!”

다시 한 번 방향을 물어본 진천이 양팔을 교차시키며 기합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새의 형상을 한 빛의 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펑!

환상적인 광경에 모두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천을 바라보는 악승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달라졌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돌아오는 진천을 유심히 쳐다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순전히 내공만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세상에 저런 무공이 있었다니…….’

진천을 괴짜로만 여겼던 악승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제3장 해후

쿵!

가장 먼저 북궁천소가 장원에 내려섰다.

뒤이어 하늘에서 뚝 뚝 떨어지는 흑야와 담대소천, 그리고 조윤을 보면서 악승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이건 도대체…….’

그저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아났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바람 소리가 일었다.

저절로 돌아간 악승의 눈에 혁련천후가 보였다.

그와 시선과 부딪히자 악승은 수천 개의 칼날이 육신을 헤집고 들어오는 느낌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벌써 악승의 상의를 축축하게 만들어 놓았다.

“뭐하는 놈들이지? 진천은 어디 있느냐?”

왕전이 악승과 흑영대를 매섭게 쓸어 보고는 대뜸 물었다.

“누구냐니까?”

악승이 대답을 못하자 이번에는 북궁천소가 물었다. 그 옆에 선 흑야의 싸늘한 눈빛을 받은 악승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대주를 찾아뵈러 왔습니다.”

“대주? 무슨 대주?”

“관산악이라는 분이 저희들의 대주십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너희들이 마교의 흑영대?”

“그렇습니다.”

“웃기는 놈들이군. 산악을 데려가겠다고 찾아왔다 이거냐?”

분위기가 돌연 살벌하게 변해 가자 악승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대주님을 잊지 못해 찾아온 것이니 오해는 마십시오.”

그때였다.

덜컹!

본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진천이 뛰어나왔다.

“형님들!”

왕전의 눈썹이 하늘로 올라갔다.

“문을 작살을 내 버렸네. 저런 망할 놈의 새끼!”

“쯧쯧! 저거 언제 철들까?”

“백 년쯤 지나면 가능하겠지.”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린 진천이 빛살처럼 그들에게로 날아왔다.

진천의 껴안기 신공을 가볍게 피한 혁련천후는 장원을 응시했다. 비틀거리며 나서는 사공진무가 보였다.

“저놈 상태가 왜 저래?”

모두가 크게 놀랐다.

사공진무는 힘겹게 혁련천후의 앞으로 걸어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공! 검후께서…….”

* * *

숲이 흔들리고 있었다.

콰직!

혁련천후는 걸리는 모든 것들을 베어 버리며 오직 직선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조윤은 혁련천후의 뒤를 따르며 혀를 내둘렀다.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군.’

지금 그는 혁련천후와 함께 검후가 있는 청수곡이라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혁련천후의 분위기를 보니 검후를 그렇게 만든 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식으로 베어 버릴 수 있는 거지? 검을 휘두르지도 않는데 저절로 잘려 날아가고 있잖아?’

그랬다.

허공을 가득 덮은 수풀과 나뭇가지들은 검에 의해서 베어진 것들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조윤은 혁련천후의 주변 공기가 울렁거리며 아지랑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비로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혁련천후의 심기가 어떤 상태인지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천살강기를 펼치시다니.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겠군.’

천살강기(天殺剛氣).

하늘도 죽여 버린다는 무적의 무형 강기다.

혁련천후가 그것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뜻한다.

파파팍!

“이큭!”

조윤은 앞을 가로막는 수풀들을 피해 열심히 혁련천후의 뒤를 쫓았다.

태용은 녹림에서 서열 삼 위에 올라 있는 고수임과 동시에 녹림의 주인인 녹림대제의 처남이다.

그는 지금 혁련천후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두 번에 걸쳐 자신의 수하들이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녹림의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결국 혁련천후의 행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씹어 먹고 오겠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길을 나선 태용은 수하들과 함께 장원으로 향했다.

“아직 멀었느냐!”

“저 산만 넘어가면 됩니다!”

“흐흐흐. 피 냄새를 맡을 생각을 하니 몸이 다 근질거리는구나. 서둘러 가자꾸나!”

빠르게 이동하던 그들은 일각이 채 지나지 않아 이동을 멈추어야 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두 인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날아오던 두 인물이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본 태용이 눈을 번쩍였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저, 저놈입니다! 저 흑발을 늘어뜨린 저놈이 살부광마와 녹영단주를 죽인 놈입니다!”

“확실하냐?”

“틀림없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혁련천후를 가리킨 자는 지난날 녹영단의 대원으로 화산의 제자들을 죽이러 나섰다가 살아서 돌아갔던 자였다.

태용이 어깨에 메었던 장도를 뽑으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 묻어 버리기에 딱 좋은 곳에서 만났군. 흐흐흐!”

태용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혁련천후는 앞을 막아선 자들이 녹림의 무리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파악했다.

그중에 한 명이 지난날에 본 적이 있었던 자였다.

챙!

혁련천후는 검을 뽑았다.

가급적 살인을 즐기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은 그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태용이 그를 향해 소리치며 나섰다.

“네놈이 본 녹림의 아이들을 해친 놈이냐?”

대답은 시퍼런 강기였다.

쐐애액!

“엇!”

벼락같이 날아드는 강기를 본 태용이 황급히 검을 들어 쳐 냈다.

까앙!

퍼퍼퍽!

“크악!”

“으아악!”

그의 뒤에 섰던 자들 몇 명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불운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생겨난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를 미리 안다면 세상에 불운이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당연히 태용도 그 불운이 오늘 자신에게 닥쳤음을 알 리가 없었다.

번쩍!

태용은 눈앞에서 번뜩이는 한 줄기 섬광을 보았다.

뭔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미 그의 손은 깨끗하게 잘려 날아가고 없었다.

“……!”

퍽!

태용의 잘린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숲 너머로 떨어졌다.

혁련천후의 싸늘한 외침이 이어졌다.

“한 놈도 살려 주지 마라.”

녹림도들은 자신들의 머리를 넘어 사라지는 혁련천후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뒤이어 거센 폭풍이 그들을 덮쳤다.

“지옥으로 떠날 시간이다. 이놈들!”

조윤의 창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콰지지직!

‘늦으면 다시는 시력을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공진무의 말을 떠올린 혁련천후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후욱!”

뜨거운 숨이 입술을 뚫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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