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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82화 (80/425)

# 82

<귀환무사 82화>

음식을 나르던 청명이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명성은 하늘에 닿은 이들이지만 욕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노는 것을 보면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물론 그래서 더 좋았지만.

“어! 청진이 옵니다!”

“큰일 났습니다!”

“뭐래냐?”

“큰일이 났다고 한 것 같은데?”

모두는 허겁지겁 뛰어오는 청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북해빙궁이 쳐들어왔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이냐?”

“예! 사숙! 지금 맹의 무사들에게 소집령이 내려져 난리도 아닙니다. 제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습니다.”

장문인 태허가 벌떡 일어섰다.

느닷없는 북해빙궁의 침공이라니.

태허와는 달리 대부분의 무사들은 멀뚱한 표정이다. 수십 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았던 터라 갑작스러운 전쟁 소식에 그다지 감흥이 일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북궁천소가 청진의 손에 들렸던 술병을 낚아채며 시큰둥하게 뱉었다.

“북해빙궁이 뭘 믿고 움직였을까?”

“뭘 믿긴. 놈들의 전력은 역사상 최강이다. 지금껏 마교 때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지만 이번은 다를 거다.”

조윤이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명분도 없이 쳐들어왔다니 빙마가 원래 그렇게 무지막지한 인간이었나?”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담대소천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시끄럽게 생겼군. 놈들이 만약 마교와 전면전을 벌이면 그 기회를 노리고 다른 세력들 역시 준동할 것이 분명하겠군. 빙궁이 도화선에 불을 붙인 꼴이 되었어.”

“다른 세력이라니?”

“중원을 도모하려는 곳이 한두 곳이냐. 보나 마나 이쪽저쪽에서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올 거다.”

그때 왕전이 돌연 북궁천소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너를 잡으러 왔던 놈들 중, 빙마 그자의 핏줄이라도 섞여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그에겐 아들이 없다. 단 제자가 셋이 있지. 그중 하나가 네 손에 죽어 버린 그 덩치 큰 놈이다. 한데 그건 왜?”

별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북궁천소의 태도에 모두는 어이가 없어 인상을 다 찡그렸다.

조윤이 청진에게 물었다.

“다른 소식은 없었나?”

“그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됐고. 그냥 술이나 마시자.”

“그래. 전쟁이고 나발이고 우리하고 엮이지만 않으면 신경 끄는 게 상책이다.”

장문인 태허는 술판을 벌이는 다섯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순간 그는 과연 저들에게는 어떤 것이 걱정거리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 사숙조께서 오십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느긋하게 누웠던 북궁천소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조윤과 북궁천소가 혁련천후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주공! 천소입니다.”

“저 조윤이도 왔습니다.”

“왔느냐.”

“달라붙는 놈들 때문에 다소 늦었습니다.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보다시피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느냐.”

혁련천후는 둘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곧장 장문인 태허를 향해 말했다.

“오다가 빙궁의 일을 들었소. 맹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소?”

“그렇긴 합니다만…….”

“당당하게 맹의 일원임을 보여 주시오. 언제까지 뒤쪽에 물러나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달리 생각하면 좋은 기회일 수도 있소.”

“좋은 기회라시면…….”

“전공을 세우는 것이 화산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겠소. 영웅 대회로 자존심을 세웠다면 이번 전쟁은 더 큰 것을 얻는 기회로 여기시오.”

“알겠습니다. 허면 저희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태허를 비롯한 장로들은 다시 정도맹으로 돌아갔다. 다른 제자들도 화산파로 돌아갔다.

진유를 비롯한 영웅 대회에 출전했던 셋은 남았다. 혁련천후가 남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남은 이들은 남은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편, 장원의 뒤쪽 숲에 숨어 있던 철무옥은 혁련천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체 저자가 누군데 모두가 일어나 머리를 조아린단 말인가.’

놀라운 광경이었다.

자신을 따라오게 만들었던 북궁천소와 조윤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라니.

분명 주종간에서나 취할 수 있는 그런 태도였다. 거기에 북궁천소와 조윤만큼이나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가 둘이 더 있었다.

바로 담대소천과 흑야였다.

철무옥은 불현듯 저들과 싸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강자와 싸우는 것을 신념처럼 여기는 그라도 상대가 엇비슷할 때나 가능한 얘기다.

만약에 혁련천후가 저들의 주인이라면 보나 마나 자신은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 숲을 흔들자 일순 시야가 가렸다. 철무옥은 시야를 가린 수풀을 좌우로 벌리며 다시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차가운 인상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였다.

‘조금 더 지켜보자.’

* * *

정도맹의 첩보를 담당하는 비영전의 무사들은 곳곳에서 날아든 전서구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서 한 장을 펼쳐 읽은 비영전주 육승은 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야 했다.

“용성이라는 곳이 남부 무림에 쳐들어왔다니! 맹의 정보에도 없던 문파가 감히 중원무림을 공격했단 말인가!”

용성이라는 집단이 남부 지부를 공격했다는 내용이었다.

“북해빙궁이 남하하는 시점에서 남쪽이 혼란에 휩싸인다면 자칫 전력이 양분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거늘…….”

북해빙궁 때문에 모든 신경이 북쪽을 향한 시점에서 난데없이 남쪽에서 전쟁이 벌어지다니.

“유진걸 대협이 있으니 잘 막아 주겠지.”

육승은 유진걸을 믿었다.

백전노장인 그라면 이름조차 없는 문파의 공격 정도는 거뜬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때였다.

“전주님! 광동의 일차 저지선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뭣이!”

육승은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흘렸다.

믿었던 유진걸이 무너졌다니.

“다른 곳에서는 특별한 내용이 없느냐!”

“아직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복건성으로 전서를 날려라! 전면전을 피하고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지연 전술을 펼치라고 적거라! 인근의 다른 지부에도 똑같이 보내야 할 것이다!”

“예!”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육승은 비영전을 빠져나와 맹주실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육승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용성이라는 곳이 더 시급하다! 북해빙궁은 일단 마교를 거쳐야 한다. 그들이 동맹을 체결하지 않은 이상 신강을 넘어서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자존심이 그 누구보다 강한 마교가 그들의 통과를 눈뜨고 보고만 있을 리 없을 것이다.

문제는 두 집단 간의 동맹이었지만, 수백 년간 앙숙처럼 지냈던 두 세력이 동맹을 맺을 리는 없을 거라 믿었다.

‘용성이라니, 일거에 남지부를 쓸어버릴 전력을 지닌 그들이 이렇듯 맹의 첩보에 비켜날 수 있었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정도맹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는 곳이 비영전이다.

맹주 나백은 첩보가 곧 전쟁의 승패를 가늠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어서 맹의 예산 중 절반이 비영문의 운영에 투입된다.

그만큼 엄청난 수의 첩보원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은 중원은 물론 바다 건너 동영에서까지 작전에 나섰다.

그럼에도 지금껏 용성이라는 곳은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응? 저자들은…….’

육승은 걸음을 멈추었다.

맹주실을 나서는 인물들이 있었다. 마교와 사련에서 온 자들이었다.

느닷없는 영웅 대회의 취소로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던 그들은 나백과의 면담을 끝내고 나서는 길인 모양이었다.

그때 나백이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육 호법 인사드리시오!”

나백이 육승을 보며 호법이라 칭했다.

그가 비영전주임을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분이 알려진다면 마교나 사련의 암살대상 영순위에 오를 것이 뻔했다.

어쩌면 두 문파의 입장에서 보면 맹주인 나백보다 육승이 더 요주의 대상일 수도 있다.

가볍게 허리를 숙인 육승을 역시 가볍게 맞이한 마교와 사련의 인물들이 나백에게 포권을 취하고는 몸을 돌렸다.

“허면 이만 돌아가 보겠소이다, 맹주.”

“원로에 수고하시오.”

마교와 사련의 인물들이 돌아가자 나백은 곧장 거처로 들어가 육승과 마주 앉았다.

남부 지부의 비보를 전해 들은 나백이 크게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두 세력이 거의 같은 시기에 움직였다면, 사전에 계획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그들이 영웅 대회가 열리기를 기다린 듯합니다.”

“그렇겠지.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문파들의 수뇌부들 대부분이 이곳에 모이는 것을 노렸을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일단은 용성이라는 곳이 문제군. 북쪽이야 신강을 거쳐서 들어와야 하니 당분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말일세.”

나백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실로 수백 년 만에 외세의 침공으로 정도맹의 무사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비록 그동안 산발적인 국지전은 몇 번에 걸쳐 벌어졌었지만 지금처럼 대대적인 침공은 처음이었다.

“적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산발적인 국지전을 노릴지, 아니면 곧장 중원의 심장부로 들이닥칠지,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래야만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나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싸움을 해 보기 전엔 알아낼 방도가 없지 않은가? 다만 숫자가 제법 되니 국지전을 대비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지 않겠나?”

“그렇긴 합니다만, 워낙에 정보가 없는 곳이라 쉽사리 예측을 할 수가 없으니 경우의 수까지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육승은 난감했다.

사실 정도맹으로서는 국지전이 더 골치가 아프다. 대규모 전면전이라면 수적인 우세한 데다 지리적으로 장거리 원정을 온 적들보다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적들이 병력을 나누어 이곳저곳을 치고 빠지는 식으로 나온다면 정도맹 역시 병력을 나누어 맞서야 하는데, 적이 움직이기 전에는 어디로 병력을 보내야 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니 두 배의 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들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면 전서구를 사용할 수가 없어 통신에도 크나큰 차질을 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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