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81화 (79/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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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81화>

양패구상이면 사련의 입장에선 최상의 결말이다.

빙궁이 패하더라도 정도맹과 마교의 힘 또한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니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그 자체로 사련은 앉아서 커다란 득을 보는 셈이다.

“바야흐로 중원천하에 난세의 바람이 부는 것인가?”

군림천하는 난세에 이루어진다.

갈무극은 그 주인공이 자신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정도맹 남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화룡검(火龍劍) 유진걸의 메마른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그의 눈에 넓은 초원을 까맣게 메운 채 달려드는 무리들이 보였다.

“놀랍군! 저렇듯 신속한 놀림을 보이는 자들이 저토록 많다니…….”

“기세를 보니 좋은 뜻을 가지고 오는 자들은 절대 아닙니다! 결전을 준비하셔야 할 듯 보입니다! 지부장님!”

유진걸의 옆에 선 장대한 체구의 장한이 다급한 빛으로 말했다.

청성파의 인물로서 남지부에 파견을 나온 장개라는 인물이었다.

그때였다.

유진걸이 눈초리를 가늘게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성? 저런 문파도 있었나?”

유진걸은 무리들의 선두에 보이는 거대한 깃발을 직시했다.

용성(龍城)이라 적힌 그 깃발이었다.

그로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저 정도의 세력이 어떻게 그동안 맹의 첩보망을 비켜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고약한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군.”

유진걸의 낯빛이 더욱더 굳어졌다.

그때였다. 질주해 들어오던 용성의 무리들이 속도를 높였다.

“전투태세를 갖추게!”

장개가 재빨리 지부로 뛰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땡, 땡, 땡!

전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수백의 무사들이 검과 창을 들고 유진걸의 옆으로 몰려나왔다.

초원을 밀려드는 무리들을 본 무사들의 얼굴이 대번에 돌처럼 굳어졌다.

자신들의 숫자를 상회하는, 그것도 대단한 경공을 펼치며 달려들고 있자 순식간에 긴장감에 휩싸였다.

유진걸이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결전을 준비하라! 그리고 장대주는 전령을 보내 저들과 접촉을 시도해 보시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흰색 천을 든 무사 하나가 빠르게 무리들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그러나 달려드는 무리들은 그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상대방의 전령을 보면 서로의 목적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국적을 떠나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용성은 그것을 무시했다.

전령으로 달려간 무사의 목이 허공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지켜보던 정도맹의 인물들이 크게 놀라 외쳤다.

“적이다!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장개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짐과 동시에 모든 무사들이 일제히 횡으로 늘어서며 병기를 뽑아 들었다.

채채챙!

용성의 무사들은 상당히 빨랐다.

천을 넘어가는 대단한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초원은 그저 미세한 먼지가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유진걸은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절대 이 성곽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유진걸은 수성전의 달인이다.

비록 숫자는 배가량 차이가 났다지만 지형적인 유리함은 자신들에게 있다.

상대진영에 성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절대 고수만 없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유진걸은 적들이 사정거리 안까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강전과 쇠뇌를 든 무사들이 성곽 뒤에 몸을 숨긴 채, 유진걸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유진걸의 입에서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쏴라!”

쐐애애액!

수백 발의 강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신호로 정도맹과 용성의 전쟁이 막을 올렸다.

그것은 대혈겁의 시작이었다.

* * *

혁련천후는 섬서의 외곽에 위치한 백어산의 중턱을 걷고 있었다.

저 멀리 낙수 강변이 보였다.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십 년 전, 죽음의 도주를 시작할 때 이곳에서 최초의 살인을 했었다. 그리고 사부가 이곳에서 죽었다.

싸르륵!

바람에 부대끼는 갈대가 묘한 소리를 내며 그의 눈을 어지럽혔다.

갈대밭을 지나친 그는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에 비해 갈대의 크기가 훨씬 크고 두터웠다. 덕분에 강 쪽에서 부는 바람이 갈대에 막혀 뒤쪽의 숲은 평온할 뿐이었다.

싸르륵!

바람에 흔들린 갈대가 이리저리 춤을 춘다. 혁련천후는 그 한가운데를 가르며 들어섰다.

지금 그는 사부의 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죽음의 추적을 피해 간신히 시신만을 묻어둔 그곳을 찾아야 했다.

비록 지나간 세월 탓에 잡초가 우거진 주변이 스승의 묘를 찾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한 곳을 보며 묵묵히 걸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혁련천후는 스승의 묘를 찾을 수 있었다.

처참하게 죽어 가던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전신에 칼과 창을 꽂고 죽어 간 스승의 절규가 귓속을 맴돌았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상처투성이인 그의 얼굴은 영백을 죽일 때의 모습과 똑같았다.

주변 숲이 모두 소나무로 이루어진 곳에서 혁련천후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엔 작은 사당이 보였고 그 사당의 옆쪽에 온갖 잡초로 덮여진 조그만 봉분이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스승의 봉분이다.

그 초라함에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저려 왔다.

오른손을 슬쩍 움직이자 봉분을 덮었던 수풀과 잡초들이 먼지로 화해 날아간다.

품속에서 술병을 꺼낸 혁련천후는 아무렇게나 세워진, 나무로 만든 비목 앞에 무릎을 꿇었다.

또르륵!

술잔에 술이 채워져 비목 앞에 놓였다.

생전의 스승이 좋아하던 소홍주였다. 천천히 이어진 구배(九拜)가 끝나고 그는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스승의 묘를 지켰다.

기억조차 없는 어린 시절, 그리고 스승과 함께했던 화산에서의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옅은 미소와 참담함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얼굴은 이내 무겁게 굳어졌다.

또르륵!

또 한 잔에 술이 채워졌다.

“제자……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주르륵!

눈가로 맑은 액체가 흘렀다.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허나 다시 돌아오는 그날은 천하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쪼르륵!

탁!

혁련천후는 남은 술을 마저 따르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구 배의 예.

십 년 만의 해후치고는 지나치게 빠른 이별이었다.

‘화산을…… 용서했습니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술잔에 떨어지며 작은 파랑이 일었다.

휘이잉!

혁련천후는 한동안 그렇게 스승의 묘를 떠나지 못했다.

* * *

장원이 꽤나 소란스러웠다.

당초 화산으로 직행하려던 화산파의 사람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왔다.

순전히 왕전의 으름장 때문이었다.

‘가서 일 좀 도와주고 가쇼!’

그의 그 말 한마디에 장문인 태허가 흔쾌히 허락을 했다.

덕분에 진호를 비롯한 다섯은 희희낙락이다.

자신들이 할 일을 서른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눠서 하자 일이 진행되어 가는 속도는 차원이 달랐다.

며칠 만에 장원의 담장과 대문이 완성되고 뒤쪽에 이 층규모의 전각 한 채가 뚝딱 지어졌다.

무공의 고수들이라도 이토록 빠른 시간에 완성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일의 진전이 빨랐던 이유는 일전에 혁련천후와 관산악에게 강도짓을 하려다가 일자리를 주겠다면 장원을 찾아가라 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뜻밖에도 전직 목수 출신들이었다.

그들이 설계를 하면 나무를 베는 것쯤이야 무공의 고수들에겐 일도 아니었다.

칼질 몇 번에 거대한 기둥이 만들어지니 그것을 끼워 맞추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멋지군!”

“너무 빨리 지었다. 이러다가 확 무너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담대소천의 말을 들은 목수들이 어깨를 움찔했다.

왕전이 짐짓 으름장을 놓았다.

“몇 십 년은 끄떡없겠지?”

“예. 대인!”

목수들은 온몸으로 대답을 했다.

그때 청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사부님들!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아저씨들도 얼른 오세요!”

모두가 연무장으로 향했다.

임시로 마련된 탁자에 서른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모였다.

홍무는 음식을 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화산의 고수들을 볼 때마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살수 출신이다.

정파의 인물들이 가장 배척하는 자들이 살수와 색마다.

화산과 아무런 원한은 없었지만 괜히 움츠러드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놈이 보이지 않는군.”

담대소천이 청진을 찾았다.

모두가 모였지만 청진이 보이지 않았다.

“술을 사러 갔습니다! 헤헤! 장문 사형께서 사부들께 술을 올리라고 하셔서…….”

“크흠! 술은 무슨…….”

왕전이 짐짓 겸양을 떨었지만 입안에 고이는 침을 막지는 못했다.

고개를 몇 번 돌린 북궁천소가 한쪽에 앉아 있는 진유를 쳐다봤다.

“주공께서는 늦는다고 하셨느냐?”

“우리도 모른다. 언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냐. 그러니 그냥 엉덩이 떡 붙이고 기다려라. 이놈아.”

북궁천소의 물음에 왕전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북궁천소가 왕전을 슬그머니 노려보더니 끝에 앉아 있던 진유를 보며 물었다.

“저놈이 매화무적인가 하는 그놈인가?”

“그래. 한데 왜 묻느냐?”

“소문보다 별로라서. 무적이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붙이다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지가 붙였냐? 강호인들이 붙여 줬지.”

“그런데 너는 어째 뺀질뺀질해진 것 같다? 못 보는 동안에 뭘 잘못 처먹기라도 한 거냐?”

북궁천소와 왕전이 눈싸움을 벌였다.

담대소천이 옆구리를 찌르고서야 둘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진유가 이쪽을 응시했다.

마침 그를 다시 돌아보던 북궁천소가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어 주자 진유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북궁천소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새끼. 꼬랑지 내리는 꼬락서니하고는…….”

조윤이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널 보면 도왕이라는 별호가 아깝다.”

“동경에 네 낯짝이나 비춰 보고 그따위 소릴 지껄여.”

“흘흘! 네가 보기엔 네놈들 둘 모두 똑같은데!”

“넌 빠져, 새끼야!”

왕전이 괜히 끼어들었다가 욕만 얻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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