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귀환무사 80화>
“원래 그쪽 놈들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들이라고 하더군. 그래도 검법 하나는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이니 차후, 맞닥뜨리면 조심하는 것이 좋다.”
“동영과 세력을 맺었다면 놈들도 중원을 목표로 둔 것인가?”
“당연하지. 모든 세외 세력들의 공통된 꿈이 중원 정벌이 아니냐? 어쩌면 빙궁보다 먼저 움직일지도 몰라. 상대적으로 그들의 진출로에 있는 광동이나 복건은 정도맹의 세력이 가장 미흡한 곳이니까.”
“판이 제대로 커질 모양이군.”
북궁천소는 다시 기지개를 폈다.
뚝!
“윽! 아무튼 쳐들어오면 싸워 주면 되고, 덤벼들면 죽여 주면 되지. 그나저나 이 자식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저기 오네.”
북궁천소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간만에 제대로 인사 한번 해 볼까?”
“그거 좋지.”
둘이 각자의 무기를 챙겨 들고 일어섰다.
화산파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둘을 응시했다. 뒤이어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해후의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오랜만이다. 이놈들아!”
쐐애액!
“이런 미친놈!”
콰지직!
* * *
꽈지지직!
천지개벽을 알리는 듯,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얼음이 무너져 내리며 바다 위에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 냈다.
콰르르…….
반 시진을 이어진 빙산의 균열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천지를 진동시켰다.
물기둥과 얼음가루가 사라지자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북해빙궁(北海氷宮).
북해의 절대 강자들의 안식처가 그곳이었다.
끼이익!
높이가 삼 장에 이르는 성곽의 중앙이 서서히 좌우로 갈라지며 소름 끼치는 괴음을 토해 냈는데 그곳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갈라지던 성곽이 그 움직임을 멈추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이 일제히 좌우로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백색갑주를 걸치고 각종 병기를 든 그들의 숫자는 무려 이천에 달했는데 그런 그들의 중앙에 백마에 몸을 실은 백발백염의 노인이 오연한 눈빛으로 중원이 있는 남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중원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군.”
적당한 체구에 창백한 안색, 그리고 세상을 담아 버린 듯 고고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를 지닌 노인, 바로 북해빙궁의 궁주이자 북해의 제왕이라 불리는 빙마(氷魔) 요성제가 그였다.
그가 말 머리를 돌려 뒤쪽에 늘어선 무사들을 향했다.
“보았느냐? 저 높고 푸른 중원의 하늘을!”
“예!”
대답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빙마의 눈동자에 강렬할 불길이 솟아났다.
“저 높고 푸른 하늘 밑에는 신이 축복한 아름다운 대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북해의 무사들이여! 이제 우리는 저 중원을 정복하고자 위대한 전쟁의 길에 접어들 것이다! 나를 믿고 북해의 혼을 믿어라! 알겠느냐!”
우와!
드드드드드!
북해의 대지가 흔들렸다.
빙마 요성제의 시선이 다시 중원의 하늘을 향해 돌아갔다.
그의 뒤쪽으로 은빛 갑주를 걸친 장대한 체구의 거한이 말을 몰아 나섰다.
전마의 옆구리에 거대한 창을 찌르고 어깨엔 은빛 찬란한 대도를 멘 그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요성제를 쳐다봤다.
북해의 별이라 불리는 북해도마(北海刀魔) 율탄이 거한의 이름이었다.
“출진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중원을 정벌하기 전에 먼저 쳐야 할 곳이 있다.”
“마교 말입니까?”
요성제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원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중원으로 나가는 그 길목에 마교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중원을 밟기 이전에 그들부터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봐야 했지만 수백 년 동안 빙궁은 마교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지 못했다.
자신의 선조가 그랬고 자신 역시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마교를 꺾을 자신도, 힘도 충분했다.
“명분 거리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한다. 중원의 다른 세력들이 우리의 마교 정벌을 용납할 수 있는 그런 명분 말이다.”
“정도맹이 마교를 도와줄 리 없잖습니까? 굳이 명분이 없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우리와 마교의 싸움을 반길 자들입니다.”
“모르는 소리! 놈들의 민족주의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다. 설사 마교가 자신들과 숙적이라고 해도 세외 세력인 우리가 마교를 쓸어 내는 것을 보고만 있을 놈들이 아니다!”
“속하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신강의 고란평원에 일단 진을 치고 기다린다. 물론 아이들을 중원으로 보내 적당한 빌미를 만드는 것은 네가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염려 놓으십시오! 궁주님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반드시 내놓겠습니다!”
율탄은 자신감에 넘쳤다.
요성제는 흡족한 듯 미소를 머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자! 이제 출발해 보자꾸나.”
율탄이 거대한 몸을 무사들에게로 돌려 세웠다.
무사들을 느릿하게 쓸어 본 그가 내공을 실어 외쳤다.
“전군 출진!”
뿌우우!
나팔 소리와 함께 이천에 달하는 고수들이 일제히 중원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뇌어양! 드디어 본좌가 간다. 너의 그 오만한 콧대를 철저하게 짓밟아 줄 것이다! 후후후!”
꽈지직!
그들의 대장정을 축복이라도 하듯 빙산의 일부가 거대한 굉음을 울리며 떨어져 내렸다.
천지를 뒤덮은 얼음 가루가 이동하는 무사들의 머리 위로 흩날리는 장관이 연출되는 이곳은 만년설이 뒤덮인 북해의 대지였다.
* * *
푸드득!
정도맹의 비영전주 육승은 갑작스럽게 늘어난 전서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날아온 방향이 모두 북쪽이었다.
“쯧쯧! 전서구를 다시 사용하려면 한 달은 꼬박 걸리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쓸데없이 남발을 한단 말인가?”
전서구의 다리에서 비단을 끌은 그는 한눈에 전서를 읽었다.
순간 육승은 두 눈을 부릅떴다.
- 북해빙궁이 움직이기 시작했음. 빙마 요성제를 필두로 북해구마 전체가 함께하고 있음. 이동 방향은 현재까지 마교가 있는 천산으로 사료됨.
전서의 내용이었다.
육승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나백을 비롯한 수뇌부는 육승이 가지고온 소식에 모두 크게 놀랐다.
“그자들이 왜?”
나백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육승이 심각한 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영웅 대회를 취소하고 북쪽에 위치한 문파의 인물들을 속히 돌려보내야 합니다. 또한 맹에서도 지원군을 급파, 그들의 동선을 쫓아야 합니다!”
“놈들이 중원으로 들어서려면 마교를 넘어야 하오. 대회 취소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겠소?”
적용세의 말에 나백은 고개를 저었다.
“수석 장로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으나 이런 경우에는 사전이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알겠소. 허면 서둘러 고수들을 소집하여 북쪽으로 가 보십시다.”
적용세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다급한 어조로 모두에게 말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이마를 매만지던 나백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수석 장로께서 대회 중단을 알리시고 육전주는 서둘러 북쪽으로 향할 부대를 편성하게. 그리고 순우호법께서는 남지부와 서지부에 다른 세력들의 동향이 있는지를 파악해 보시오.”
“그곳은 왜?”
“서장과 여타 외세들의 움직임을 미리 살펴야 하오. 빙궁의 움직임을 그들이 안다면 그들 또한 기회를 삼아 움직일 것이 틀림없소.”
“알겠소이다!”
셋이 다급하게 맹주실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영웅 대회는 전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리고 정도맹은 최고 단계의 특별 비상 경계령을 선포했다.
중원 전역에 퍼져 있던 모든 고수들에게 소집령이 내려졌음은 물론이고, 대회에 참가했던 북쪽의 문파들은 서둘러 귀환을 했다.
“뭣이! 그게 사실이냐?”
갈무극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조금 전, 사요승은 날아든 전서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곧장 암흑대전으로 달려와 그 소식을 알렸다.
북해빙궁이 움직였다는 첩보였다.
갈무극은 두 손을 깍지 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북해빙궁이 움직였다……. 허면 중원을 도모라도 하겠다는 건가?”
“당장은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 듯합니다. 다만 그들이 마교와 전쟁을 벌인다면 중원 정벌을 염두에 두었다고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흠!”
갈무극이 눈빛을 가라앉히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다급한 사요승과는 달리 그는 꽤나 침착함을 보였다. 놀람을 보였던 조금 전과는 달리 좌우로 가늘게 흔들리는 눈동자는 뭔가를 계산하는 빛이 다분했다.
“대제!”
사요승이 재촉하는 듯 강하게 그를 불렀지만 갈무극은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이며 답이 없었다.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갈무극의 사요승의 마른 얼굴을 직시했다.
“사요승!”
“하명하십시오! 대제!”
“믿을 만한 아이를 보내서 놈들과 접촉을 시도해 봐! 놈들의 뜻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가능하다면 놈들과 손을 잡는 것도 괜찮겠지.”
“놈들과 손을 잡으신다니요? 세외 세력과의 연대는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 중원의 공적으로 몰리기라도 하는 날엔…….”
“기밀을 유지하면 문제 될 것 없다.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무림의 패자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러니 그 방면에 달통한 아이를 은밀히 북해빙궁의 진영으로 보내봐. 아니지! 군사, 네가 직접 가는 것이 더 낫겠군.”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속하가 직접 빙궁을 다녀오겠습니다.”
사요승이 굳은 얼굴로 허리를 굽혔다.
갈무극의 고집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어차피 반대해 봤자 될 것이 아니란 판단에 자신이 직접 북해빙궁을 방문하기로 작정했다.
두 거대 문파 간의 이해타산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자칫 잘못되면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해서 수하들을 보내느니 직접 가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놈들이 도움을 주는군.”
갈무극은 빙궁의 침공을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정도맹과 마교, 그리고 사련이 삼분을 하고 있는 현 정세에서 빙궁의 침입은 난세를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며, 난세는 곧 자신에게 크나큰 기회를 줄 거라 확신했다.
“마교나 정도맹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 자체로 이득이 될 터, 그렇다면 당분간은 손에 떡을 쥐고 구경이나 해야겠군.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