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78화 (76/425)

# 78

<귀환무사 78화>

[확실히 크게 될 놈입니다. 우리에게 배웠던 검법에다 자신만의 검법을 한데 섞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관산악의 전음에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모용단승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깡!

쇳소리가 터지며 둘의 육신이 자서처럼 달라붙었다가 튕기듯 떨어졌다.

“훅!”

모용단승은 거친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며 당치성을 노려보았다.

당치성의 얼굴이 조금은 붉어져 있었다.

쉽게 생각했던 상대가 의외로 강했기 때문에 내심 크게 당황스러워하는 중이었다.

“제법이군. 다 망해 버린 화산파의 제자 주제에.”

“불과 얼마 전에 개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쳤던 것을 잊었느냐!”

화산에서의 일을 상기시키자 당치성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개자식! 어디 다시 한 번 막아 봐라!”

당치성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머리 위로 손을 휘젓자 기다란 채찍이 섬전처럼 모용단승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동그랗게 말았다가 기습적으로 펼쳐 낸 공세는 상당히 빠르고 날카로웠다.

맞으면 몸에 구멍이 날 것만 같았다. 어금니를 깨문 모용단승은 재빨리 보법을 펼쳐 채찍의 사정권에서 빠져나왔다.

책! 책!

몇 차례의 공격을 더 피한 모용단승은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는 특단의 대책을 떠올렸다.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서 일격에 끝장을 낸다.’

당치성의 내공은 자신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시간을 끌면 필패였다. 지금껏 모용세가의 검법을 사용했지만 마지막은 왕전에게 배운 수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세가의 무공으로 꺾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당장은 당치성을 꺾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스슥!

모용단승은 두 발을 어깨보다 조금 더 넓게 벌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검을 힘껏 쥐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채찍의 사정거리 안으로 뛰어들려면 부상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조금도 두렵지가 않았다.

눈앞의 당치성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준 장본인이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큼은 무참히 꺾어 주고 싶었다.

“설마 뛰어들려는 건 아니겠지?”

“놈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러고도 남을 거다. 그나저나 부상을 입을 수도 있을 텐데…….”

모용단승의 변화를 읽은 모두는 걱정과 기대가 한데 어우러진 눈으로 모용단승을 응시했다.

왕전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흐흐흐. 좋은 선택을 했군, 꼬마.”

그는 지금 모용단승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에게서 배운 무공을 사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쐐애액!

채찍이 모용단승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모용단승은 혼신의 힘을 다해 채찍을 향해 달려들었다.

“엇!”

뜻밖의 반응에 당치성의 입에서 모두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당혹성이 터졌다.

“그렇지! 쑤셔 버려!”

“제법이군.”

혁련천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도 모용단승의 한 수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수법. 그는 모용단승의 기백을 인정하고 있었다.

퍽!

“우악!”

당치성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입에서 피를 뿌린 그는 바닥을 굴러 비무대의 끝까지 가서야 겨우 몸을 세웠다.

승부의 추는 이 한 방으로 모용단승에게 기운 것 같았다.

“크윽!”

핏물을 게워 낸 당치성이 비틀거리는 육신을 추스르며 간신히 일어섰다.

순간 모용단승은 갈등했다. 여기서 검을 한번 휘두르면 당치성의 목을 벨 수도 있다.

그에게 당했던 치욕스러운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꿈틀!

검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기까지.]

혁련천후의 전음이 들려왔다.

모용단승은 어금니를 악물며 결국 돌아섰다.

당가의 인물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효와 당문성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설마 당치성이 패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그들이다. 아직 심판관의 결정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이미 승부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새끼!”

당치성이 원독에 찬 시선으로 모용단승을 노려봤다. 그러나 풀려 버린 다리는 그의 육신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모용단승이 심판관을 돌아봤다.

벌써 판정을 내렸어야 할 심판관은 당치성의 상세를 살피며 미루고 있었다.

‘추악한 인간들!’

왕전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쩌렁쩌렁한 고함을 질렀다.

“심판 뭐 해! 새끼야!”

내공을 싣지 않았음에도 연무장을 메운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들을 수 있을 만큼 우렁찼다. 심판관이 마지못해 오른손을 위로 뻗어 갈 때였다.

“죽엇!”

당치성이 벼락같이 오른손을 뻗었다.

동시에 허공을 가르며 번쩍 빛을 발하는 수십 개의 암기들이 모용단승의 전신을 노리고 섬전처럼 날아갔다.

“저런!”

“암기를 던지다니!”

곳곳에서 놀란 음성들이 쏟아졌다.

뒤이어 처절한 단말마가 터졌다.

“크악!”

귀빈석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앉아 있는 사람들이라곤 혁련천후와 그의 수하들뿐이었다.

“크악!”

당치성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검을 늘어뜨린 모용단승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당치성을 노려보며 서 있었는데, 당치성의 것으로 보이는 팔 하나가 그의 발치에서 생선처럼 펄떡였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당치성.”

주르륵!

모용단승의 입가를 타고 피가 흘렀다.

당치성이 날린 암기를 다 피하지 못한 것이다. 당가의 인물들 몇이 비무대로 뛰어올랐다.

당문성이 팔이 잘려 버린 당치성을 보더니 야차처럼 얼굴이 구겨졌다.

그가 검을 뽑아 모용단승을 베려고 할 때.

“멈춰!”

거대한 그림자가 당문성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정도맹의 총호법 관승이었다. 그는 모용단승의 앞을 막아서며 당문의 고수들을 저지했다.

“물러서지 못할까!”

“저놈이 동생의 팔을 잘랐소!”

“먼저 암기를 던진 것은 그대의 동생이다! 하니 뒤로 물러서라!”

관승은 호랑이처럼 두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당문성은 감히 검을 뽑지 못했다.

그는 모용단승을 죽일 듯 노려보며 씹듯이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네놈의 두 팔을 잘라 버릴 날이 있을 것이다. 으드득!”

이를 가는 당문성.

모용단승이 당문성을 향해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분하면 이 자리에서 덤비든가.”

모용단승이 오른손을 들어 얼굴로 가져갔다.

찌이익!

인피면구가 찢겨지며 모용단승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이미 창백하게 변해 버린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아 당치성이 던진 암기에 독이 발라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문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네, 네놈은…….”

“왜? 나처럼 허접한 놈이 그 잘난 네놈의 동생을 밟아 버리니 믿기지가 않느냐!”

“모용단승! 이노옴!”

분노를 이기지 못한 당문성이 관승을 무시하고 모용단승을 향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마침 맹주를 응시하고 있던 관승이 말릴 새도 없었다.

“지랄을 한다.”

한 줄기 거친 목소리와 함께 비무대 위에 바람이 일었다. 뒤이어 당문성의 목을 움켜쥔 왕전의 뒷모습을 군웅들은 볼 수 있었다.

“이 새끼는 도대체 얼마나 처맞아야 인간이 되려나.”

“무슨 짓이냐!”

돌연한 상황에 당가의 고수들이 일제히 비무대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화산은 그 누구도 뛰어오르지 않았다.

혁련천후가 막았기 때문이다.

“흑흑!”

모용미는 펑펑 울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그녀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속일 생각은 없었소. 스스로 당신에게 자신을 밝히고 싶어 했었소.”

“저 아이가 대협들과 함께 있었나요?”

“그렇소.”

“저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셨군요.”

혁련천후는 눈물로 범벅인 모용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 스스로 터득한 것이오. 우린 그저 지켜보았을 뿐이오.”

모용미는 다시 펑펑 울었다.

당문성을 당가의 인물들에게 짐짝처럼 던져 버린 왕전이 모용단승을 안고 내려왔다.

“독에 당했습니다. 응급처지는 했는데 아무래도 의당으로 서둘러 가 봐야겠습니다.”

모용단승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모용미가 울며 달려들었다.

“단승아!”

왕전이 그녀를 위로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 너무 걱정 마시오.”

“서둘러라.”

“예, 주공.”

왕전은 모용단승을 안고 정도맹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의당이 있는 곳이었다.

제2장 대혈겁의 시작

모용단승은 사흘 만에 정신을 차렸다.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대회에 출전할 수가 없게 되었음을 전해 듣고는 상심이 컸다.

그때 모용미가 들어섰다.

“……누나.”

모용미가 눈물을 뿌리며 그를 부둥켜안았다.

오랜만에 해후를 한 남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다른 이들은 일부러 자리를 피해 주고 없었다.

모용세가의 무사들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용단승이 이루어 낸 결과를 두고 한껏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대회를 치를 수가 없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최후의 사인에 오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사들을 들뜨게 만든 것은 당치성을 무참히 꺾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어! 대협님들이 오신다!”

혁련천후와 왕전 등이 들어서자 무사들은 머리를 조아려 그들을 맞았다.

“안에 계신가?”

“예.”

혁련천후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용단승은 재빨리 눈물을 닦아 내고는 일어서려 했다.

“그대로 있거라.”

부드러운 잠력이 그를 지그시 눌렀다.

왕전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살 만하냐?”

“죽겠습니다.”

모용미는 눈물을 훔치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모용단승이 혁련천후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뭐가 말이냐.”

“끝까지 방심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혁련천후는 담담히 미소를 머금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잘 싸웠다. 출전을 포기한 것은 너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는 것보다 이게 더 낫습니다.”

“자식! 저런 면도 있었네?”

왕전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는 모용미를 돌아봤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단승에게 전해 들은 그녀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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