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76화 (74/425)

# 76

<귀환무사 76화>

제1장 신비 세력의 등장

십만대산(十萬大山)은 이름 그대로 십만 개에 달하는 봉우리를 지닌 중원 남부의 명산이다.

온화한 기후 탓에 중원의 다른 곳과는 달리 활엽수로 이루어진 밀림이 산 전체를 두르고 있었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많은 독물과 독충들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광동을 가로질러 저 멀리 남해의 초입까지 이어진 광대한 산맥의 정중앙에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성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었다.

곳곳에 나부끼는 깃발은 그 크기가 사방 삼 장을 넘어갔으며 그 수가 수백에 달했는데 하나같이 같은 글자가 노란 바탕에 붉은 수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용성(龍城).

전설로 전해지던 용의 안식처에 세웠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는 곳이다.

어지간한 나라의 왕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용성의 주변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자욱한 안개가 천연의 장막처럼 깔려 있었다.

습한 기운으로 사방이 독물과 독충들로 득실대는 용성의 성곽에 발밑을 기어가는 독물 따윈 아랑곳없이 뒷짐을 지고서 십만대산의 저 먼 곳을 응시하는 두 인물이 있었다.

백발백염에 황제나 입을 법한 곤룡포를 걸친 초로의 노인은 옆의 인물이 건네주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입을 놀렸다.

“저 산맥만 넘어가면 선조 때부터 대대로 원했던 중원이다. 그 비옥한 영토가 우리에게 손짓을 보내는 것이 네겐 보이느냐?”

“어찌 보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때가 되었다. 그동안 기나긴 세월을 인고하며 참아 왔던 우리의 염원을 풀 그날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구나.”

“모든 준비는 이미 마쳤습니다. 중원으로 들어간 소성주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광동으로 출진할까 합니다.”

말을 건네는 노인의 목소리에서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곤룡포를 걸친 노인의 눈가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어리석은 놈! 그깟 계집 때문에 대사를 앞에 두고서 성을 빠져나가다니…….”

노인의 옆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은 적포 노인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성주께서는 조윤을 잡고자 성을 나가신 것이 아닙니까? 한데 어찌 그리 말씀하시는지요?”

“놈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놈은 오래전부터 검후라는 계집을 원하고 있었다.”

“검후라면 소성주께서 품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여인이라 들었습니다. 천년만년 중원천하를 군림하실 용성이 아닙니까. 당연히 그 후손 또한 최고의 핏줄이어야 한다면 소성주의 배필 또한 천하제일이 되어야지 않겠습니까.”

성주.

그랬다. 곤룡포를 걸친 노인이 바로 용성의 주인 손유였다.

아직 천하에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그였지만 일신에 지닌 무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접어든 절대 고수다.

그의 옆을 함께하는 노인은 용성의 군사로 손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손유와는 먼 친척뻘이 되는 자였다.

“조윤! 놈을 쫓았던 유소는 어찌 되었느냐?”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설마하니 유소가 무슨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잠시 더 기다려 보시지요.”

손유의 두 눈동자에 은근한 노기의 빛이 떠올랐다.

아꼈던 조윤이 말도 없이 떠난 이후로 그는 밤잠마저 설쳤다.

“돌아오지 않겠다면 죽여야지. 놈은 장차 우리의 행보에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 년을 있으면서 단 한순간도 자신을 전부 드러낸 적이 없었던 놈이다. 그 깊이와 크기는 본좌도 미처 모를 지경이니…….”

“그래 봤자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놈의 성정으로 어디 한 곳에 머무를 일은 결코 없습니다. 정도맹과 마교 같은 무리들에 섞인다면 몰라도 그 혼자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의 무사들을 믿으십시오!”

“믿는다. 그대들이 본좌에게 중원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안겨 줄 것을 굳게 믿는다.”

“반드시 그렇게 해 보이겠습니다!”

손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머리를 조아렸다.

손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돌연 십만대산의 우측 하늘을 응시하며 패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광동과 광서부터 점령할 것이다. 기한은 반년, 그 안에 반드시 두 지역을 본좌의 발밑에 두고 말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둘은 떨어지는 낙조를 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북쪽에서 날아든 전서가 손유의 손에 쥐어졌다.

‘유소를 비롯하여 전원 사망. 조윤을 쫓던 와중에 도왕 북궁천소와 맞닥뜨린 것으로 사료됨.

추신-조윤이 오왕의 하나인 창왕으로 밝혀짐.’

전서의 내용은 그러했다.

* * *

십만대산의 우거진 처녀림은 산자의 걸음을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햇빛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어둡고 칙칙했다.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독물과 빠지면 절대 나오지 못하는 거대한 늪지대는 천연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런 밀림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적색 무복을 걸친 대여섯의 인물들은 밀림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한 시진 이상을 살아남기 힘든 곳이 이곳인데 그들은 벌써 반나절에 걸쳐 산을 헤집는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도끼를 들어 나무의 밑동을 내리찍었다.

쾅!

“젠장! 어쩌다가 이런 형편없는 보직을 맡았는지 모르겠네.”

“그러게 술을 작작 처먹었어야지. 네놈 때문에 우리까지 이 지랄을 하고 있잖아!”

콰직!

덩치가 큰 자가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베었다.

그러자 다른 자들이 재빨리 나무의 가지들을 쳐 내기 시작했는데 잘라진 나뭇가지들을 늪지대로 모조리 던져 넣었다.

이미 거대한 늪지대는 엄청난 양의 나뭇가지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위를 역시 적색 무복을 걸친 자들이 거대한 나무판을 들고 늪지를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젠장! 벌써 며칠째 이 지랄이냐? 이런, 썅!”

투덜거리던 무사 하나가 검을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핏물이 뿌려졌다. 무사의 발 앞으로 상당한 굵기의 뱀이 꿈틀거리며 떨어졌다.

어지간한 장정의 허벅지만 한 뱀은 자칫 감기기라도 하면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식인 구렁이였다.

“허구한 날 독물들과 싸움이라니. 지랄맞은 팔자 같으니! 에이!”

무사는 연신 불평을 늘어놓으며 죽은 뱀을 늪지로 차 버렸다.

뱀은 나뭇가지가 깔리지 않은 곳에 떨어졌는데, 순식간에 늪 속으로 잠겨 사라졌다.

보통의 상식을 벗어나는 속도였는데 바로 십만대산의 늪이 지닌 무서움이었다.

가벼운 뱀이 저 정도의 속도를 보인다면 사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야! 저쪽이 허술하잖아! 이 자식들이 자꾸 농땡이 칠 거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장한이 고함을 질렀다.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는 주변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왜 우리 혈마대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지, 이게 다 그 새끼들 때문이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살수 새끼들!”

눈을 부라리는 장한이 바로 혈마대의 대주였다.

“대주님! 언제까지 놈들에게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저희 혈마대가 그동안 성에 바친 충성이 결코 작지 않은데 고작 일 년 전에 영입한 놈들에게 밀려 찬밥 신세라니요? 이거야말로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쳐 내는 꼴이 아닙니까!”

옆에 섰던 무사 하나가 불만을 드러내자 혈마대주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싸늘히 말했다.

“조금만 참자! 놈들이 곧 중원으로 들어간다고 하더군. 그때 적당히 정도맹에 정보를 흘려주면 놈들은 꼼짝없이 저승행이다. 크흐흐!”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발각이 되는 날에는 우리 모두가 다 죽습니다.”

“위험할 것 없다. 어차피 놈들은 일회용이야. 성에서도 놈들을 작전에 투입한 다음 비밀을 위해 모조리 죽일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죽여 준다고 무슨 큰일이 되겠냐?”

혈마대주라는 호언장담을 하며 일어섰다.

막상 몸을 일으키자 그 체구가 가히 수십 년은 자란 불곰처럼 엄청났다.

“그때까진 더러워도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둘은 늪지대의 가운데로 걸음을 놓았다.

첨벙!

순간 무엇인가가 늪 속으로 빠지며 진흙이 혈마대주의 전신을 더럽혔다.

“썅!”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자신의 옆을 따라오던 수하가 목이 잘려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야!”

비명조차 없었다.

어깨가 닿을 만한 거리에서 함께 걸었으면서도 그가 죽는 것을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으니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크게 놀라 주변을 살피는 혈마대주의 뒤쪽에서 유령처럼 솟아나는 인영이 있었다. 그 인영의 오른손이 번쩍 빛을 발했다.

서걱!

퍽!

혈마대주의 살찐 머리통이 늪으로 떨어졌다.

작업을 하던 무사들이 경악하며 뒤로 일제히 날아갔다. 주인을 잃어버린 비대한 육신이 서서히 기울어지며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스슷!

시커먼 그림자가 죽은 자들이 섰던 곳에 나타났다.

“감히 우리의 죽음을 논하다니…….”

무더운 날씨를 한풍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인영에게서 흘러나왔다.

혼자였던 그의 주변은 이미 넷이 더 나타나 있었는데 죽립을 내려쓴 그들에게서 칙칙한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죽립 사이로 살짝 비친 눈동자는 소름이 다 끼칠 정도로 섬뜩했다.

“죽여!”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죽립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크악!”

“으악!”

땀을 흘리며 일하던 자들이 난데없이 뛰어든 죽립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서른에 달하던 무사들이 저승으로 길을 떠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각에 불과했다.

짙은 흙색이었던 늪이 죽은 자들이 흘린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도살을 끝낸 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혈마대주의 목을 잘라 버린 자의 시선은 북쪽을 향해 있었다.

“유소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목이 잘리고 모든 뼈가 박살이 난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더군.”

순간 주변에 살기가 몰아쳤다.

“유소를 죽었다면 당연히 놈의 복수를 해 줘야지. 하니 나와 함께 중원으로 나간다. 가서 흉수의 목을 자르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성주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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