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귀환무사 70화>
자신 앞에서의 이런 태도는 징계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하물며 대회 사상 최초로 시합 도중에 타인이 끼어들어 중단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무당이 살초를 전개한 것을 떠나 당장에 그 원인은 왕전에게 있다.
“우우우!”
“화산파를 당장에 실격시켜라!”
사천당가와 무당파에 협조적인 문파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손을 들어 군중들의 야유를 막은 적용세가 화산 측을 돌아봤다.
“장문인께서 직접 올라오셔야겠소.”
적용세는 정중한 어조로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천하의 적용세가 그리 나오니 어쩔 수 없이 태허가 비무대로 몸을 날렸다.
진유 또한 함께 몸을 날려 왕전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적용세가 그들에게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움직일 때, 연무장의 한 곳에서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명백한 반칙이니 화산의 실격패를 선언하시오!”
“옳소! 화산의 실격패가 당연하오. 또한 향후 영웅 대회의 출전을 불허하는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오.”
또다시 화산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왕전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그들을 돌아봤다.
“어쩔 수 없소이다. 장문인. 명백한 반칙이니 실격은 당연한 것이오.”
적용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유의 얼굴이 붉어졌다.
“장로님! 분명 사천당가에서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살초를 전개했습니다. 저분이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 본 파의 제자는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한데 어찌 사천당가에게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본 화산의 잘못만을 거론하십니까?”
“흥! 대결을 하면서 그 정도의 수법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게 아이들 싸움이지 영웅 대회라고 할 수 있겠느냐!”
명수진인이 코웃음을 쳤다.
진유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의미 모를 빛이 피어났다.
적용세가 골치 아픈 표정을 짓더니 귀빈석을 보며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운영 위원회에서 결정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위원장으로서 긴급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합니다.”
진유가 명수진인을 차갑게 노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전에 사천당가와 무당의 편파적인 처사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정식으로 맹에 항의하는 바입니다.”
[흥! 맹에서 너희 화산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정도밖에 사리 판단이 안 되었더냐? 진유!]
진유는 귓속을 파고드는 전음성에 발끈하여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자신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는 명수진인의 태도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전음은 이어졌다.
[어차피 싸워 봐야 개창피만 당할 것이다. 이쯤에서 실격패로 물러나는 것이 너희 화산파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명수진인은 진유의 얼굴만을 똑바로 쳐다봤다.
대놓고 사천당가의 편을 드는 명수진인의 태도에 진유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았다.
사천당가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는 심보인지 그저 가만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진유의 붉어진 얼굴을 본 왕전은 대략 상황을 짐작했다.
“말코 도사! 자꾸만 개수작을 부릴 거냐?”
“네 이놈!”
사건의 도화선이 될 말이 왕전에게서 흘러나왔다.
기회를 놓칠 명수진인이 아니었다.
도발을 목적으로 진유의 속을 긁고 있던 그는 뜻하지 않은 호재에 내공을 끌어 올려 일부러 낯빛을 붉게 물들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하찮은 사대제자 주제에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냐? 화산의 법도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느냐!”
연무장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정도로 그는 목소리에 내공을 한껏 실었다.
적용세 또한 못마땅한 표정으로 왕전을 응시했다. 온화한 성정의 그도 왕전의 태도는 상당히 거슬렸다.
배분을 중요시하는 정파의 특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돌연한 상황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슬슬 부아가 치밀던 관산악이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여전히 그는 팔짱을 하고서 비무대를 담담하게 보고만 있었다.
“제대로 말렸습니다. 그냥 쓸어버립시다. 저 도사 새끼들!”
영호수란이 그 말에 크게 놀랐다.
정도맹 한복판에서 저런 말을 거침없이 해 대는 관산악의 정체가 그때야 궁금해졌다.
담대소천과 흑야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혁련천후가 눈짓으로 그들을 말렸다.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다.”
“주공! 더 있다가는 실격패를 당하고 맙니다!”
혁련천후가 관산악을 돌아봤다.
그의 눈을 본 관산악은 흠칫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다시 시선을 비무대로 돌린 혁련천후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명수진인을 직시했다.
필요 이상으로 날뛰는 그를 보며 무당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전음을 엿들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조금 전 명수진인이 진유에게 보냈던 전음은 모조리 그에게 걸려 들었다.
명수진인의 목적이 의도적인 도발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단순히 화산을 창피 주기 위함이라면 내 순순히 받아 주겠다. 허나 그 이상이라면…….’
싸아아!
주변에 갑자기 냉기가 몰아쳤다.
“어멋!”
영호수란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제8장 제 꾀에 말려든 무당파
적용세의 중재로 일단 양측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정도맹의 입장에서 남은 것은 화산의 실격을 선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하지만 무당과 사천당가는 그것으로 만족하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무당은 가급적 사건을 크게 확대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했고 화산은 끝까지 사천당가의 고의적인 살초를 물고 늘어졌다.
수뇌부들이 긴급회의를 갖고 있을 즈음, 진유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는 않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들불처럼 끓어오르는 것이 진유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깨에 붕대를 감은 진명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약해서 벌어진 탓이라고 여긴 그는 눈시울까지 붉혔다.
아무도 그런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이럴 땐 그냥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위로라는 걸 모두는 알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왕전을 비롯한 모두는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서는 재촉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대회가 중단되자 곳곳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많은 이들이 화산파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산의 실격을 당연하다 주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적용세가 비무대로 올라섰다.
대회장은 일순 정적으로 가라앉았다. 무당과 화산파, 그리고 사천당가는 적용세의 입만을 주시했다.
혁련천후가 눈을 떴다.
그도 적용세을 주시했다.
“맹의 입장을 발표하겠소이다!”
적용세의 내공이 실린 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잠시 장내를 쓸어 본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삼자의 개입인 명백한 실격 사유이니 수뇌부 회의는 화산의 실격을 결정했소! 또한 향후 이십 년간, 화산의 영웅 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징계가 정해졌음을 알리는 바이오!”
“닥치시오!”
진유가 벼락같이 몸을 날려 비무대로 날아갔다.
귀빈석의 뒤쪽에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낸 흑색 무복의 무사들이 일제히 적용세를 호위하듯 늘어섰다.
그들이 검을 뽑아 들고 진유를 막아섰다.
“놈! 물러서지 못할까!”
귀빈석에서 호법 순우진이 뛰쳐나왔다.
진유의 앞을 막아선 그는 당장에 도를 뺄 듯 살벌하게 눈을 부라렸다.
장내는 일촉즉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군웅들은 정도맹의 처사를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심하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름 없는 군소 방파가 대부분이었다. 언제나 세력이 약해 부당한 처사를 달고 살아온 그들이기에 이번 결정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화산파의 실격을 주장하던 일부 사람들도 이십 년간 대회 출전을 불허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 지나친 처사라 말을 바꾸었다.
“죽이고자 살수를 펼친 자를 감싸고 옹호하는 것이 진정 정도맹의 뜻이란 말이오? 그것이 영웅 대회를 창설하신 선조들에 대한 모독임을 맹은 어찌 모르시오!”
진유의 붉어진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순우진이 나섰다.
“감히 맹의 결정에 항명을 하겠다는 것이냐, 화산!”
그는 화산이라는 말에 힘을 더 주었다.
“항명이라니? 부당함을 간하는 것을 어찌 항명이라 하시오!”
“내려진 결정에 불응하면 그게 항명이지 뭐란 말이냐!”
진유는 말문이 막혔다.
말만 놓고 보면 순우진의 말이 다 옳았다. 그래서 더 분노했다.
그때였다.
지금껏 지켜보고만 앉았던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공.”
“여기서 기다려라.”
모두는 비무대로 올라가는 혁련천후를 응시하며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그냥 깡그리 쓸어버리시는 거 아니냐?]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꼬락서니들을 보고 있자니 열불이 터져 봐줄 수가 없지 않느냐.]
[혹시 모르니 다들 준비하고 있어라.]
모두가 비무대로 올라서는 혁련천후를 주목했다.
“뭐야? 저자는…….”
비웃음을 머금고 사태를 지켜보고 앉았던 마교의 인물들이 눈빛을 발했다.
특히 깡마른 몸에 오른쪽 뺨에 흉측한 문신을 새겨 넣은 마교의 장로가 혁련천후의 전신을 쓸어 보며 묘한 빛을 발했다.
그는 흑의 청년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자를 눈여겨보시오. 소교주! 저런 기운을 지닌 사람은 천하에 대종사! 그분뿐이었소.”
“저자가 기를 완벽히 갈무리할 수준에 이른 고수란 말입니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러한 경지를 밟은 절대 고수가 맞소! 놀랍소이다. 화산에 저러한 자가 있었다니…….”
늑대와도 같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놀란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련의 인물들과 정도맹의 수뇌부 역시 혁련천후를 보며 눈빛들을 발산하고 있었다.
적용세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저자! 그때 그자의 분위기와 닮았어.’
지금껏 자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섬서의 객잔에서 보았던 혁련천후를 그는 떠올렸다.
변장을 하는 바람에 당장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전신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그때의 혁련천후와 흡사했다.
진유는 혁련천후가 올라오자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혁련천후는 그런 진유을 향해 담담히 미소를 머금어 주었다.
[이제부턴 내게 맡기고 물러서라.]
진유는 머리를 조아리고는 비무대를 내려갔다.
지켜보던 모두가 진유의 태도에 가볍게 놀라는 기색들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