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귀환무사 67화>
독고무가 본격적인 강호행을 할 당시, 부상을 입은 그를 이자겸이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서로의 인격에 반한 두 사람은 지금껏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내왔다.
“천하에 이 정도의 극독을 다룰 줄 아는 곳은 오직 사천당문뿐이다. 그들이 혜아의 중독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런 악독한 짓을…….”
이자겸은 누가 들으면 큰일이 날 소리를 중얼거렸다.
“지나치게 강한 독성 때문에 당가에서도 유출을 엄격히 금하고 있거늘, 대체 어떻게 이 아이가 그 독에 중독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허면 설마 그 늙은이가 은거를 깨고 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누군가를 떠올린 이자겸은 몸서리를 쳤다.
당가에 독에 있어 입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삼십 년 전에 돌연 은거에 들어갔는데, 만약에 그가 다시 강호로 나선다면 천하에 사천당문과 전면전을 벌일 문파는 없다고 봐야 한다. 호흡조차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인(毒人)의 경지에 든 그 존재는 살아 움직이는 살인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다. 설령 그자가 은거를 깨고 나왔더라도 한낱 이런 일에 독을 쓸 정도로 속된 자는 아니다. 허면 대체 어느 누가 당가에서 독을 구해서 이 아이에게 사용을 했다는 것인데…….”
안타까운 눈으로 독고혜를 내려다보던 이자겸은 이내 그녀의 팔에다 침을 놓기 시작했다.
침이 박힌 곳에서 시커멓게 죽어 버린 피가 흘러내렸다.
독에 의해 썩은 피여서인지 심한 악취가 실내를 진동했다.
그때 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천을 적셔 왔느냐?”
“예.”
“허면 어서 피를 닦아 내거라.”
소녀는 즉시 쪼그리고 앉아 독고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익숙한 것이 제법 이런 일에 능통한 듯 보였다.
“우리도 미리 준비를 하자꾸나. 내일 동이 트면 바로 출발을 할 것이니 응급약과 도구들을 빠짐없이 챙겨 놓아라.”
“예! 사부님!”
이자겸의 제자인 그녀는 정성껏 독고혜의 팔과 어깨 쪽을 주물렀다.
같은 여인이 보기에도 독고혜의 얼굴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밀랍처럼 창백한 안색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였다.
소녀의 마음은 이랬다.
‘부럽다…….’
독고혜의 팔에 침을 다 꽂은 이자겸은 건너편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사공진무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가슴에서 허리까지 쩍 벌어진 상처에 피가 말라붙은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봐주기가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협곡에서 마지막에 맞닥뜨렸던 청년과 노인. 그때 기지를 발휘해 그 자리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청년과 노인이 휘두른 검에서 발출된 강기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 버렸다.
이 상태에서 독고혜를 업고 정도맹까지 온 것만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주인을 향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7장 무당의 의도된 도발
나백의 거처가 질식할 것만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자리를 지킨 자들의 숫자가 여섯이나 되었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실내의 공기는 무거웠다.
“단 일 검에 사망했소이다. 도저히 보고도 믿을 수 없소이다.”
소진걸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나백을 힐끗 쳐다보고는 적용세를 돌아봤다. 둘은 침울한 표정으로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면식이 있는 자의 소행이라고 볼 수밖엔……. 그렇지 않으면 천하에 누가 그분을 일 검에 해칠 수 있단 말입니까?”
소진걸이 목소리를 높이자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에 손을 짚고 있던 나백이 입을 열었다.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소이다. 그분의 체내에 남아 있던 내공은 전무했소. 그것은 곧 상당 시간을 싸웠거나 그분에 필적할 만한 대단한 고수가 흉수였다는 말이 아니겠소. 한 수에 전력을 담아야 할 만큼 대단한 고수 말이오.”
“천하에 그만한 고수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암습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육승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암습이라는 말에 소진걸이 눈빛을 내며 좌중을 돌아봤다.
“흑야라면 가능하지 않겠소? 그자가 화산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쩌면 이곳에 들어왔을 수도 있지 않겠소?”
적용세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진걸을 쳐다봤다.
“그가 무슨 이유로 그분을 암습한단 말이오?”
자신을 쳐다보는 적용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소진걸은 찌푸린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지금 그 이유가 문제가 아니잖소? 흉수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오, 수석 장로!”
소진걸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나백이 손을 저으며 끼어들었다.
“어허! 그만들 하시오. 사인은 심장을 관통한 검기로 밝혀졌소이다. 지금껏 청부자들의 목을 잘라 온 흑야의 수법과는 확연히 다르니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어쨌든 이 사실을 대회가 끝나는 시점까지 비밀로 하는 것에 협조를 해 줘야겠소.”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지면 영웅 대회의 정상적인 진행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천하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영웅 대회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껏 침묵을 지켰던 총호법 관승이 나백을 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마교와 사파의 인물들에 대한 행적을 조사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지난밤의 행적 정도는…….”
“당연하오! 그들을 불러 지난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도는 조사해야 하오!”
소진걸이 거들었다.
나백이 육승을 돌아봤다.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육승이 좌중을 쓸어 보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거처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묵고 있는 거처는 본전의 고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철통같이 경계를 하고 있었으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답답하군.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적용세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맹의 정보를 총괄하는 육승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믿어야 했다. 모두가 잠시 침묵으로 젖어 들었다.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육승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굳은 얼굴을 한 나웅이 들어섰다.
모두에게 허리를 굽힌 그가 나백을 보며 말했다.
“검후가 맹에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소진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웅을 나무랐다.
“그깟 여인 하나가 든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회의를 방해하느냐?”
나웅이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목숨이 경각에 이른 상태라 지금 약당에 모셔 놨습니다. 해서 급히 알려 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
“뭣이!”
적용세가 크게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관승과 육승 또한 얼굴이 굳어졌다. 검후에 대한 손자의 마음을 알고 있는 나백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약선이 마침 맹에 있으니 그분에게 부탁을 해 보지 그랬느냐!”
“안 그래도 그렇게 했습니다만 그분도 현재로써는 마땅한 방도가 없다고 하시면서 내일 청수곡으로 검후를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허어, 약선이 그리 말씀하셨단 말이냐?”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약선이 그랬다면 그야말로 위중한 상태가 아닌가.
사실 검후 독고혜는 정도맹으로서는 함부로 무시해선 안 될 존재다. 그녀 자신보다는 그녀의 뒤에 있는 십지신검과 십지문 때문이다.
몰랐다면 모르되 알았으니 최대한의 성의는 보여야 했다.
그때 미세한 미풍이 일어나며 노인 한 명이 나백의 거처로 들어섰다. 나백을 포함한 모두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노인을 맞이했다.
약당을 들렀던 그 노인이었다.
“노사(老師)를 뵙습니다.”
나백이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에게 노사 칭호를 받을 존재는 사천왕의 일인이자 전대 정도맹주를 역임했던 검제(劍帝) 공야무뿐이다.
주름이 얼굴을 가득 덮은 공야무는 그저 시골의 평범한 촌부를 연상시켰다.
“중독이라면 차라리 당가의 늙은이를 부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그 늙은이라면 충분히 해독할 방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게야.”
경지가 하늘에 닿았으니 오면서 이미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웅이 그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 공야무가 나백을 돌아봤다.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는가?”
“하실 말씀이라도…….”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러네.”
“알겠습니다, 노사!”
나백을 제외한 모두가 공야무를 향해 허리를 숙인 후, 돌아갔다. 나웅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공야무가 고개를 나백에게 돌리는 순간 얼굴은 이미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지금 이곳에 그가 있네.”
“그라시면…….”
뜬금없는 공야무의 말에 나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석수, 그 친구가 돌아왔단 말일세.”
“……!”
나백은 목구멍을 넘어오는 신음을 간신히 참았다. 공야무는 나백이 마시던 차로 목을 적신 후, 말을 이었다.
“영백의 가슴에 난 상처를 보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네. 천하에 심장을 관통하고 얼려 버릴 무공은 오직 하나, 화산의 구룡삼세(九龍三?)뿐임을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 구룡삼세의 흔적이 영백의 심장에 남아 있었네.”
나백은 믿을 수 없었다.
구룡삼세는 십 년 전, 천하를 상대로 일인전쟁을 치른 사내만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이다.
화산의 무공이되 화산의 그 누구도 익히지 못했던 그것을, 사내는 천하를 상대로 펼쳤었다.
그로 인해 오백에 달하는 자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한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니. 그것도 정도맹 안에 있다니.
“진정 그자가 살아왔단 말씀입니까?”
“틀림없네. 그가 아니면 그것을 익힐 자, 화산에 아무도 없음은 노부가 장담하네. 시신을 찾지 못했던 것이 십 년 동안 가슴을 짓누르더니 결국…….”
공야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공황 상태를 보였던 나백이 정신을 수습했다.
“진정 영백 노야를 죽인 자가 석수, 그라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복수의 시작이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하네. 영백을 죽였으니 다음은 그가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말일세.”
나백의 심유한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공야무가 거론한 그는 자신과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공야무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